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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달의 오만에서 공유의 문화로 / 정경화 - 《시조21》 권두언 2026년 여름

작성자최광복|작성시간26.06.13|조회수40 목록 댓글 0

 

전달의 오만에서 공유의 문화로

 

정 경 화

 

얼마 전 대구 콘서트하우스에서 시 콘서트가 있었다. 시, 시조를 작곡하고 성악가들이 노래를 부르고 낭송을 곁들인 품격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또 이런 자리가 마련된다면 다시 보고 싶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았다. “나의 무대를 전달하겠으니 너희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강압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연인들이 집에 전화를 하려면 “밤 10시 정각이야”라는 약속이 먼저 필요했다. 전화기가 두어 대 연결되어 있기도 했기에 혹여 안방에서 어머니가 함께 수화기를 들면 “엄마, 전화 좀 끊어줘”라고 말해야 했다. 그 짧은 한마디 속에는 설렘과 긴장, 관계의 조심스러움과 시대의 생활감이 함께 들어 있었다.

친구를 기다리던 풍경도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카페에 먼저 나가 한참을 기다려도 연락할 방법이 없어, 끝내 “나 두 시간 기다리다 간다”는 쪽지 한 장을 남기고 돌아서야 했다. 기다림은 불편했지만 동시에 관계의 무게를 가늠하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만나지 못한 시간조차 오래 남아 서운함이 되었고, 미안함이 되었고, 때로는 우정의 깊이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로 상대의 위치와 상황, 일상과 감정의 흔적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메시지는 거의 지체 없이 오간다. 응답의 속도는 관계의 밀도를 보여주는 신호가 되었고, 접속과 공유는 관계의 기본 조건처럼 여겨진다. 이런 세대에게 과거의 느린 시간과 단절의 감각을 아무 설명 없이 ‘더 진한 문화’로 받아들이라고 하는 요구는 이해를 구하기보다 감각의 우위를 강요하는 일에 가깝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달의 오만’이 발생한다. 많은 기성세대는 자신이 지나온 문화적 경험을 더 깊고 진정성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오늘의 표현 양식은 반사적으로 가볍고 얕다고 판단한다. “요즘은 정이 없다”, “기다릴 줄 모른다”, “관계가 너무 가볍다”는 말이 습관처럼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들은 대개 현재를 정확히 본 결과가 아니라, 변화한 환경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과거의 기준을 절대화한 데서 나온 것은 아닐까. 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정을 표현하는 매체와 속도와 문법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필요한 것은 훈계가 아니라 학습이다. 전달이 아니라 공유이고, 설명이 아니라 번역이다.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싶다면 먼저 상대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그들이 어떤 플랫폼에서 관계를 맺는지, 무엇에 반응하는지, 어떤 속도로 감정을 주고받는지 이해하지 않은 채 과거의 감동만을 들이밀면, 그 말은 충고처럼 들릴 뿐 공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문화는 내용만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것이 담기는 형식과 맥락까지 함께 이해될 때에만 살아 있는 경험으로 건너간다.

공연 하나를 보고 와서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 문학의 전달 방법도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과거를 들려주는 전수형 모델에서 벗어나 서로의 감각과 매체를 함께 배우는 상호 학습형 모델로 바뀌어야 한다. 발표와 강연과 전시 중심의 일방적 전달을 넘어 체험, 참여, 공동 창작 중심으로 재편될 필요가 있다.

결국 문화는 전달하려고만 하는 순간 멈추고, 공유되는 순간 다시 살아난다. 이제 바뀌어야 할 것은 젊은 세대의 감수성 이전에, 먼저 이해했다고 믿는 우리의 태도일지 모른다. “왜 요즘 세대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가”라고 묻기 전에, “우리는 과연 그들의 문화를 얼마나 배우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세대의 간극은 시간 때문에 생기지만, 그 간극을 벽으로 굳히는 것은 대개 우리의 고정된 시선이다. 전달의 오만을 내려놓을 때에만 비로소 공유의 문화는 시작될 수 있다.

잘 들리지 않는 시낭송, 금방 이해되지 않는 성악곡, 그 잿빛 무대를 보면서 언제까지 박수를 보내야 하는지, 특히 우리 시조단에서도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정경화, 「전달의 오만에서 공유의 문화로-권두언」, 그루, 《시조21》2026·여름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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