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9주일 전교주일 101826 가해 강론
탈출 17:8-13; 2티모 3:14-4:2; 루카 18:1-8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예수님께 매우 까다로운 정치적 질문을 던집니다.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의 조국에서 로마의 지배가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던 이들이었습니다. 반면에 헤로데 당원들은 로마와의 협력 관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에 협력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는 반면, 로마에 저항하는 것은 곧 파멸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이 두 집단이 함께 예수님께 다가간 이유는 그분을 정치적인 덫에 빠뜨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로마의 지배가 정당하다는 헤로데 당원들의 견해를 지지하신다면, 그분은 자기 민족을 배신한 민족 반역자로 몰리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 권한을 부정하신다면, 로마 당국에 체포될 위험을 무릅써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동전이 원래 가이사르의 것이니 그에게 돌려주라고만 말씀하시며 이 질문을 지혜롭게 비켜 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정치적 정통성에 관한 질문에 직접적인 답을 주지 않으시며, 누가 세속의 권력을 잡고 있는 지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이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질문자들에게 던지신 물음속에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 초상과 글귀가 누구의 것이냐?”
당시의 동전에는 통치자의 얼굴 초상과 함께 그의 이름, 칭호가 담긴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그 초상이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티베리우스 황제의 초상이 새겨져 있기에 그 동전이 티베리우스의 것임을 알 수 있다면, 그렇다면 무엇이 하느님의 것임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형상입니다.
하느님의 형상이 새겨진 모든 것은 하느님께 속해 있으며, 마땅히 하느님께 봉헌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의되어 왔지만, 하느님께 인간은 바로 당신의 형상입니다.
하느님의 형상, 그것은 바로 여러분과 나 자신입니다. 하지만 우리 뿐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 즉 “다른 이들”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누구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 다른 인종, 다른 종교, 다른 민족, 다른 신체적 능력, 다른 경제적 환경, 그리고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행위를 보이는 모든 이들을 말합니다.
지난 한 세기는 비할 데 없는 참혹함으로 점철된 시간이었으며, 그 참혹함의 대부분은 창주 하느님께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이 죄에는 인종주의, 국수주의, 성 차별, 연령 차별, 착취 등 수많은 이름이 붙어 있지만, 그 본질은 단 하나, 곧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하느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특정 이들이 하느님의 형상임을 부정함으로써, 그들을 수많은 세속의 “카이사르”들에게 제물로 바쳐왔습니다.
스탈린, 히틀러, 마오쩌둥과 같은 독재자들, 공산주의나 영토확장주의 (Manifest Destiny), 인종 순혈주의와 같은 이념들, 맹목적인 애국심을 내세운 국가들, 여성 학대나 성소수자 폭력에서 드러나는 성적 편견들, 그리고 수탈적인 자본주의와 같은 경제적 권력에 수많은 이들을 희생시켰습니다.
나 자신이 저지르는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이러한 죄들조차 창조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내가 타인을 하느님의 형상으로 바라보기를 거부할 때, 그들 스스로가 지닌 존엄성을 깨닫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 역시 아무리 크게 보이는 차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하느님의 형상이라는 큰 틀 안에서의 작은 다양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곤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형상이라는 것이 외모를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다양성 자체가 하느님의 형상이라는 것이 외모에 관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형상을 지녔다는 것은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을 닮아가는 소명을 뜻합니다.
어쩌면 내가 모든 이가 하느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이유는, 나 자신 또한 그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피조물이라는 사실, 곧 누군가에 의해 어떠한 원형에 따라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할 만큼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원형은 바로 하느님의 가장 완벽한 형상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닮아갈수록, 나 자신과 타인 안에서 하느님의 형상을 더욱 분명하게 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서로 다른 모습들이 하느님 형상의 풍요로움을 드러낼 뿐 결코 다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에 기뻐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 형상을 훼손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지워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천사 같은 영광으로 그분을 반사할 수는 있어도 온전히 다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게 되었으며, 온 세상에 그분의 형상을 선포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형상을 더럽히는 모든 것들을 치워버려야 합니다.
거기에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부정하는 온갖 죄들이 포함됩니다. 또한 온갖 모습으로 나타나는 세속의 “카이사르”에게 그 권한 이상의 것을 주지 않는 것이 포함됩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예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10.19 독일의 한 공동묘지에서
젊은 부부가 7살 아이 무덤에 인형과 꽃을
두고가서
기서 보니
묘지에 이런글이 써져 있었답니다.
^^주님께서 주신 이아기
주님께서 도로 거둬 가시니 우리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저희 또한 그런 믿음을
배우게 하시고
저에게 주신 시련의 시간 마저 기쁨과 감사로 견디어내는 하루~~
제안에 계시는 주님과
온전히 일치를 이루는
믿음이 충만한
하루되게 하소서~~ -
작성자예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10.19 신부님 께서 영양에
계실적에
저의 부부에게 혼배성사도
주시고
격려 해주시고 기도해주시고
베풀어주신
그시절의 감사함
항상 기도속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영육간에 건강을 위해 기도합니다.
조만간 찻아뵐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
작성자예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10.20 인생은 남이 나로 인해 행복해 지면
나또한 덩달아 행복해 진다고 합니다 .
^^너희 가운대 가장 작은이 에게 해준것이 나에게 해준것이다.^^
(마태오복음 25장40절)
힘들고 약한 이들에게 마음을 여는
주님 닮은 하루 되게 해주소서 ~~ -
작성자예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10.22 new
봄이 자라서 여름이 되고
여름이 늙어서 가을이 되고
가을이 죽어서 겨울이 된답니다.
가을바람 소리를
가장먼저 듣는사람은
겨울을 걱정하는
외로운 나그네
입니다.
어제는 종일 광풍이 쉴새없이 몰아치더니
급기야 때아닌 한파특보(0,9도)를 몰고 왔네요.
황급히 떠나려는 가을을
붙잡을순 없나요?
보리쌀도 떨어지고
연탄도 없는데
차가운 바람은 겨울을
제촉 하네요.
힘들고 약한 민초들과
같은 마음으로 다가오는 겨울을 생각하는 하루되길 기도합니다. -
작성자예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39 new
가을 햇빛을 받은 단풍잎은 최후의 꽃인양 가지끝에서 아름다운 색깔을 자랑하기도 하고
더러는 그소임을 마치고 뿌리위에 낙엽으로 떨어져 거름으로
다시 내년의 성장을
약속 하고 있습니다.
한그루의 단풍나무에서
삶의 진리를 겸허히 배우는 하루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