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창골산 칼럼 제2343호 / 사랑의 능력

작성자봉서방|작성시간14.02.04|조회수329 목록 댓글 5

창골산 칼럼 제2343호 / 사랑의 능력                 

 

  제2343호        

      

전체메일 안받는 법

창골산 메일은 카페 가입 하신분 중 수신에 동의 하신분 에게만 보내드리는 메일로 누구나 받아 볼수 있으며  일시에 매일 발송 됩니다. 수신을 원치 않으시면  카페 내정보에서  받지 않음으로수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클릭하시면 자세한 내용을 보실수 있습니다  

창골산 농어촌교회 돕기 일백운동

  첨부이미지 첨부이미지 첨부이미지 첨부이미지 첨부이미지 첨부이미지 첨부이미지 첨부이미지

 

칼럼원본보기☞창골산☆칼럼  

 

  사랑의 능력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묻는 한 율법사에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6~40)”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수없이 읽고 설교로 듣는 성도들은 머리로 잘 알고 입으로 고백은 잘 하면서도 사랑을 삶으로 살아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은 사람의 힘으로는 실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능력으로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주일 오후 예배 때 우리 교회 강단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는 요즈음 몇 달 동안 우리 교회에 나오며 함께 예배드리고 식사도 하면서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우리 교회 성도들을 한동안 관찰했던 모양입니다. 그가 설교를 시작하기 전 복받치는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제가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주일 오후 예배 때 말씀을 전하라는 명을 받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무엇을 기도할까요?“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셨습니까?”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모두 고개를 쳐들지 못했습니다. 나는 더욱 더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50대 중반으로서 5년 전에 목사 안수를 받고 도시에서 개척교회를 하다가 다른 목사에게 맡기고 고향집에 내려와 있습니다. 몇 년 전 홀로 사는 홀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다행히 신속하게 치료를 받아 걸으며 활동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끔 와서 어머니를 살펴보았는데 어머니가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영양실조에 걸렸습니다. 마침 혼자 사는 넷째 아들인 그가 시골로 내려와 어머니를 모시기로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젊어서부터 고집이 세고 드세어서 그는 그런 거친 어머니가 싫었습니다. 늙고 병든 어머니는 더 완고하고 고집이 세졌습니다. 몸이 안 좋으니 짜증도 자주 내고 변덕을 부렸습니다. 1년 동안은 자기 자신이 미울 정도로 어머니와 늘 티격태격 다투었습니다. 이래서 존속살인도 일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어머니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머니의 고집에도 그의 마음이 요동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사랑의 능력을 부어주신 것 같다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지난주에(2014.1.12~1.17) 우리 교회에서 과일금식을 하며 영육건강세미나를 했습니다. 16명이 참가했습니다. 주일 오후 5시에 시작하여 금요일 밤 8시에 마쳤습니다. 5박 6일 동안 합숙을 했습니다. 신앙 연륜이 짧은 85세의 집사님도 참석했습니다. 암수술을 받고 네 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은 77세의 환자인 집사님도 참석했습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은 소변을 자주 봅니다. 게다가 과일금식을 했으므로 더욱 더 소변이 자주 마려웠던 모양입니다. 항암치료를 받은 집사님이 소변 관리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예배 도중에, 잠자는 도중에 종종 옷에 오줌을 쌌습니다. 환자라서 악취가 심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하러 그 방에 들어가면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코가 예민한 몇몇 권사님들은 다른 방으로 가서 잤습니다.

 

그 방에만 들어오면 문을 활짝 열곤 했습니다. 보건소에서 성인용 기저귀를 얻어왔습니다. 암환자인 집사님은 기저귀를 차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기저귀를 찰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금요일까지 지나고 금요일 오후에 그 집사님은 갈아입을 옷이 없다고 집에 갔습니다. 그 후에 나머지 성도들은 방문을 다 열고 온 방을 몇 번씩 걸레질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교회 내에 잘 씻지 않아 냄새가 나는 성도들에 대한 얘기가 터져 나왔습니다.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도 타인이 만들어낸 악취를 참기까지는 사랑하지 못하는 존재인 인간의 한계성에 부끄러웠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떠하셨을까, 생각했습니다.

  어느 권사님 가족이 도시에서 이사 왔습니다. 이사 온 후에 몇 년 동안 교회를 쉬고 있던, 신앙이 초보인 남편이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 씻어서 아내가 성화를 대는 정도의 깔끔한 사람입니다. 한 동네에 사는 또 다른 권사님이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씻질 않습니다. 밖에서 일을 하고 손도 씻지 않고 밥을 먹습니다. 목욕도 안합니다. 게다가 변실금이 있어 변을 옷에 싸곤 합니다.

 

 아내인 권사님은 더러운 것을 못 견디는 사람입니다. 부부가 한 방을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청결에 관한 생각이 다릅니다. 아내가 아무리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내어도 남편은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아내에게 잔소리한다고 폭언을 하고 폭행을 하곤 합니다. 이제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포기를 하고 각방을 사용하며 살고 있습니다. 두 남편들이 교회에서 한 의자에 앉습니다.

