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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함에 대한 하나님의 사람의 생각 차이

작성자봉서방|작성시간11.04.23|조회수274 목록 댓글 0

 약함에 대한 하나님의 사람의 생각 차이
1. 약함에 대한 정의
1. 약함의 원어적 정의
힘없는, 허약한, 무력한, 불완전한, 효과 없는, 연약한, 아픈, 무력한, 미심쩍어하는, 주저하는, 괴로워하는, 고뇌에 지친, 재난에 짖눌린.

2. 구약적 정의 - 레위기적 개념
구약의 연약함 이란 단어는 제사장들이 드리는 제물과 연관되어있다.
연약함은 주로 신체적인 부분에 흠집이 있다는 것이다. 한 남자 혹은 동물이 가지고 있는 결점 내지는 결함을 의미함.

한 남자가 몸에 흠집이 있으면 그가 비록 아론의 혈통을 따른 제사장의 명분을 지녔을지라도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의 흠집(연약함) 때문에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전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레21;16-24)

이와 같이 희생제물은 “아무점이나 흠이 없는” 것이어야만 했다. 레위기 말씀 중 여러 군데에서 흠이 있는 짐승은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다는 것을 명백히 말씀하셨다.

:신체적 결함이 있는 레위인은 제사장이 되지 못하였고, 신체적인 결함이 있는 짐승은 제물로 드리지 못하였다. 신체적으로 완전한 제사장과 결함이 없는 제물을 드릴 때 그것이 온전한 제사가 될 수 있었다. 약함은 곧 결함이고 부족함이며 약점이었다.

3. 신약적 정의
히4;15절에서는 “우리에게는 우리 연약함을 동정(이해)하시는 대제사장이 계시다” 로 긍정 해석함. 신약의 연약함이란 단어는 상징적인 뜻으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상징 곧 은유라는 말이다. 신약에서의 연약함은 대개 강함을 뜻하는 스테노스의 부정형으로 사용되었다. 어떤 단어 앞에 ‘a' 가 붙으면 부정형이 된다. 강함이라는 단어의 스테노스(sthenos) 앞에 ’a' 를 붙이면 연약함이란 단어의 어원인 아스테니아 (astheneia)가 되는데“ 힘이 부족함, 강하지 못함, 나약함, 연약함, 불구라는 뜻이 된다.

신약에서는 그 단어가 순전히 신체적 의미로만 사용될 수 없다.
반대로 그것은 정신적, 도덕적, 정서적인 연약함을 포괄한다. 즉 그러한 면에서 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지칭한다.

연약함 그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죄의 유혹을 물리치는 힘이 약화되는 것은 사실이다.

신약에서의 연약함이란 우리 마음이 죄를 향하여 끌리는 성품을 말한다. 그것은 우리 편에서 의식적으로 의도함이 없이도 죄의 유혹에 빠질 수 있음을 말한다.

4. 약함과 강함에 따른 사람의 분류
1)강한 사람 2)약한 사람 3)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4)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5)강하게 보이는 사람 6)약하게 보이는 사람

Ⅱ. 성경에서 말하는 약함의 종류
1. 정치적 약함
삼하3;1-39         다윗의 집은 점점 강하여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다윗과 사울의 경쟁관계는 정치와 권력에 대한 것.
삿16;7-22         이스라엘의 사사 삼손. 머리 잘린 후의 약하게 된 삼손의 모습.
                   삼손의 힘은 곧 블레셋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치적 힘이었다.

2. 육체적 약함-사도 바울의 육체의 가시에 관함.              
고후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후12;9-10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 이는 내가 약할 그 때                에 곧 강함이니라

3. 인격적인 약함
대상29;1        내 아들 솔로몬이 홀로 하나님의 택하신바 되었으나 오히려 어리고 연약                하고 이 역사는 크도다 이 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4. 영적인 약함
롬8;26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고전 1;27         하나님께서 --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                시며
고전8;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고전 9;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고후11;29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라.

5. 약한 자의 자세
수14;10-14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함
롬6;19                 연약한 육신을 의의 종으로 드려 거룩해져야 함
고후12;10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을 기뻐해야 함
히4;15-16         그리스도께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담대하게 나아가야 함

6. 약한 자에 대한 성도의 태도
1) 행20;35, 고전9;22 그들을 도와 수고를 해야 함
2) 롬15;1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함
3) 약한 자를 도와주어야 함
   마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4) 고전9;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5)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아야 함.
   고전 8;9-11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6)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1;25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고전 15;43)

