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
|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말씀/ 마태복음 15:1-28 요절/ 마태복음 15:19,20 | 2020. 8. 9 |
마태복음 제 23 강 |
“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코로나로 인해 현대인들은 건강에 대한 염려가 많아졌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마스크 쓰는 것과 손 씻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식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씻지 않는 손으로 먹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손을 열심히 씼었지만 마음을 씻는 것은 소홀히 했습니다. 예수님은 손보다 마음을 씻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부패한 마음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우리가 정말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진정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병이어 사건으로 인해 예수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게 되자 종교지도자들은 시기심이 발동되어 예수님의 행동을 면밀히 감시했습니다. 드디어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떡을 먹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딱 걸렸어’ 하며 예수님께 나아와 따졌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출애굽기 30장을 보면 제사장들은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성소 앞에 있는 물두멍에서 물을 떠서 손을 씻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한 후에야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이런 정결의식이 장로들의 논의를 통해서 백성들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깨끗이 씻어서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장로들의 전통을 부정하셨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예수님이 장로들의 전통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신 것은 좋은 의도로 만든 장로들의 전통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는데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만 지키면 그것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대표적이 예가 고르반입니다. 고르반은 헌물 즉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였는지를 십계명 중 제 5계명을 예로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르반 유전을 앞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부모를 섬기는데 써야할 물건을 ‘고르반’이라고 함으로서 부모를 섬기는 의무를 벗어버렸고 그 물건을 하나님께 드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고르반 유전을 이용하여 자기 이기심을 채웠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력화시켰습니다. 그들은 장로들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호되게 꾸짖으셨습니다. ‘외식’은 겉과 속이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유대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안식일도 철저히 지켰고, 유월절이나 초막절 같은 절기도 잘 지켰습니다. 기도 시간에 맞추어서 하루에 세 번 기도했습니다. 또한 일주일에 두 번 금식했습니다. 십일조도 철저하게 계산하여 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 인생들이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보다도 마음이 더 열려 있는 무리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듣고 깨달으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손을 씻는 정결의식보다도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레위기 11장에는 먹을 수 있는 정결한 음식과 먹을 수 없는 부정한 음식을 구분해 놓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구별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인들과 구별된 식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하기 때문에 이방인들과 구별된 음식을 먹고 구별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서 허용된 음식만 먹었습니다. 정한 음식을 먹었고, 음식을 먹을 때에는 손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정결의식이 자신들을 깨끗하게 해 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바리새인들이 분노의 감정에 휘말릴까봐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심은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심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바리새인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심지 않는 것은 다 뽑힐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심은 전통, 사상, 제도는 때가 되면 다 뽑히고 말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라지와 같은 바리새인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두어야 합니다. 내가 가라지를 뽑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라지의 운명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며 나는 나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면 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자기 의와 욕심으로 인해 영적 눈이 감긴 소경이었습니다. 그들은 영적 소경이 되어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갈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멸망으로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지도자가 영적 눈이 감길 때 많은 사람들을 파멸로 이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봄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영적 분별력을 덧입고 양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예수님께 비유의 뜻을 설명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마저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며 그 비유의 뜻을 풀어주셨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은 배로 들어가 필요한 것은 몸에서 흡수하고 필요 없는 것은 뒤로 내어버려지게 됩니다. 불량음식이나 상한 음식을 먹게 되면 설사를 일으킴으로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도록 조치를 취합니다. 무엇보다 음식물은 아무리 더러운 것이라도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예수님은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은 사람의 애정과 욕망의 중심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겉모습을 보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 즉 마음을 보십니다. 마음을 상대방에게 내 보였다가 상처받은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마음을 감춥니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속으로 끙끙 앓다가 병이 듭니다. 그러나 마음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인간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겉모습을 꾸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단장하는 것입니다. 예례미야 17:9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들이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19-20절을 보십시오. “입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온갖 죄인데 이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마음에서 나온 것들 가운데 악한 생각이 있습니다. 악한 생각은 불신, 미움, 시기, 교만, 이기심 등입니다. 살인은 십계명 중 제 6계명을 어긴 것으로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고 욕하고 그 생명을 해치는 것입니다. 간음과 음란은 제 7계명을 어긴 것으로 남자나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고 성적 문란에 빠지는 것입니다. 도둑질은 제 8계명을 어긴 것으로 허락도 없이 남의 물건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거짓 증언은 제 9계명을 어긴 것으로 진실을 숨기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비방은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합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죄들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죄들이 사람을 더럽히며, 사람의 인격을 파괴시키고, 삶을 어둡게 만듭니다.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은 바이러스를 예방하고 건강을 지켜주는 데는 필요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어떤 도덕이나 종교도 사람의 내면을 깨끗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스스로의 노력과 열심으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까? 첫째, 먼저 죄인으로서 자기를 발견하고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8-9은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입니다. 죄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진실되게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둘째,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로마서 3:25은 말씀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하나님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세우셨습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그 피를 다 쏟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루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사함과 새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다시 죄에 빠져 더럽혀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와 그 피의 능력을 믿을 때 깨끗해지고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좋은 전통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대일 성경공부, 소감, 일용할 양식, 믿음의 결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전통이 말씀을 잘 받쳐주고 있는지 아니면 형식적으로 지킴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약화시키고 있는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없고 말씀을 받쳐주는 보조적 수단의 역할만 해야 합니다. 겉모습을 꾸미는 형식적 신앙생활을 청산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는 신앙생활에 더욱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1-28절은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을 떠나 북서쪽 해안에 있는 두로와 시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한 가나안 여인이 만사를 제치고 달려와 소리 질러 말했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그 여인은 이방 여인이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귀신 들려 고통하는 딸을 살리고자 했기에 민족적 장벽을 뛰어넘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녀는 이방인임에도 예수님을 인류의 구원자요 주님으로 믿었습니다.
여인의 간절한 외침에 대해 예수님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예수님은 여인에게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냉담하게 반응한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제자들은 여인의 외침에 대해 침묵하시는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여인이 빨리 돌아가도록 예수님께서 어떤 조치를 취해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의 청을 들어주지 않고 침묵하신 것은 이방인인 그 여인은 예수님의 선교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도록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먼저 구원하고 다음으로 세계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선교원칙을 제자들에게 다시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여자는 예수님께 가까이 와서 절하며 간청했습니다. 그 여인은 끈질겼습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이 정도로 여인이 떼를 쓰면 들어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드디어 여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비유적으로 던진 이 말씀을 여인은 다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자녀의 떡’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기로 되어 있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축복입니다. ‘개’는 이방인을 지칭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개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축복을 주고자 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을 구원역사에서 완전히 배제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원하고자 하시며 세상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을 이토록 거칠게 다루신 것은 여인의 믿음을 키워주고 여인을 축복하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개 취급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여인은 어떤 태도를 보였습니까? 여인은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주여 옳습니다” 하면서 예수님의 주권을 깊이 인정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고 시인했습니다. 자신이 자격없는 이방인이요 더럽고 비천한 죄인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말하면서 예수님께 부스러기 은혜를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말에 감동되어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우리는 양을 돕다가 자존심이 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여인과 같이 예수님의 주권을 믿고 부스러기 은혜를 구할 때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구원의 역사, 변화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침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기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기도를 끝까지 드릴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놀라운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믿음의 기도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캠퍼스와 가정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부패한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깨끗함을 덧입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를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보혈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마음이 깨끗해질 때 우리는 힘찬 청년의 삶을 살 수 있고 주님의 양을 먹이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