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쇠퇴
[삼하9:1-10:19]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6)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서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대답하되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7)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8)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9)왕이 사울의 사환 시바를 불러서 이르되 사울과 그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10)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저를 위하여 밭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을 공궤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이요 종이 스물이라 (12)므비보셋에게 젊은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무릇 시바의 집에 거하는 자들은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13)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
9,10장은 특별한 내용은 없지만 다윗과 관계성 맺는 것이 다르다.
9장은 다윗과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과의 관계로서
다윗은 요나단과 맺은 약속을 잊지 않고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다.
10장은 다윗과 암몬과의 관계로서 다시 전쟁을 하게 된다.
이 전쟁은 11장에 밧세바 사건을 위한 전초전이 된다.
폭풍이 일어나기 전의 푹풍 전야라고 보아야 한다.
본문을 보면서 우리는 다윗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다윗의 쇠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윗은 점점 강성해지면서 다윗성에 법궤를 돌아오게 하고 하나님에게 언약을 받으면서
정점을 이루고 이제 쇠퇴되어 감을 보아야 한다.
*다윗은 자신을 전혀 모르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있다.
그는 이방 왕과 같은 의식을 ㅂ리지 못하고 있으므로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왕통이 이어지는 것을 보고 우리는 감사한다.
8장 까지는 다윗의 공적인 일을 보이고 있으며
9,10장은 다윗의 사적인 일을 보이고 있다.
사적인 일을 보이면서 하나님이 전혀 반응 하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밧세바 사건이 나타날 때도 직접 나서지 않고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처리하게 된다.
하나님은 쇠퇴곡선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고 침묵하신다.
우리가 승승장구 할 때는 깊은 교제와 교통이 있으면서 기도하고 응답받고 하는데
쇠퇴기를 맞으면 삼자를 통해서 지적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때는 자신이 하향곡선임을 깨닫고 돌이켜야 한다.
쇠퇴기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다윗을 내어버려두신 것은 아니고 다 지켜보고 계신다.
그리고 당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삼자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다.
9장은 다윗과 므비보셋과의 관계이고
10장은 다윗과 암몬과의 관계이다.
9,10장은 다윗이 모두 선을 베풀지만 반응하는 것이 다름을 보인다.
9장은 약속이 있는 자에게 선을 베풀고 10장은 약속이 없는 자에게 선을 베푼다.
*다윗은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자가 아니다.
삼하8장을 보면 다윗은 이스라엘, 내 가족, 내 백성 외에는 잔혹할 정도로 가혹하다.
자기에게 잘한 자에게는 잘해주고 자기에게 못해준 자에게는 못한다.
이를 통해 다윗은 인간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내 울타리 안의 사람은 내 가족으로 나의 책임이며 나의 의무이기에 잘한다.
-므비보셋이라는 이름의 어원--
사울의 넷째 아들은 이스보셋이다.
요나단은 그 이름을 싫어해서 아들 이름을 므비보셋이라고 지었다.
[대상8:33]사울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을 낳았으며
-에스바알이라는 이름은 ‘바알의 사람’ 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이 후대에 이스보셋이 되는데 이 뜻은 ‘부끄러운 사람’ 이라는 뜻이다.
[대상8:34]요나단의 아들은 므립바알이라 므립바알이 미가를 낳았고
--므립바알은 ‘바알을 대적하는 자’가 된다.
후에 ‘므비보셋’으로 바뀌는데 이 뜻은 ’부끄러움을 해치는 자‘가 된다.
<9장을 봅니다.>
다윗과 므비보셋과의 관계는 다윗과 요나단의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아주 잘한 것이다.
약속하고 후손 돌보는 것은 옳은 것이다.
다윗은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정치적인 술수와 타협정책을 쓰면서 고생을 많이 하지만 요나단
자손에게는 진실했다,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왕을 제거하는 혁명을 일으키면 그 왕족은 모두
죽이게 된다, 왕족을 살리면 반란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손인 므비보셋은 다윗을 보고 두려워한다.
다윗은 그를 죽이지 않고 너에게 약속 지키러 왔다고 한다,[7절]
--이렇게 요나단에게 진실했던 다윗이지만 그의 선대도 한계가 있다--
삼하16장을 보면 압살롬의 반역 때 므비보셋의 사환 시바가 주인을 속이고 거짓을 아뢰므로 모함하는데 다윗은 그 말을 믿고 므비보셋의 재산을 시바에게 주게 된다.
[삼하16:1-4]그러나 죽이지는 않지만 거리를 멀리 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선대는 나에게 잘했을 때 잘하는 것이다.
