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2337호 / 차별 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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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정치, 경제, 시사에 관심을 끄고 살아왔다. 더욱이 퇴직을 한 이후에는 귀동냥으로나마 들을 수 있는 일도 없으므로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까마득히 모르고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집안에는 TV도 없고 스마트폰도 사용하지 않는다. 가끔 남편의 스마트폰에서 들려오는 뉴스를 귓등으로 들을 뿐이다.
만일 그런 일에 연루되면 고소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야말로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들어가고 박해를 받았던 일이 21세기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일어난다는 것인데 큰일이구나, 싶었다.
2009년에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만 해도 그 법이 제정된 이후 실제로 그 법이 실행되기는커녕 아직도 우리나라의 장애인들은 심한 차별로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다. 그리하여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이후 제소건만 엄청 늘어나 법조인들만 일거리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법무부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고 한 것은 그러한 숨겨진 계산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싶다.
<차별금지법>의 쟁점으로는 ‘정치적 의견 및 사상’, ‘전과’, ‘성적지향’, ‘종교’, ‘가정형태’ 등이다. 이 쟁점들은 사회적 혼란과 가치의 혼란을 야기 시킬 소지가 많은 사항들이다. 지금도 사분오열되어 싸우는 각계 기관과 단체들에서 이 법이 제정되어 실행될 때에는 더욱 더 극렬한 싸움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2013년 12월 31일, 올해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여 이웃 교회 목사님이 2주 전에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결혼을 축하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한 턱 낸다고 해서 매운탕이 맛있기로 유명한 식당에서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이 모였다. 그곳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긴급메시지 얘기가 나왔다. 시사에 밝은 어느 목사님이 그거 이미 철회되었는데 잘 모르는 누군가가 유언비어를 배포하여 큰 소동이 있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나 예수는 싫다”라고 한단다. 참, 기가 막힌 현실이다. 예수님이 대체 어쨌기에 그럴까? 예수님이 악하였나? 예수님이 그들에게 무슨 손해를 끼쳤나? 이는 이유 없는 반항이다. 아니, 무지의 소치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울에게 말한 것처럼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행26:14)”인 것이다.
그야말로 복음은 만민평등하게 예수를 믿는 모두에게 구원을 베푸신다.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상전이든, 종이든,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든 아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유대인이든 한국인이든, 학벌이 높은 자든 학벌이 낮은 자든, 박사학위자이든 문맹자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고위직자이든 비정규직자이든, 대통령이든 청소부든. 이것이 바로 진실한 차별금지법이 아닌가. 그러나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 차별금지법에 위배된다고 한다면 우리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리라. 예수를 붙들든지 사탄과 타협하든지.
기독교에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방편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종교에서 기독교를 편협하고 독선적이라고 비난한다. 아무리 비난한다 해도 양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며 그분만이 우리의 구원주가 되신다는 것이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창골산 원고보내주실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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