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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환난 속의 보배를 찾는 게 지혜이다(12:1-13)

작성자궁극이|작성시간13.12.07|조회수69 목록 댓글 0

121-13.

 

1-13: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편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편 언덕에 섰더니 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기사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기로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삽나이까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찌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9장에서는 회개하고 기도하고 응답을 받았지만 그 다음에 가서는 또 금식하고 슬퍼했습니다. 왜 그랬느냐? 주님 당신 자체를 보고 싶어서 그 말이요.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 나니까 주님과 대등한 것으로 보이지를 않고 자기는 썩은 송장과 같이 됐습니다. 이렇게 됐을 때에 주님이 다니엘의 입술을 만져서 일으켜 주었습니다.

 

우리가 11장에서 보았지만 동방 왕과 서방 왕 북방 왕 남방 왕이 일어나서 전쟁이 일어났지요.

 

이 속에도 나와 관계된 진리이치가 있다. 무슨 말씀인가 하니 자칫 잘못하면 깡패 싸우는 거 구경하다가 내 호주머니에 든 것 전부 다 도둑맞을 수가 있다. 그러니까 내 호주머니 것을 빼내기 위해서 깡패 자기들끼리 싸운다 그 말이요. 그런 것도 있다 그 말이요.

 

구경하는 사람들의 호주머니 속의 돈을 빼앗기 위해서 뱅뱅 돌리는 거 있잖아요. 그리로 정신을 쏟게 하고 뒤에서는 주머니를 털어간다. 그러니까 이 말의 의미는 외부적 가견적인 것에만 신경을 쓰지 말아라 그 말이요. 목적은 딴 데 있다 그 말이요.

 

그리고 본문에 보면 창공에서 별과 같이 빛이 날 것이요라고 했는데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부귀영광 모든 귀한 자리를 다 얻었습니다. 그래도 다니엘은 그것으로 만족치를 않았습니다. 거기에 푹 빠지지를 않았다 그 말이요. 박사장이 됐지만, 국무총리가 됐지만 만족치를 아니했다 그 말이요.

 

이제 12장에서 미가엘이 호위를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니 혼자 버려두지 않고 호위를 한다.

또 신랑차림으로 나타난 주님이 나타났습니다. 왜 신랑차림으로 나타났을까? 신부를 삼기 위해서 그렇게 나타났다 그 말이요.

 

1절에서 네 민족하는 이 네 민족이 누구냐? 물론 이스라엘이요 또 유대민족이요, 더 나아가서는 최종적으로 다니엘 너를 닮은 그런 자들을 말한다. 혼자 두지를 않고 미가엘이 호위를 한다.

 

또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이 나오지요? 그러니까 전에 있던 환난이 아니다. 즉 전에 있던 환난으로 다시 반복치 않는다. 늘 새로운 환난을 준다 그 말이요. 늘 새로운 환난인데 예측을 했던 그 환난이냐? 아니요.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이라고 하는 것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환난을 말하는 거다 그 말이요.

 

인간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환난, 그리고 또 하나는 개국 이래로 가장 큰 환난. 그러니까 이 무슨 말인가 하니 교역자를 바로 만나야 한다. 종교운동 활동, 수양을 경계하라. 수양운동이 많지요? 하나님을 섬기기는 섬기는데 신앙운동이 아니고 종교운동이란 말이요. 하나의 종교운동. 그걸 알아야 됩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요? 환난을 단순히 무슨 1차 세계전쟁, 2차 세계전쟁, 3차 세계전쟁 등 가견적으로 나타나는 그 환난만 생각지를 말아라.

 

세상사람들이 전혀 생각지 못한 환난이 뭐냐? 우리가 깊이 새겨보면, 그러니까 일반사람들이 볼 때는 환난으로 못 느껴. 느끼지를 못 해. 또한 눈이 어두운 종교적인 기독자들은 이걸 또 환난으로 못 봐.

 

종교운동 활동, 물량주의, 물질 팽창주의로 나가는 자들은 진리를 받을 수가 없어. 우리가 밥을 못 먹으면 배가 고프지요? 그 면에서는 진하게 생각이 되는데 영적 면에서 바른 진리의 말씀을 못 먹는 거기에 자기가 배고픈 줄 압니까? 그게 진짜 영원히 가는 배고픔인데 그 말이요. 그런 면으로 환난을 생각을 해라.

 

보이는 환난은 누구든지 안다. 그러니까 영적인 면에서 환난을 보는 자는 육적 환난도 능히 이기고 나가게 되는 겁니다. 왜 그런가 하니 영적 면에 환난이 접어들었다고 하는 것은 그 다음에 육적인 면으로 나타나는 환난은 시간문제다. 그리고 육적인 환난은 안 나타날 수도 있다. 그걸로 끝내버릴 수도 있다 그 말이요. 이런 수양운동이 많이 나오는데 이 수양운동을 환난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그 말이요.

