2020 |
|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말씀/ 마태복음 7:1-12 요절/ 마태복음 7:12 | 2020.5.10 |
마태복음 10강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 가운데 하나가 인간관계입니다. 인간관계를 잘 맺고 싶지만 말로 인해 오해를 받거나 상처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신앙생활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관계를 잘 맺어야 합니다. 좋은 관계성을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가슴에 새기고 삶의 현장에서 실천한다면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좋은 관계성을 맺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지 배우고 날마다 실천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비판하지 말라는 것은 인간관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교훈입니다. 여기서 비판은 평가나 비평이라는 긍정적 개념이 아니라 부정적 비판이며 정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남을 정죄하는 것을 금하셨지 정당한 비평을 금하신 것은 아닙니다. 비판하면 누구로부터 비판을 받게 됩니까?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습니다.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은 재판장의 위치에 앉아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를 좋아합니다. 남을 비판함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사람이나 모임이 좀 더 온전해질 수 있도록 사랑을 담아서 하는 비판은 건전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결여된 마음으로 사람이나 모임을 비방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비판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설령 그 비판이 옳을지라도 그 비판으로 인해서 듣는 사람의 마음에 불신과 갈등과 미움을 심게 됩니다. 그 결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성을 깨뜨리고 공동체를 분열시키기 때문에 그런 비판은 악한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비판은 사람이나 모임을 넘어뜨리고 죽일 뿐이고 결코 생명을 살리거나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의 마음을 품고 하는 말과 행위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품고 다른 사람의 허물과 실수를 이해하고 용서할 때 그 사람이 변화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정죄의 눈으로 보지 않으시고 긍휼의 눈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정죄와 심판이 아닌 진리의 말씀과 용서의 사랑을 통해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변화시키십니다.
인터넷 댓글을 보면 칭찬하는 글은 별로 없고 욕하고 비판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악플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시험에 들고 어떤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기도 합니다. 비판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문제는 자신에게는 판단의 기준을 낮추고 다른 사람에게는 기준을 높이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에게는 가혹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약점은 잘 보지만 자기의 약점은 잘 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허물은 보지 못한 채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기를 잘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남을 비판하는 그 기준으로 똑같이 비판을 받을 것입니다. 시장에서 되로 산 것은 되로 팔고 말로 산 것은 말로 팔게 되어 있습니다.
티와 들보의 비유는 같은 허물을 다르게 보는 우리 습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같은 허물이라도 자기 허물은 작게 느끼고 남의 허물은 크게 느낍니다. 예수님은 정반대로 남의 눈 속에 있는 것은 티라고 하시고 내 눈 속에 있는 것은 들보라고 말씀하십니다. 티는 조그만 먼지조각이고, 들보는 나무기둥입니다. 내 눈 속에 나무기둥이 들어 있다면 남의 눈 속의 티는 볼 수도 없고 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남의 허물은 작게 느끼고 내 허물은 크게 느껴야 합니다. 회개의 작업을 통해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내야 영적 눈이 밝아져서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뽑아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자비를 베푼 자에게 더 많은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내 눈에 있는 들보는 무엇입니까? 딱딱하고 냉소적인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교만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판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마음에 사랑이 없고 은혜가 없고 감사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지 못하고 칭찬에 인색합니다. 사람이나 모임을 볼 때 좋은 점보다 항상 부족한 점, 허물을 잘 찾아냅니다. 남의 눈에 티를 어찌하든지 뽑고자 합니다. 하지만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빼는 일처럼 힘든 것은 없습니다.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빼다가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또한 비판하는 사람은 자신의 허물과 죄를 잘 깨닫지 못합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원에서 한 가지 송사가 올라오면 세 명의 판사와 연구원 한 사람이 몇 달 동안 그 사건에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고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검사와 변호사가 제출한 서류도 면밀히 검토합니다. 그런 후에 판결합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쉽게 다른 사람에 대해서 비판하면 안 됩니다. 제가 남을 비판하기보다 제 자신을 돌아보는데 힘쓰고, 다른 사람의 허물과 약점에 대해서는 작게 보고 은사와 장점에 대해서는 크게 보고 칭찬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남을 비판해서는 안 되지만 무엇을 분별해야 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우리는 거룩한 것과 진주의 가치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아무에게나 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하지만 어떤 사람들과 관계성을 맺고 도와야 하는지에 대해서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것과 진주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본문의 문맥에서 본다면 비판과 대조되는 건설적 비평이나 지혜로운 충고로 볼 수 있습니다. 개나 돼지는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소중한 말씀의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반발하고 대적합니다. 이런 사람을 훈계하거나 진리의 말씀을 전하면 공격을 받습니다. 건설적 비평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대적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부당한 공격을 당하는 것을 우려하시고 그들을 보호하고자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람을 도우려면 분별력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나 사랑의 권면을 할 때 그 대상이 겸손한 사람인가, 아니면 거만한 사람이인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분별력을 가지고 사람을 도울 때 해를 당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구원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7-11절은 기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에 대해서 반복해서 가르침으로 기도의 중요성을 환기시켜 주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같은 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서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입니다. 구체적으로 산상수훈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를 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산상수훈 말씀대로 사는 것은 우리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화가 나고 자괴감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형편을 잘 아시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포기치 않고 끈질기게 구하는 것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원래 이 말씀은 고대 거지들의 삶의 지혜에 속합니다. 문전박대를 당해도 물러나지 않고 끈질기게 구걸하면 결국에는 얻어먹을 것입니다.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이는 구약성경에서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하던 표현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이는 유대교에서 하나님의 자비의 문을 두드리라는 교훈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신자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의 관계를 더 확실하게 알려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예로 드셨습니다. 