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
|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말씀/ 마태복음 17:1-20 요절/ 마태복음 17:5 | 2020. 8. 23 |
마태복음 제 25 강 |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누구의 말을 듣느냐 하는 것은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바른 경청이 생명을 얻고 행복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경에 있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누구의 말을 듣고 있는지 점검해 보고 바른 경청을 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지 엿새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으시고 그리스도의 길 다시 말해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신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능력 많으신 예수님께서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강력한 이스라엘 왕국을 세울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 통치를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정치적인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잘못된 메시아관을 바꾸어주시고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예수님은 외적 모습만 변하신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변화되셨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은 나사렛 출신의 가난한 목수로 여겨졌습니다. 예수님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었습니다. 머리 둘 곳이 없이 가난한 삶을 사셨고 몸도 마르셨습니다. 그런데 변형되신 예수님의 얼굴은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조금의 어두움이나 흠도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에서 나오는 해 같은 빛은 하나님의 영광 그 자체입니다. 그 영광의 빛이 너무 강렬해서 그 앞에 서면 모든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어두움과 절망이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됩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모습은 예수님이 성육신 하시기 전에 가지셨던 하나님의 모습이요 부활 이후에 갖게 될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 본질은 하나님이십니다. 산 아래에서의 예수님의 모습은 과연 이 분이 인류의 메시아이신가? 의심이 들 정도로 초라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로서 인간이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지극히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분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교만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을 섬기기 위해서 종처럼 낮아지셨습니다. 인간의 죄악을 담당하기 위해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애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인간의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시고 본래 가지셨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을 회복하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고생하고 싶지 않았고 이제는 편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잔재미도 누리고 세성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삶을 사신 예수님, 종처럼 섬기신 예수님,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많이 생각합니다. 그런 예수님을 생각하면 은혜가 되지만 그 길을 따라가고자 할 때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어떤 예수님의 모습이 있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모습만 자리 잡고 있습니까? 아니면 해 같이 빛나는 예수님의 모습이 자리 잡고 있습니까? 우리는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바라볼 뿐 아니라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광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가질 때 우리는 현재적인 고난을 견딜 수 있고 끝까지 제자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해 같이 빛나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였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의 대표로서 이 땅에서 고난을 많이 받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들은 영광 중에 나타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이며, 구약성경에 예언된 내용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산 위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대화하는 신비스러운 장면도 목격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당혹감과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 채 그곳에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서 초막 셋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문제 많은 산 밑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고 언제까지나 산 위에서 영광만을 누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잠시 영광을 맛보고 산 밑으로 내려가야지, 산 위에서 계속해서 머물러 있으면 삶이 무료하고 허무하고 불안해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십자가를 붙들고 살아갈 때 고생스럽지만 행복합니다. 이 땅에 살면서 주와 복음을 위해서 희생하고 고난 받을 때 장차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말할 때에 구름 속에서 어떤 소리가 났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베드로가 엉뚱한 말을 하고 있을 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었습니다. 이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구름이 덮은 후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과 계획이 있더라도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특히 고난을 통해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메시아의 길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광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참된 제자의 길이요 생명과 행복을 얻는 길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손을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황홀한 경험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현실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산에서 본 것을 부활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에 대해서 오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4-20절은 한 아이의 치유 사건을 통해서 믿음의 중요성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과 세 명의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오자 한 사람이 달려와서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려서 귀신들려 간질로 고생하는 아들을 고쳐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는 겸손했고, 예수님께 대한 믿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대상은 믿음으로 나온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지 못한 아홉 명의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들을 치유할 수 있는 권능을 위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아이의 아버지가 귀신들린 아들을 고쳐달라고 했을 때 아홉 명의 제자들이 합심했는데도 고치지 못해서 쩔쩔 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 시대 사람들은 믿음이 없었고, 하나님을 거스렸습니다. 제자들도 그런 시대 분위기에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었을 때는 믿음이 업 되었지만 믿음이 없는 무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을 때는 믿음이 다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자들은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제자들만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시자 비교의식과 열등감에 사로잡혔습니다.
믿음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어제 믿음이 있었다고 해서 오늘 동일한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강해질 수도 있고 약해질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온전히 믿었을 때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몰려오는 바람을 보고 두려움에 빠졌을 때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점점 발이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늘 새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믿음이 아니라 현재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먜순간 믿고 의지할 때 두려움을 이기고 희망찬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신 후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와서 자신들이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이 작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졌을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여기서 ‘작은 믿음’이란 믿음이 없는 것과는 다릅니다. 작은 믿음은 믿음이 있지만 그 믿음이 실제 삶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 믿음이 자신의 삶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헛된 믿음입니다. 우리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 실제 나의 내면과 삶을 변화시키고 인생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참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100% 신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또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이나 돈을 의지하지 말고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나의 인생을 맡겨야 합니다. 현재 우리의 상황이 우리가 바라는대로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좋은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장래에 대해서 보장된 것이 없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남은 인생도 책임져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실제적인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은 그 믿음대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고 인생을 맡기지 않는다면 그런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에 실제 삶에서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박루디아 사모님이 늦은 나이에 수의사 면허증을 따고 양구군청에 공무원으로 취업이 된 것은 인간적인 열심으로 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역사입니다. 루디아 사모님은 생활이 어렵고 자녀들이 어려울 때에도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남들이 보든 안 보든 기도에 힘쓰고 동역자들과 양들을 섬기는 데 시간과 물질을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시고 그 인생을 크게 축복해 주십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순도가 높은 믿음, 온전한 믿음을 말합니다. 산은 요지부동의 대명사입니다. 산을 옮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산에서 흙을 파서 나를 수는 있지만 옮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겨자씨 한 일만한 믿음이 있을 때 우리의 인생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역사를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일대일 성경공부를 통해서 캠퍼스가 변화되고 세상이 변화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무기력한 신앙생활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깊이 새겨진 분명한 말씀이 있을 때 그것이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됩니다. 이런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을 때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답답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코로나가 다시 확산되면서 코로나 블루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가질 때 코로나 블루를 이길 수 있고 새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이번 주 수요일에 희망포럼이 시작됩니다. 희망포럼을 통해 청년대학생들이 절망에서 일어나 희망이 넘치는 청춘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