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
|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말씀/ 마태복음 8:1-17 요절/ 마태복음 8:17 | 2020.5.24 |
마태복음 12강 |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말씀을 가르치시고 전하는 일, 각종 병자들을 고치신 일, 열두 명의 제자들을 양육하신 일을 하셨습니다. 8-9장은 10가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의 긍휼과 능력을 보여 줍니다. 오늘 본문에는 3가지 치유사역이 소개됩니다. 첫 번째 사람은 육체의 병 때문에 고통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이방인이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어려웠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여인이었기에 소외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자격 없는 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의 긍휼과 능력을 경험하고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질병이 있고 연약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연약함과 질병을 치유 받고 생명력과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사랑의 목자 예수님을 만나고 놀라운 은혜를 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 오셨습니다. 이때 산상수훈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은 수많은 무리가 따랐습니다. 이때 모든 사람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온 몸에 나병 들린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나병은 강한 전염성 때문에 유대 사회에서는 가장 위험한 질병으로 여겼습니다. 나병에 걸리면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몸이 썩어들어갑니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정신적 고통입니다. 나병은 전염병이기 때문에 나병 환자들은 사람들과 격리되었습니다. 율법은 나병을 부정한 병으로 규정했습니다. ‘부정한 병’은 죄를 짓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생긴 병이란 뜻입니다. 나병에 걸린 사람은 자신을 부정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병환자와 마주치는 것조차도 부정하게 여겨서 다가오지 못하게 돌을 던졌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늘 죄의식에 시달렸고 깊은 운명주의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나온 한 나병환자는 자기의 운명을 바꾸고자 도전했습니다.
그는 더럽고 추한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 나와서 절하며 말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사람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 혼란이 벌어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병환자가 사람들에게 다가오면 모욕을 당하고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이런 몹쓸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오기가 더욱 힘듭니다. 그러나 나병환자는 깨끗함을 받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께서 불치병인 나병도 고칠 수 있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인생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소원과 믿음입니다.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 있는 사람은 여러 어려움에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소원이 강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고 또 도전합니다. 역사를 창조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런 간절한 소원과 예수님이라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과 믿음을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고쳐주고 싶어도 그 마음에 소원과 믿음이 없으면 고쳐주실 수 없습니다. 절망하고 포기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간절한 소원과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는 사람은 인생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님은 말씀만 하셔도 나병환자를 고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의 몸을 만지셨습니다.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는 것은 율법으로 금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율법을 초월하여 그의 몸에 손을 대심으로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이는 주님의 긍휼의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고통과 상처를 아시고 사랑의 터치를 하셨습니다. 그때 그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리고 그의 몸과 마음은 따뜻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텃치와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예수님은 그가 깨끗함을 받고 건강한 인생을 살기를 진정으로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가 깨끗함을 받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사람은 즉시 깨끗하여 졌습니다. 그의 몸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도 깨끗해졌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요 천국백성이 됩니다.
요즈음 코로나 불루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외부활동을 하지 못하고 집에만 박혀 있어서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울증은 치료하기 어려운 병입니다. 우울증 환자들은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습니다. 감정 콘트롤이 되지 않고 자학하고 화를 잘 내며 중독에 잘 빠집니다. 사람들은 나의 상처를 알 수 없고 치료해 주지도 못합니다. 긍휼과 사랑의 목자 예수님만이 나의 상처를 아시고 온전히 치유해 주십니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마음의 병을 예수님께 들고나감으로 고침 받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나병에서 고침 받은 사람은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예수님을 선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당부하신 이유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병 고쳐주시는 분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직 그가 먼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제사장에게 그의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림으로서 그들에게 자기가 나병에서 온전히 나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가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도와주셨습니다.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잘 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예수님을 인해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나병은 우리의 신체를 문드러지게 하고 썩어서 냄새나게 합니다. 하지만 죄는 우리의 영혼을 문드러지게 하고 시궁창 냄새가 나게 합니다. 죄를 지으면 아름다운 형상을 잃어버리고 추한 존재가 됩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영원한 형벌에 던져집니다. 예수님은 이런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깨끗함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시고 건강한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였습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나병환자에 이어 두 번째로 예수님께 나온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문제가 아니라 하인의 병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백부장은 100명의 부하를 통솔하는 장교로서 힘 있는 권력자였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은 피지배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압제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백부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기에 예수님께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하인의 병을 낫게 하고자 예수님께 왔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가족도 아닌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당시 종들은 주인들이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는 재산의 일부였습니다. 종이 병들어서 쓸모가 없으면 버리든지, 돈을 주어서 알아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달랐습니다. 그에게는 인간애가 있었습니다. 종을 자식처럼 사랑했고 그의 병문제를 어찌하든지 해결해주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하인을 향한 사랑에 감동이 되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예수님은 그의 간구대로 그의 집에 가서 하인을 고쳐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 집에 가는 것이 율법에서 금하는 것임을 알았지만 율법을 뛰어넘어 한 생명을 살리고자 하셨습니다. 