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34-다윗의 범죄
[삼하11:1-17]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 신복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저희가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으니라 (2)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와 보이는지라 (3)다윗이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고하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4)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저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저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5)여인이 잉태하매 보내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잉태하였나이다 하니라 (6)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7)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의 어떠한 것을 묻고 (8)저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9)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 주의 신복들로 더불어 잔지라 (10)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우리아가 그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11)우리아가 다윗에게 고하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영채 가운데 유하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신복들이 바깥 들에 유진하였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치 아니하기로 왕의 사심과 왕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본문의 스토리는 보통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육신적인 내용이 담겨 있기에 사람들은 이것을 잊지 않고 많이 말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다윗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가’ 인간의 본성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만들기 위해 혹독한 광야 생활을 통해서 특별한 훈련을 거친 자이며 사울과 차별을 두고 있는 자로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는 줄 알았는데 그는 15년 광야 생활과 17년의 안락한 생활을 한다.
그는 어려움을 당할 때 기간과 승승장구하는 기간이 비슷하다.
다윗의 광야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기에 이러한 범죄를 저지를 생각도 못한다.
이제 승리 후의 명성을 얻은 때이며 평안한 승리의 때이다.
환경적인 차이가 분명히 있는 이러한 때 범죄가 들어오는데
우리는 다윗의 범죄가 어떻게 진행되어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지 교훈을 받아야 한다.
*범죄한 첫 번째 이유는 직무유기였다.
직무유기는 자기가 지켜야할 직분을 떠나는 것으로 이것은 범죄의 시작이다.
천사들도 자기 위치를 떠나서 범죄를 하며 아담도 자기의 위치인 하나님의 대리자역할을 못해서 범죄가 들어온다.
범죄는 교만하므로 자기의 위치를 떠나게 되고 이로 인해 들어온다.
자기의 위치를 떠나므로 나도 모르게 들어오는 교만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1절에 왕들이 출전할 때는 전쟁할 때를 말한다.
과거에 농업을 할 때는 겨울에는 전쟁하지 않는다.
봄철 모내기가 지나고 식량이 비축된 후에 한다. 모두 그렇다.
‘ 해가 돌아와서’는 전쟁하기 좋은 때임을 말한다. 싸워야 할 때를 말한다.
아람이 전쟁을 준비하고 나와서 이스라엘도 출전해야 할 때이다
다윗은 군대장관과 군대를 보내놓고 자기는 나가지 않았다.
1절에 분명 왕이 출전할 때라고 하였는데
그는 예루살렘에 거처하면서 저녁까지 침상에 누워 있다가 한가롭게 거닐다가 범죄 한다. 이렇게 나태한 것이 죄 짓게 만드는 과정이다.
뒤에 살펴보면 다윗의 영적 상태가 안일해져 있음을 알게 된다.
광야 생활할 때는 이렇지 않고 긴장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찾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환경이 너무나 좋아진 것이다. 아무 걱정이 없다.
이것이 위험하다. 그때부터 무너지게 된다.
나는 절대 그렇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런 상황이 오면 나태해진다.
그는 전쟁에 나가야할 왕이 직무유기하고 저녁에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는 시편에서 ‘새벽을 깨우리로다; 하였던 아침형 인간이었는데 이제 저녁에 일어나는 자가 된 것이다.
이것은 신앙이 타락한 것이다.
[오늘날 저녁 형이 많은데 이것은 성경의 변질로서 성경은 새벽 형을 권한다.
주님도 새벽부터 일어나시었고 밤이 맞도록 기도하였던 분이다. 시대를 따르지 말고 거스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왕이 저녁에 일어나서 한가롭게 왕궁을 거니는 것은 말이 안된다.
지금 부하들은 목숨 내놓고 있는 상황인데 왕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왕으로 출발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징계하는 방향으로 가는 비극의 시간이 된 것이다.
암몬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나라로 제압할 필요가 있기에 왕이 가야 한다.
랍바는 요르단의 수도 이다. 삼상12:26에 암몬의 수도인 랍바를 취하게 된다.
모압과 암몬은 롯의 후손으로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족속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계통이지만 그 줄기에서 떨어져 나간 자들로 총회에 못 들어간다.
*총회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과의 전쟁은 헤렘 전쟁이다.
헤렘은 진멸해서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는 것이다.
집안을 깨끗하게 전쟁해서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는 것이다.
다윗은 헤렘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는데 11절에 우리아가 언약궤가 전쟁에 있다고 한다. 하나님은 전쟁에 출전했는데 왕은 하나님의 종으로 집에서 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말이 안된다.
헤렘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으로 이것에는 규칙이 있다.
그것은 성결이다.
우리아는 이방인 헷 족속인데도 이 규칙을 지키기 위해 아내와 동침하지 않는다.
그는 헤렘 전쟁을 알고 있는 자이다.
우리아는 다윗이 아둘람 굴에 숨을 때부터 따라다닌 신복이다.
그런데 자기 죄를 가리기 위해서 부하를 죽인다.
다윗은 전쟁에 나가지도 않고 자기를 더럽히고 있는 왕이다
이 죄는 단순히 여자와 도덕적인 죄를 지은 정도가 아니다.
그가 하나님에게 선택된 자이며 하나님과 약속한 자이기에 살아남은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울보다 더한 죄로 내침 받아야 하는 자이다.
헤렘을 범하면 그 집안도 헤렘이 되어 진멸된다.
사울이 진멸하라는 것을 하지 않으니 그 집안이 망한다.
[우리아는 하나님 앞에 철저한자로서 왕이 명령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그럴 수 없다고 하다가 결국은 죽게 된다. 왕의 명령 들었으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부하로서 충성도 해야 되지만 그보다 하나님 앞에 신실해야 한다.]
