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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마태복음 제 21 강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

작성자정이삭|작성시간20.07.26|조회수129 목록 댓글 0

2020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

말씀/ 마태복음 13:24-58 요절/ 마태복음 13:44

2020. 7. 26

마태복음

21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천국은 무엇입니까? 천국은 하나님 나라이며, 우리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보화입니다. 천국을 얻는 자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요 천국을 얻지 못한 자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언제 저승사자가 찾아와도 두렵지 않습니다. 천국의 가치를 알 때 천국을 더욱 사모하게 되고 더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천국 비유를 통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행복이 넘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4-30절은 가라지 비유입니다. 가라지 비유는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도 세상에는 여전히 악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또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가라지 비유의 핵심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의 마음입니다. 좋은 씨를 뿌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에 선한 사람들로 가득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때에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습니다. ‘가라지’는 독보리의 일종입니다. 가라지의 잎사귀는 밀과 똑같아서 자라는 동안에는 곡식과 가라지를 구별할 수 없습니다. 원수가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곡식의 성장을 방해하기 위해서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잘 시간에도 자지도 않고 집요하고 은밀하게 활동합니다. 


  씨에서 싹이 나고 열매를 맺기 시작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집 주인의 종들은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왜 가라지가 생겼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습니까?” 주인은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종들은 당장 가라지를 뽑기를 원했습니다. 곡식의 성장을 방해하는 가라지는 보는 즉시 뽑는 것이 일반적인 농사법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주인은 달랐습니다. 가라지가 생기자 종들은 흥분했지만 주인은 침착했습니다. 주인은 가라지를 뽑지 말고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했습니다. 가라지는 밀보다 뿌리가 강할 뿐 아니라 밀의 뿌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아무리 주의를 해도 가라지를 뽑게 되면 곡식도 함께 뽑히게 됩니다. 그럴지라도 보통 농부들은 밀의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서 소수의 밀을 희생하면서 가라지를 뽑아버립니다. 종들의 마음도 이런 농부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밀의 수확량보다도 밀 하나하나의 안전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주인은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추수 때에 추수꾼들을 통해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주인의 곡간에 넣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무리들을 떠나서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님께 나와서 비유의 뜻을 설명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제자들은 천국의 비밀을 알고자 하는 영적 소원이 강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비유의 뜻을 명쾌하게 풀어주셨습니다. 37-39절을 보십시오.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 곧 예수님이십니다.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입니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원수’는 마귀입니다.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입니다. 좋은 씨 곧 천국의 아들들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말씀역사를 통해서 천국의 아들들을 심는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여전히 악인들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귀도 열심히 사람들의 마음에 불신과 교만과 인본적인 생각과 탐심과 악한 생각을 심어놓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일꾼들이 세계 각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서 구원역사를 이루고 있지만 마귀는 다윈, 마르크스, 호킹 등 무신론자들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에 불신을 심어놓습니다. 영화나 영상이나 책을 통해 알게 모르게 복음에 적대적인 생각을 심고 육체의 소욕을 좇게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의인들도 있지만 악인들도 있는 것입니다.  


  천국의 아들들은 악인들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습니다. 이때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는지 의문을 갖습니다. 신천지 같은 이단들이 득세하도록 왜 내버려두시는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장에 악인들을 심판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천국의 아들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지만 장차 변화되어 천국의 아들들이 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복음의 원수 노릇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변화되어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될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라지처럼 보이는 사람들 가운데도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알곡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장에 악인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택하신 자들이 천국의 아들들로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불의한 사람들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기뻐하는 천국의 아들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국의 아들들을 세상의 악한 영향력에서 보호하시고 열매를 맺도록 역사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 욕심을 좇아서 살아갈지라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을 때 그 시대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소수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의한 세상을 보면 절망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의한 세상을 보고 절망하기보다는 소수일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천국의 아들들을 보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죄의 소욕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한탄하기보다는 영적 소원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천국의 아들들이 되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당장에 악인들을 심판하지 않으시는 또 하나의 이유는 가라지가 있더라도 곡식이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악인들이 가득합니다. 그들이 천국의 아들들을 핍박하고, 악한 사상을 퍼뜨려서 신앙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천국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보호 속에 있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보스턴에서 브라운 대학을 다니고 있는 이인호 형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는 세상의 염려와 장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이 어두웠습니다. 하지만 말씀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에는 염려와 두려움이 사라지고 기쁨과 평강과 희망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가장 아끼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독생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 속에 있기 때문에 어떤 고난이 닥쳐도 견뎌내고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악한 세상과 여러 고난 속에서 천국의 아들들은 더욱 강해지고 순수해지고 진실해집니다. 악인들로부터 받은 고난이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는 촉진제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라지를 뽑지 않고 추수 때까지 남겨두시는 것입니다. 


  추수 때가 되면 하나님은 가라지는 거두어서 불에 사르고 알곡은 모아서 곡간에 넣어 두십니다. 최후 심판의 날에 악인들은 꺼지지 않는 풀무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악인들의 박해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신앙을 지킨 의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해와 같이 영원토록 빛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아들들의 미래요, 궁극적인 소망입니다. 


  31-35절은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겨자씨 한 알에 비유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은 데 이 씨를 밭에 심으면 3미터까지 자랍니다. 큰 나무가 되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게 됩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이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할 때는 작고 미미합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들이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통해서 과연 사람들이 변화될 수 있을까? 세상이 변화될 수 있을까?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회의가 듭니다. 한 목자는 학생 때 많은 양들과 가족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열심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열매가 잘 안 보일 때 인생을 허비한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역사를 위한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열매가 맺힐 것이며, 그 수고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상해 주십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 안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꾸준히 선포될 때 겨자씨 한 알과 같은 작은 역사가 나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깃들일 만큼 크게 성장합니다. 


