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생활이 주는 교훈
본 문 : 신 8 : 1-6
2008/07/13주일 낮
정말 무더운 여름입니다. 모든 계절이 모두 나름대로 특성과 장점이 있지만, 사실 여름은 썩 그렇게 기다려지는 계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름이라는 계절이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여름을 통해서 겨울의 소중함도 깨닫게 되고, 가을바람의 고마움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작물들은 여름의 혹독한 태양의 시련을 잘 견디어 내야만이 가을의 아름다운 결실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름이면 교회들도 수련회를 마련하여 무덥고 힘든 여름의 고난을 수련을 위한 기회로 삼으려 하는 것이죠. 우리 교회도 ㅇㅇ일부터 여름성경학교를 개최하게 됩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한 지 ㅇㅇ여년이 지났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기억나는 사건들은 거의 여름행사들과 많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ㅇㅇ여 년 전 ㅇㅇ에서 전도사로 일할 때 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중고등부를 데리고 ㅇㅇ에 위치한 ㅇㅇ교회에서 수련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둘째 날 교회에서 약 2km 정도 떨어진 지리산 계곡으로 물놀이를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발대를 이끌고 승합차를 타고 먼저 산으로 갔고, 뒤이어서 학생들은 인솔하는 교사들을 따라서 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발대를 데려다 주고 내려와 보니 교회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길을 잘못 찾아간 것입니다. 그날따라 유난히 날씨가 맑고 햇볕은 강하게 내려 쬡니다. 갔을만한 가까운 곳을 찾아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장 집사님과 몇몇 교사와 함께 다시 이들을 찾으러 돌아다닌 끝에 겨우 1시간 30분이 지난 뒤에야 길 잃은 미아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지치고 쓰러지고 넘어져서 마치 전쟁에서 패전한 패잔병 같았습니다. 이러다간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이때 마침 강렬한 태양은 사라지고 하늘에선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비를 맞으며 다시금 원래의 장소로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만일 그날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상당수의 학생들이 일사병으로 혹은 지쳐서 쓰려졌을 것입니다. 정상적으로 갔더라면 길어야 40분이면 충분했을 거리인데 약 3시간을 소요해서야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참으로 힘들고 피곤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학생과 교사 모두는 서로 간에 말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고난을 통해서 오히려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또한 너무나 힘이 들까봐서 강렬한 태양을 식혀줄 소나기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영원히 기억될 값진 수련회를 만들어주셨다는 깨달음을 같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내시어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신 후에야 가나안에 입성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습니다.
그날 오후의 물놀이는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맑은 물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를 감탄하고, 돌 사이를 헤집고 돌아가는 물살의 부서지는 소리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물놀이를 마치고 내려오는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웠습니다. 훈련과 연단을 통하여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의도를 깨달았기에 그날의 행사는 더욱 값진 것이 되었고 여름이 되면 지금도 가끔 그 때의 일들이 생각이 납니다.
여러분! 모름지기 사람이란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40편 20절의 말씀을 보면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진정으로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가난도 아니요 질병도 아닙니다. 전쟁도 아니요 재난도 아닙니다. 문제는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이 없을 때 인간은 비인간화되고 본질을 상실하므로 불행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깨달음을 쉽게 흘려버립니다. 여기에 불행이 있습니다. 우리는 문득 문득 소중한 것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엄청난 값을 치르고 나서야 깨닫기도 합니다. 큰 질병, 큰 실패, 큰 고난, 큰 재난을 만난 후에야 “아! 이것이구나” 하고 문득 참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깨달은 바를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 소중한 것을 안타깝게도 망각해 버립니다.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고난을 당합니다.
IMF라는 크나큰 고난을 겪은 지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제 2의 IMF를 겪을지 모를 경제 위기를 자초하고 있습니다. 물론 고유가라는 세계적인 위험요소가 있긴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우리들 스스로가 방만하고 흥청거린데 그 원인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일제에 의해서 40여년을 강점당하고도, 오늘날 우리의 방송이나 서적이나 게임이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문화적 환경에서 일본 따라 하기를 경쟁이라도 하듯이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세상이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우리는 무언가 바뀌어야 하고 새로워 져야 한다고는 제각기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행동하지 못하고 무작정 주저앉아 있습니다. 알면서도 돌이키지 못하고 내처 그 길로 가야 하는 데에 불행의 원인이 있는 것이죠. 굶어 죽는 것이 아니라 썩어죽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 마음을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그 소원의 간절함을 짐작하시겠습니까? 마치 부모가 속 썩이는 자식한테 “제발 나의 이 마음을 알아다오!”하고 간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습니다. 구원하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40년을 광야에 있게 하십니다. 이 광야 생활에 이스라엘 민족들은 불만이 많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지난날에 받은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으로 저들을 구해낼 때의 이야기, 홍해를 육지인양 건널 때의 감격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지난날에 받은 은혜도 오늘 주시는 은혜도 까맣게 잊어버렸기 때문에 당찮게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저 약속의 땅 가나안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책임지고 너희를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줄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가라” 그런데도 이스라엘 민족은 그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립니다. 믿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각본이 있습니다. 오랜 전입니다만, 언젠가 TV에서 방영되는 판관 포청천이라는 드라마가 상당히 인기를 끈 적이 있습니다. 그 드라마는 한마디로 분명하고 명료했습니다. 죄를 진자는 어김없이 포청천에 의해서 개작두에 목배임을 당하거나 벌을 받고, 억울한 누명을 쓴 자는 누명을 벗게 됩니다. 드라마의 구성은 별로 치밀하지도 않고, 스토리의 전개도 조금은 치졸합니다. 배역도 단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선징악의 분명한 주제를 담고 있어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원하게 하기 때문에 인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각본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각본은 분명하고 명료하기 때문에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믿음 안에서 오늘을 최선을 다해서 살 따름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하나님의 각본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데도 어찌하여 길이 막히고 고달프단 말인가? 그들은 하나님께 책임을 도리며 원망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기약이 없는 광야의 생활은 40년이나 계속됩니다. 저들은 초조했습니다. 저들은 조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시간표, 그 스케줄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그 코스가, 그 광야의 도정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원망했습니다.
