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사무칠 때, 안개의 도시 시애틀에서....】
과학과 200805034 한가영
영화는 온통 멍이 든 얼굴로 시애틀의 한적한 주택가 골목을 휘청 거리며 내려오는 애나(탕웨이)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수감된 애나는 9년의 형기 중 7년을 보냈을 때, 어머니의 사망으로 72시간이라는 짧은 특별휴가를 허락받는다. 시애틀로 가는 버스에서 애나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훈(현빈)을 만나게 되고, 둘은 애나의 짧은 특별휴가 기간 동안 시애틀에서 인연을 이어나간다.
교도소를 나온 애나가 오랜만에 찾은 가족들은 바르게 인사를 건네고 주방으로, 손자 곁으로 핑계를 붙이며 바쁘게 그녀의 곁을 벗어난다. 가족,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긴 집, 잘못 새겨진 어머니의 묘비. 남겨진 중국식 레스토랑에 관한 것들 뿐 이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공간을 함께 하는 것일 뿐, 그 안에서도 그녀는 혼자다.
오래 만에 마주만 옛 사랑도 그렇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다며 그녀를 외면한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그려는 그렇게 덩그런히 머물러 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탕웨이의 얼굴을 스토커처럼 따라 다니며 하나하나의 표정 변화를 세밀하게 살피고, 대사보다는 그것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데 치중한다.
따라서 스토리나 대사를 통한 재미나 감정을 보여주고 관객이 소비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화면, 흐린 시애들의 날씨, 배우들의 표정, 목소리 톤, 흐르는 음악,,,그렇게 느끼는 영화인 것이다. 영화와 주인공들이 친절히 건네주는 방식에만 익숙하다면 그 잔잔함에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느끼기 시작한다면 이 영화는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영화는 느끼는 만큼 스며드는 영화인 것이다.
훈과 애나, 애나와 훈. 둘의 관계에서 시계와 안개는 큰 의미로 다가온다. 훈과 애나가 처음 만났을 때, 훈은 애나에게 차비를 빌려준 대가로 자신의 시계를 건네준다. 훈이 애나의 손목에 시계를 걸어주는 순간은 둘의 첫 접촉(터치)이 일어나는 순간이고, 7년 동안 정지되어 있던 애나의 시간이 다시 흘러가는 계기를 의미하는 것 같다.
비와 안개의 도시 시애틀. 시애틀은 어쩌면 제3의 주인공이다. 시애틀의 안개는 그 자체로 둘의 사랑에 깊은 심연과 애처로움을 안겨다 준다. 애나는 감옥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훈과 함께 안개가 자욱한 시애틀로 들어갔다가 안개가 걷히자 혼자서 감옥으로 복귀한다. 그렇다면 안개가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안개가 곧 애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애나는 자발적 의지로 감옥을 벗어난 게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돌발적 상황의 발생으로 수동적으로 벗어나게 된 것이다. 7년 동안의 수감, 무표정한 애나의 얼굴, 과자를 먹으며 눈치만 살피는 애나의 눈빛. 버스 운전기사의 ‘괜찮다’는 말에 겨우 용기를 내어 버스에 오르는 애나. 가족들마저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 대고, 남편 살해의 원인을 제공했던 남자와의 우연한 마주침은 애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이러한 모든 혼란이 바로 시애틀의 짙게 드리워진 안개이며, 안개의 걷힘은 바로 애나가 혼란한 마음을 정리했음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만추>에 인상적인 몇 장면을 감상해보자.
하나. 어색한 가족들 사이를 빠져나와 애나는 7년 만에 닫힌 귀를 뚫으며 귀걸이를 하고,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는 장면이다. 아마도 그녀는 귀걸이와 옷으로 교도서 밖의 세상에서 조금 힘을 내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날카롭게 죄수번호와 위치를 묻는 전화는 그녀를 다시 현실로 추락시킨다.
귀고리로 인한 가려움이 당신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속삭이는 듯하다. 옷과 귀걸이를 벗고 교도소로 다시 돌아가려는 애나, 그리고 그 앞에 돌연 나타난 훈. 알레르기로 가려운 귀를 신경질적으로 긁어대는 애나와 덧난다며 걱정해주는 훈이 있다.
둘. 한 남자가 훈에게 묻는다.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부인의 마음을 얻었냐고. 그 남편의 물음에 훈은 답한다. 그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라고..
훈은 사람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재치 있게 둘러서 그녀의 이름을 묻는 장면이나 갑자기 뛰기 시작하던 애나가 뜀박질을 멈춘 후 자신의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할 때 그것을 들어주는 장면. 영어로 시작한 얘기는 어느덧 중국어로 변하고, 알아 듣지도 못하면서 훈은 눈치껏 ‘하오’(좋다)와 ‘화이’(나쁘다)로 추임새를 넣는다. 애나가 비로소 마음을 열었음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비록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녀를 묵묵히 위로해 준다.
셋. 예고도 없이 장례식장에 찾아온 훈은 애나의 예전 남자와 싸움을 벌이고, 싸움을 말리는 애나에게 훈은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끄집어낸다. 사실 훈은 애나가 얘기를 했음에도 이 남자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중국어로 얘기했기 때문에.
그러나 두 남자는 본능적인 라이벌 의식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급기야 싸움으로 발전한다. 훈이 애나를 좋아하게 된 만큼 엉망으로 보이는 애나의 첫사랑 남자에게 훈은 화가 났을 것이다. 수면 아래로 잠잠히 흘러가는 듯 한 애나의 감정이 폭발하는 유일한 장면이다. 그만큼 폭발력이 있다. 영화에서 가장 코믹한 장면이면서 가장 격렬한 장면.
포크씬,.나는 울고 싶었는데 사람들은 너무 오래 웃더라.
넷. 2년 후 훈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도착해 훈을 기다리는 애나.
훈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인사하는 연습을 하는 그녀의 모습. 가슴 먹먹하게 마음 졸이게 했던 마지막 엔딩 장면이다. 훈이 오든 오지 않 든, 그녀는 이제 안개 걷힌 따뜻한 봄을 살아갈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마지막으로 탕웨이라는 배우에 대해 잠깐 언급해보자. 색계를 통해서도 느꼈지만 그녀는 정말 ‘좋은 배우’다. 그저 ‘좋은 배우’라는 표현 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다는 게 언어의 한계를 실감할 정도로 ‘좋은 배우’다.
애나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곰곰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떠오르는 건 애나의 다양한 표정이다. 그 무표정 속에 담긴 슬픔, 기쁨, 호기심과 같은 감정들의 전달.
만약 탕웨이의 표정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만추>는 아마도 아주 지루한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이 영화는 그 어떤 영화보다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화가 될 것이다. <만추>는 탕웨이의 표정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
모든 게 빠르고 넘쳐나는 세상에서 한발 뒤로 물러서서 생각하고 느끼고 그리고 희망으로 재충전 되게 하는 영화. 이 영화는 이렇게 생각할수록 여운이 더 남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