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각자들 용도에 따라 다 찢겨 반쯤은 아파트 대지로 들어가고, 반의반쯤은 김치공장, 또 다른 반의반쯤은 공터로 남은 그 땅은, 5·16 때 6·25를 참전하고 해병대 상사로 전역하신 아버님의 퇴직금으로 1967년쯤 샀던 잡목 가득했던 야산으로, 거기에 우리 손으로 처음 삶의 터전을 만들었었다.
61년이 지난 지금 문득 생각이 나서 남은 공터에 당도하여 멀거니 서서 우리 집이 있었던 그곳을 가늠해 보았지만, 동서남북 모든 주변이 전부 다 변해버린 그곳에 서서 61년 전의 그 무엇을 찾아보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그때 과수원 울타리로 심었을 듯한 그 아카시아의 몇 대 후손쯤 되는 나무가, 제멋대로 얼크러지고 설크러지면서 울창하게 자라, 그동안 변함없는 세월의 저 무참함과 무상함에 전혀 개의치 않고, 저들의 치열함은 오로지 변함없는 울창함에 있다는 것을 나에게 열렬하게 말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노을은 또 처연하게 대지를 적시어, 가뜩이나 저문 나를 더욱더 어둡게 칠하고 있었는데, 기억은 또 여기 이 동네서 같이 컸던 친구들을 가차 없이 떠올리게 했으나, 반은 생명의 변이에 밀려 이미 이 세상을 떠나고 없고, 반은 시대의 변이에 밀려 이곳을 떠나고 없다는 사실만을 깨달았을 뿐이다.
이토록 머물 것 하나 없는 이 땅에, 그래도 정 붙일 그 무언가가 어딘가 있을 거라고 부단히 오래도록 하 많은 곳을 찾아 헤매었으나, 이렇게 그것에 대한 반향이 전혀 없음을 세상은 이토록 꾸준하게 나에게 응답해 오니, 이즈음 그 모든 노력들이 다 허사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차후 남은 능력이 있다면 그것을 조금만 더 기다려보는 그 정도일 뿐, 알고 있는 것도 다 어설픈 것들뿐이고 대부분이 다 모를 것들일 뿐, 이제 와 그것을 더 알아본들 무슨 장한 결과 있을까 싶지도 않고, 다만 버티는 데 이골이 난 나의 고통을 견디는 그 능력은, 아직 나를 뜨겁게 하고 있으으므로
- 音 미리암 알터 ‘나와 함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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