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의 고난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가정의 문제로,
이런저런 정신적인 곤고함으로,
직장이나 사회적인 문제로,
사업 문제로,
신앙적인 문제로,
원치 않는 질병의 문제로...
우리는 이런 가운데 크고 작은 시련으로 참 힘겨워합니다.
그러나...
그 고난 속에는 사람의 논리로 쉽게 풀 수 없는 주님만의
비밀한 계획이 들어있습니다.
이럴 때는 육의 눈으로 내 고난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영의 넓은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자신의 고난이 힘든들
정령, 지옥의 무시무시한 극단적 고통만 하겠습니까...
지옥은 잠시 잠깐의 쉼도 허락되지 않는 무서운 곳입니다.
지옥에 들어간 그들의 극심한 고통은 쉼 없이 영원합니다.
성냥불에 손가락만 데도 그 뜨거움에 난리를 치는데,
전체를 감싸는 지옥의 불못은 어떻겠습니까...
지금 만약, 우리가 지옥에서...
이런 쉼 없는 무서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중이라면...
아마, 세상에 있을 때의 모든 고통이 오히려
편안한 웰빙의 추억으로 되새겨질 것입니다.
우리가 지옥에 들어간다면,
그 무서운 지옥의 고통을 어찌 감당할 것입니까...
현세의 삶이 고통스럽다고 자신의 가슴을 치겠지만,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영들만 하겠습니까...
아니...
그들의 고통에 비하면 우리의 하소연은 사치에 불과합니다.
지옥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기록된 말씀을 보십시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태복음 17장 9절)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마가복음 9장 48-49절)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쉬지 못하고) 괴로움을 받으리라
(요한계시록 20장 10절)
위에 기록된 지옥에 관한 성경의 말씀을...
지식적, 관념적 이론으로만 간단히 받아서는 절대 안 됩니다.
거듭나지 않은 심령들에게는 앞으로 다가올 분명한 현실이고
이미 지옥에 들어간 영혼들이 당하고 있는 실상의 상황입니다.
절대, 농담이나 덕담이나 상징으로 기록된 말씀이 아닙니다.
위 말씀이 엄청난 두려움과 떨림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직도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천국도 지옥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겪는 고통마저 지옥의 고통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땅에서 사는 한, 누구나 크고 작은 시련이 늘 함께합니다.
내 신세가 왜 이렇냐고 하며...
이 땅에서의 육적인 좁은 시야로만 자신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좀 더 넓은 영적 시야로 자신을 바라봐야 합니다.
육적인 시야에 잡혀있으면, 영성은 더이상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의 달콤함에 집착하는 것만이 미련에 잡힌 게 아닙니다.
세상의 시련에 집착하는 것도 이 땅의 미련에 잡힌 것입니다.
영의 것이 아닌...
세상의 것에 더 신경 쓴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 역시 크고 작은 시련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슬퍼하거나 낙망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을 만날 희망에 젖어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고난을 기쁨으로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너무나 많은 교인들이 이런저런 세상의 미련에 잡혀...
미래의 출세와 화려한 스펙과 더 나은 삶의 웰빙을 위해
지금의 인간적 시련은 감내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도...
어찌 천국에서 주님을 뵙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에 대해서는
인내로 감내하려는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주님께서 왜 인내하라고 하셨습니까...
이 땅에서의 인내가 천국으로의 초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인내의 열매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주님 뵙길 한없이 고대하는 심령들은
이 땅에서 인내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인내를 지탱하는 요소가 바로 거듭난 믿음과 소망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인내는 이 땅에서만 필요한 것이지,
천국에서는 전혀 필요 없습니다.
천국에서조차 인내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천국이 아닐 것입니다.
인내가 클수록...
천국에 가는 순간 너무나 큰 기쁨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오직, 주님의 사랑만이 영원한 곳입니다.
이 땅의 시간은...
영원의 장구함에 비하면 잠시 잠깐의 아주 짧은 것에 불과합니다.
아니, 시간으로 표현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것은 정말 배설물에 불과합니다.
배설물(육적인 일, 세상적 바램)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최고 값진 진주에 연연해야 할 때입니다.
제일 값진 진주를 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진정으로 회개해야 얻어집니다.
자기 부인은... 마귀에게 속아 그게 정상인 줄 알고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육적인 모든 것을 다 거부하고,
자신의 정체성마저 내려놓는 일인데 어찌 쉽겠습니까...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이, 반드시 부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결정이 아닌, 단호한 결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결정은... 인간적인 일에 대하여 자신의 편의대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선택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러나 결단은... 생명이냐 멸망이냐의 분기점이므로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이 누구나 결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진정 단호히 부인하고 회개해야 거듭나는 것이고,
그 이후부터 주님께서 은혜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절대 성령으로 거듭남의 은혜를 베풀지 않으십니다.
