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
작성자 ZODDL 작성시간13.09.18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타협없이 전하시는 것을 감사드립니다. 저도 솔로몬 사관 학교나 쉐마 인성 교육 등을 반대합니다. 그것들은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인간의 노력에 불과합니다. 마치 그렇게 살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복음에서 멀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칭의와 성화를 같게 보시면 안됩니다. 거듭남은 끝이 아닙니다. 완료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창조가 시작이었듯 새 피조물도 시작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젖을 찾아야 하고 물고 빨아야 합니다. 자라나야 합니다. 만약 거듭남을 궁극적인 것으로 본다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
작성자 ZODDL 작성시간13.09.18 완전 성화나 경건주의나 수도원, 신비주의 등이 여기서 파생된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문제는 칼빈주의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른 바 구원 받았으니 끝인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아.. 거듭남은 끝이 아닙니다. 그는 자라나야 하고 가르침과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그렇게 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고 은혜로 자라가는 사람들을 얼마나 율법주의로 몰아갔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자의 뜻에 힘쓰는 것이 당연합니다. 보상적인 행위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땅히 할 것을 했다고 합니다.
-
작성자 ZODDL 작성시간13.09.18 구원은 완료이지만 아직 완료가 아닙니다. (엡 2:4~9, 빌3:10~14) 즉 구원 받은 자도 자라나야 하고 면류관을 향해 달음질 해야 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들은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그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롬15:4) 칭의는 순간이지만 성화는 점진적입니다. 청교도들이 이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해부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칭의도 은혜이고 성화도 은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칭의는 은혜이고 성화는 마치 자신의 노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타락한 죄성의 표출에 불과합니다. 태어남도 자라남도 다 은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
작성자 ZODDL 작성시간13.09.18 다시 말하지만 칭의와 성화는 다릅니다. 그러나 다 은혜입니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의 전가가 아니라면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없습니다.(벧후 1:1~11)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바 참으로 자라나는 신앙은 자신의 열심에서 성삼위 하나님의 은혜만 들고 나옵니다.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이지요. 참 신앙은 자신의 약함을 알아가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겠지요. 이것이 개혁자들이 외친 5대 솔라의 의미라고 이해합니다. 우리는 높은 칼빈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이것은 복음 전도와 성도의 권면을 막았고 결국은 도덕률 폐기로 흘러갔습니다. 알미니안주의 만큼 높은 칼빈주의도 경계해야만 합니다.
-
작성자 ZODDL 작성시간13.09.18 정낙원 목사님의 글들을 예전에 보았었고 요즘 이 게시판에서 읽게 되네요. 타협없이 십자가를 전하시는 것에 그리스도의 같은 지체로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참으로 경건을 가장한 율법주의적 신앙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삯꾼들도 판을 치고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들의 헛된 행위로 인해 그리스도인의 성화라는 진리가 가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겉보기에 너무나 비슷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행위로 은혜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행한다는 이 진리는 너무나 귀합니다.(요 15:1~5, 엡5, 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