그때 백부장은 예수님이 영적 세계의 총사령관이심을 깨닫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백부장은 예수님이 그의 집에 들어오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이방인이요 예수님은 거룩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영적 총사령관으로 보았고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를 믿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말씀만 하시면 그의 하인이 낫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있을 때 한마디 말씀이라도 마음으로 듣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백부장은 군대생활을 통해 말의 권세를 체험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군대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사회입니다. 군사령관이 명령을 내리면 휘하장병들은 밤을 새서라도 명령에 복종합니다. 그래서 상관의 명령은 어떤 것이라도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백부장은 군인정신이 투철하여 상관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했습니다. 그의 부하들도 그의 지시에 따랐습니다. 백부장은 명령에 복종하는 군대생활을 통해서 말의 권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평소 부모나 상사의 말에 습관적으로 반발하는 사람은 결코 말의 힘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가볍게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신앙적인 체험을 할 수가 없습니다. 순종하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믿음의 깊은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코로나19로 인해 불안과 두려움과 무력감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21:15)고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에 강권되어 주님의 양을 먹일 때 말씀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에 큰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이스라엘 중에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만한 믿음은 위대한 믿음을 말합니다. 그것은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 이방인이 그런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100% 믿는 믿음입니다. 똑같이 말씀을 공부해도 어떤 사람은 날로 신앙이 성장하지만 어떤 사람은 더디게 성장합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이는 각 사람마다 말씀에 대한 자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순수하고 겸손한 사람은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배우고 순종합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이 강하고 마음이 복잡한 사람은 말씀을 들어도 자기 나름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말씀에 자신을 헌신하지 않습니다. 말씀에 대한 자세를 새롭게 함으로서 우리의 신앙이 날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자들이 천국에 앉게 된다고 하십니까? 11,12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백부장은 이방인의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큰 믿음을 보시고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될 비전을 보셨습니다.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본 자손들인 유대인들은 불신으로 인해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혈통이나 인간적 조건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오직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천국 백성이 됩니다. 천국 백성의 유일한 기준은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양들과 자녀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는 데 힘써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자마자 그 즉시 하인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말씀신앙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고, 산상수훈을 암송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베드로는 결혼해서 아내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열심히 고기를 잡아서 가정을 돌보는 성실한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후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의 아내와 장모는 이런 베드로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불만이 커져서 열병에 걸려 눕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장모로 인해 마음에 그늘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의 문제를 아시고 그의 집을 심방하사 장모를 돌아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손을 만져주셨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열병이 떠나갔고, 여인은 일어나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가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적절하게 도와주십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다 영접하시고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쳐 주셨습니다. 저자 마태는 병든 영혼들을 돌보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이사야 53:4 말씀이 성취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선지자 이사야는 고난의 종 메시아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마태는 성령의 감동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우리의 연약함과 질고와 슬픔은 죄로 인해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찔리고 상하셨습니다. 또한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 특히 이사야가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아이십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종으로서 우리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나음을 주시고 평화를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요 목자이십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이요 세상의 소망이십니다.
사람은 강한 것 같지만 연약합니다. 연악해서 쉽게 질병에 걸립니다. 연약해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기도 하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결심해도 삼일을 넘기지 못합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죄의 유혹을 받아서 넘어집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코로나 상황에서도 절제하지 못하고 클럽에 가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다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기도 합니다.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은 연약하지 않았습니다. 영육 간에 강건했습니다. 질병이나 죽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부터 몸과 마음이 병들어서 연약해졌습니다. 연약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도 없고 선을 행할 힘도 상실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연약함과 질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 먼저 자신이 죄 때문에 연약하고 병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깊이 인정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연약함과 질병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십니다. 또한 날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할 때 죄악된 습관에서 벗어나서 영육 간에 강건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육체적인 질병은 인간의 몸이 늙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결국에 인간은 병 때문에 죽게 됩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 후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날이 갈수록 내면이 거룩해지고 강하게 됩니다. 점차 죄의 소욕과 육신의 욕구를 절제하면서 경건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강하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이처럼 궁극적으로 우리의 몸과 영혼이 강하고 신령하게 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긍휼과 사랑이 많으신 참 목자이십니다. 우리가 날마다 우리의 연약함과 병과 상처를 주님께 들고 나감으로 죄사함과 새생명과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