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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요]6.25 사변 2

작성자바울|작성시간26.06.23|조회수1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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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부터 76년 전 6·25사변(事變)은, 소련의 지원으로 군사력을 키운 북한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옹진, 개성, 포천, 춘천 등, 남북 군사 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암호(暗號)명 “폭풍 224”로, 15만 4천의 정예 부대로, 242대의 탱크를 앞세우고, 2,500문의 대포로, 불법 기습 남침(南侵)한 전쟁(戰爭) 이었다. 우리 국군은 사흘 만에 서울을 빼앗겼다. 국군은 북한의 앞선 병력과 무기에 밀려, 한 달 만에 낙동강 부근까지 후퇴하였다.

🟥 불과 3개월 만에, 부산과 대구를 제외한 고요한 대한민국 일대를 삼켜 버렸다. 동족 상쟁의 처참한 비극이었다. 당시 미국 주도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려 유엔군이 파병되어, 연합군은 더글러스 맥아더의 9월 15일 인천상륙 작전으로 서울을 되찾고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다. 하지만 북한의 요청으로 중공군이 개입하자, 다시 서울을 빼앗겼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전투가 계속되었다.

🟥 1. 먼저 북한군 피해는? 1950.6.25 ~ 1953.7.27까지 총 1,129일, 3년 동안 전쟁 피해(被害)는 어떠했는가? 국방부 군사편찬 연구소 통계다.
✅️ (1) 사망 508,797명, (2) 실종, 포로 98,599명, (3) 중공군은 사망, 부상, 실종, 포로 등 97만 명으로 추정한다.

🟥 2. UN군이 본 피해는? 전사, 부상, 실종, 포로, 행방불명 151,129명이다.

✅️ (1) 미국 밴 플리트(James Alward Van Fleet) 장군의 아들이, 평안남도 순천 지역을 야간에 폭격하다, 중공군의 대공포화에 맞아 격추되어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 제3대 UN군 사령관 미국 마크 웨인 클라크(Mark Wayne Clark, 1896~1984) 대장의 아들 클라크 대위도, 금화지구의 저격능선에서 중대장으로 싸우다가 결국 부상 후유증으로 전사했다. 당시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미8군 사령부에서 밴 플리트 장군에게 보고를 받은, 미국 34대 아이젠하워 (Dwight David Eisenhower, 1890-1969) 대통령의 아들 존 소령도 전사했다.

✅️ (2) 미국 월턴 해리스 워커(Walton Harris Walker, 1889~1950) 중장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미 제8군 사령관으로 낙동강 전투에서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도 없고 이상 더 물러설 곳도 없다. 여기서 죽더라도 대한민국 만은 지키겠다. 버티느냐 죽느냐? (stand or die)” 라고 방어하다가, 육군 제6사단 소속 차량과 추돌하여 차량이 전복되는 교통사고로 순직했다. 오늘날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 이름이, 워커 장군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어졌다는 사실을 아는가? 외 아들 샘 S. 워커 대위는, 당시 일선 소총 중대장으로 전투에 참여하여 미국 군사 역사상 최연소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 (3) 24사단장 미국 딘 소장은, 대전을 지키는 전투를 지휘하다가 포로가 됐다. 24사단 연대장 미국 마틴 대령은, 천안에서 적의 탱크와 대결하다가 전사했다. 미국 하버드대학 졸업생 17명이, 한국 전선에서 전사했다. 미군 장성의 아들 142명이, 전방 최전선 근무를 지원하여 참전했다가, 35명이 부상하거나 전사했다. 유엔군, 특히 미군의 이런 희생(犧牲)을 잊어서야 하랴. Maranatha! (내일 계속)

https://youtube.com/shorts/kgSzhX5CLUA?si=B-nhfmf-3ugDLJm0 (30초)

🚵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인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암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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