 

그리고 매일 드리는 제사를 금했다고 하는 것은 진리를 땅에 던져버렸다 그 말이요.

 

물론 이걸 역사적으로 보면 이방 왕이 성전에 들어와서 제사를 금해버리는 그것으로 보이지요?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만 보지 말고 이방사상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그 다음에는 뭐가 없어지느냐? 매일 드리는 제사가 끊어진다. 진리를 땅에 던져버린다 그 말이요. 지혜 있는 사람은 그걸 바로 깨닫는다 그 말이요. 그런 걸 깨닫는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거하고 눈에 안 보이는 게 지금 정 반대가 돼 있단 말이요.

 

일반적인 눈을 가지고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 듣고 보지도 못한 전혀 처음 보는 환난. 이 영적 환난을 어떻게 알겠느냐? 그러나 지혜 있는 사람은 깨달아요. 그럴 때에 진리를 따르는 자들은 고립되고 어렵다.

 

총부리를 겨누는 그런 환난은 알지요. 그렇지 않아요? 무력으로 완력으로 나오는 그런 환난은 어린애들도 다 알아요. 그런데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은 그런 총부리를 겨누는 환난이 아니다 그 말이요. 진리를 스스로 땅에 던져버리게 만드는 그런 환난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의 길을 가려면 때로는 고립되고, 때로는 생활난도 있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진리 바로 지키려다가 보니, 신앙정조를 바로 지키려다 보니 거기에서 오는 고통들이다 그 말이요. 진리가 아닌 어떤 딴 게 아니고, 딴 어떤 조건으로 해서 오는 게 아니고 진리를 지키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거.

 

가만 생각하면 앞으로 참 어려워요. 지금 일주일 동안 5일만 일하고 이틀을 쉰다는 이것도 외부적으로 보면 뭣처럼 느껴지지요? 돈 많이 벌어서 5일 동안 일하고 이틀은 노는 거 아니요? 그러니까 외부적으로 보면 굉장히 뭔가가 풍부하고 살기 좋은 그런 면을 느끼잖아요? 그러나 영적인 면으로 뒤집어서 이면적으로 속을 들여다 볼 때는 이것이 환난으로 들어가는 거다. 신앙 환난을 알아라. ‘그렇게 돼 들어가다가 또 어떤 상황이 어떻게 기다리고 있겠느냐하는 그걸 염두에 두라 그 말이요.

 

그런데 이 환난은 누구를 위한 환난인가? 환난이라 그러면 의례히 말 안 듣고 예수 잘 못 믿고 죄만 짓고 사는 그런 사람들에게 고통을 당하게 해서 죽여 버리는 것으로만 생각이 되지요?

 

모든 환난은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은 환난은 없습니다. 욥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단으로 하여금 허락을 해 주어서 욥에게 어떤 부분만 시험하게 만들지요? 왜 하나님은 욥에게 시험을 허락했느냐? 죄 때문에 하는 건가, 욥을 높이려고 하는 건가? 욥을 높이기 위함이지요. 그 뒤에 가서 보면 욥의 모든 재산은 플러스가 됐지요. 배가 다 돼버렸어요. 그리고 먼저 있던 죽은 아들딸들은 이름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나중에 하나님께서 미인들을 줬지요. 그렇지요?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니 이름이 있다 그 말이요.

 

하나님은 주무시지도 졸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움직여 돌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과거사를 묻지를 않습니다. 그런고로 과거사를 붙들고 울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사 붙들고 울지 말라 그 말이요. 이게 다 성경에 나오는 겁니다.

 

다니엘은 모든 성도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래서 성도를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환난의 바람을 불어 젖힌다 그 말이요.

 

우리가 사무엘상 16장으로 보면 다윗이 들판으로 내쫓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 편에 가서 있어요. 고립되는 것 같으나 하나님이 배경으로 딱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다윗을 무시했지만 사무엘로 통해서 이가 그니한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 바로 이 다윗이니 이가 그니하고 지정이 됐단 말이요. 그래서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만들었습니다.

 

또 한 편 우리가 골리앗과 다윗을 볼 때에 골리앗은 다윗을 높여준 인물입니다. 다윗을 높여준 인물이요.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제일 좋은 골리앗이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각자 자기에게 사건 환경을 붙여준 것은 제일 좋은 걸로 붙여준 거예요. 그런데 인간 편에서 보면 제일 나빠. 그러면 그런 자를 왜 붙여주느냐? 제일 좋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모든 대적 원수들은 하나님께서 성도를 높여주기 위해서 동원을 시킨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거기서 깨닫고 감사가 나오는 거지요.