Ⅲ. 약함이 드러나는 현상들
사단의 치명적 무기가 될 수 있다.
사단은영에 속한 존재이므로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있다.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우리를 대적하는 수단으로서 그것을 악용한다. 사단은 영리한 꾀와 묘안과 전략과 계획을 사용한다. 사단은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실망과 낙망과 실수와 포기를 하게끔 우리의 약점을 들추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1. 낮은 자존감
사단의 병기고에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의 일부는 심리적인 무기이다. 두려움이 하나이고 의심 분노 악심, 걱정 그리고 죄책감도 물론 해당. 죄책감은 자신이 스스로를 정죄하는 마음이다. 이것을 낮은 자존감(low-self-esteem)이라고 부른다. 사단의 가장 무서운 심리적 무기는 열등감과 부족하게 느끼는 것과 자신의 가치를 무시당하는 감정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말씀과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감정들에 속박되어 있다.
1) 낮은 자존감은 당신의 잠재력을 마비시킨다.
열등감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은사와 인간의 가능성과 능력이 새어나간다. 낮은 자존감은 당신의 잠재력을 마비시킨다.
우울증의 원인 10가지
낭만적인 사랑이 결핍된 결혼생활/시댁이나 처갓집 식구와의 갈등/낮은 자존감/자녀들과의 문제/경제적 어려움/고독감, 격리감, 지루함/성생활의 문제/건강문제/피로감과 시간에 쫓기는 것/나이를 먹는 것/
2) 낮은 자존감은 당신의 꿈(이상)을 파괴시킨다.
여호수아 갈렙-10명의 정탐꾼. 우리는 메뚜기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3) 낮은 자존감은 당신의 대인관계를 해친다.
우리는 우리자신에 대한 올바르고 건건한 생각을 가질 때만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나누어줄 수 있다.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낮은 자존감은 항상 다른 사람에게 당신을 의존하도록 만든다. 이런 사람과 함께 있는 사람은 늘 피곤한다. 늘 돌보아주어야 하고 늘 보살펴주어야 하고 늘 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 가든지 항상 피해의식을 가져서 그곳과 사물을 부정적으로 본다. (밥 먹을 때 김윤자)
4) 낮은 자존감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역을 방해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을 통하여 그의 능력을 나타내신다. 그러나 낮은 자존감 때문이 그것이 유실되는 것이다. 바울사도는 그러므로 나의 여러 가지 약한 것들에 대해 자랑하리니 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 약함이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나타낼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제공해드리고 때문이다. (고후 12;9-10) 하나님께 기회를 드려보지도 않고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잘못이다.

2. 완전주의
지나친 완전주의자가 되어 버린다. 그의 내적 감정은 완전주의를 표상하며 모든 일에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지나친 완전주의는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생활하는데 얼마나 많은 패배감을 경험하게 하는가? 지나친 완전주의의 내면에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담이 쌓여있다. 그는 연약함을 곧 패배자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만족함을 느낄 수 없다. 여전히 부족한 것이다. 그리고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며 그것이 되지 않았을 때 분노가 폭발한다.
◆ 완전주의 증상들
그리스도인들을 완전케 하는 것과 완전주의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완전주의는 그리스도인들이 완전케 되고 거룩하게 되며 성화되거나 혹은 성령충만의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모조품이다. 이는 영적 바리새인이나 혹은 정서적인 신경 쇠약자를 만들어버린다.
1) 꼭 해야 한다는 무서움 압박감
자유함이 없다. 완전주의자가 좋아하는 세 가지 구절.
나는 좀 더 잘해야 되, 나는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나는 좀 더 잘할 수 있어야 해.
할 수 있어야 해, 꼭 했어야 했어, 그렇게 했어야 해.
이 사람은 모든 일에 좀 더 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항상 만족할 만큼 잘하지 못했다는 압박감.
2) 자기 자신을 멸시하는 것.
완전주의와 낮은 자존감은 일맥상통한다. 자기 자신이나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을 멸시하는 감정에 사로잡혀있다.
3) 두려움
두려움-가장 큰 두려움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4) 죄책감 은혜
지금의 이 시대는 용서받지 못한 사람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죄책감과 분노로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러 형태의 정서적 갈등을 내적으로 경험하면서 내면의 감옥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란 용서하는 것과 은혜를 베푸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존재하도록 만들어졌다. 우리는 은혜와 사랑과 용납을 경험하도록 만들어졌다.
데이빗 벨굼 박사는 현제 신체적 질병으로 입원한 사람 중에 75%가 정서적 문제 때문에 병이 생겼다고 한다.
5) 율법주의
완전주의자들의 과민한 양심과 철저한 죄책감 밑는 보통 아주 세심한 행동과 율법주의가 깔려 있다. 율법주의란 외적인 것들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들과 규칙들 그리고 제한된 법칙들을 융통성 없이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매우 예민하다. 그는 자기 자신을 용납할 수 없고 하나님이 자신을 받아주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인정받는 것을 절실하게 요구한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는다.
6) 분노
완전주의자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분노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꼭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적개심.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대한 적개심. 가장 심각한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반발하는 적개심을 가지게 된다. 인간의 아픈 상처는 고통과 분노를 유발시킨다. 이것들은 대인관계와 우리의 사고와 감정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 영향력은 다른 사람을 보는 태도나 자신을 바라보는 자아상에 영향을 미친다.
치유함-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오직 성령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의 상처들과 혼동된 상태들을 고치시도록 맡겨야 한다.

