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3장 5절 - 9절
하나님의 자녀에게 반드시 가져야 할 것과 상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힘써 구원을 이루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은 본질이며 포기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은 있으면 좋기는 하지만 천국에 들어가는데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를 이루는 삶을 살면 돈은 하나님이 때에 따라 채워 주신다고 하십니다. 돈이 주인이 된다면 우리의 신앙은 전혀 달라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상대적인 것이 되고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가 복 소위 돈을 주인으로 삼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헌금까지도 돈을 위한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돈을 주인삼는 것은 곧 우상숭배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간음이며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자들은 이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속되면 교회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걷히며 성도들은 돈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믿음의 조상들을 주시해서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항상 나그네와 행인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바울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받게 될 상급을 바라보고 즐거워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사도들에게 예수님이 가장 먼저 였고 아내도 자식들도 버려두거나 희생될 수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께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아내와 자식들에게 마땅히 해야 될 것들까지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놀라운 상급을 허락하십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가족들까지도 후순위가 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상급이 약속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도들처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때로는 희생이 요구됩니다. 예수님을 따름에는 대가가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에게 중요성의 순위를 요구하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에게도 순위를 요구해야 합니다.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가족을 버리고 밀림에서 복음을 전하므로 가족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노릇을 하지 못하는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놀라운 약속을 말씀하십니다. 바로 상급입니다. 희생에는 상급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십자가의 복음 이외에는 다른 복음을 전하지도 좇지도 말아야 합니다. 교회성장이란 미명아래 부드러운 음식을 주는 그런 설교자는 주님의 심판이 급속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그런 설교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힘들다고 거짓된 것을 말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