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일전에 이런 류의 상담을 종종 받았습니다. 부모님 양쪽이 믿음이 신실하신데, 자녀들의 믿음상태는 영~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르치고 타이르고 한다해도 그다지 변화되지 않는 자녀들이나, 처음서부터 아예 돌연변이마냥 전혀 믿음을 갖지 않으려는 그런 자녀들은 어찌 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그렇게 신실하신 목회자의 가정에서 그런 자녀들이 나올때는 시험든다고 하기도 하지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장로나 권사등 신실하신 분들의 가정하에서도 믿음이 없는 자녀들을 볼때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선뜻 이해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이 또 단에서는 양떼들을 가르치고 훈육하며 인도하는 것을 볼때는, 자기 가정도 제대로 치리하지 못하면서 어찌 남의 가정은 치리할 수 있을까 시험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저의 소견을 이야기 드리고자 합니다. 단순한 제 소견일수도 있겠지만, 저로서는 말씀과 기도가운데 주님께서 알게해주신 은혜이기에 나누고자 하는 것이오니 혹! 여러분들의 생각과 의견에 일치하지 않는다해도 그저 은혜로만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는 우리가 성경을 통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첫째로는, 내 주변에 믿음이 좋은 사람이 있다하여도 정작 내 자신의 믿음은 그만한게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가령, 아브라함의 주변을 봅시다. 아브라함은 연단을 통해 나날이 믿음이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그의 아내 사라나 조카 롯도 그에 준하게 믿음이 성장하는 연단들과 기회들이 주어졌지만, 그들의 믿음은 그다지 좋지 못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지도 못하였지요.
한편, 주변에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인하여 덤으로 덕을 보는 일들도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롯이었네요.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내 주변에 믿음이 좋은 사람과 친분과 교제가 있으면 알게 모르게 덕을 보는 일들이 있지요. 그러나 막상 그 사람만큼 믿음의 성장을 갖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일단은 이런 케이스가 있구나 인식해주시고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두번째로는, 부모는 믿음이 좋은데 자녀가 믿음이 좋지 못한 경우입니다. 가령, 사무엘 선지자의 경우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어렸을때부터 제사장의 슬하에서 가르침받고 양육받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던 선지자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하나님의 뜻을 좇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눈물로 기도로 살아오신 가히 신실하신 주님의 종이였지요. 그러나 그의 자녀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의 후계를 이을만한 그릇들이 못되었지요.
한편, 사무엘의 아내는 어떤 사람이었고 그녀의 믿음은 어떠했으며 과연 자녀들은 어머니 슬하에서 어떻게 자랐는가가 궁금해지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차치하구 일단은 사무엘의 믿음에 비해 그 자녀들의 믿음은 좋지 못하였다라는 것을 일단 짚고, 다음으로 넘어가 봅시다.
세번째로는, 두번째의 연장선이겠는데요 다윗의 경우입니다. 다윗도 참으로 하나님앞에 합당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한때는 교만해지기도 하고 간음과 교살죄로 그릇된 행함도 있었지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일컫음 받을 정도요, 지금도 유대민족에게서 다윗은 참으로 존경받는 신실한 왕입니다.
그러나, 그의 자녀들을 보십시요. 비참하다고 할까요. 자녀들의 믿음은 다윗이 하나님앞에 보인 믿음과 신실함과는 거리가 너무 멀지요. 다만! 솔로몬의 경우에는 그래도 믿음이 있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도 하였지만, 전체적으로 다윗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믿음에 비해 너무나도 부족한 모습들이었습니다.
네번째로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목회자나 인물을 거론하지 않는다해도 그렇게 신실하다고 독실하다고 소문난 가정하에 참으로 덕이 되지 못하고 이해가 안될 정도의 믿음이 없는 자녀들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말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상에서 더 많은 예시들을 찾아보든 오늘날이든, 신실하고도 믿음이 충만한 부모슬하에서 안타깝게도 쭉정이 같은 자녀들이 나오게 되는 데에는 과연 어떤 영적인 메세지가 있는 것일까요.
첫째, 내 자신의 믿음과 구원은 주님과 1:1관계라는 것을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좋은 기독교적 배경과 환경이 주어져 있다하여도 내 믿음은 주님과 1:1관계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집안이 목회자 집안으로 줄줄이 이어져 있습니다. 어떤 이는 몇대째가 기독교 집안이구여. 어떤 이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날때부터 믿음으로 태어났다라고 자부하지요.
그런 배경과 환경으로 인하여, 남들에 비해 빈번하게 하나님 말씀을 접하게 되고 양육받을 기회가 있었겠고 알게 모르게 부모의 덕을 보는 일들도 있었을 것이나, 결코 그런 환경과 배경으로 내 믿음이 저절로 성장하지는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환경과 배경으로 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요, 따놓은 당상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착각합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기독교적 배경과 환경의 텃밭에서 나오는 자부심의 정도를 벗어나서, 그 배경과 환경이 곧 자신의 믿음인줄 착각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의 집안이 몇대째 기독교 가문이요, 아버지, 형님, 삼촌, 고모쪽등에도 목회자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배우자감을 찾는 분들도 있고 상대 배우자를 찾을때도 그런 가문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네네. 여차하면 늘상 사용하시는 구절이, 빛과 어둠이 함께 할 수 없다라는 구절로 빛의 가정은 빛의 가정을 만나야 한다라는 명분 좋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의 믿음은 그런 빛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깨우쳐 보셔야 합니다.
