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강론

연중 제 28주일 (2026.10,11) 가해 강론

작성자예찬|작성시간26.10.08|조회수247 목록 댓글 14

연중 제28주일 101126 가해 강론
이사 25:6-10ㄱ; 필리 4:12-20; 마태 22:1-14

형제자매 여러분,
비신자에게 성당과 신자들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한 번 물어보십시오.

과연 어떤 말이 돌아올까요? 헌신적인? 선동된? 봉사하는? 환상적인? 후한? 엄격한? 정직한? 율법주의적인? 신뢰할 수 있는? 미신적인? 신비로운? 비판적인? 위선적인...? 등 수많은 단어들이 쏟아질 것이며, 그 중에는 사실에 부합하는 말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말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기쁨에 찬, 유쾌한, 함께 있으면 즐거운, 찬미와 춤과 놀이를 즐기는” 같은 단어도 들을 수 있을까요?

사실 대다수 신자들의 삶에 이러한 모습이 흥건히 녹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인들에게 성당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입에 오르내리는 표현은 아닐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 신자들 스스로의 입에서도 쉽게 나오지 않는 단어일지도 모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하지 않으셨다면, 기쁨과 유쾌함, 즐거움은 그리스도인의 필수적인 덕목이 아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분명 하느님 나라를 잔치로 선포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하느님 나라를 세상에 드러내는 표징이라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죄와 고통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곳은 예수님께서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가릴 것 없이 모두를 초대하신 그 잔치, 즉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의 표징이 되는 것이 나의 의무이니, 이제부터 비장한 각오로 기뻐해야만 하는 걸까요?

사실 “기뻐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내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 역설에서 피어나는 유쾌한 웃음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밝은 신앙인이 될지도 모릅니다.

원숭이와 새끼 고양이, 어린아이, 그리고 나처럼 이렇게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피조물을 만드신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 말입니다.

어쩌면 제가 신앙 안에서 더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저에게 앞으로 마련해 두신 축복뿐만 아니라 제가 이미 누리고 있는 은혜마저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일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의 기도”를 바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그 기도의 첫 마디에 조금만 더 마음을 기울였다면, 아마 민망함에 풋 하고 웃음부터 터뜨렸을 것입니다.

“내가 감히 하느님의 아빠라고 부를 수 있다니!”
성체성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실재적 현존 (實在的 現存 Real Presence)과 하나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저 작은 빵 한 조각과 포도주 한 모금 뿐입니다.

이러한 은혜 앞에 엄숙함만이 올바른 응답일까요, 아니면 성탄절 아침에 선물을 풀어보는 어린아이의 기쁨이 성체 성사의 영성에 더 가까운 모델일까요?

성체성사 안에서,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잔치로 초대하신 “선한 이들과 악한 이들”이 함께하는 이 공동체의 예배와 봉사 안에서, 우리는 하늘 나라를 미리 맛보게 됩니다. 그러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기쁜 선물들 곧 친구와 가족, 길거리의 아이들, 좋은 예술과 음악, 좋은 책과 맛있는 음식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진심으로 감사가 우러나옵니다. 하느님의 믿기지 않는 관대하심에 기뻐하게 됩니다. 제가 이 모든 것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 받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모두 거저 주신 선물입니다. 이 모든 축복에 더해 하늘 나라까지 주셨으니 말입니다.

심지어 저의 고통과 혼란, 의심과 죽음 마저도 하느님께서는 따뜻이 안아 주십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 삶의 “원천이자 절정”인 성체성사가 “감사 (感謝Eucharist)”라고 불리는 것이 어찌 놀랍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느껴지는 이 경탄과 경사스러운 기쁨을 어떻게 더 키울 수 있을까요? 그 첫걸음은 아마도 내 주변에 펼쳐진 기적들에 눈을 뜨고, 그 모든 것이 나를 미치도록 사랑하시는 아버지께서 주신 선물임을 깨닫는 것일 겁니다.

그 다음 걸음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제가 다음 한 주 동안 의무감에 찬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않거나, 일을 핑계로 소홀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는다 해도 세상과 교회는 무너지지 않고 잘 돌아갈 것입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사실 우리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쯤은 늘 마련하곤 하지요.) 한가로이 산책도 하고,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책을 읽으며, 맛있는 음식과 음료를 즐기고, 친구와 함께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 봅시다.

그리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친구는 바로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매일 10분이상, 편안하고 정숙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을 따로 마련해 보십시오. 생각에 방황이 찾아와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동양의 영성가들은 그것을 이리 저리 날뛰는 “원숭이의 마음 (Monkey Mind)”이라 부르며 경계하곤 했지만, 원숭이가 뭐 어때서 그렇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유쾌하고 엉뚱한 존재 아닙니까,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다스린 시간이 끝날 때쯤. 주님께 유머 한 토막을 건네 보는 겁니다.

그 조용한 시간의 끝에, 예수님께 농담이나 재미있는 이야기 한 토막을 건네 보십시오. 굳이 점잖고 격식 갖춘 이야기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웃기면 됩니다. 소리 내어 말해보십시오, 좀 쑥스럽고 바보같이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바로 그 순간이 주님과 함께 누리는 기쁨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주님께서는 당신과 함께할 영원하고 기쁜 잔치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시니, 지금부터 그분과 함께 즐거워하는 법에 익숙해지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예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10.08 아멘. 🙏
  • 작성자예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10.08 아멘 🙏
    감사합니다 신부님 건강하세요
  • 작성자예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10.09 아멘,
    주님께 감사! 영광을!
    감사합니다 신부님.
  • 작성자예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10.09 신부님늘감사합니다 오늘도주님과함께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 작성자예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10.09 기다림은 더 먼곳을 바라보게 하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눈을 갖게 합니다.
    찔레순 꺽어 먹으며
    엄마를 기다려본 사람은 압니다.
    기다림은 희망입니다.
    오늘도 희망을 지향하고 믿음이 충만한 하루되길 기원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