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
| 주는 그리스도 말씀/ 마태복음 16:13-28 요절/ 마태복음 16:16 | 2020.8.16 |
마태복음 24강 |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새생명과 천국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구원보다 더 가치있고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그 해답을 알려 줍니다. 구원의 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데, 즉 신앙고백에 있습니다. 신앙고백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해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구원이란 무엇인가 배우고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생명력과 기쁨과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2년 반 동안 메시아 사역을 줄기차게 감당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고 산상수훈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여러 가지 비유로 천국에 대해 알려 주셨습니다. 또한 많은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치유해 주시고 마음의 병이 깊은 사람들도 상담해 주시고 회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사역을 평가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는가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는가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인자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킬 때 쓰는 용어입니다. 제자들은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예수님께 전달해 주었습니다.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처럼 예수님에 대해 적대적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당시 사람들은 대체로 예수님께 호의적이었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헤롯왕은 예수님께 대한 소문을 듣고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말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 엘리야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남유다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십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비춰진 예수님의 모습은 백성들의 죄와 싸우시며 그들을 어찌하든지 하나님께로 돌이키고자 애쓰는 선지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선지자요 하나님의 종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기대하셨던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의 일부만을 보았고, 예수님의 본질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인간으로만 볼 뿐이었고, 메시아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은 4대 성인중의 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교육학자들은 예수님을 탁월한 교육자라고 생각합니다. 환경론자들은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후 남은 빵을 다 거두게 하신 최초의 환경론자라고 말합니다. 경영학자들은 탁월한 CEO라고 말합니다. 복지와 구제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최고의 자선사업가로 생각합니다. 이런 대답들은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의 개인적인 견해를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제자들 자신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는가 묻는 질문입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면밀히 볼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어 있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면밀히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는 베드로의 개인적인 고백일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을 대표로 고백한 것입니다. 여기서 ‘주’는 2인칭 대명사 ‘당신’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는 그리스도’라는 것은 당신은 그리스도라는 고백입니다. ‘그리스도’란 헬라아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메시아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을 보면 왕, 제사장, 선지자를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기름을 부음으로서 하나님이 세우신 종임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왕이요, 제사장, 선지자의 역할을 하는 분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왕은 백성들의 통치자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왕으로서 천국 백성들을 사랑과 평화와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이십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들고 나가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세상 죄를 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로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를 볼 때 그리스도란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신 구원자시오 영원히 다스릴 왕이시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자신의 구원자요 왕으로 영접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 분은 선지자의 중의 하나인 인간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다시 말해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런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정확한 대답이었습니다.
병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은 병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가난 때문에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가난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을의 위치에서 갑질 당한 사람들은 불의한 권력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나쁜 환경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은 좋은 환경을 갈망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 산다고 해도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늘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단잠을 자지 못하고 악몽을 꾸고 가위 눌리기도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에 대한 형벌로 죽음이 선고되었습니다. 죽음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할 수 있는대로 피하고자 하고 미화시켜서라도 극복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죄와 죽음 문제입니다.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퍼져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죄와 죽음 문제야말로 인류의 근본 문제이며, 어떤 문제보다도 시급히 해결되어야 합니다. 구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가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데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요 왕으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할 때 죄의 사슬이 끊어지고 죽음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어떤 죄를 지었던지, 어떤 어두운 과거사가 있었던지 죄사함의 은혜를 입고 새생명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고 하늘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됩니다. 