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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아끼시는 사람들~

작성자하늘시민|작성시간19.11.02|조회수65 목록 댓글 1
(말라기 3:13~18)

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우리가 믿는 신앙의 결과는 과연 무엇으로 판단받게 될까 궁금하다.
일반적으로 십일조를 하고 주일 잘 지키는 분들의 신앙이 좋다고 여기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을 주님이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잘 지키고 채소의 십일조까지 드린다고 자랑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꾸짖으시면서 ‘화있을진저’라고 책망하셨기 때문이다.
지금 읽은 말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는 신앙의 기준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를 원하다.

그것은 우리가 하는 말에 따라 의인인지 악인인지 우리가 하는 말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신앙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중하는 말인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가늠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들의 말이 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13절에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라는 표현은 출애굽기에서 열 가지 재앙으로 바로 왕을 심판하실 때 바로 왕이 끝까지 완악하게 하나님을 대적했던 완고한 태도를 말한다.

힘들 때는 회개하는듯 하다가 문제가 사라지면 바뀌지 않는 완고한 사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선악이 혼재하는 현실로 인해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 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때 쉽게 하나님을 향해 대적하는 말을 쏟아내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잘못을 부인하며 오히려 자신들이 옳다는것을 주장하려고 하나님을 비난하고 있음이 14~15절로 이어지는 말씀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

첫째로 그렇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은 무엇일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별히 선택받은 선민이었으면서도 불신앙의 모습을 너무도 많이 보이지 않았나 싶다.
불평이 끊이지 않았고 성의 없이 흠 있는 재물을 드리는가 하면 자신들의 잘못된 신앙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것들이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본문에 비추어볼 때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교회 항존직(恒存職)이 되어 시간 없다고 주일예배만 참석해도 된다고 하거나 수요예배 새벽기도 심야기도회에 빠져도 괜찮고 예배를 열심히 드리고 기도를 열심히 해도 헛되다거나 헌금을 드릴 필요가 없다고 하거나 봉사는 시간이 없으면 안 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신앙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말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질 것을 믿지 못하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함부로 내뱉는 불신앙의 말인 것이다.

15절에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 이렇게 지적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치관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교만한 자가 복되다’는 말과 ‘악을 행하는 자들이 번성하며’라는 말은 악을 행해도 심판이 없고 도리어 그른 것을 옳다고 하는바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뜻을 완전히 왜곡시키는 패악하고 파렴치한 행위로 회개의 여지가 전혀 없는 극악무도한 죄악이 아닐 수 없다하겠다.

이처럼 하나님을 조롱하고 시험하는 일들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악행이며 교회에서 자기 멋대로 불순종하고도 그것을 합리화시켜 정당화하고 남에게 거칠고 상처를 주는 말을 해도 들을만한 사람에게 했으니 괜찮다는 말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5:22)

둘째로 하나님이 아끼는 의인들의 말이 있음을 보여주고 계심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끼시는 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외함으로 존중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은 이들을 각별히 아끼시고 귀하게 여기신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있음을 곳곳에 기록해 놓으셨다.
16절에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는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들이 하는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들으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고 존중하는 자들이 악한 세상 가운데에서 믿음을 굳게 지키고 함께 나누는 신앙적 대화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부정적인 말은 입 밖에도 내지말고 항상 긍정의 말, 믿음의 말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또한 그들이 신앙적 결단으로 살아가는 삶의 세밀한 부분까지 살피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한다.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시기에 성도는 서로의 믿음을 세워주고 격려함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말과 선하심을 믿는 믿음의 말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자들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기념 책에 기록해 두신다고 하시지 않는가?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그리고 아끼시는 자들을 특별한 소유로 삼으시고 그들을 구별해서 주님이 정하신 날에 존귀와 영광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하고 계신다.
그때에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게 되고 그 차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노아시대에도 그러했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실 때도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철저하게 구별하셨다.
결국 신앙적 판단기준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항상 선한 말, 믿음의 말. 은혜의 말, 축복의 말을 즐겨 사용함으로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인정하시는 의인된 삶을 살아야할 줄로 믿는다.

(설교=김상원목사/정리=장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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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물망초 | 작성시간 19.11.0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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