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가 무서운 저주의 행위인가?
“예수께서 율법을 십자가에서 이미 완성하셨기 때문에 구약 율법 중 의식법인 십일조 등을 지킨다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다시 허물어 버리는 아주 무서운 저주의 행위인 것이다.”
이글은 1월 7일 고동엽 씨가 우리 게시판에 올린[6971] “십일조 바로 알아야”라는 글의 결론 부분이다.
이 글의 본문을 보면 고동엽 씨는 해박한 신학지식과 특히 원어 실력에 일가견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아주 성실한 학문적 소양도 갖추신 분이다. 원어를 직접 해석하고, 십일조의 역사적 조명도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서구 여러 나라들의 십일조 헌금의 변천사와 현황까지 자세히 논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율법의 마침이 되는 진리도 자세히 설명하고,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폐지된 짐승의 피로 드리는 제사를 다시 드리지 못하게 성전을 복구할 수 없게 하시고 레위 제사장의 후손도 찾을 수 없게 하셨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 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그래서 예수께서 율법을 십자가에서 이미 완성하셨기 때문에 구약 율법 중 의식법인 십일조 등을 지킨다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다시 허물어 버리는 아주 무서운 저주의 행위인 것이다.”
라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참으로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런 결론을 내리는가?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 보기위해서 고동엽 씨가 게시해놓은 { http://blog.daum.net/ipssen }(바이러스치료실)에 접속해서 “율법과 복음의 바른 이해” 고동엽 씀 이라는 글에서 그 연유를 알게 되었다.
“율법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미 성취되었지만 그 기능이 아직도 유효한 것은 의식법, 시민법, 윤리법 이 셋 중 윤리법이라 하겠다.”
여기서 고동엽 씨는 이 중 의식 법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미 그 율법(의식법)의 마침이 되었는데(롬10:4) 십일조는 이 의식 법에 들어 있는 조항이기 때문에 이를 다시 지킨다는 것은 갈1:9의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 되고 따라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다시 허물어버리는 아주 무서운 저주의 행위가 된다고 한다.
고동엽 씨는 여기서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 십자가에서 율법[의식 법에 속하는 십일조 등]의 요구를 다 이루셨기 때문에 십자가 이후에는 구원의 길로서 율법의 기능은 종결되었던 것이다. 구약의 피 제사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제사에 비하면 그림자요, 예표였고 그리스도의 제사는 실체요, 그 원형이다.
여기서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은 의식법의 기능이 종결되었다는 것만이 아니다. 의식 법, 시민법, 윤리법 할 것 없이 “율법의 행위로써 의롭게 될 수 없는 그 것을 다 이루었다”는 뜻이다. 비단 의식 법만 그 기능이 종결된 것이 아니라 윤리법마저도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기능이 종결했다는 뜻이다. 윤리법이 이를 지키므로 의롭게 되는 기능이 정지했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켜야할 기능까지 종결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의식 법에서도 짐승의 피로 제사 드리므로 의롭게 되는 기능은 종결 되었지만 그 이외의 조항은 아직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켜야할 부분이 남아 있다. 물론 구약의 율법은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예수님께서 완케 하셨기 때문에 패해진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의식법인 레위기에 17:10“피를 먹지마라.”고 되어 있는데 피를 먹지 않으면 예수의 십자가를 허무는 무서운 저주의 행위가 되는가? 그렇다면 예루살렘공회에서 정한 내용 중 피를 멀리하라(행15:29)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또 추수한 첫 이삭을 드려(레23:10)도, 곡식거둘 때 너희 밭모퉁이까지 다 걷지 말고 이삭도 줍지 말라(레19:9)
의식법인 레위기에는 제사에 관한 법외에 십일조와 위에든 예외에도 여러 가지 법이 기록되어 있다. 이 법들을 지키면 저주의 행위가 되는 것인가?
물론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 예수님께서 완전케 하신 수준에 맞는 것인가? 그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소득의 십일조가 아니고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신 재산 전부를 팔아 가난한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구원의 조건은 아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이 조건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사도행전에도 바나바를 위시하여 많은 사람들이 전 재산을 신앙공동체에 바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따라서 우리는 십일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하나님께 다 바쳐도 감사하다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것이 불가능 하다. 그렇다면 구약의 율법대로 십일조라도 바치자고 정하고 이를 이행하는 것이 예수 십자가를 허물어 버리는 무서운 저주 행위가 되는 것인가? 우리나라 교인들은 십일조를 바치는 사람들은 실은 십의이조를 드리고 있다. 십일조 외에 각종 헌금을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순수한 마음으로 십일조 드리는 것은 남직 하지만 기복적인 잘못된 십일조를 드리기 때문에 십일조를 없애야 한다고 하면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기복적인 신앙을 고처야지 십일조를 없애야 한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모든 헌금은 기복적인 신앙의 바탕으로 드릴 수 있고 또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기복적으로 헌금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헌금을 없애자고 할 수 있겠는가?
같은 기독교이지만 나라마다 모두 다른 기독교 문화를 형성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나름대로 기독교 문화를 이룩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새벽기도회 이다. 다른 나라교회에서는 없는 일이다. 다른 라에 없는 새벽기도회는 없애야 한다는 논리는 잘못된 것이다. 종교세를 징수해서 교회 운영경비를 지출하는 나라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도 종교세를 거둘 수 있는가? 그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기독교에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기교 문화가 많다. 전 세계 기독교가 주일 예배 한번만 드린다. 우리나라는 주일 오전예배, 오후예배,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까지 드린다. 해가 바뀔 때면 송구영신 예배를 드린다. 여름 겨울에는 기도원이나 수련원에서 특별집회도 한다. 한국교회는 아무리 재정이 어려워도 선교헌금을 하고 이는 선교비로 지출한다. 한국 교인들은 외국에 가면 반드시 교회를 세운다. 또 직장마다 신우회가 조직되어 있다. 한국교인들 만큼 기도 많이 하는 교회가 어디 있는가? 한국교인 만큼 봉사 많이 하는 교회가 어디 있는가?
우리 한국교회는 참으로 좋은 기독교 문화를 가지고 있다. 외국에서 안하는 것은 다 없애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망상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원로 일기 중에서
성도교회 원로목사 예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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