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일 062126 가해 강론
예레 20:10-13; 로마 5:12-15; 마태 10:26-33
우리는 아마도 섬뜩할 정도로 이질적인 현상 – 즉 악마, 귀신, 유령, 마귀, 식인괴물, 망령, 마녀, 우주 침략자 같은 섬뜩한 외계인에게 항상 매료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천사, 성인, 심지어 하느님께 대한 일부 사람들의 태도도 이런 현상에 부합할 것입니다.
현대 과학은 이러한 관념을 과학적인 설명으로 떨쳐버리게 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옷을 입힐 뿐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깊은 숲 가장자리에 살면서 바스락거리는 나무 사이에서 으스스한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의 증손자들은 이제 비행기를 조종하며 UFO를 찾기 위해 하늘을 수색합니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유령, 굴이라는 시신을 먹는 악귀, 고블린이라는 작고 추하게 생긴 도깨비 등은 일반적으로 위협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과 맞닥뜨리고 싶어하지 않고, 그냥 단순히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거나 TV, 영화, 컴퓨터 화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무섭게 느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린다면, 우리는 그런 것들이 무섭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흥미롭기도 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괴물에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 만화부터 외계인 납치범에 대한 가짜 과학 세미나까지, 우리는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비인간적이고 반인간적인 존재가 우리를 파괴할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게 됩니다.
그런 것들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죽음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우리의 마음의 발명품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 이야기에서는 항상 영웅이나 여주인공(즉, 어떤 모습의 나 자신)이 승리하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이기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오늘 마태오 복음 말씀을 통하여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충고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유령, 외계인과 뭐든지 그런 것들이 동반하고 있는 것들. 그리고 심지어는 동료 인간이라고 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대처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이와 같은 충고의 말씀은 폭풍, 지진, 질병, 야생 동물과 같은 것으로 야기되는 사고와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내 삶에 미치는 다른 형태의 위험에도 적용이 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지요?
우리의 두려움 중 일부는 비록 다른 행성의 방문객과 같은 허구를 향하고 있다 하더라도, 또 다른 일부 두려움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는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비현실적이시지는 않는지요?
예수께서 복음 말씀을 통하여 하시는 말씀의 나머지 부분에서 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나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라."
사실 요즘 도쿄에서는 참새 구이 한 마리가 국수 한 그릇보다 더 싸게 팔립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치는 참새 구이 한 마리의 가치보다는 높고, 좋은 레스토랑의 식사 한 끼의 가치보다는 낮다는 말씀이신가요?
제가 어릴 적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라고는, 제가 기억하기로, 지금 생각한다면 도무지 장난감 축에도 들지 못하는 그런 장난감이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놀던 그 유일한 장난감은 다름아닌 고장난 라디에타에서 떼어낸 배기관 파이프의 일부였던 것입니다.
그 한 토막의 배기관 파이프는 시장가격으로는 단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쇠붙이 한 조각에 불과했지만, 저의 어린 상상력 속에서는 오만 가지의 가치가 다 있는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쯤 그 귀중하던 제 장난감은 어딘가 흙 속에 파묻혀 버렸거나, 고철로 녹아 없어져 버렸겠지만 제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하나의 보물로 남아 있습니다.
주관적인 가치와 객관적인 가치는 서로 다른 가치의 측도인데, 예수께서는 주관적인 가치보다는 객관적인 가치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 스스로 지니고 있는 능력이나 세상적 가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치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존엄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는 우리가 실제로 ‘얼마나 가치 있는가’에 따라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과분할 정도로’, 무한히 높게 평가된 가치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한계가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가치는 존엄하고 무한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시편(91:5-6)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도, 낮에 날아드는 화살도, 어두울 때 퍼지는 역병도, 밝을 때 닥쳐오는 재양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보호가 우리를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는 현실의 위협이든 상상 속의 두려움이든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여러 가지 두려움과 공포가 존재하지만, 하느님의 사랑과 전능하신 힘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회의 주일 밤기도 Vesperas가 고백하듯이, “하느님의 날개 그늘 아래 잠드는 이에게 밤은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붕 위에 올라가듯 담대히 이 사랑을 선포해야 합니다.
두려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기쁜 소식, 곧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지켜 주시고 영원히 감싸 주신다는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두려움을 이기고, 죽음을 이기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