 

특히 겨울이 되니 악취가 심해져 깔끔한 남편은 구역질이 나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그는 악취가 심한 날에는 교회에서 점심도 먹지 않고 집으로 갑니다. 참다 참다 어느 날 그 아내 된 권사님이 악취 나는 남편의 아내 된 권사님에게 말했습니다.

  “권사님이 되어가지고 남편에게서 악취가 안 나게 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말을 들은 권사님은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자기 사정을 잘 알지 못하고 그런 말을 한 동료 권사님에게 서운하기도 했고, 그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없는 자기 부부의 처지가 한스럽기도 했습니다. 결국 설날에 자식들이 다 모이면 남편을 요양원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권사님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기가 죽습니다. 가장 가깝다고도 할 수 있는 남편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지 못하는 아내라서요. 물론 문제의 원인은 남편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런 남편을 사랑하지 못하는 아내의 죄책감을 씻어내 주지는 못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영육건강세미나에 강사로 오셔서 해주신 말씀 중에 은혜가 된 것이 있습니다. 그는 대학생 때 예수를 믿었습니다. 주말에 집에 가면 농사를 짓는 아버지가 일을 시켰습니다. 그는 몸이 안 좋았음에도 아버지가 시키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자기 마음속에는 예수님이 있고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보여주려고 더욱 순종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명령이 이해하기 어려워도 자기 속에 있는 예수님이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토요일에 집에 갔더니 내일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써레질을 하던 소가 발작이 나서 일을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집에 온 아들에게 소 대신 멍에를 메고 앞에서 써레를 끌라고 했습니다. 그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을 소로 만들어 일을 시킬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마음속에서 반발심이 불뚝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의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순종하라는 목소리가 들려와서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소처럼 멍에를 메고 써레를 끌어 12마지기의 논을 써레질했습니다. 몸이 파김치처럼 늘어졌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평안했습니다.

 

그는 늘 그렇게 예수를 모르는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모든 일에 순종을 했습니다. 그는 대학 교수로 있다가 50대 중반에 어떤 일에 누명을 쓰고 강제 퇴직을 당했습니다. 그 와중에 그는 신학공부를 했고 늦깎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몇 년 전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가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그의 아버지가 그를 앞에 앉힌 후 말했습니다.


  “네가 어려서부터 이 애비 말에 순종했고 그 아들이 목사가 되었으니 나도 이제 예수를 믿어야겠다.”  지난주 수요일 밤에 나의 친정아버지가 교회 마당에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서 큰소리를 치셨습니다. 웬일인가 하고 가봤더니 교회 봉고차가 당신이 길에 걸어오고 있는데도 지나쳐 가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봉고를 운전하시는 장로님이 아마도 캄캄해서 못 보고 지나쳤을 겁니다”라고 말했더니, 아버지는 “아니다, 그 놈이 항상 그런다. 이 늙은이를 무시하고 방자하게 그럴 수가 있어?” 하면서 노발대발하셨습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로 화만 내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화가 나서 사택에 들어와 남편에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 말야, 차라리 전주 아파트로 이사를 가라고 해야겠어. 당신이 딸 생각한다고 우리 교회를 나온다면서 목회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어야 말이지. 그분이 우리 교회에 나오는 것이 오히려 목회에 더 방해를 한다니깐.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 분이 교회는 왜 나오느냐고.”


  나의 친정아버지는 본인 입으로 당신이 예수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딸이 사모니까, 사위가 목사니까 교회에 나와 준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분을 볼 때 마음이 답답합니다. 육신의 귀는 물론이고 영의 귀도 어두워져서 목사님의 설교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가끔 집에서 성경을 읽는다고 합니다. 어느 수요일 밤에는 우리 교회를 나오면서 협력하는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말이오, 성경을 좀 읽다 보니 하도 우스운 것이 있더구만. 뭔 시아버지하고 며느리가 관계를 가져 아들을 낳았다니 거 참 그 무슨 해괴한 것을 기록해 놓은 건지 모르겠소. 그리고 2000여 년 전에 이스라엘에서 살았던 예수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구세주라고 하며 그걸 믿으라니, 허 참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목사양반, 어디 한 번 설명 좀 해주시오.”


  나는 주일 오후 예배 때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그런 아버지이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긍휼히 여기게 해달라고 회개기도를 했습니다. “그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인데, 그를 찾을 때까지 찾아야 해” 라고 생각하며 그가 다른 곳으로 가버렸으면 하는 마음을 품은 것을 회개했습니다. 사랑은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순종하는 마음이 있을 때 사랑의 능력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창골산 원고보내주실곳

cgsbong@hanmail.net

 

 

 필      자

 양애옥 사모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 산성교회 

 (창골산 칼럼니스트)

 ao-yang@hanmail.net

 원본보기

☞창골산☆칼럼 

글에 대한 문의는 필자께 

 

첨부이미지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yohanna | 작성시간 14.02.04 감사합니다...
  • 작성자황석산(강계원) | 작성시간 14.02.04 양애옥사모님 좋은 글 주시여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사랑리필 | 작성시간 14.02.04 아멘~감사합니다*^^*
  • 작성자높은음 | 작성시간 14.02.04 감사합니다^^
  • 작성자꼬깔모자 | 작성시간 14.02.06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