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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온 쉰 일곱 번째 편지
북한 땅을 떠나며 (8)
북한 동포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지하철 안에서 아들같은 중학생과 함께
고려항공이 이륙을 하자 이제야 내가 북한 땅을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긴장이 풀리며 갑자기 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던 북한 땅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왠지 모를 허탈감이 나를 짓눌러 왔습니다. 살며시 눈을 감자 8일간의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 땅을 밟자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카메라를 꺼내 공항의 이곳 저곳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비행장 주변을 찍다말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입구에 있는 안내원 여성동무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말했더니 여성동무는 환한 미소를 지우며 사진도 같이 찍어 주었습니다. 나로서는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비디오도 찍을 수 있다는 것에 그리고 모든 일정을 비디오카메라에 담을 것이라는 말에 나는 굉장히 놀랬습니다. 그만큼 북한이 개방되어져 가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환영 행사를 받은 뒤 입국수속을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내가 청바지를 입고 있기 때문에 입국이 안 될 수도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청바지는 자본주의의 산물이며 또 미제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불과 얼마전만 해도 청바지를 입고 북한 땅을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최초로 청바지를 입고 북한 땅을 활보한 사람이었나 봅니다. 이것뿐 아니었습니다. 나는 며칠 뒤 아침 산책을 한다는 핑계로 북한 인민들이 출, 퇴근하는 거리 이곳 저곳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출근하는 인민들이 한결같이 나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이른 아침에 내가 사진을 찍고 있으니까 신기해서 그런가?, 아니면 북한에서도 내 잘생긴 외모가 통하나’ 하는 망상까지도 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자 안내원 동무가 나에게 “아니, 목사님, 반바지를 입고 어디를 갔다 오셨습니까? 북한에서는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마도 북한 땅에서 반바지를 입고 다닌 사람은 목사님이 처음일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나는 착각에서 헤어 나와 북한 인민들이 나를 계속 쳐다본 이유를 알았습니다. 카드섹션을 한 나의 형제요 자매인 북한 주민들과 함께
나는 또 잠시나마 착각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6.15 행사를 안내하는 여성동무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여성동무들은 다 쌍까풀 수술을 했나 봅니다. 눈들이 똑같이 예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여성동무들이 우리들은 다 쌍까풀 수술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북한에서도 쌍까풀 수술을 합니까?’ 하고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여성동무들은 “우리들도 다 같은 여성인데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하고 도리어 나에게 반문했습니다. 내친김에 나는 “북한의 여성들은 어떤 남성들을 좋아합니까?”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 같은 분을 북한 여성들이 좋아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잠시나마 ‘아! 이 잘생긴 외모는 북한에서도 알아주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성동무들이 계속해서 “북한에서는 선생님처럼 뚱뚱하고 배 나온 남성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나는 웃으며 착각에서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북한의 남자들 중 배 나온 사람을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를 빼놓고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자유(?)를 누리면서 착각도 해보며 8일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피곤했습니다. 8일간의 여행이 긴장의 연속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잠을 자도 나도 모르게 눈이 번쩍 떠지며 ‘아! 여기가 북한이지’ 하며 깊은 잠을 자지를 못했습니다. 사실 24시간 긴장 속에서 지낸 것 같았습니다. 길거리에 걸려 있는 섬뜩한 구호들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나 봅니다. 텔레비전을 보아도 모든 것들이 사상교육의 연장으로 밖에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옆방에서는 마치 나의 목소리를 다 엿듣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습니다. 어디를 가도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감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실체를 평양에서 떠나올 때 깨달았습니다. 평양을 떠나기 위해 출국 수속을 하는데 안내원 동무가 나에게 비행기표와 여권을 주었습니다. 입국할 때 보관한다는 명목으로 가져갔던 여권을 그제야 받은 것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내가 북한에 있는 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에 잡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외국에서의 여권은 그 사람의 모든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모든 것이 되는 여권이 없었다는 것은 여권을 볼모로 내가 잡혀 있었다는 것, 그 이상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8일 동안 내 형제요, 친구였던 안내원 동무들 그리고 원호회 영접국 직원들과의 마지막 석별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다음에는 통일된 조국에서 만나자며 굳은 악수로 약속을 대신했습니다. 카드섹션을 한 나의 형제요 자매인 북한 주민들과 함께
비행기 트랙을 오르기 전에 나는 북한 땅에서의 마지막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내가 여권을 볼모로 잡혀 있었던 것처럼 잘못된 사상에 볼모로 잡혀 있는 우리 민족에게, 내가 짧은 순간 착각 했던 것처럼 김일성을 신으로 착각하고 있는 북한 동포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그리고 고려항공 앞에서 사진 한 장 카메라에 담으며 북한에서의 모든 일정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자료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대한항공과 고려항공 대기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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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동포에게하나님의사랑과은총을베풀어주옵소서-김해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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