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2343호 / 사랑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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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묻는 한 율법사에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6~40)”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수없이 읽고 설교로 듣는 성도들은 머리로 잘 알고 입으로 고백은 잘 하면서도 사랑을 삶으로 살아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은 사람의 힘으로는 실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능력으로 할 수 있습니다.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모두 고개를 쳐들지 못했습니다. 나는 더욱 더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50대 중반으로서 5년 전에 목사 안수를 받고 도시에서 개척교회를 하다가 다른 목사에게 맡기고 고향집에 내려와 있습니다. 몇 년 전 홀로 사는 홀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다행히 신속하게 치료를 받아 걸으며 활동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끔 와서 어머니를 살펴보았는데 어머니가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영양실조에 걸렸습니다. 마침 혼자 사는 넷째 아들인 그가 시골로 내려와 어머니를 모시기로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젊어서부터 고집이 세고 드세어서 그는 그런 거친 어머니가 싫었습니다. 늙고 병든 어머니는 더 완고하고 고집이 세졌습니다. 몸이 안 좋으니 짜증도 자주 내고 변덕을 부렸습니다. 1년 동안은 자기 자신이 미울 정도로 어머니와 늘 티격태격 다투었습니다. 이래서 존속살인도 일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어머니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머니의 고집에도 그의 마음이 요동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사랑의 능력을 부어주신 것 같다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은 소변을 자주 봅니다. 게다가 과일금식을 했으므로 더욱 더 소변이 자주 마려웠던 모양입니다. 항암치료를 받은 집사님이 소변 관리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예배 도중에, 잠자는 도중에 종종 옷에 오줌을 쌌습니다. 환자라서 악취가 심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하러 그 방에 들어가면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코가 예민한 몇몇 권사님들은 다른 방으로 가서 잤습니다.
그 방에만 들어오면 문을 활짝 열곤 했습니다. 보건소에서 성인용 기저귀를 얻어왔습니다. 암환자인 집사님은 기저귀를 차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기저귀를 찰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금요일까지 지나고 금요일 오후에 그 집사님은 갈아입을 옷이 없다고 집에 갔습니다. 그 후에 나머지 성도들은 방문을 다 열고 온 방을 몇 번씩 걸레질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교회 내에 잘 씻지 않아 냄새가 나는 성도들에 대한 얘기가 터져 나왔습니다.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도 타인이 만들어낸 악취를 참기까지는 사랑하지 못하는 존재인 인간의 한계성에 부끄러웠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떠하셨을까, 생각했습니다. 어느 권사님 가족이 도시에서 이사 왔습니다. 이사 온 후에 몇 년 동안 교회를 쉬고 있던, 신앙이 초보인 남편이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 씻어서 아내가 성화를 대는 정도의 깔끔한 사람입니다. 한 동네에 사는 또 다른 권사님이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씻질 않습니다. 밖에서 일을 하고 손도 씻지 않고 밥을 먹습니다. 목욕도 안합니다. 게다가 변실금이 있어 변을 옷에 싸곤 합니다.
아내인 권사님은 더러운 것을 못 견디는 사람입니다. 부부가 한 방을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청결에 관한 생각이 다릅니다. 아내가 아무리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내어도 남편은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아내에게 잔소리한다고 폭언을 하고 폭행을 하곤 합니다. 이제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포기를 하고 각방을 사용하며 살고 있습니다. 두 남편들이 교회에서 한 의자에 앉습니다.
특히 겨울이 되니 악취가 심해져 깔끔한 남편은 구역질이 나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그는 악취가 심한 날에는 교회에서 점심도 먹지 않고 집으로 갑니다. 참다 참다 어느 날 그 아내 된 권사님이 악취 나는 남편의 아내 된 권사님에게 말했습니다. “권사님이 되어가지고 남편에게서 악취가 안 나게 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말을 들은 권사님은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자기 사정을 잘 알지 못하고 그런 말을 한 동료 권사님에게 서운하기도 했고, 그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없는 자기 부부의 처지가 한스럽기도 했습니다. 결국 설날에 자식들이 다 모이면 남편을 요양원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권사님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기가 죽습니다. 가장 가깝다고도 할 수 있는 남편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지 못하는 아내라서요. 물론 문제의 원인은 남편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런 남편을 사랑하지 못하는 아내의 죄책감을 씻어내 주지는 못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명령이 이해하기 어려워도 자기 속에 있는 예수님이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토요일에 집에 갔더니 내일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써레질을 하던 소가 발작이 나서 일을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집에 온 아들에게 소 대신 멍에를 메고 앞에서 써레를 끌라고 했습니다. 그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을 소로 만들어 일을 시킬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마음속에서 반발심이 불뚝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의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순종하라는 목소리가 들려와서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소처럼 멍에를 메고 써레를 끌어 12마지기의 논을 써레질했습니다. 몸이 파김치처럼 늘어졌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평안했습니다.
그는 늘 그렇게 예수를 모르는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모든 일에 순종을 했습니다. 그는 대학 교수로 있다가 50대 중반에 어떤 일에 누명을 쓰고 강제 퇴직을 당했습니다. 그 와중에 그는 신학공부를 했고 늦깎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몇 년 전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가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그의 아버지가 그를 앞에 앉힌 후 말했습니다.
내가 “봉고를 운전하시는 장로님이 아마도 캄캄해서 못 보고 지나쳤을 겁니다”라고 말했더니, 아버지는 “아니다, 그 놈이 항상 그런다. 이 늙은이를 무시하고 방자하게 그럴 수가 있어?” 하면서 노발대발하셨습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로 화만 내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화가 나서 사택에 들어와 남편에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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