 

창공의 별과 같이 빛나는 인물이 되려면 바로 이 환난을 다 통과해야 됩니다. 환난 통과 없이는 빛나는 인물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통들 환난 없이 빛난 인물을 바라보고 있지요.

 

환난은 성도 다니엘과 성도들을 위해서 일으킵니다.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시대적으로나 모두 자기의 구원을 위해서 일으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알아둘 것은 환난은 언제나 계속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그 환난을 통과하면서 구원을 이루었던 못 이루었던 그 환난은 시간 속에서 흘러가 버립니다. 그러니까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 말이요. 환난은 제한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기본구원 얻은 사람은 환난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다 천국에 갑니다. 환난에 졌다고 해서 천국 갈 자가 천국에 못 가고 지옥에 가게 될까요? 그리고 또 환난이 없다고 해서 지옥 갈 자가 천국 가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런 건 절대로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을 할 때에 환난 때는 예수 믿기 힘들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나 영적 면으로 들어가서 봐 봐요. 환난 때는 교회 나가기는 쉬운데 예수 믿기는 힘들어.

 

지금 전도 잘 하지요. 그러면 전도가 잘 될 때는 하나님의 예정된 택자가 아니라도 구원 된 자들 틈에 끼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거지요? 안 되는 거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며하는 것은 환난이 온다고 해서 예정된 택자가 기본구원을 못 얻을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환난이 왔느냐? 분명히 기본구원을 얻어서 천국 갈 자인데 환난이 왔기 때문에 천국에 못 간다는 건 없단 말이요. 택자는 다 구원을 얻어서 천국에 간다. 그러니까 기본구원과 환난과는 상관이 없다 그 말이요. 이해 갑니까? 기본구원과 환난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2절에는 영생을 말했습니다. 기본구원을 전제해서 하는 말씀입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 자는 자들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가 있고, 또 무궁히 부끄러움을 얻을 자가 있다. 물론 예수 잘 믿은 사람도, 잘 못 믿은 사람도 죽으면 다 땅에 묻히지요. 잠자는 거지요. 일반적으로는 죽은 거고.

 

잠자는 건 언젠가는 깨어나지요. 언제 깨어나도 깨어납니다. 지옥에 가는 자도 영원히 살긴 살지요. 영원히 살기 때문에 그것을 영생이라고 말하지는 않지요. 성경은 기쁨과 즐거움이 포함되어 있는 의미로서의 영생입니다.

 

자는 자 중에 깨어난다는 것을 부활을 말합니다. 영광스런 부활 영생이고, 무궁히 부끄러움을 얻을 자는 예수를 시원히 못 믿은 자들도 부활을 한다는 것인데 이들은 수욕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얻은 자라도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부끄러운 구원, 불탈 구원도 있지요.

 

그런고로 여기에 알 수 있는 것은 예수 믿는 자는 자기 마음대로 지옥에 못 간다 그 말이요. 우리의 몸과 영은 예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산 것입니다. 그런고로 당신이 피 흘려서 값 주고 산 자를 내버리지를 않습니다.

 

빛날 자가 누구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이 난다. 지혜 있는 자는 사리판단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니 짐승들이 나오지요. 지혜 있는 자는 판단력 관찰력이 예민해서 이 짐승들을 잘 봅니다. 그리고 그 짐승의 운동에 휘말리지를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불신자이 데모하는 그런데 휩쓸리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고 기독교 종교운동에 휘말리지 않는다 그 말이요.

 

초교파적으로 떼거지로 모여서 종교운동에 와 와하는 거 있지요? 그거 다 종교운동이요. 지혜 있는 자는 그런 데 절대로 휘말리지를 않는다. 그게 다 무슨 양이라? 수양이라.

 

수양은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건데 왜 나쁘지요? 하나님 앞에 드림이 되는 수양은 반드시 번제단에서 죽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이 수양은 하나님 앞에 죽지도 않고 날뛰는 거라. 일종의 사명자들. 사역과 이력, 종교적인 업적을 가지고 성공이니 뭐니, 응답이니, 신앙이 좋다느니하는 이건 전부 다 수양들이에요.

 

많은 사람을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빛이 난다’: 11장에 보면 회오리바람이 많이 붑니다. 그런고로 12장에서 그 바람에 휘말리지 말라고 지혜를 말하는 거요. 그런 바람 타면 안 돼요.

 

지혜 있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오직 천국밖에 모르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야. 옳은 길로 인도하는 걸 목사만 할 수 있습니까? 성도들도 할 수 있다 그 말이요.