천국 시민이 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됩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일,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사람은 천국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인간의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열심히 예수님을 따라다녔기에 자동적으로 예수님의 참 모습을 알게 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인간 스스로 깨달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로 알려주실 때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구원의 길을 깨닫고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영적 눈을 떠 주실 때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고 올바른 신앙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8월 26일과 9월 2일 열리는 희망포럼을 청년대학생들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이 포럼에 참여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자녀들과 학생들은 그동안 성경공부와 예배와 교제를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지식적으로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식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고, 많은 신앙행위들을 한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로만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목자들은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그리고 양떼들의 구원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기도를 통해 귀신들린 아들이 나음을 받고, 어머니의 기도를 통해 병든 딸이 고침을 받은 것처럼 그리고 친구들의 합심동역을 통해 중풍병자가 영육간에 건강해진 것처럼 우리 목자들의 기도를 통해서 자녀들과 양떼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 믿고 구원 받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축복하시고 교회의 비전과 권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예수님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이 반석’은 무엇입니까? 로마 가톨릭 교회는 베드로 이름의 뜻이 반석이기 때문에 ‘이 반석’은 베드로를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이 반석’을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라고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열 두 제자들의 대표로서 그의 신앙고백은 제자들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교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들의 공동체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음부의 권세는 죽음의 권세, 사탄의 권세를 말합니다. 아무리 사탄이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해도 결코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탄이 코로나19를 통해 공격을 해도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세상이 온갖 비난을 쏟아 부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 보혈의 은혜 속에서 여전히 맑고 깨끗합니다. 재난도, 전쟁도, 국가도, 코로나19도 교회를 흔들 수 없고, 교회의 가장 중요한 활동인 예배를 중단시킬 수 없습니다. 십자자로 승리하신 예수님이 끝까지 교회를 보호하시고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더라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할 것이며, 하나님 나라를 구현해나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대표가 되는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교회에게 주신 천국 열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세를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역사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구원과 심판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 말씀을 듣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에게 천국에 들어가는 은혜가 주어집니다. 또한 교회가 결정하고 행하는 일들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천국 열쇠를 가진 교회가 적극적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여 천국 문을 열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천국 열쇠를 가지고도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천국 열쇠를 가진 교회의 특권을 깊이 인식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전파에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길은 한 마디로 고난과 죽음과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으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으신 후에 반드시 죽임을 당하셔야 합니다. 이런 고난과 죽으심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받는 대속의 고난이요 대속의 죽음입니다. 고난과 죽음 없이는 죄를 대속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 이후에는 반드시 다시 살아나십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궁극적인 승리,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고난 없이는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영광은 고난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길에 관한 말씀을 들었지만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고난과 죽음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했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셨지만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항변하는 베드로를 뿌리치시면서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께서 그 놀라운 권세를 사용하셔서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면 하나님 역사의 디딤돌이 될 수 있지만, 사람의 일을 생각하면 하나님 역사의 걸림돌이 됩니다. 하나님 역사보다 자신의 장래를 생각하고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인간적인 관계를 더 생각하고 세상에서의 안락한 삶을 추구할 때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더 생각함으로 하나님 역사의 디딤돌이 되고 생명역사에 귀히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가르치신 예수님은 이제 제자의 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4)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들은 누구나 제자의 길을 가야 합니다. 모든 신자는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제자의 길은 첫째 자기 부인, 둘째 자기 십자가입니다.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 없이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가신 길이 자기 부인의 길이요, 자기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를 중심으로 한 삶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높이는 마음, 자기의 욕구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 세상적인 쾌락을 즐기고자 하는 마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겸손과 순종과 섬김의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한 생각에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생각으로 사고를 전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늘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자기 뜻만 관철시키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구원역사에 걸림돌이 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데 지불해야 할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고난과 희생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고난 받고 자기를 희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명의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 때 비록 힘이 들지만 보람되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이 부담스러워 사명을 버리면 처음에는 편하고 자유로운 것 같지만 나중에는 말할 수 없는 허무와 권태로움과 무기력으로 고통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허무와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죄의 쾌락을 즐깁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추하고 비참한 삶을 살게 됩니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 없는 삶은 무의미한 삶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때 그런 인생에 의미와 기쁨과 생명의 열매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 목숨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 세상에서 가진 모든 것,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끝까지 제자의 길을 가야 하는 이유는 그 길이 영원한 삶을 보장해 주기 때문입니다. 제자의 길은 쉽고 편한 길이 아닙니다. 제자의 길은 결단과 자기 희생이 없이는 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자의 길이 무겁고 고생만 하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주님의 은혜를 매순간 의지하는 자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고, 주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자들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신앙고백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새로운 의미로 반복되어야 합니다. 신앙고백 할 때 우리는 위로부터 능력을 덧입고 맡은 일들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