7) 교만
교만은 모든 삶의 영역을 휘젓고 다닌다. 특히 중요한 관계들에게 치명적인 역할을 한다. 중요한 관계들이란 하나님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자존감), 타인과의 관계(무모 배우자 친구 등으로 부터의 안전감 만족감)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성공과 지위)를 말한다. 인생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완벽한 행위를 보여줄 수 있느냐 없는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만한 자기의뢰는 은혜와는 정 반대 개념이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거저 주시는 것이다.
◆ 문제 해결의 방법
1.문제를 똑 바로 직시하라
2.어떤 문제이든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자신의 책임을 시인하기 전까지는 당신의 손상된 감정은 치유되지 못한다.
3. 고침을 받기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요한복음5장에서 38년 된 병자에게 예수님이 낫기를 원하는지 물어보셨다.
그러나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는 것을 말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병 낫기를 원하는지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 보려고 하지 않았다.
4.문제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라
자신이 책임이 있다는 것과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곧 책임을 자신에게서 발견한다는 것이다.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일의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것이다.
5.자기 자신을 용서하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은 자신을 용서하기 바라지만 자신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은 모순이다.
6.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간 또한 그것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해야할 것인가를 성령님께 구하라
바울사도는 우리가 마땅히 구할 바를 알지 못하는 때가 많다고 하였다.(롬8;26) 이때 성령께서 도와주신다. 구하여야 한다. 또한 약4;3에서는 우리가 잘못된 것을 위하여 구하기 때문에 받지 못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이 고치신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돕다라는 뜻은 의학적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는 고침을 받는 과정에서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아준다는 의미이다. 성령께서 동반자와 상담자가 되시어 이일에 동참하시고 일하신다는 의미.
◆ 완전주의의 치유
완전주의로 부터의 궁극치유는 오직 한 가지 뿐이다. 그것은 은혜이다. 은혜라는 말은 헬라어의 카리스란 어원에서 온 말로 우미 우아 친절 호의란 뜻이다. 그러나 신약에서 주는 의미는 다르다. 공짜로 주어진, 과분한, 공 없이 얻은, 일해서 얻을 수 없는, 그리고 갚을 수 없는 호의란 뜻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시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가치가 있고 없는 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우리가 귀한 것은 그것을 받아주신 십자가로 인하여 귀하게 된 것이다. 치유는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꼭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은혜로서 한 인격체로 아무 조건 없이 받아주신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마음속의 치유는 일어난다.

Ⅸ. 사도바울이 약함을 극복하는 방법
1  고후 11;30주를 위해 약한 것을 자랑함2  고후 12;5자기를 이해서는 약한 것 외에는 자랑치 않음3  고후 12;7-9약한 것을 통해 자신이 자고하지 않도록 힘씀4  고후 12;8약한 것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함5  고후 12;9-10자신의 약한 것으로 인해 주안에서 기뻐함 6  고후 12;9-10약한 중에도 자족함을 배움7  고후 12;10약할 때에 주안에서 강하여짐을 배움

Ⅴ. 사도바울의 자기 고백들
1  고전 9;16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 임이라2  고전 9;18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내게 있는 권세를 다 쓰지 아니하였노라3  고전 9;19내가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노라4  고전 15;9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5  고전 15;10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6  고전 15;31주안에서 --- 나는 날마다 죽노라7  고후 11;30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노라 8  고후 12;5나를 위해서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노라9  고후 12;7내 육체의 가시는 나를 너무 자고하지 않게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10  고후 12;10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할 그 때에 강하여지노라


Ⅵ. 약함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
1.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함을 믿어야 한다
전도의 어리석음. 어리석은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

2. 하나님은 강한 자를 싫어하신다.
강한 자는 교만하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많은 민족 중에 가장 약한 민족인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 인간은 끊임없이 강해지려고하는 욕망을 가진 존재이다. 자신의 약함과 무능을 견디지 못한다. 세상 또한 강한 자와 똑똑한 자를 찾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하고 무능한 자를찾으신다. 그리고 그들을 높여 세상을 무능하게 만드신다. 하나님은 또한 강한 자를 싫어하신다. 강한 자는 교만하다. 강한 자에게는 하나님을 의지할 자리가 없다.