 

그리고 7절에 보면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 이게 무슨 말이냐? 상대가 없어진다는 말이요. 상대가 없어진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성도가 권세를 써먹을 데가 없어질 때까지. 그러니까 환난이 있을 때에 권세를 다 써먹으란 말이요. 환난이 있을 때에 부지런히 써먹어라. 그러면 어느 환난이요? 지금 써먹어야 돼요.

 

10절에 악한 자가 나오는데 악한 자가 누구냐? 악한 자는 누군가 하니 천국을 외면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악한 자들인데, 이런 자들은 아무 것도 깨닫지를 못한다. 절대로 못 깨닫는다. 환난이라고 그래도 못 깨달아요.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서 가는 게 천국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까, 환난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까? 어떻게 보여요? 환난 속으로 들어가는 거지요. 그런데 그걸 왜 못 볼까?

 

생각을 해봐요. 신앙이 없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큰 집을 사서 들어갔다고 그랬을 때에 그 사람 스스로는 자기가 그 집에서 누리려고 들어가는 거지요. 말하자면 천국이라 그 말이요. 평화요 영광이요 기쁨이요 행복이요 천국이라고 들어간다 그 말이요. 그러나 영의 눈을 가지고 보는 사람은 그게 어떻게 되는 거요? 신앙도 없는 사람이 그렇게 될 때에는? 환난으로 들어가는 거지요. 영적 면의 신앙 환난으로 들어가는 거지요.

 

거기서 얼마나 오래 살 런지 모르지만 즉, 거기서 불이 떨어질 때까지 살 런지, 아니면 하나님이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걸 홀딱 뺏어가 버릴 런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영적 면에 환난이 오면 있는 것도 다 빼앗기고 영적 환난도 당하고 하니 이건 더블 환난이 됐지요. 그러니 이걸 어떻게 배겨내겠느냐? 배겨낼 도리가 없는 거요. 그러다가 죽는 거요. 이런 사람은 환난을 못 깨달아. 자기 신앙상태의 곤고성을 못 느껴. 깨달음의 빈약성을 못 느껴. 이거 참 불쌍한 거요. 이건 바람 불면 날아가요.

 

그들이 진리를 땅에 떨어뜨렸기 때문에 그들의 모든 종교적 사역은 세상성이에요. 그럼에도 하나님의 일을 거역한 이걸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겁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못 깨달아요. 그런데 지혜 있는 사람은 깨닫는다. 뭘 깨닫느냐? 환난도 깨닫고, 역경도 깨닫고, 모두 다 깨닫는다.

 

우리가 다니엘서를 볼 때 일반사람들이 보는 시각과 같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 위주로 영이 잘 되라고 주신 말씀이지요? 하나님은 육에 대한 이해타산 평가는 안중에도 없어요. 육이야 죽건 말건 어떻게 생겨먹었건 하나님은 내 형편 안 봐줘요. ‘바로 서라. 바로 서라하며 사건을 몰아붙여요. 바로 안 선 상태에서 일을 주면 사람이 안 돼요.

 

우리가 다니엘을 보면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상태로 되어 있으니 하나님께서 자꾸 안겨준단 말이요. 안겨주는데 다니엘이 그것을 가지고 누리느냐? 아니지요. 그걸로 만족치 않는단 말이요. 누구라야 만족이 되겠어? 오직 주님. 주님밖에 없다. 우리 신앙성도는 인격적 결합관계로 들어가야지.

 

기도 올립시다.

 

속화되고 타락된 종교적 세상이 불신세상과 똑같은 개념과 소원 목적과 사고방식과 이해타산 평가적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은 진리이치 지혜지식을 가지고 영의 눈으로 보면서 우리의 이해타산 평가성을 진리대로 바로 내릴 줄 아는 현명하고도 똑똑하고 명철한 당신이 자녀들이 돼야 될 줄 압니다.

 

불신세계는 외부 겉모양 표면이 좋으면 그만 그것이 다인 줄 알고, 자기의 사건이 누림성으로 되어 있으면 그것이 그만 행복인 줄 압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은 이해타산 평가성이 오직 진리요 하나님과의 인격적 애정적 생명적 결합이요, 아버지 하나님과 늘 동거 동사 동행하는 삶인 줄 압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이 주님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어떤 사건 상황 속에서도, 어떤 환난과 역경 속에서도 오직 주님과 인격적 결합된 의사단일성으로만 살아나갈 수 있는 진리의 옳은 종들로 다 만들어 주시옵소서.

 

늘 생활 속에서 시시 때때로 지혜와 총명 주시옵고 우리 주님과 동거 동락 동사 동행하는 생활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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