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 |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말씀/ 요한복음 6:1-21 요절/ 요한복음 6:11 | 2021. 4. 25 | |
| 요한복음 제 8 강 |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는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빵 문제는 우리 인생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요즈음 코로나 감염자들이 부쩍 늘어나 방역단계를 한 단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큰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떻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더 나아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원하는 대로 먹을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인생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힘든 현실을 바라보고 절망하기보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 안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표적을 통해서 자신들의 현실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예수님을 찾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침 그때가 유월절이 가까운 때여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예수님께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큰 무리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배고픔을 아시고 그들을 먹이고자 작정하시고 빌립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예수님에게는 이 사람들을 먹이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다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물으신 것입니다.
질문 속에 답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어찌하든지 무리를 먹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빌립은 어떻게 무리를 먹일 수 있는지 고민하고 그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가...먹이겠느냐”라는 말을 잘 생각해보면 예수님도 우리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어떻게 먹일 수 있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셋째, “어디서...먹이겠느냐”라는 말을 볼 때 이 질문은 방법보다는 장소에 초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있는 곳은 빈들입니다. 빈들은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무리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할 수 있겠습니까? 그 해답은 예수님이십니다.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예수님은 백성들을 먹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실을 빌립과 제자들에게 깨우쳐주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빈들에서도 무리들을 배불리 먹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빠졌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이미 그들을 어떻게 먹이고 입힐 것인가 계획하셨습니다. 40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셔서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옷과 신발도 헤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백성들, 자신에게 나오는 사람들을 신실하게 먹이시고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의 선한 목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의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실 뿐 아니라 영적인 배고픔도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빌립은 어떤 답을 내놓았습니까?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의 계산에 의하면 무리는 오천 명이 넘었고,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200일치 품삯인 200데나리온이 필요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빌립은 결국 200데나리온의 돈이 없어서 무리를 먹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이 질문하신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계산에 넣지 않았고 무리를 먹이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지 못했습니다. 빌립은 상황 판단을 잘 하는 유능한 청년이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찌하든지 먹이고자 하는 목자의 심정과 책임감이 부족했습니다. 부모는 돈이 있고 능력이 있어서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없는 가운데서도 자식들을 먹이고 교육시킵니다. 목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자로 부름 받았기 때문에 양들을 돌보며 맹수가 나타나면 위험을 무릅쓰고 싸웁니다. 자신이 목자라는 정체성과 책임감이 있을 때 양들을 돌보며 먹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능력이 많은 사람보다 심정과 책임감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실력 있는 지도자감 이었지만 심정과 책임감이 부족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빌립의 약점을 아시고 그를 키워주고자 시험하신 것입니다.
이때 안드레가 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물고기는 보리떡과 함께 반찬으로 먹는 소금에 절인 생선이었습니다. 당시에 이런 음식은 도시락으로 싸 가지고 다니기에 적합했습니다. 빌립이 현실 상황만 생각하고 부정적인 대답을 하였지만 안드레는 보리떡 다섯과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한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에게는 무리를 먹이고자 하는 심정이 있었고, 뭐라도 하고자 하는 정신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안드레의 대답 역시 빌립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안드레는 오병이어를 드리면서도 그 오병이어가 오천 명이나 되는 큰 무리를 먹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안드레의 위대한 점은 있는 것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무엇이 있는가? 우리에게 무엇이 있는가?” 찾다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발견하고 가져왔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것을 들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것이라도 예수님께 드리면 예수님께서 어떤 역사를 이루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4:18). 그리고 안드레가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는 재료로 사용하십니다. 안드레는 자신에게 있는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예수님께 가져오는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이것 저것 따져보고 계산한 다음에 안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없는 것을 찾지 않고 있는 것을 찾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을 찾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긍정적인 사람들을 통해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지만 안드레도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작은 것을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시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고 능력이 많아야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돈도 없고 능력도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작은 자들, 연약한 자들을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목동 다윗을 쓰셔서 이스라엘을 블레셋 군대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복음역사는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시고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겨자씨 한 알처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께 드려지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작은 자가 큰 용사가 됩니다. 보잘 것 없는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는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있는 작은 것을 드릴 때 그것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없고 돈이 없고 재능이 없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심정과 책임감과 믿음이 없어서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심정과 책임감과 믿음이 있다면 안드레와 같이 자신에게 있는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주님께 드릴 수 있고, 주님은 그것을 받으셔서 많은 영혼들을 배불리 먹이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리들을 잔디밭에 앉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성인 남자들만 오천 명쯤 되었습니다.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을 포함하면 약 이만 명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어떤 일을 행하셨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예수님은 안드레의 오병이어를 무시하지 않으시고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그것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안드레가 무리를 먹이고자 하는 심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오병이어를 가져왔습니다. 이것은 매우 작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작은 것을 통해서 오천 명을 먹이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십시오.” 예수님은 축사하신 후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떼어서 앉아 있는 무리에게 나눠주셨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면 제자들이 그것을 무리에게 전달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친히 떼어서 나누어주십니다. 빌립은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드레가 가져온 오병이어로 그들의 원대로 주셨습니다.
