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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영상매체의 문학적 이해] 영화 '킹스 스피치'를 보고 (윤리 200801019 우수진)

작성자우수진|작성시간11.05.29|조회수26 목록 댓글 0

  두려움에 찬 한 남자의 얼굴.

  영국제국의 두 번째 왕자, 요크 공작. 그로 말할 것 같으면, 후에 세계2차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에 대하여 당시 영국인들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고, 현 영국 왕족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인 조지6세이다. 그런 그가 두려움에 찬 얼굴을 하고 있다. 수십만 개의 눈이 그를 바라보고, 수십만 개의 귀가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더듬더듬거리며 시작된 그의 연설에 하나둘씩 고개를 돌려 버리고 귀를 닫는다. 고요한 청중 속에서 그는 한없이 고독하다.

  데모스테네스를 치료한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 구슬을 입에 넣고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유능한 치료사들을 숱하게 만나 보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L.로그 언어치료사. 조지와 로그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된다.

 

  무의식.

  억눌린 왕족 생활 속에서 조지는 그저 좋은 아이였다. 그리고 좋은 아이여야만 했다. 왼손잡이여서도 안 되고, 안짱다리여서도 안 된다. 그렇게 자라 어른이 된 그는 위엄 있고 세련되었다. 귀품이 넘치고 절도 있다. 하지만 그는 나약한 존재이다. 아내에게 기대어 눈물을 흘리는 말더듬이. 아버지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기죽은 그는 한없이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도덕적 금지가 초자아를 구성한다고 한다.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을 받기 위해 어머니의 금지를 받아들이고 복종하는 것처럼, 조지는 왕족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배우고 고치고 만들어져왔다. 다른 사람에 의해 교정 받아오면서 그는 금지를 내면화시키고, 이를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서 초자아를 구성한다. 왼손잡이와 안짱다리 등의 금지를 그는 무의식으로 내면화시킨 것이다. 그는 왕자이므로 해서는 안 되니깐. 하지만 초자아는 행동장애, 감정장애, 노이로제 등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한다. 억압된 본능은 여러 가지 심리적 장애를 일으키면서 상징적으로 다시 나타난다. 이렇게 해서 마음 속 깊이 무의식에서 서서히 콤플렉스가 발달하는데, 조지에게는 바로 ‘말더듬는’ 콤플렉스가 형성된 것이다.

 

  자아에 상처를 입고 억압된 조지에게 필요했던 것은 많이 배우고 돈 많은 학자들에 의한 책에 나오는 치료법이 아니었다. 조지는 어떻게 보면 만들어진 존재이다. ‘왕족 위상은 어떤 피조물보다도 낮고 비천하게 축소됐다. 우리는 이제 배우야.’라는 조지의 아버지 말처럼 그는 연극을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서 있고, 지금도 연극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연극을 해야 한다. 사람들 앞에 좋은 모습으로 서기 위해 그는 강요받고 억눌렸다. 항상 위엄있어야 했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그가 말을 더듬는다는 게 알려져서는 더더욱 안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를 부각시키면 시킬수록 상황은 악화된다. 못한다고 나무라면 나무랄수록 더 못하는 게 바로 사람이다. 똑바로 말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조지.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바로 ‘내면의 치료’였다.

 

  그런 그에게 나타난 L.로그. 사람들은 그가 어떠한 자격증도, 검증받은 학위도 없는 사람이므로 왕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반대한다. 그러나 로그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기법, 기술만을 요구하는 조지와는 달리 그는 조지의 마음을 열고자 한다. 왕자와 치료사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는 로그. 품위 있게 아에이오우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바닥을 구르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욕을 질러대기도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관계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가까워질수록 조지의 말더듬는 증세는 개선된다.

 

  로그의 경우 경력 많고 실력 있는 치료사이지만, 학위도 자격증도 없으며 가정에서 그는 그저 그런 아버지이자 남편에 불과하다. 권위 없는 그런 가장. 게다가 셰익스피어 연극에 대한 열망은 대단하나 왕 역할을 하기엔 젊지도 않고 품위가 부족해서 몇 번이고 오디션에 떨어진 로그. 그런 점에서 그에게도 드러나지 않은 콤플렉스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와는 달리, 왕위 후계자가 될지도 모르는 품위 있고 우아한 조지. 그들의 상담자와 내담자와의 관계, 즉 래포는 깊어졌고, 로그는 조지에게 자신을 투영한다. 연극에서 조차 왕이 되지 못하는 그는 조지가 진짜 왕이 되길 바라며 왕의 자리를 이어갈 것을 강요한다. 상담자와 내담자가 지켜야할 관계를 넘어서 버렸다. 그의 콤플렉스가 표출되고 만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콤플렉스가 있다. 어떠한 환경이 공포로 그를 몰아 콤플렉스가 형성되었을 수도 있고, 어떠한 상황에서 내면에 상처를 입거나 수치심을 겪었거나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다. 혹은 그로 인해 전혀 상관없는 다른 신체적․정신적 문제로 콤플렉스가 드러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치유하고 회복하느냐이다. 능력 있는 의사에게, 좋은 약을 쓰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내면에 문을 두드리고 열어보는 것이다. 무의식 속에서 싫다고 저항하는 문젯거리를 밖으로 조심스레 드러내어 치유할 때, 비로소 이 문젯거리는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닐 것이다. 옆에서 함께 억압된 내면을 치유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로그에게 조지가 말더듬는 콤플렉스를 치유해 주고 감동의 연설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말을 잘 하는 자와 말을 더듬는 자.

품위가 부족한 자와 품위, 위엄 있는 자.

그리고...

연극을 하고 싶어 하는 자와 평생 연극을 하고 있는 자.

둘은 어딘가 모르게 반대이다.

서로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가 서로의 이상의 거울이 되어 주는 그들을 우리는 ‘친구’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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