사울과 다윗은 같은 잘못을 했으며 다윗이 더 큰 잘못을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택한 자이기에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다윗은 시편을 쓰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 극악무도한 죄를 서슴없이 저지른 다윗.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면 어디까지 죄를 짓는가를 알아야 한다.
과거에는 원수인 사울 왕도 죽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신복을 비열하게 죽인다.
다윗의 명성과 칭찬이 다윗을 망치게 하는데 이것이 무서운 것이다.
지도자는 백성들의 인기를 얻을 때 조심해야 한다.
지도자는 인기 때문에 고집부리다 죽는다.
사람들의 인기는 물거품이니 거기에 연연하지 말라.
사람은 명예와 영광과 권세를 잡으면 하나님의 간섭을 불편해 한다.
과거에는 간섭해 달라고 하다가 모든 것이 잘 되고 목적이 이루어지면 간섭이 싫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는 징계가 온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느부갓네살은 짐승같이 되었고 헤롯은 벌레에 죽는다.
다윗은 이 사건 이후로 죽는 날까지 고통 받다가 죽는다.
그는 멸망에서 용서가 되지 명성 얻는 것은 이것으로 끝이다.
그 집안에 계속 칼이 떠나지 않으며 그 집안은 풍지 박살나는 상황뿐이다.
다윗은 영적 전쟁에서 무너진 것이다.
*다윗은 직무유기뿐만 아니라 내적 싸움에서 진 것이다.
외적인 것으로 아름다운 여자가 핵심이 아니라 이미 안에서 무너진 것이다.
안에서 살아 있으면 겉에서 유혹해도 도망간다. 요셉은 여자가 동침하자고 하니 옷을 벗어 버리고 도망가게 된다.
영적 전쟁에서 무너지는 가장 큰 것이 안일과 나태이다.
나는 편안하게 좋다고 하면 이것은 병든 것이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못한다는 감동을 줄때는 나에게 하라고 한 것이다.
모든 상황에서 행동기준은 ‘내 눈에 보이면 내가 할 일인 줄 알고 해야 한다.’
내가 못하는 것이면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해서라도 되어지게 해야 한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그것이 안일과 나태이기 때문이다.
영성이 죽으면 판단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부담되다가 양심이 화인 맞게 되며 신앙은 타락하게 된다.
*다윗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안일과 나태이다.
[살전 5:3]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세상의 안정과 평안은 좋은 것이 아니다.
왜 하필 그때 그 시간에 그곳을 지났으며 그곳에 올라갔으며 왜 하필,,,,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 탓을 하고 원망을 하고 핑계를 댄다.
모든 인간은 그렇다 왜 하필이면 그랬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은 너의 삶에 유혹과 위협과 문제가 즐비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환경이 있어도 그것을 이기라는 것이다.
아무런 문제도 없이 걸어가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다.
문제 앞에서 내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다윗은 여자문제가 골치다. 가장 큰 약점이다.
그는 왕은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말을 생각도 못하고 있다.
그는 도망자 신세에서도 세 명의 부인을 둔다.
예루살렘에 와서도 부인을 많이 둔다.
사단은 가장 약한 곳으로 들어온다.
인간은 완벽한 자가 없이 무언가 부족하고 약한 부분이 있는데 사단인 병균은 그곳을 타고 들어온다. 다윗의 범죄를 보면 첫 아담의 죄와 같다.
뱀의 말을 듣고 제일 먼저 눈이 밝아져서 육신의 눈으로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하였다. 그래서 독약인 선악과를 먹는 것이다.
먹으면 죽는 것이지만 너무나 먹음직하니 먹은 것이다.
다윗이 밧세바를 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롯도 소돔을 보니 물댄 동산 같았던 것이다.
직무유기로 나태해져 있으니 정상적인 눈이 썩은 눈이다.
음욕이 일어나는 배경은 벌거벗었다고 모두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혐오스럽게 보일 때가 있다. 긴장된 삶에서 영이 깨어있으면 여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밧세바를 소개할 때 엘리암의 딸, 우리아의 아내라고 한다.
자세하게 말하는 것은 이 여자는 건드리면 안되는 여자라는 고백이다.
엘리압은 다윗의 모사꾼 아히도벨의 아들이다. 왕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대할 집안이 아니다
우리아 하나를 보아도 건드리면 안되는 여자였는데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음욕은 상대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욕망해결 대상으로 보게 된다.
육신의 욕망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서 자기가 원하는대로 행동하는 무서운 탐욕이며 우상숭배가 된다.
밧세바는 다윗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동기부여 한 자이다.
여자들이 목욕을 숨어서 하지 옥상에서 하는 여자가 어디에 있는가.
그는 남편의 상황을 알면서도 왕이라 할지라도 목숨 걸고 반항한 흔적이 없다.
마1장의 족보에 솔로몬은 우리아의 아들이지 밧세바의 아들이 아니다.
다른 여자들은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데 밧세바는 이름이 없다.
비록 집안이 좋다할지라도 행동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다윗은 범죄로 인해 6-10계명을 모두 범한 것이다.
*다윗이 이렇게 타락하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다윗을 생각하면
잠간의 성공과 외적인 드러남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안정과 평안이 한 사람을 안하무인으로 만든다.
패망의 선봉은 교만이라고 한다.
오늘날 경비원에 갑질 하는 것도 교만이다.
교만은 나도 모르게 나오며 이로 인해 주위 사람을 죽인다.
말씀의 반석 위에 서서 그것을 붙잡지 않는 한 넘어지게 된다.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지게 되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사도바울은 전하고 버림받을 까봐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날마다 죽노라 했다.
연약한 인생임을 알아 오직 예수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