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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영상매체의 문학적 이해] 영화 '천녀유혼'을 보고 (국어A 200802027 이창동)

작성자역사극의시작|작성시간11.05.29|조회수50 목록 댓글 0

천녀유혼

 

  과거에 천녀유혼1편인가? 2편을 본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 왕조현과 장국영의 러브스토리를 보면서 참 슬프지만 보면서 재미가 느껴지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왕조현은 무척 예뻣고, 장국영은 어리버리했지만 잘생긴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도 요괴와 사람의 사랑이 슬퍼서 눈물이 난다기 보다 그 둘의 사랑이 왠지 재미있고, 아찔아찔한 느낌이 기억에 남는다.

 

  이번에 새로 나온 천녀유혼의 경우 유역비라는 배우가 왕조현 역할을 맡았는데 내심 무척이나 기대되고 기뻤다. 대학교2학년 방학시즌 때 신조협려라는 중국드라마를 보게 되었고, 그때 나온 여주인공이 바로 유역비였기 때문이다. 유역비를 보면서 청순하다고 생각했는데, 왕조현 역할을 맡았다는 소리에 두말없이 천녀유혼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번 스토리는 소천(요괴)과 연적하(퇴마사)의 사랑에 영채신이라는 관아의 기술자의 사랑까지 보태져 진행된다. 간략한 줄거리를 말하자면 연적하는 소천을 사랑했지만 요괴인지라 자신의 신병으로 그녀의 기억을 지운다. 그 후 그녀는 영채신을 만나고 사랑하게 된다. 그러다가 하설풍뢰라는 퇴마사와 연적하가 같이 나무요괴라는 대왕요괴를 없애게 된다. 그때 소천의 기억은 돌아오고 연적하는 죽고 만다. 소천 역시 영채신을 돌려보내며 ‘요괴와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연적하의 말이 맞았다’라고 말하며 자신 역시 거기서 최후를 맞이 한다.

  이번 이야기를 보면서 느낀점은 무엇보다도 연적하와 소천의 사랑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영채신의 사랑역시 있었지만 연적하의 사랑에 가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영채신은 연적하와의 사랑에 대한 모방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는 전작의 재미있는 사랑의 모습보다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주도니 흐름으로 느껴졌다. 특히나 사탕과 연적하의 신병은 이번 천녀유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된다. 연적하와 소천이 사랑할 당시 연적하는 사탕을 주었고 소천은 ‘사탕을 주게 된 사람과 사랑을 할꺼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연적하는 기억을 지우기 위해 자신의 신병을 소천의 머리에 집에 넣는다. 그 후 영채신이 흑산촌이라는 도시에 수원을 찾기 위해 오게 되고 산에서 한 여우에게 사탕을 주게 된다. 그 후 연적하와 소천(여우)의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점은 결국 소천과 영채신의 사랑은 연적하와의 사랑의 모방품이 아닌가라는 점이다. 사탕을 먹으며 다짐했던 연적하와의 사랑이 영채신과의 사탕을 통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맥락으로 수업시간에 보았던 러브레터가 또 올랐다. 러브레터의 히로코 역시 이츠키의 모방품과 같은 사랑으로 비추어졌고, 편지라는 기호가 그녀의 상처를 풀었기 때문이다. 천녀유혼에서의 사탕은 소천에게 새로운 사랑을 만들게 하는 장치이면서 또한 과거의 사랑과 연관되는 기호라고 본다. 즉 사탕을 여우에게 먹임으로써 이미 요괴는 영채신을 잡아먹을 것이 아닌 서로 사랑하게 되는 연적하의 분신과도 같게 느껴지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신병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과거 나무 요괴와 싸울 때 연적하는 자신의 신병을 쓰지 않게 되고 결국 동료들이 죽음을 맞이 한다. 그 중 살아남은 동료가 바로 하설풍뢰이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한번 하설풍뢰와 연적하는 나무요괴를 잡으러 가게 되고 나무요괴에게 연적하는 잡아먹히고 만다. 나무요괴와 일심동체가 된 연적하는 나무요괴의 마음을 흔들며 소천의 머리에서 자신의 신병을 꺼내 스스로 자결한다. 이로써 나무요괴도 죽고 연적하도 죽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의 신병은 요괴를 죽이게 한 것에 목적이 있다. 하지만 숨은 이면에는 소천의 사랑에 대한 기억이 있다. 소천의 기억을 잃게 한 장본인이 바로 그 신병이자 다시 찾게한 장본인도 연적하의 신병이기 때문이다. 소천의 자신의 잃어 버린 기억을 알게 되고 연적하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 기억 때문에 결국 영채신과 도망가서 행복하게 살기를 택하는 것이 아닌 자신 역시 그 난약사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과거 연적하와의 기억에 얽매여서 현재 영채신과의 미래에 있을 기억을 잃어버린 것이다.

 

  연적하의 기억에 얽매여 죽으며 말하는 ‘요괴와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 질 수 없다.’ 라는 대사는 가장 슬픈 장면이면서 주된 모티프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결국에 서로 같이 죽음을 맞이하는 연적하와 소천 그리고 죽음까지 불사르던 영채신의 사랑은 현세에서는 이루어 질 수 없었지만 내세에서는 영원히 이루어질 사랑이 아니었나 싶다.

  요괴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슬프고도 재미있게 풀어낸 이 영화는 일상 생활 속의 사랑 모습은 아니지만 충분히 인간다운모습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태생마저 넘어선 요괴와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는 없었지만 보는 관객들에게 충분히 사랑의 힘을 제공해었다. 또한 귀신과 사람이라는 요소로 인한 재미난 이야기,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도 던져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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