자녀가 배가 고파서 빵을 달라고 하는데 빵 대신 돌을 주는 아버지는 아무도 없습니다. 자녀가 생선을 먹고 싶어하는데 뱀을 줄 아버지도 없습니다. 악한 자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으로 줄 줄 압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선물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면 우리의 의지와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주십니다. 냉소적인 마음에 사랑을 가득 부어주셔서 포용력을 가진 사람으로 빚어 주십니다. 힘든 사람, 상처 많은 사람도 도울 수 있는 지혜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을 부어주시도록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차기 한국대표를 뽑는 중대한 일에 우리도 함께 기도해야 겠습니다. 우리 공동체를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기도하며 몇 가지 기도제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연합입니다. 에베소서 4장 3절에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하나 되는 것은 성령의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있는 미움과 불화를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시고 평화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본부와 지부, 국내지부와 해외지부, 선배목자들과 후배목자들이 하나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에 맡기신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를 이루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목자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제가 목자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는 목자의 정체성이 분명했고 생명구원역사를 섬기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목자의 정체성을 잃고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목자의 삶에 많은 희생이 따르기에 후배들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목자의 길을 가라고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목자의 길은 예수님이 가신 길이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따랐던 길입니다. 목자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모임을 살리고 다음세대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셋째, 소통하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카리스마가 있는 한 사람이 교회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서로 소통하고 존중하며 각자의 은사를 발휘하여 복음역사를 섬겨야 하는 시대입니다. 일방적인 성경공부가 아니라 서로 배우고 서로 은혜를 나누는 쌍방향의 성경공부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모임도 수동적으로 참여하기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지속적인 기도를 가르치신 후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어떤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포기치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면 하나님은 약속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풍성히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대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 이웃은 삼각관계입니다. 내가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나는 받은 것을 이웃에게 나누고 이웃을 대접합니다. 이웃을 대접하는 것은 이웃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 받고, 받은 것을 가지고 이웃을 대접하고, 그 대접은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나의 사랑과 헌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것은 산상수훈의 결론일 뿐 아니라 율법과 선지자 다시 말해 구약성경의 핵심입니다. 이 말씀은 황금율로 알려져 있습니다. 황금율은 로마의 황제였던 알렉산더 세베루스가 이 말씀을 궁전의 벽에 금으로 새겨 놓은데서 유래되었습니다. 황금율은 인간관계의 원칙이요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 역시 내가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랍니다. 어린 아이나 노인, 남자나 여자, 의인이나 악인, 부자나 가난한 자,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 모두 똑같이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자신을 사랑해주고 인정해주고 존중해주기를 바라기만 하기 때문에 상처를 받고 원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 순종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인정과 사랑에 감복해서 행복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대로 되돌려 줄 것입니다. 결국에는 내가 대접한대로 다른 사람도 나를 대접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러면 인간관계가 잘 풀리고 좋은 관계성을 맺게 되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기 때문에 관계성에 문제가 생기고 공동체가 위태롭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산에 올라가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 나쁜 사람아!” 그러자 “이 나쁜 사람아! 이 나쁜 사람아! 이 나쁜 사람아!”라고 메아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번에는 이렇게 외쳐보았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메아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처럼 내가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을 하면 결국 이 모든 것이 자기에게로 돌아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섬기게 되면 다른 사람도 사랑으로 보답합니다.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긴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소중히 여김을 받습니다. 먼저 남을 존중하고 사랑하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나도 행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하고 인색하게 대하면 다른 사람 역시 이런 나에게 무관심하고 인색하게 대합니다. 그래서 외롭고 고독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이치입니다.
그런데 내가 대접을 잘 받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남을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이 말씀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브 앤드 테이크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남에게 대접받기 위해서 남을 대접한다면 금방 실망하고 상처를 입게 될 것입니다. 내가 남을 대접했지만 그 대접이 똑같이 돌아오지 않을 때도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는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을 전제로 해서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인정하고 먼저 다른 사람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댓가를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섬긴 후에 댓가가 따르지 않더라도 상처받지 않고 계속해서 섬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순수하게 섬기는 자에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저는 황사무엘 목자님이 충성된 하나님의 종이요 목자가 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목자의 길이 너무 힘든 길이기에 적극적으로 이 길을 가라고 하지 못하고 기도만 하였는데,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였고 그의 인생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습니다. 제가 그와 그 가정을 책임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김동환 목동이 청년학생요회를 섬기고자 자원하여 결단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학생부흥의 새역사를 이루어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 주시길 기도합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 말씀은 산상수훈의 결론이요 마태복음의 주제요 성경의 핵심입니다. 우리에게는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나를 그렇게 대접해주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그렇게 대접해야 겠습니다. 나의 힘으로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내가 변화될 때, 한 사람을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