자신이 그런 배경과 부모로 인하여 덕을 보는 것이 곧 자신의 믿음이 아니요. 주님과 우리는 각개전투로 1:1믿음관계에서 인정을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라 이 말입니다.
하여, 성경에서도 믿음이 좋은 부모슬하에서 그다지 믿음이 좋지 못한 자녀가 나오는 것을 예시하고 있는 것은, 믿음의 구원은 결코 배경과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전달해주고 있다 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직분은 세습되지 않는다라는 것을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대개는 목회자 집안은 그 자녀들중에서 누구라도 그 목회의 길을 걷기를 소원하기도 하고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구약에서도 보시면, 레위지파와 제사장 집안은 자연스럽게 그 직분의 대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다면, 하나님께서는 과감하게 그들의 촛대를 옮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엘리 제사장의 경우이지요. 이것은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분은 세습되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데요 12사도들의 자녀들중에, 아버지처럼 사도의 직분을 세습받아 감당했다라는 것은 성경에서 볼 수 없지요. 아니, 신약 어디에도 조상의 직분을 자녀가 그대로 세습받아 감당했다라는 것은 볼 수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무엘 선지자가 아무리 사명을 잘 감당했다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까지 그 사명의 대를 이어가게 하시지는 않으신 것처럼 말입니다,
직분이란, 저마다의 믿음의 분량과 공로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지, 결코 세습되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성경은 전달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여, 오늘날 교회세습 말입니다. 안될 말이지요. 아무리 당회장이요 담임목사요, 교회를 세운 개척시대부터의 목사직을 담임했다하여도 자격이 아니되고 성도들에게 인정도 받지 못하는 자녀를 이것저것 공부시키고 억지로 자격을 꾸역꾸역 꾸며놓아 인사권을 행사하며 그 자리의 대를 이어가게 하려는 것은 명백히 교회의 사유화입니다.
하여, 직분이라는 것도 주님앞에 1:1관계에서 인정받아 내리받는 것임을 성경은 전달해주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을 보여주시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가정하에서 믿음이 부실한 자녀들이 나올수도 있다라는 것은, 역으로 말입니다, 믿음이 부실한 가정하에서 믿음이 좋은 자녀들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라는 반전입니다.
어떤 분들 중에는, 믿음이 좋은 가정하에서 태어났으면 나도 저만치 더 잘할텐데, 기질이 좋은 부모밑에서 태어났으면 나도 더 잘할 수 있을텐데 한숨을 짓는 분들도 있는데요, 그러지 마십시요.
어떤 분들중에는 자신의 얼굴이나 신체의 컴플렉스를 갖고서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환경이 좋은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부러워하기도 하는데요, 그러지 마십시다.
하나님께서 님에게 그런 얼굴을 허락하심은 그런 얼굴을 가져야 가장 빨리 주님을 만나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님에게 그런 콤플렉스를 허락하심은 그래야 님은 가장 빨리 주님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기에, 결코 믿음이 좋은 가정만 살펴보면서 도와주시고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각 개인의 마음의 중심을 보실 뿐입니다. 그의 환경과 가문은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함에 있어 전혀 관계할 것이 없다라는 것을, 부모와 자녀의 믿음의 반대관계에서도 보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판단하지 말라라는 것을 전달해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떤 논리적인 사고가 있어서 이러하면 이러해야 한다라는 생각의 틀과 공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벗어나면 이내 판단이 나오고 심해지면 비방이나 정죄가 나오기도 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길과 인생들이 하시는 일들을 그 인생들 조차도 모르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드높아져 판단하지 못하게 하심입니다. 우리 사람은 판단하기 시작하면 교만해지고, 교만해지면 판단하기 일쑤이기에 그렇습니다.
믿음이 좋은 가정하에서 믿음이 부실한 자녀들이 나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가정에 대해서조차도 내 눈에 보여지는 것으로, 내 귀에 들려지는 것으로 가타부타 판단하지 못하게 하심입니다.
저 장로님은 믿음이 신실한데 자녀들은 왜 저모양이냐구여? 그 자녀를 판단하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저 아버지는 망나니 같은 분인데, 어쩜 저리도 자녀는 믿음이 신실하냐구여? 그 아버지조차 판단하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하여, 성경은 말합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믿음이 좋은 가정하에서 믿음이 부실한 자녀들에대한 예시가 성경 곳곳에 제시되어 있고, 오늘날에도 선뜻 이해가 안되는 가정들도 있곤 한데요, 바로 위와 같은 의미전달이 있음을 우리가 깨우쳐 보신다면 큰 능력이 되시는 줄 압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감사드리며 읽어주시는 분들에게도 진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