3. 연약함 가운데 더 강하게 됨을 믿어야 한다.
고후12;9-10 약한 것을 강하게 하시는 은혜
고후13;3-4 하나님의 권능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히11;33-34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는 믿음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9-10)


5. 하나님 앞에서 고백된 약점은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자랑은 고백된 약점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진리를 깨달았으므로 이제는 자신의 약함만을 자랑하게다는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자랑만이 그리스도인들의 유일한 자랑이 되는 것이다.
약함을 해결하지 못하고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약함을 고백하지 못한다. 약함을 고백하는 사람은 이미 그 약함에서 자유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자유함을 입은 사람을 쓰신다. 그러나 자유함을 입은 이사람은 늘 자신의 약함을 고백하는 사람이다. 나에게 고백되어진 약점이 있는가?
인간은 연약함을 무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연약할수록 하나님의 더욱 큰 사랑을 받는다.(내가 연약할 수 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6. 하나님 앞에서 고백된 약점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는 자리이다.
자신의 약함을 고백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머물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그런데 바울이 자기의 약함을 자랑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항상 자기에게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본문에서의 머물다는 표현은 장막에 머문다는 에피스케노세라는 동사와 전치사 에피가 결합한 합성동사로서 본동사의 의미가 더욱 강조되어 장막을 펴고 확고 부동하게 머문다는 의미를 가지는데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는 바울의 철저한 태도를 엿보는 대목이다. 바울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본인의 자리를 곧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 수 있는 장소를 자신의 약함에게 찾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겪은 온갖 박해, 모욕, 고난, 등이 그리스도를 위한 희생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기뻐한다고 고백하였다.

7.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참된 승리자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지 않은 인간은 영원한 패배자로 머물 수 밖에 없다.
바울은 진정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에 참된 승리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께 가까이가면 갈수록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자신의 약함을 발견할 수 밖에 없다.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수많은 먼지가 떠 다니는 것을 본다. 또한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본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 강하게 많이 체험한 사람은 그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약함과 죄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은혜임을 안다. 인간들 앞에서 자신의 약함이 밝혀지는 것은 수치와 창피한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나약함과 연약함은 그것 자체가 곧 은혜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말년의 고백이 있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니라”. 결코 겸손이 아니다. 겸손이 아니라 이것은 발견이다. 체험이다. 고백이다.

8. 자신의 약점을 고백하며 인정하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약할 때 강함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약함은 곧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장소이다. 은혜를 체험한 사람 한없이 부드럽다. 그러나 세상에 이 사람보다 더 강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그 심령으로부터 인간의 강함이 흘러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강함이 아니라 곧 약함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인간의 강함이 곧 인간의 연약함이다. 끊임없이 강해지려는 인간. 강한인간은 교만한 인간이다. 인간은 강함을 추구하지만 하나님은 그 인간을 향해 약함을 깨우친다.
하나님 앞에서 연약함을 깨닫는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이다.
연약함을 아는 인간이 자신을 낮출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물과 같다. 물은 조금이라도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된다. 연약함은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물줄기와 같다.

9. 십자가는 인간의 약함과 무능함의 절정이다.
그러나 십자가만이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의 상징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당시의 상황에서는 무능함과 연약함의 상징이다.
십자가는 공개처형의 방법. 중범자를 공개적으로 매달아 죽이거나, 이미 죽은 자라면 그의 시체를 매달아 모독하기 위한 형틀. 십자가는 죽기까지 낮아지신 그리스도의 고난과 사랑과 구원을 상징한다.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현현이다. 순종과 구속을 완성하신 것. 순종은 자신이 연약하고자신을 낮춘 사람에게만 가능한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이다. 그래서 십자가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유대인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10. 인간은 약한데서 온전하여진다.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은 인간의 약함을 통하여 비로소 완전해진다는 말씀. 인간이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상태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발현되기에 가장 좋은 때이다. 인간의 약함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에 저항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느끼고 발휘하게 한다. 자신이 강하다는 것은 곧 자신을 속이는 것이요 하나님의 권능을 거부하는 처사이다. 이런 점에서 바울의 대적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은 바울과는 달리 강하였으며 부유하고 풍요로왔고 모든 성도들의 존경을 받던 까닭에 그만큼 교만해 있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치유받지 못했지만 인간이 약해질때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난다는 위대한 진리를 깨닫고서 크게 기뻐하였다.
바울은 많은 일을 한 사람이다. 참으로 강하고 능력있는 자로 설 수 있는 사람이다. 만약 그가 약하지 않았다면 그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너무나 큰 사람이었기에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의 업적 뒤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약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 약함 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전할 수 있었다.
약함의 반대말은 온전함. 강함이 아니다.
인간의 온전하지 못한 모습(죄악된 모습)들-충돌 경쟁 시기 미움 원망 불신 소유 상처
온전한 인간의 모습 - 감사 기쁨 사랑 소망 믿음 신뢰 나눔 치유

이와같이 성령께서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마땅할지 모르나 성령께서 ---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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