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주일메시지

2026년 마태복음 10강 "우리의 연약함과 병을 친히 짊어지셨다"

작성자정이삭|작성시간26.06.07|조회수69 목록 댓글 0
2026

우리의 연약함과 병을 친히 짊어지셨다
말씀/ 마태복음8:1-17 요절/ 마태복음 8:17
2026. 6. 7
마태복음
10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산상보훈을 통해 천국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천국 백성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백성들의 삶의 현장에 들어와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세 가지 치유 사건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모두 연약함과 병 때문에 고통하며 누워 지낼 때가 많습니다. 이런 인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건강과 생명력입니다. 누구든지 긍휼이 많으신 예수님을 만날 때 연약함과 병으로부터 나음 받고 일어나 빛을 발하는 청년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랐습니다. 그때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 앞에 나아와 절하며 말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나병은 전염병이었기에 사람들과 접촉하면 안 되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나병은 부정한 병이었고 나병환자는 부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죄로 인해 나병에 걸리고 신의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의 인생문제는 더러움이었습니다. 나병에 걸리면 피부가 망가지고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눈썹도 빠지고,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흉측해집니다. 또한 신경이 마비되어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비참합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살지 못하고 문둥이 촌에서 살다가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운명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이 분이라면 나의 인생문제를 해결해 주실 거라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돌에 맞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긍휼을 구하며, 나를 깨끗하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은 놀랍게도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셨습니다. 이는 사랑의 텃치요, 긍휼의 손길이었습니다. 그 나병환자는 육체의 병뿐 아니라 마음의 병도 심각했습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기에 외로움의 상처가 컸습니다. 사회에서 버림 받고 하나님에게도 버림 받았다는 정죄의식에 시달렸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뛰어넘어 상처와 슬픔 많은 그를 만져주심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나병환자가 건강해지고 행복해지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졌습니다. 그의 소원과 믿음대로 그는 피부가 깨끗해지고 마음도 깨끗해지고 건강한 사람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나병환자는 주님 앞에 나올 수 없는 부정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떤 더러움을 가진 자라도 너는 안 돼하지 않으시고 깨끗함을 주시는 분이요 은혜로우신 주님이십니다. 죄는 나병과 같이 전염성이 있고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더럽게 만듭니다. 죄는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깨뜨리고 하나님께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정죄의식을 심고 무력감과 절망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어떤 흉측한 죄인일지라도 주님 앞에 나아가 긍휼을 구하면 주님께서는 깨끗함을 주시고 새사람으로 빚어주십니다.

 

  예수님은 깨끗함을 받은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이는 병 나았다고 동네방네 떠들지 말고, 먼저 제사장에게 깨끗한 몸을 보이고 율법에서 명한대로 예물을 드림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병을 치유해 주실 뿐 아니라 그가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카운슬링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더러움을 없애 주시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시는 예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했습니다. 그는 자기 문제를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 하인의 문제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는 하인에 대한 아픈 마음을 품고 하인의 고통에 대해 말했습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백부장은 백 명의 부하를 통솔하는 로마 장교로서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예수님께 나올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기에 하인의 중풍병을 낫게 하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군인들과는 다르게 인간애가 있는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하인이 중풍병이 걸려 눕게 되면 주인이 나서기보다는 집사가 알아서 처리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백부장은 그 하인을 자기 가족을 대하듯 소중하게 대우했습니다. 하인이 중풍병으로 몹시 괴로워하자 백부장은 마치 자기가 중풍병에 걸린 것처럼 마음이 아팠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인간애에 감동이 되어 망설이지 않고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라고 했습니다.

 

