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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의 전부이심

작성자봉서방|작성시간23.08.05|조회수92 목록 댓글 0

예수님은 우리의 전부이심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그리스도의 품성에 관한 지식에서 자라나는 것이 영혼을 성화시킨다. 속죄의 기이한 사업을 분별하고 옳게 평가하는 것은 구원의 경륜을 명상하는 자를 변화시킨다.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영광으로부터 영광에 이르러 그와같은 형상으로 변화함을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은 고상하며 세련시키는 과정이 된다. … 그리스도인이 열망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품성의 완전함이다.

 

우리의 마음에서 그리스도가 떠나서는 결코 안된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고 천사들은 그에 관하여 말하였다. 예수님, 보배로우신 구세주! 그 안에는 확신과 도움과 안전과 평강이 모두 거한다. 그는 우리의 모든 의심들을 내쫓는 분이시며 우리의 모든 소망의 중심이시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정복하신 것처럼 정복할 수 있도록 신성의 참여자가 될 수 있게 하신 것이야말로 얼마나 귀중한 사상인가! 예수님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을 충만히 가지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한 땅에서 우리의 모든 노래의 멜로디이며 큰 반석의 그늘이시다. 그는 갈한 심령에게 생수이시다. 그는 폭풍 가운데서 우리의 피난처이시다. 그는 우리의 의요 성화요 우리의 구속이시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예수님을 따르는 각 사람이 그의 싸움에서 혹은 인생의 투쟁에서 위로와 소망과 기쁨의 면류관이 된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진심으로 따르는 자는 전진하면서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고 외칠 수가 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어떠한 믿음인가? 그것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삼는 믿음, 곧 자기 스스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무력함을 전적으로 인식하고 그대의 유일의 소망으로서 능히 구원하실 수 있는 조력자(예수)를 붙드는 믿음이다. 그것은 실망함이 없는 믿음,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나의 신령한 능력은 그대의 것이다.”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 믿음이다

 

영속적인 동기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고후 5:14).

생애의 모든 활동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도록 노력해야 하는 바 곧 그의 봉사사업을 매력있게 나타내 보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무도 슬픔이나 한숨이나 또는 그들의 시련이나 극기나 희생에 관련된 것으로써 우리의 신앙을 내 쫓지 못하게 하라. 인내하지 못함과 이마를 찌푸림과 불평을 말함으로써 그대가 부르짖는 신앙에 거짓을 나타내지 말라. 성령의 은혜들이 친절과 온유와 인내와 명랑함과 사랑 가운데 나타나게 하라. 그대의 신앙이 적당한 환경에 따라 벗었다 입었다 하는 의복이 되지 말고 침착하고 확고하며 흔들리지 아니하는 원칙이 되도록 그리스도의 사랑이 영속적인 동기가 되게끔 나타내라. 아! 무서운 암과 같은 교만과 불신과 이기심이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으로부터 생생한 경건성을 좀먹고 있는가! 그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할 때에 그들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께 인정함을 받지 못하는 다만 번쩍이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음이 너무나도 늦게서야 알게 될 것이다.

 

예수께 대한 사랑은 알려지고 느껴질 것이다. 그것은 감취어질 수 없다. 그것은 기이한 힘을 작용한다. 그것은 수줍어하는 이를 담대하게 하며 게으른 자를 부지런하게 하며 무식한 자를 지혜롭게 만든다. 또한 그것은 말을 더듬는 자로 웅변가가 되게 하며 잠자고 있는 재간있는 사람을 일깨워 새 생명과 활기를 얻게 한다. 그것은 낙담된 자에게 희망을 갖게 하며 침울한 자로 기쁨을 갖게 한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랑의 소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한 책임을 받아들이고 그의 능력 가운데서 그 책임을 감당하도록 인도한다

 

순수한 사랑은 단순하게 작용하고 다른 모든 행동 원칙과 구별된다. 그것이 세속적 동기와 이기적 관심과 섞여 있을 때 그 순수성을 잃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하는 분량보다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가지고 일하느냐를 더 많이 생각하신다. 사랑은 하늘의 속성이다. 타고난 인간의 마음은 그것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이 하늘의 식물은 그리스도가 가장 높은 이름으로 군림하는 곳에서만 잘 자라도록 되어 있다. 사랑이 있는 곳에서는 생활에 힘이 있고, 진리가 있다. 사랑은 선을 행하며, 선 외에는 아무것도 행치 않는다. 사랑을 가진 사람들은 열매를 맺어 거룩함에 이르고 마지막에는 영생에 이른다

 

첫째 것은 첫째로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8).