천국은... 이 땅에서 타락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거듭난 믿음을 지킨 이들만이 가는 최후의 목적지입니다.
곧, 최고의 값진 진주는 주님이시고 거듭남입니다.
진주를 얻어야 천국 문은 열립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5절)
지금...
우리 믿음의 열정이, 이 땅의 미련과 영적 나태함으로 인해
자꾸 무뎌지려고 합니다.
믿음의 진리에 대하여 알면 다 된 것으로 착각합니다.
대장장이가 아무리 날카로운 칼을 만들어줘도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며 무뎌지는 법입니다.
무뎌진 칼은 칼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녹이 슬면 고물상에 버려질 뿐입니다.
칼은 계속 관리하며 갈아야 그 가치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깨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지 아니하면 무뎌집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루 최선을 다했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 곁에 가는 그 순간까지 영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매일 말씀과 기도에 매달리는 이들만이 유지됩니다.
또한, 그런 이들에게 천국이 예비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녹슨 칼이 고물상에 버려지듯,
녹슬어 무뎌진 심령은 지옥에 버려질 뿐입니다.
오늘 성경을 열심히 읽었으니 뿌듯한 마음이 올라옵니까?
기도를 방금 끝냈으니 의로운 성취심이 올라옵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면 나는 지금 영적 위기의 순간입니다.
영이 녹슬어 무뎌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늘 부족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에 대한 갈급함이 끊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나를 쳐서 복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항상 있어야 합니다.
늘 영적 긴장 가운데 주님을 간절히 기다려야 합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장 12절)
내 인생이 고단하다 여길 때마다 지옥의 무서움을 기억하시고,
천국에서 주님과 누릴 한없는 기쁨을 새기십시오.
그런 분들에게는...
이 땅의 모든 시련과 고난은 천국의 디딤돌로만 보일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진들과,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들이 왜 고난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였는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분들은 거듭나, 이 땅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고,
오직 주님과 천국만이 그분들의 심령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은 근시안적 육의 눈에 집착하여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영의 눈으로 멀리 크게 바라본 분들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렇게 항변합니다.
에이 그분은 주기철 목사님이니까,
에이 그분은 손양원 목사님이니까,
에이 그분은 베드로 사도니까,
에이 그분은 바울 사도니까 우리와 전혀 다르지...
여러분~ 이분들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분들은...
거듭난 거룩한 성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전형적 표본의 모습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이런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거듭나지 아니하여 육의 기준으로만 그분들을 바라보니
이런 분들이 워낙 특별한 사람으로만 보이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이런 모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근시안적 육적인 눈이 아니라,
거듭난 믿음의 선진들처럼...
영의 눈으로 멀리 담대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지금의 고난을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간절히 구하고 찾고 울부짖는 이들에게는
주님은 늘 가까이 지켜보시며
우리가 모르는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항상 돌보며 인도해주십니다.
낙심은 세상적인 마음입니다.
이 땅의 그 어떤 고통도...
절대, 지옥의 쉼 없는 고통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주님께서 마냥 우리의 고통을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마치, 심술부리듯 고통 안에만 있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회복의 하나님이시고,
치유의 하나님이시고, 예비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코람데오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걸 주님께 의탁하고 내 영이 거룩해지도록 매달리십시오.
영이 거룩히 잘 돼야 범사가 영을 따라갑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3서 1장 2절)
자신의 열매를 보아 거듭나지 않은 분들은...
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간절히 회개하여 성령으로 거듭남에 이르도록
주님을 구하고 찾는 영성에 매진하시고,
이미 거듭난 분들은 그 거듭남이 세상 것으로 흐려지지 않도록
늘 자신을 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땅에 태어난 이상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 자신이나, 이 글을 읽는 분들이나,
그날은 반드시 100% 찾아오고, 지금도 그 실상을 향하여
계속 가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장 27절)
세상 것에 연연하지 마시고,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믿음의 달려갈 길을 다 끝마친 후에 모두 천국에서 꼭 뵙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쉼 없이...
무서운 고통만이 영원히 몰아치는 지옥에는 절대 가지 마십시오.
지금 살아 호흡하는 이 시간만이 회개하고 거듭날 기회입니다.
모든 인생이 로그아웃되면 더이상의 기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옥이냐 천국이냐는, 육으로 호흡하는 이 땅에서...
모든 것이 결론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