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3153호 / 예수님을 보기를 원한다면 갈릴리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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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에 찾아갔다. 천사가 알려주는 말씀 속 7절에“너희 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는 말씀과“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는 말씀이 있다. 왜 갈릴리로 가셔야 했고 가라고 당부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히브리어로‘가릴’또는‘갈리라’라 하며 헬라어로는‘갈릴라이아’다. 고대 이스라엘의 최북단 지역을 일컫는 곳으로 이방의 지역으로 축약되어 부르다가 다시 이방의 갈릴리로 불렀고 지금은 단순히 갈릴리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갈릴리에 대해서 지리적 역사적 고찰을 하기보다 단어의 의미를 드러내어 영혼의 양식을 삼고자 함에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사역하신 대부분의 기록은 갈릴리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갈릴리가 아니면 사역을 하지 아니하셨을 정도다. 첫 번째 이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베푸셨고,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먼저 부르셨고 산상수훈을 교훈하신 곳도 갈릴리였다.
또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가 남은 곳도 갈릴리였다. 베드로가‘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곳도 갈릴리 지역에 있는 가이사랴 빌립보였다. 따라서 갈릴리는 예수님의 복음사역에 전초기지로 삼았다.
이 갈릴리 지역을 단순히 현상적인 지역으로 보면 안 된다. 갈릴리에는 영적으로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갈릴리의 어원은‘가랄’로서 구르다, 굴러가다, 옮기다, 흘러 내려 오다는 뜻으로 창조의 과정을 통과하는 가운데 말씀의 짐을 지고 익혀가면서 돌이 굴러가듯 굴러가면서 하나님이 근본 의도하신 그 높으신 사상이 인간 내면으로 흘러가는 곳이 갈릴리다.
첫째 날 과정에서 둘째 날 과정으로, 둘째 날 과정에서 셋째 날 과정으로, 셋째 날 과정에서 넷째 날 과정으로, 넷째 날 과정에서 다섯째 날 과정으로, 다섯째 날 과정에서 여섯째 날 과정으로 본래적으로 인간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혼돈과 공허와 무지(흑암)인 무저갱의 속성이 깨뜨려져서 소멸되어 내려가는 곳이 갈릴리다.
갈릴리 안에서 내려가는 과정을 통과한다, 건너간다, 굴러간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갈릴리처럼 굴러서 육의 속성이 깨뜨려지고 소멸되어져 죽어야 무저갱의 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갈릴리와 같이 내려가는 것을 요단강을 건너간다고 말한다. 요단강을 건너가야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다.
그러므로 첫째 날 과정에서 여섯째 날 과정 안으로 통과하는 곳이 갈릴리라는 뜻이 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을 펼쳐 나가신 것도 첫째 과정에서 여섯째 과정을 굴러가게 하신 것에 근본 의도를 두신 것이다. 따라서 첫째 과정에서 여섯째 과정 안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본체가 되신다.
성경 70권은 구구절절 그리스도 예수를 드러내 말씀하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표현이 첫째 과정에서 여섯째 과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 과정에서 여섯째 과정의 의미를 바르게 열어서 보지 못한다면 하늘의 신령한 계시는 볼 수 없게 된다. 창세기 1장 내용이 첫째 과정에서 여섯째 과정으로 성경 70권의 잣대가 되며 그리스도 예수의 본체가 된다. 이 잣대가 없으면 성경은 열리지 않는다.
갈릴리의 사역을 하는 곳이 갈릴리 바다로 바다는 히브리어로‘얌’인데 사역을 의미하는데 갈릴리 바다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야 한다. 여기서 깊은 곳이라 함은 인간 내면에 본래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무지)을 담고 있는 깊음의 무저갱으로 첫째 과정에서 여섯째 과정으로 내려가면서 무저갱을 깨뜨리는 곳이다.
그렇게 깊은 곳에서 인간내면에 깨뜨려서 소멸시키는 고난을 통과하는 갈릴리 바다의 사역이 없으면 구원은 없다. 육의 속성을 소멸시켜 나가 익히고 적용하는 훈련을 교회에서 시도하는 제자훈련을 비롯하여 각종 훈련으로 되어 질 수 없다. 기초적인 바탕이 없이 하는 모든 훈련은 백해무익이 될 수밖에
창조의 과정인 첫째 과정에서 여섯째 과정을 굴러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익히고 적용해서 완성해야 골고다에서 십자가를 지고 승리를 선언할 수 있다. 갈릴리 바다의 사역이 십자가를 지고 굴러가는 첫째 과정에서 여섯째 과정이다. 예수님께서 여섯 걸음으로 걸어가셨던 십자가의 길이 갈릴리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너희들이 첫째 과정에서 여섯째 과정을 익히고 적용하며 실천해 나가면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너희들 스스로 넘어질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시고 난후 마 26:32에‘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말씀 속에‘너희보다 먼저’가 아니다. 너희들의 얼굴들을 익히(완성되)기 위해서 첫째 과정에서 여섯째 과정의 짐을 지고 굴러가는 갈릴리로 내가 걸어갈 것이라는 말씀이다. 즉 예수님께서 먼저 솔선수범을 보이시겠다는 말씀이다.
너희들이 넷째 과정 다섯째 과정 여섯째 과정을 익히고 적용해가는 과정 속에 고난과 역경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넘어지겠으나 내가 갈릴리의 사역을 하도록 붙잡아 주어서 내 얼굴과 같은 얼굴로 바꿔지겠다는 말씀이다. 마 28:10에도‘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고 하였다.
갈릴리는 첫째 과정에서 여섯째 과정으로 말씀의 짐을 지고 익히면서 굴러간다는 뜻을 갖고 있는 장소다. 이것이 계시의 비밀이 점차로 분명하게 열려져 가는 과정으로 육신의 생각의 머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얼굴로 바꿔지는 과정이다. 멀리 계시던 그리스도 예수가 가깝게 분명하고 정확하게 현실로 한 몸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비록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부활해서 하늘나라로 올라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항상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시어 한 몸 되게 하는데 일조를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즉 창조의 과정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고 익히며 배우고 지나가게 되는 곳이 바로 갈릴리가 된다는 말씀이다. 바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곳이 갈릴리다.
그렇다고 갈릴리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교회를 뜻하거나 이름을 가진 목회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착각하지 마라. 이름을 바꾼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로 갈릴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아가는 곳이 바로 갈릴리다.
갈릴리인 첫째 과정에서 여섯째 과정으로 익히고 적용하며 실천해 육의 본래적인 속성인 혼돈, 공허, 흑암(무지)을 깨뜨려 나가도록 굴러가게 되면 첫째 과정에서 여섯째 과정의 본체이신 그리스도 예수가 이루어진 얼굴을 만나리라, 뵈오리라 는 말씀이다. 진정 예수님의 본체를 보기를 원한다면 갈릴리로 가야 한다.
그렇다고 저 멀리 이스라엘 나라에 가서 갈릴리에 가야만 예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망상이다. 성지순례는 그렇게 이스라엘로 가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밟아보는 것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지금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준행해나가는 것이 바로 성지순례라는 것을 잊지 말라.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실제적인 현상을 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의 잣대로 살던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잣대로 살아가겠다고 하는 상태가 바로 갈릴리며 성경에 나오는 모든 지역이며 사건과 장소가 되어야 한다. 환상으로 예수님을 보거나 영적인 목격을 하는 것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무지)을 담고 있는 깊음의 무저갱에서 탈출하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과하고 나면 나를 도와준 예수님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하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내세운 개신교의 잣대를 잊지 마라.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꼭 지켜주세요) 창골산 원고보내주실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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