그들은 원하는 대로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들은 만족했고 행복했습니다.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두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식사 후에 남은 것을 거두는 것은 유대인의 관습이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베푸시는 떡은 생명의 떡이기 때문에 함부로 버릴 수 없습니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다는 것은 예수님은 풍족하게 먹이시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주님은 차고 넘치게 공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풍성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소원을 아시고 우리의 원대로 주시는 참 목자이십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경제문제입니다. 경제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경제문제 해결에 모든 것을 걸었고, 인류 역사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던 것입니다. 요즈음 2030세대들은 취업경쟁이 치열하여 정규직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 힘듭니다. 정규직에 취업하면 박수를 받고 영웅 대접을 받습니다. 하지만 취업한다고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살아남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렵습니까?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 두거나 이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자립하지 못하고 부모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투잡을 뛰기도 하고 택배 알바를 하기도 하고 재테크에 시간과 열정을 쏟기도 합니다. 누가 경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의 원대로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형편을 잘 아십니다. 우리의 배고픔을 아시고 우리의 소원을 아십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에게 나오는 사람들을 목자의 눈, 긍휼의 눈으로 보십니다. 예수님은 무한한 자원을 가지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배고픔을 채워주시고 우리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시는 참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경제문제를 주님께 들고 나올 때 주님께서 해결해주시고 참 만족과 풍성함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코로나 상황에서도 먹을 것, 입을 것을 공급받고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주님은 내가 먹고 살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먹이는 목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먹일 수 있습니까? 심정과 책임감과 믿음을 가지면 됩니다. 돈이 부족해도 능력이 부족해도 시간이 부족해도 내가 가진 오병이어를 주님께서 드리면 주님께서 먹이는 역사, 풍성한 역사를 이루어주십니다. 지난 주 한 목자는 한 학생을 만나기 위해서 캠퍼스로 갔습니다. 식사를 같이 하고 난 후 짧게 성경공부를 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 학생은 시험 기간이라 시간 내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픽업하는 도중 10분 정도 차 안에서 한 말씀을 전해 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오병이어를 찾아보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시험기간 중이라도 시간과 물질과 심정의 오병이어를 드릴 때 주님께서 받으시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주십니다. 우리가 가정과 직장에서도 오병이어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를 드리면 주님께서 받으시고 축사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원대로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께 우리의 오병이어를 드림으로 우리의 경제문제, 현실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캠퍼스 학우들과 우리의 이웃들을 먹이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세상에 오실 선지자로 간주하고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고 자신들의 경제문제를 해결해주는 왕으로 삼고자 한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 눈을 뜨지 못하고 예수님을 지상의 왕으로 삼아 물질적으로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십니다.
16-21절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다섯 번째 표적으로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러 가시고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날은 어두웠고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은 노를 힘껏 저었지만 목적지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풍랑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유령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니”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신적 선언입니다. 그때서야 제자들은 기쁨이 충만해져 예수님을 배로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시자 배는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했습니다. 우리 인생에 어떤 풍랑이 있더라도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원하는 목적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항구는 어디입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십니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서 온 세상은 혼란과 무질서에 빠졌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이 뜻 두신 안전한 항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바다 위를 걸으시고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 안에 안전과 평강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절박한 경제문제가 있고 인생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힘만으로 경제문제와 인생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원대로 주시는 분이시오 어떤 풍랑도 잔잔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은 참으로 좋으신 목자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그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