더욱이 저들은 하루빨리 정착하여 농사를 직고 싶었습니다. 양도 치고 싶었습니다. 집고 짓고 성도 쌓고 왕궁도 세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한마디로 NO 하셨습니다. 그 40년 동안은 일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고 양도 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공부하고 훈련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광야 40년의 세월은 훈련의 기간이요 연단의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용할 양식 만나만 먹으면서 단조롭더라도 광야에서 훈련하라고 하십니다. 전적으로 훈련받기를 원하십니다.
그 훈련의 교과 과정은 우리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돈 벌고 잘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라. 이것이 문제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질이 우선이 아닙니다. 지식이 우선이 아닙니다. 출세가 우선이 아닙니다. 요즈음 보도를 통해보면 해외여행이 무척 자유로워져서 많은 분들이 해외여행을 하는데 가끔씩 교양 없는 우리나라 분들 때문에 참으로 창피한 경우가 보도되기도 합니다. 돈푼깨나 벌어서 어쩌다 비행기는 탔지만 그 사람됨이야 어찌하겠습니까? 돈이 많건 적건, 공부를 많이 했건 적게 했건 그것과 사람됨과는 이상하게도 전혀 별개입니다. 인격과 교양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야 합니다. 많이 배우고, 높은 지위를 얻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부자가 되고 등등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먼저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우선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건을 가르치고 가치관을 심어주고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는 일이 우선적이었습니다. 깨달음이 있는 인간, 깨달음을 따라 사는 인간을 만들려 하신 것입니다.
애굽에서 가나안 까지는 그리 머나먼 거리가 아닙니다. 보통사람의 걸음으로도 2주일이면 다다를 수 있는 거리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요단강까지 갔었습니다. 그런데 정탐을 나갔던 열두 사람 중 두 사람만이 믿음으로 살피고 와서 백성을 격려했습니다. 불신앙적으로 살핀 사람들은 겁에 질린 보고를 합니다.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 (민 13 : 32-33)
백성들이 그들의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심하게 동요합니다. 이제는 망했다며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몰아 붙입니다. 당장에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야단를 피웁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십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너희는 자격 미달이다. 요단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자격이 너희에게는 아직 없다. 그러니 더 많이 훈련을 받아야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광야로 되돌리셨습니다.
광야 40년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주행코스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과정에서 참된 출애굽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물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그들은 분명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정신, 그 문화, 그 사상, 그 도덕, 그 종교 면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도 애굽에 살고 있었습니다. 한때는 하나님께 감사했지만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모세가 잠깐 보이지 않는다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지를 않나 그들의 행위는 틀림없이 이방사람이요, 애굽적이요, 타락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출애굽 하는 데에는 무려 40년이나 걸립니다. 이점을 분명히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도 스스로를 잘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아직도 이방적이요, 아직도 불신앙적이요, 아직도 우리 속에 버려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내가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버리십니다. 내가 잘라버리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자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구체적인 출애굽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깨달은 바를 지키게 하시고, 깨달은 바를 바로 행하게 하십니다. 깨닫기는 했으나 행함이 없습니까? 행할 수 있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의 말씀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이르는 과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교과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험하시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시고 겸손하게 만드셨습니다. 모든 사건을 통하여 겸손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일깨워 주십니다. 시험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말씀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하고 근본이 되는 유일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처한 상황이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듯 척박하고 힘들고 고달프다고 생각되십니까? 하나님께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받아들이십시오. 내게 꼭 필요한 사건이요 꼭 필요한 연단인줄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견디어 내십시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반드시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결단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광야 40년의 훈련기간을 잘 견디고 이겨냄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진정으로 차지하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