  예수님은 로마가 세상을 통치하고 있을 때에 갈릴리 변방에서 복음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 열심히 복음역사를 섬겼지만 120명 정도만 복음을 영접했고, 열 두 명의 제자들이 남았습니다. 그들은 겨자씨 처럼 작고 보잘 것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에는 분명한 복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느 새 작은 겨자씨와 같은 작은 모임이 온 세상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1895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복음을 들고 한국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가난과 부패와 정치적 혼란 속에서 멸망해가고 있었습니다. 각종 우상을 섬기던 영적 불모지였습니다. 사람들은 눈이 파란 선교사들을 보고 서양 귀신이라고 말했습니다. 산들은 민둥산이었습니다. 나무가 사람의 키만큼 자라게 되면 귀신이 들어간다고 모두 잘라버렸습니다. 아프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무당을 찾아갔습니다. 곳곳에 미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100년이 지난 후에는 국민의 25%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들을 많이 파송하였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 한국에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영적 부흥기를 지나 영적 침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갈수록 복음의 수용력은 떨어지고 안티크리스천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영적 부흥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여전히 천국은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놀라운 생명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의 능력을 믿고 담대하게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할 때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시대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말씀의 능력을 믿고 전파하는가 그렇지 않는가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또 무엇에 비유하셨습니까? 천국을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한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 누룩의 특징은 적은 양으로도 많은 양의 밀가루를 부풀게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과정은 눈에 띄지 않게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적은 양의 누룩은 많은 양의 밀가루를 부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처럼 또는 누룩처럼 작게 시작됩니다. 누룩이 은밀하게 밀가루를 부풀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은밀하게 퍼져나갑니다. 바울은 로마의 셋집에서 소수의 사람들과 일대일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일대일 성경공부는 거대한 로마제국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공부를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졌을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바뀌고 삶이 달라졌습니다. 로마 황제에게 충성하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게 되었습니다. 로마 정부는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오랫동안 박해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카타콤이라는 지하공동묘지에 들어가서 생활하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로마가 복음화 되고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복음은 어떤 사상이나 종교도 무너뜨리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말씀의 능력을 경험한 분들이 많습니다. 한 번 맛 본 것으로 끝나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에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구원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가 말씀에 대한 열정을 새롭게 하고 한 양을 먹이는 일과 제자양성에 도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4-46절은 감추인 보화와 진주 비유입니다. 두 비유는 천국은 인생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소유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모든 것을 다 바치지 않으면 천국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44절을 보십시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예수님 당시에는 보물을 안전하게 맡길만한 은행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밭에 항아리를 묻어서 그 안에 감춰두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여행을 떠났다가 객사하거나 전쟁에 나갔다가 죽게 되면 보물은 주인을 잃고 땅 속에서 묻히게 됩니다. 이런 보물을 농부가 일하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큰 부자가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소작농인 농부는 남의 밭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밭을 갈다가 쟁기에 뭔가 걸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땅을 파보니 항아리 안에는 보물이 담겨 있었습니다. 뜻밖의 발견입니다. 예상치 못한 은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 복음을 이런 식으로 만납니다. 농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서 그 밭을 샀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농부를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농부는 전 재산을 팔아서 보화를 얻은 것에 대해 정말 잘했다고 자신을 칭찬했습니다. 


  45,46절을 보십시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진주의 비유는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 비슷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감추인 보화의 경우는 농부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것이고, 진주의 경우는 진주 장사가 극히 값진 진주를 찾아다니다가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과정은 다르지만 반응은 똑 같습니다. 진주 장사는 진주를 파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좋은 진주를 구별할 줄 아는 분별력이 있습니다. 


  보화 비유와 진주 비유는 천국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한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팔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천국을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윤활유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천국에 자신의 모든 삶을 투자해야 합니다. 천국을 발견한 사람은 기쁨으로 자신의 삶을 올인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아서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진젠도르프 백작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의 전 생애를 주와 복음을 위해서 바쳤습니다. 그를 따르던 모라비안 성도들은 신발과 옷만 있으면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갔습니다. 우리 모임 안에도 주님을 만난 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영적 유산을 잘 계승해야 합니다. 


  그물 비유는 가라지 비유와 비슷합니다. 그물 비유는 가라지 비유처럼 의인과 악인이 공존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물 안에 들어온 물고기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모여든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참된 제자도 있고 거짓된 제자도 있습니다. 참된 제자와 거짓된 제자의 분리는 마지막 종말의 때에 이루어집니다. 세상 끝에 천사들이 의인 중에서 악인을 분리해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은 거짓된 제자들은 반드시 걸러질 것입니다.  


  51,52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 주인과 같으니라.” 구약에서 예언되어 왔고, 예수님에 의해서 성취된 천국의 비밀은 마땅히 들어야 할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리는 일은 천국의 서기관들인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임무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천국의 비밀을 알고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습니다. 그들은 천국의 보화 창고를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구약과 신약이 담겨있는 성경에서 말씀을 끄집어내어 맡기신 사람들에게 잘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았지만 옛 것에 대한 집착 때문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예수님은 아무 일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능력을 나타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항상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습니다. 천국은 우리의 모든 것을 투자해도 결코 아깝지 않을 만큼 최고의 가치가 있습니다. 날마다 천국을 갈망함으로 천국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천국 백성들을 양성하는 데 우리의 열정을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첨부파일 2020 마태복음 21강 메시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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