  이에 백부장은 예수님께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예수님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오게 되면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고 공격을 받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이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면서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나을 겁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그의 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말씀만 하셔도 자기 하인의 중풍병이 나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이방인 백부장이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를 믿게 되었을까요? 그가 상관의 말에 복종하고 그의 부하도 그의 말에 복종하는 것을 통해 말의 권세가 대단하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님께서 그의 말을 들으시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따르는 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은 백부장의 말씀을 믿는 믿음에 크게 감동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도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이만한 믿음, 참으로 위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믿음은 말씀의 권세를 믿는 믿음입니다. 유대인들은 말씀신앙이 아닌 표적신앙을 가졌습니다. 현대 시대에도 표적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표적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표적신앙은 계속해서 표적만을 추구하며 표적이 안 보이면 그 신앙은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는 말씀의 권세를 믿고 말씀을 가진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없을지라도 말씀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시련과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고, 생명력과 능력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비전을 보셨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율법도 없었고 성전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혈통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는 그들이 어떻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고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과 영광을 누릴 수 있단 말입니까? 이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요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천국에 앉게 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그 나라의 본 자손들 즉 유대인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천국에 앉게 될 것으로 기대되지 않았던 이방인들이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내가 죽는다면 천국 입성을 할 수 있습니까? 천국 티켓이 있어야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리고 우리 주변에 아직 티켓이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천국 티켓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복음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복음의 말씀을 믿는 자들은 천국 티켓을 받고 천국의 기쁨과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에게 말했습니다.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이 말씀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가자마자 그 즉시 하인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권세가 있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의 말씀 권세를 믿음으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의 믿음대로 하인의 중풍병이 나았고, 백부장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백부장에게서 좋은 목자상을 배웁니다. 좋은 목자는 한 양을 포기치 않고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안마리아 목자님은 제가 모임에 잘 나오지 않을 때도 저를 포기하지 않고 매주 마다 편지를 보내주었습니다. 조재은 사모님은 제가 아무 말 없이 군대로 가버렸을 때도 3년간이나 매일 양식메모하며 저를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목자님들의 기도를 듣고 계셨고, 질병으로 몹시 괴로워하는 저를 찾아오사 놀라운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저는 질병과 실패와 죄로부터 구원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저의 젊음과 전 생애를 캠퍼스 양들을 돌보는 데 드리고 싶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저는 자원하여 학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병으로 고통하는 한 영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섬기고자 했습니다. 성경 지식도 부족하고 신양연륜도 짧았던 저에게 주님께서는 사방에서 많은 양들을 보내어 주시고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실패의 땅이라고 여겼던 캠퍼스가 천국으로 여겨졌고, 제가 돌보는 양들이 가족과 같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행복했습니다. 요즈음 마태복음과 요한계시록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고 영혼들을 섬길 때 내 안에 천국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감사가 넘칩니다. 제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빚진 자 심정으로 캠퍼스 영혼들과 이웃들을 돌아보고 섬기는 삶을 살겠습니다.

 

  2026년 여름수양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어떤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텃치하고 어떤 사람이 은혜를 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될지 기대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주제강사들과 분반리더들이 말씀역사를 잘 섬길 수 있도록 그리고 인생소감과 특송과 싱어롱과 악기 연주가 잘 준비되도록 또한 특강 프로그램을 섬기는 강사들이 우리에게 유익한 강의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겠습니다. 먹을 것들이 풍성하더라도 손님이 없다면 그 잔치는 썰렁할 겁니다. 잔치에 손님들을 많이 초청해야 겠습니다. 요회에서 한 사람을 초청하고,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은 더 많이 초청하고, 우리 모두 힘을 합하여 30명 양들을 초청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서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어떻게 치유해 주셨습니까? 그의 손을 만져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방법으로 아픈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말씀으로 낫게 해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안수해 주시고 몸을 텃치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손을 만지시자 열병이 떠나갔습니다. 그 여인은 일어나서 예수님께 식사대접을 하며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병으로 고통하는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 주신 것은 베드로가 가족들에게 매이지 않고 제자훈련을 잘 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가족들에게 매일 때 마음이 나뉘어 제자 훈련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가족입니다. 가정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정 문제는 계속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냐 가족이냐 분명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가족들을 주님께 맡기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 때, 주님께서는 나의 가족들을 돌봐주시고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십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들을 많이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셨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사야가 증거한 메시아는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신 분이십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는 연약함과 병입니다. 연약함과 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연약함과 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내 스스로 연약함과 병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떤 의사도 나의 연약함과 병을 짊어질 수 없습니다. 부모님은 나의 연약함과 질고를 감당하고자 하지만 역부족입니다. 연약한 자녀를 감당하다가 부모님은 더 연약해지고 중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누가 우리의 연약함과 병을 친히 짊어질 수 있습니까?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질고와 슬픔과 연약함은 죄로 인한 것입니다. 인간은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천국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죄가 들어온 후 인간은 연약해지고 병들고 슬픔에 빠지고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생들의 연약함과 병을 주님께서 친히 짊어지시고 그 댓가를 다 치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예수님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 흘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의 구주요 주님으로 믿을 때 죄사함을 받습니다. 연약함과 병으로부터 나음을 받고, 건강과 평화와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됩니다. 나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로 뜨거워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기적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이나 병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구주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것, 예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예수님이 와 계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건강하고 행복해지길 원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나의 연약함과 병을 낫고 천국의 기쁨이 넘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