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진단 받던 날
이사한 지 겨우 한 달도 되지 않았습니다.
낯선 집인데
이토록 빨리 안도감을 느껴도 되는 것일까 싶을 만큼,
새 집은 이상하리만치 익숙합니다.
이미 새집에 적응이 끝났습니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내 자리였던 것처럼
마음이 먼저 스르륵 풀리는 모양새를 보며,
나는 문득 서글픈 자각 하나를 건져 올립니다.
이 빠르고 기이한 적응은,
병원 생활의
그 서늘하고 팽팽한 공기에도
너무 깊이 길들여져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피곤함에 길들여지기도 했습니다.
인간이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요..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아도,
몸이 땅으로 꺼질 것처럼 무거워도
'익숙함'으로 삼켜버렸던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그 익숙함에 속아 보낸 세월이 참으로 길었습니다.
언제나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몸은 피곤했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게 힘들었건만,
내 미련한 몸과 마음은
그 고통을 삶의 당연한 배경음악처럼 받아들였습니다.
'피곤함'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모호하고 막연한 단어 뒤로,
나는 얼마나 안일하게 숨어 다녔던지요..
운전을 오래 했으니까.. 잠을 푹 못자니까 피곤하지.
내 몸이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보내던
무수한 신호들을,
나는 매번 빤한 핑계들로 받아치며 외면했습니다.
약속된 스케줄로 내일을 또 살아내야 했으니까요.
내 몸의 안마당을
찬찬히 들여다볼 생각은
정작 하지도 못한 채,
그저 하루를 버텨내는 일에만
급급해하며 회피했던 시간들.
그렇게 고통마저도 일상이 되고 버릇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어느 날부터 오른쪽 옆구리에
지독한 담 결림이 시작되었습니다.
사흘 밤낮을 끙끙 앓다가 찾아간
동네 의원의 의사는 담 약만 지어주었습니다.
더 큰 병원에 가보라는 야무진 권유 한마디 없는
그 무지함에 내 목숨을 맡기고 있었던 셈입니다.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열까지 나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발걸음을 옮긴 종합병원에서
의사가 CT를 찍어 보자고 권했을 때도,
나는 여전히 미련을 떨며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절대 찍어야 한다는 그 의사의 단호한 안목이 없었더라면...
마지못해 찍은 결과를 앞에 두고,
의사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 하얗고 서늘한 진료실을 가득 채우던 지독한 정적.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던 그 몇 초간의 묵음이,
실은 세상의 그 어떤 청천벽력보다
더 크고 확실하게 모든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간암입니다....이 정도면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 정적의 끝에 매달려온
젊은 의사의 선고는 참으로 가혹했습니다.
나처럼 미련한 짓으로
스스로를 조여매는 이들이
세상에 더는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혹여 지금 이 순간에도
밤낮없는 피로를 훈장처럼 달고 사는 분이 있다면,
혹은 늘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된다며
소화제로 때우는 분이 있다면,
더군다나 B형 간염 보유자라면,
오늘 당장 병원 문을 두드리시길 눈물로 권합니다.
익숙해진 피로란, 몸이 지르는 가장 마지막 비명일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