사단은 미래의 세상 영광들을 흐려버리며 사람들의 모든 주의를 현세의 사물에 이끌고자 계속 일해 왔다. 그는 우리들이 영원한 실제에 대한 가치를 보지도 못하며 인식하지도 못하도록 우리의 생각과 염려와 수고가 일시적인 사물에 모두 사용되게끔 일들을 꾸미는데 노력해 왔다. 우리의 생각과 애정 가운데는 세상과 세상에 대한 염려는 너무나 큰 자리를 차지하였고 반면에 예수님과 하늘의 사물들은 너무나 작은 분량을 차지하였다. 우리는 양심적으로 매일의 의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또한 무엇보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거룩한 애정을 계발시킬 필요가 있다

 

하늘 사물들을 바라보는 것은 남녀들로 현세의 의무들을 수행하는데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더욱 효율적이며 충실한 생애의 의무를 수행케 한다. 영원한 세계의 위대한 실체는 마음을 매료시키고 주의를 집중시키며 전신(全身)을 기쁘게 한다. 더구나 영적계발에 수반하여 그리스도인은 생애의 일반적인 의무의 수행을 기쁘게 하는 안정되고 하늘의 부지런함이 주어진다. … 타락한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선물로 주시므로 나타난바 된 하나님의 사랑에 관하여 명상하는 것은 어떤 다른 것이 할 수 없으리 만큼 마음을 격동시키며 심령의 힘을 일으킬 것이다. 구속의 사업은 기이한 사업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우주에 있어서 오묘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한한 은혜의 대상들은 얼마나 무관심하게 여겨지고 있는가! …만일 죄나 또는 사단이 끊임없이 우리 앞에 펼쳐 놓는 어두운 장면을 명상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이 무디어지지 않았더라면 열렬하고 계속적인 감사의 물결이, 전혀 받을 가치도 없는 우리에게 매일 복을 주시는 분께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구속받은 자들의 영원한 노래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자신의 피로써 우리를 죄에서 사하신 그분께 찬양하는 °痼?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그 노래를 부르고자 한다면 이 세상에서 그것을 배워야만 한다.

 

하늘을 위하여 자격을 갖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우리는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을 향하여 여행하는 지상의 나그네와 순례자라고 자처한다. 우리가 참으로 거룩한 자 외에는 거할 수 없는 한 땅을 향하여 여행하고 있는 이 세상에 일시 우거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 본향에 관하여 잘 알고자 하는 것을 첫째 일로 삼을 것이며 동시에 그곳의 한 시민이 되기 위하여 필요되는 준비에 관해서 또는 우리가 소유하여야 할 품성과 예의에 관해서 부지런히 연구할 것이다. 그 땅의 왕되시는 예수님은 순결하고 거룩하시다. 그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벧전 1:16)하라고 명하신다. 우리가 내세에 그리스도와 죄 없는 천사들과 더불어 교제하고자 원한다면 이 땅에서 그러한 사회를 위하여 자격을 갖춰야만 한다.

 

이것은 우리의 사업이다. 곧 가장 중요한 사업이다. 그외의 다른 생각은 덜 중요하다. 우리의 대화, 우리의 태도,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가정과 이웃과 세상으로 하여금 우리는 보다 나은 본향을 향하여 곧 이사하고자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으리만큼 되어야 한다. … 자신의 행위로 매일 믿음이 굳어지고 강하게 되는 자들은 식욕을 제어하기 위해 자신을 억제하게 된다. 또한 모든 사상과 감정을 하나님의 뜻에 조화시키기 위하여 야심적인 욕망을 제어하게 된다. … 우리들이 여행하고 있는 땅은 모든 의미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되었던 가나안 땅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이스라엘이 그 좋은 땅을 바라 볼 수 있었던 때에 그들의 행진을 멈추게 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을 돌이킨 것은 그들 자신의 고의적인 불신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허락 가운데서 무엇이나 모험하기를 원치 않았다. … 이스라엘 자녀들의 역사는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고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도 말하자면 하늘 가나안의 바로 변경에 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허락에 대하여 믿음을 가졌다면 우리의 대화나 행동 가운데 우리는 이 세상을 위하여 살지 않고 거룩한 땅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을 첫째 일로 삼고 있음을 나타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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