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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작성자천향|작성시간23.12.21|조회수61 목록 댓글 0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6:9-15)

 

주기도문은 새 시대의 기도이다.

이는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와는 다른 천국 백성의 기도이다.

주기도문은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에서 언급된다.

누가복음 11장의 주기도문 도입문은

    “제자 중 하나가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이다(눅11:1).

결론문은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는가”

이다(눅11:13).

누가복음은 하늘의 아버지께 강청하면 좋은 것 성령을 주신다고 말한다.

이처럼 누가복음은 의인들의 소망을 성취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말한다.

구약의 의인은 언약에 부착한 이스라엘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하며 기도하고 순종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구원역사의 성취를 강조한다.

그래서 요한의 기도 뒤에 주기도문을 배치하며

하늘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주신다고 결론을 짓는다.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은 종말의 하나님 나라 백성의 기도를 말한다.

성령께서도 하나님 나라의 의로운 백성을 지으시는 약속의 영이시다.

이처럼 누가복음은 세례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와 연계하여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언급하고 있다.

유대인들에게는 세 가지의 기도문이 있다.

첫째는 쉐마인데 이는 아침과 저녁에 암송하는 신앙고백이며 기도문이다.

둘째는 데필라인데 이는 아침과 오후, 저녁에 드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문이다.

마지막으로 카도쉬는 회당 예배에서 설교 후에 드리는 공적인 기도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은 카도쉬와 대비되는 기도문이다.

 

마태복음의 주기도문 도입문은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이다(마6:9).

이는 외식하는 자의 기도와 대비하여 천국 백성의 기도를 가르치는 문맥에서 언급이 된다.

그리고 결론문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다(마6:15).

이는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나님께서도 용서하시며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마태복음은 종말의 천국 복음을 말한다.

이는 종말에 보내신 아들을 통해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사역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선지자의 예언대로 포로가 된 다윗의 집을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복음을 말한다.

따라서 종말의 천국은 이스라엘과 율법을 완성하는 하나님 나라이다.

이는 휘장 밖에 세워진 종(머슴)이던 이스라엘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은 하나님의 아들로,

옛 백성과 세상에 대한 통치질서인 율법을 하늘의 질서로 온전케 한 하나님 나라이다.

따라서 천국 율법은 모세율법을 완성한다.

천국 백성의 기도도 사랑으로 하나가 된 새 백성의 기도이다.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은 이스라엘의 회당 예배의 기도와 대비된 천국 백성의 기도문이다.

예수께서 모세 율법과 대비하여 천국의 율법을 가르치신 것처럼,

외식하는 자들의 회당 예배 기도문인 카도쉬와 대비하여 천국 백성의 기도를 가르치신다.

학자들이 제시한 가장 오래된 카도쉬 내용은

    “주께서 뜻을 따라 창조하신 세계에서 주의 위대한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옵고,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의 나라가 당신의 생전에,

     당신의 날 동안에,

     모든 이스라엘 집이 살아 있는 동안에,

     빠르게 속히 임하옵시며,

     주의 위대한 이름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아멘”

이다.

 

주기도문의 구조는 하나님에게 구하는 내용과 우리를 위한 내용으로 구분된다.

하나님께 구하는 항목은 셋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를 위한 항목은 넷이다.

그것은 ‘일용할 양식’과 ‘죄 사함’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는 것’과 ‘악으로부터 구원’이다.

그런데 누가의 주기도문에는 ‘하나님의 뜻’과 ‘악으로부터의 구원’ 항목이 언급되지 않는다.

이러한 두 항목 차이 외에는 대부분이 일치한다.

이러한 차이는 두 복음서의 차이이다.

기도의 항목들은 별개가 아니라 서로 상응한다.

마태복음의 기도 대상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름은 율법 아래의 호칭과는 다르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이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그 누구도 여호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였다.

이는 그들은 휘장 밖 죄 아래에 세워진 종(머슴)의 신분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휘장의 장벽을 두시고 이스라엘을 대하셨기 때문이다.

또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하늘의 성소가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지어진 땅에 속한 성소인 예루살렘 성전에 계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고 기도하였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구약의 경륜과는 다르게

기도의 대상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가르치신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기도의 대상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임을 강조하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로 알리신다(출6:1-8).

백성에게 나타내신 이름은 그 이름대로 그들의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천지 창조주 여호와이시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고백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 이름을 부르는 백성이다.

이는 그들은 하나님 여호와를 경배하는 백성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과 여호와와의 관계는 죄로 인한 휘장이 장벽이 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종(머슴)의 신분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주라는 칭호로 대신하였다.

주라는 칭호는 율법으로 판결하시는 재판장을 가리킨다.

그러나 아람어 ‘아버지’는 우리 말 ‘아빠’에 해당하는 매우 친근한 호칭이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동안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부르셨다.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가르치신다.

그러므로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높이는

신성 모독죄를 범한 자로 판정하여 십자가형을 처하였다.

이처럼 하나님 아들이라는 예수의 자기주장은

모세율법을 대적하고 허무는 이단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시다.

이처럼 마태복음은 기도의 대상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심을 강조하나

누가복음에서는 ‘아버지’라 부르라고 말한다.

마태복음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호칭은 공적인 성격이 두드러지고

누가복음의 ‘아버지’는 개인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차이 때문이다.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은 외식하는 자들의 회당 예배 기도와 대비된 천국 백성의 기도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외식하는 자를 본받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라”

고 가르치신다(마6:7-8).

 

공생애 동안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우리 아버지’로 부르라고 가르치신다.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아버지로 나타내신 하나님 아들이시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르치신 일은 하나님 아들로서 행하신 사역이다.

이것이 종말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신 목적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속량하셔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한다(갈4:4-5).

이러한 사실을 잘 나타낸 복음서가 요한복음이다.

요한복음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믿고 그와 함께 거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는 영생임을 말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도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계시하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말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가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고 기도하신다(마11:25-27, 눅10:21-22).

이처럼 아들은 아버지와 아무런 장벽이 없이

가장 가깝고 친밀하며 하나가 된 아버지의 계시자이다.

 

마태복음 5장의 천국 율법은 정죄하는 모세율법이 아니라 옛사람을 구원하는 율법이다.

이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구원하는 천국 질서의 선포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6장의 천국 백성의 경건도 사람에게 보이는 경건 생활이 아니다.

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은밀하게 보시고 상을 받는 경건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

천국 백성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불러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서 예배한다.

이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하나가 된 사랑과 거룩함과 능력의 경건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 하나님은 그냥 ‘아버지’이시다.

누가복음의 아버지는 의인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강청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는 아버지이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처럼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며 강청하여 기도하라고 권면하신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시다.

그는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시다(마6:8).

그러므로 이방인처럼 말을 많이 하거나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마태복음의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알고 주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누가복음의 ’간절히 구하는 아들에게 가장 좋은 성령을 주시는 하늘의 아버지‘는 서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점은 두 복음서의 강조점 때문이다.

누가복음은 의인이 소망하며 기도하던 종말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말하나

마태복음은 무너진 다윗왕국을 하늘의 질서로 온전케 하신 종말의 천국 복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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