자기가 하나님의 마음과 자비심을 가지고 베푸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자비가 얼마나 허망한가를 보게 된다.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자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
[불의한 청지기를 기억해서 모든 자에게 선을 베풀면 저들이 악으로 대하는 것을 드물다,
선을 베풀면 어떤 상황에서 나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세월의 여상함을 보게 된다[8절]
므비보셋이 ‘죽은 개 같은 자’라고 자기를 낮추며 표현하는데 과거 다윗이 한 말이다.
[삼상24:14]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과거 다윗이 사울 에게 쫓길 때 사울에게 한 말이다.
내가 한 일이 언제 당할지 모르니 권세가 있고 힘이 있을 때 그것을 악용하지 말고 자기를
위해서 쓰지 말라. 내가 힘이 있고 무엇을 할 수 있을 때 힘과 권세 없는 자에게 자기의 힘으로 압박하고 괴롭히지 말라. 반드시 되갚은 받게 된다.
*12절의 ‘미가’라는 아들이 있음을 왜 말하는가?
사울 집안은 모두 망하게 되는데 선을 베풀며 살았던 요나단의 집안은
대를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윗의 전성기는 삼하 7장12-16절 까지 이다.
[삼하7:14-15]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다윗집안과 영원한 언약 맺는 것으로 정점을 이루게 된다.
이후로는 잘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쇠퇴기임을 알아야 한다.
<10장을 봅니다>
자존심을 가지고 다윗의 사절단에게 수염을 자르고 중동 볼기를 드러낸다.
[삼하10:4]다윗의 신복들을 잡아 그 수염 절반을 깍고 그 의복의 중동 볼기까지 자르고
돌려 보내매
--유대인은 율법에 수염 자르지 못하게 하였으며 수염 자르는 것은 커다란 수치이며
부끄러움이다.
*다윗은 암몬이 무리수를 쓰니 용서하지 않고 전쟁을 한다.
[삼하 10:19]하닷에셀에게 속한 왕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함을 보고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섬기니 이러므로 아람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다시는 암몬 자손을 돕지 아니하니라
--암몬을 돕던 나라들이 다윗의 세력에 모두 물러나 도와주지 않는다.
계산이 안되어 싸울 수 없을 때는 자존심은 다음에 처리하고 화친해야 한다.
[눅14:31-32]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고집부리고 자존심만 내세우면 다음에는 화친도 안되고 망한다.
지금 암몬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감정대로 하여서는 안되고 [비록 참기 힘든 것이지만]다음을 기약하며
지금 머리 숙이고 참아야 한다.
*아브라함의 약속 성취
다윗 삶의 여정을 보면 목동인 자가 하나님의 선택 받고 세상에서 모든 것을 받고 누린다.
그리고 후대의 약속 까지 받게 되지만 다윗은 만족하지 않고 더 추구한다.
9,10장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창15장에 약속한 가나안의 경계선 까지 상징적으로 나마
지배하게 된다.
삼하1-10장까지 다윗의 사역인데 11장에는 사생활을 통해서 인간의 죄 성을 드러낸다.
다윗이 공적인 사역을 할 때는 항상 하나님이 은혜 베풀고 이기게 했다는 내용이 따르는데
11장부터는 이런 말이 없이 범죄와 징계와 다윗이 사단에게 충동받고 인구 조사도 한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어떤 인물도 올바른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손길 없이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이곳에서 다윗의 승승장구만을 보아서는 안된다.
다윗을 선택하고 그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는 의도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다윗이 다윗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된다는 것을 말한다.
다윗을 포함한 모든 죄는 아담과 하와의 죄의 결과이다.
사울의 때와 다른 점은 치명적인 죄를 짓지만 약속의 자녀에게는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다.
사울은 하나님에게만 죄를 짓지 사람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
다윗은 하나님에게와 사람에게 모두 해를 끼치며 죄를 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울은 즉각 정리를 하고 다윗은 기다리며 기회를
주시다가 마지막에 그를 돌이키게 해서 그 집안을 일으켜 세우신다.
약속이 있는 다윗은 쇠퇴의 시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자이다.
그는 버림받지 않고 매를 맞는다는 약속이 있는데 우리에게도 동일하다.
*약속의 자녀를 징계하시는 하나님
인간이 보기에 아주 추악한 죄를 지었지만 징계의 맞대기는 있을지언정 버림받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를 맞고 잘 할래, 매를 맞지 않고 잘 할래 하신다.
그러나 속상하게 하면 버린다는 것은 없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다윗에게 했던 약속이 우리에게도 있음을 알아 잘한다고 교만하지 말고 못한다고 좌절하지 말고 회개하여서 돌이키면 된다.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면 우리는 모두 무너지니 하나님 앞에 바른 길로, 정로로 가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