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4594호 / 마귀를 대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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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찬 목사 영육 간에 가장 큰 대적은 마귀(δίαβολος)입니다. 마귀는 헬라어 “디아볼로스”(δίαβολος)로서 “비방하는 자, 참소하는 자, 중상하는 자, 모함하는 자, 이간질하는 자, 시험하는 자, 거짓고소 하는 자, 분쟁을 일으키는 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귀는 사람들을 자기 지배 아래 두고 죄악을 짓게 할뿐 아니라 영혼과 육체를 파멸로 이끌어 갑니다. 그는 악한 세상이 좋은 것처럼, 마치 빵점 맞은 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행동으로 학생 모두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처럼, 거짓과 이간질, 온갖 악한 것들로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마귀는 사람들을 자기 종으로 삼아 그 누구도 스스로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도록 했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12, 시 14:3),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었다”(롬 6:17, 요 8:34)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베드로전서 5:7-9을 통해 알아봅니다.
1. 염려를 다 주께 맡겨야 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권고하심)이라”(벧전5:7)는 말씀은 시55:22의 인용구입니다. 그곳을 보면, 다윗은 자신을 2인칭으로 지칭하여,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55:22)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이 사랑했던 아들 압살롬과 아히도벨의 반역 사건을 통해 깨닫게 된 내용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맡겨야 하는가?
염려를 맡겨야 합니다. 다윗은 “네 짐”(יהב, 예하브카)이라 했고, 베드로는 “염려”(μέριμναν, 메림난)라고 했습니다. “네 짐”(예하브카)이란 말은 “주다”의 뜻이 있는 동사 “야하브”(יהב)에서 파생된 명사로, “너의 몫”, “네게 주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다윗을 짓누르고 있는 “염려” 혹은 “근심”을 가리킵니다. “염려”(μέριμναν, 메림난)란 말은 “나누다”라는 의미의 “메림나”(μέριμνα)에서 유래한 단어로, 악한 자들로부터 받는 핍박뿐만 아니라 내면에 있는 여러 가지 근심, 걱정, 고민 등을 의미합니다(마6:25-34). 다시 말하면 그런 것들로 말미암아 마음이 두 개로 나눠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염려를 모두 그리스도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맡기라”는 말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맡기라”는 단어의 히브리어 “솨라크”()는 아래로 또는 멀리 “내던지다”, “세게 던지다”라는 의미이고, 헬라어 “에필흐립토”(ἐπιῤῥίπτω)는 “위에 던지다”, “던져버리다”라는 뜻입니다. 모두 멀리 혹은 높이 던져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아래로 “굴려버리다”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가능한 던지는 자로부터 멀리 혹은 높이 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본절에서는 “위에 던지다”(ἐπιῤῥίπτω), “던져버리다”의 부정 과거 분사형으로 “던져버리라”(에필흐립산테스, ἐπιῤῥίψαντες), “맡기라”는 명령형으로 사용하여 상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는 자들에게 주어진 명령으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항상 보호하시는 주님의 손에 모든 염려를 맡겨야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왜 주님께 모든 염려를 맡겨야 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을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했습니다. “돌보심(권고하심)이라”의 헬라어 “멜레이”(μέλει)는 “돌보다”, “관심을 갖다”, “관계를 갖다”라는 뜻으로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돌보심”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근심과 걱정을 맡겨야 합니다.
2. 근신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여기에서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근신하라”(Νήψατε, 넵사테)의 기본형 “넵호”(νήφω)는 “금주하다(술취하지 않다)”, “분별있다”, “지켜보다”, “자제력이 있다”라는 의미로, 경각심을 가지고 도덕적으로 건전한 삶을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깨어라”(γρηγορήσατε, 그레고레사테)는 말은 “깨어 있다”, 죽음이나 병에서 “눈을 뜨게 하다”라는 의미인 “에게이로”(ἐγείρω)에서 유래된 단어로 잠에서 깨어있는 상태뿐만 아니라 영적인 경각심을 갖도록 할 때 또는 권고나 주목을 요청할 때 사용되었습니다(마 26:40, 41; 막 13:35-37).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할 이유는 대적 마귀가 삼킬 자를 찾아다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마귀”(διάβολος, 디아볼로스)는 “거짓 비방자” 곧 “사탄”을 가리킵니다(대상 21:1; 욥1:6-12; 슥 3:1). 베드로는 “마귀”를 배고픈 사자(λεών, 레온)로 비유하여 사단의 유혹이 강력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 믿음을 굳건하게 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5:9)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믿음”(πίστις, 피스티스)이란 말은 “설득”, “신용”, “확신”, 특히 구원에 대해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굳건하게 하여”(στερεοὶ, 스테레오이)라는 말은 “굳은”, “딱딱한”, “확고한”, “꾸준한” 등의 뜻으로, “흔들리지 않는 반석 같은 단단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신뢰함으로 마귀를 대적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믿음을 굳건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반석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라는 말은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더욱 신뢰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자는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터로 삼아야 똑바로 설 수 있으며 굳건한 믿음을 통해 마귀를 강력히 대적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 장로 역시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고 했습니다. 이는 죽음이 닥쳐올지라도 그리스도만을 신뢰하고 적극적으로 끝까지 싸울 것을 의미합니다.
4. 고난을 완성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5:9)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세상”은 “사람이 사는 보편적인 우주”를 지칭합니다. “형제”(ἀδελφός, 아델포스)란 “같은 자궁을 사용한 자”라는 의미로 매우 친밀한 관계를 표현할 때 쓰는 단어이며 바울도 자주 사용한 용어입니다. 본절의 “형제들”이란 말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하늘에 속한 교회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교회공동체의 결속을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1:22),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벧전2:17),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3:8-9)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상에 있는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동일한 몫의 고난을 당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에서 “당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텔레이스다이”(ἐπιτελεῖσθαι)는 “완성하다”를 뜻하는 “에피텔레오”(ἐπιτελέω)에서 나온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아무리 굳건한 사명감으로 살아갈지라도 목적을 완성할 때까지는 계속적으로 고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목적론적으로 생각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할 때까지 동일한 고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치 아름다운 빌딩을 완성하는 데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희생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신자의 고난은 더 이상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기쁨으로 감당해야 할 필수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출처/ 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꼭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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