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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오기 전과 후의 역사적인 상황3.

작성자천향|작성시간24.09.30|조회수38 목록 댓글 0

믿음이 오기 전과 후의 역사적인 상황3(갈3:23-4:7)

 

바울 사도는 구원 역사적으로 율법과 복음을 대비한다.

이는 사람 중보자 모세와 아들 중보자 예수의 대비이기도 하다.

이처럼 율법과 복음을 대비함은 갈라디아교회가 바울이 전한 복음에 거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 방식이 예수를 보내심에서 새로운 전환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옛 언약을 따라 시행되던 율법통치가 종결되고

예수를 통한 새로운 통치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세상 통치방식을 믿음이 오기 전과 온 후로 구분한다(갈3:23-29).

믿음이 오기 전에는 율법으로 다스리셨으며

믿음이 온 후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스렸다고 말한다.

율법은 이 세상 초등교사이며(갈3:24) 그리스도는 믿음과 같다고 말한다(갈3:25-27).

여기의 믿음은 신약 백성의 신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리킨다.

이는 예수께서는 자신을 율법 아래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신뢰하셨으며

이러한 그리스도의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온전케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주이시며 온전케 하신 분이시다(히12:2).

이처럼 바울이 율법을 이 세상 초등학문 선생으로 말하고(갈3:24, 4:3)

그리스도의 믿음을 강조함은

그리스도의 믿음은 아브라함 언약과 율법의 완성체이기 때문이다(갈2:16).

믿음이 왔다는 것은 언약에 대한 하나님 신실하심의 성취이며

이는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의 오심이다.

따라서 예수의 오심은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하신 결과이다.

이는 예수의 믿음이 나타난 근거이기도 하다(갈3:25,).

따라서 믿음이 오기 전에 이스라엘은 율법의 통치 가운데서 살았다(갈3:23).

따라서 이스라엘의 의로움은 언약에 신실함이며 이는 율법에 부착함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신 이후에는,

그리스도의 믿음이 온 이후로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한다.

이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가운데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믿음은 아브라함 언약의 열매이다.

따라서 아브라함 언약의 발전 순서는 약속-율법-그리스도이다.

그런데 바울은 약속-초등교사-믿음의 순서로 설명한다.

이는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의 완악한 수준,

종(머슴)과 어린아이와 같은 이스라엘을 보존하고 인도하는 율법의 역할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 세상 초등학문 교사인 율법과 그리스도의 믿음을 대비함은

율법이 인도하는 목표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이는 율법을 주신 목적이 종(머슴) 된 백성인 이스라엘을 하나님 아들(자녀)로 완성함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말하는 믿음은 아브라함이 소망하였던 믿음이다.

이는 종말에 보내신 하나님의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믿음을 가리킨다.

이는 율법 아래에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신실하심 곧 하나님의 믿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 아들(자녀)이 되었다(갈3:26).

그래서 두 번째 문단에서는 하나님 아들(자녀)이 된 자의 상속권과 상속의 과정을 말한다(갈4:1-7).

이 문단의 주제문은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이다(갈4:1-2).

유업의 상속권은 종(머슴)이 아니라 아들에게 있다.

그러나 아들이 어렸을 때는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이 세상 초등학문 교사인 율법 아래에 있었다(갈4:2).

이는 예수를 만나기 전에 바울과 제자들이 율법 아래에 있던 것과 같다.

그러나 때가 차서 아들이 장성하게 되면 아버지 유업을 상속하는 상속자가 된다.

그리스도의 믿음이 옴으로 율법 아래에 있던 자들이 유업(천국)을 상속받는 아들(자녀)이 된 것이다.

바울은 당대에 누구나 아는 상속권과 상속의 과정으로

이 세상 초등교사인 율법과 그리스도 믿음을 대비하여 설명한다.

 

바울은 상식적으로 아는 일을 예로 들어서

    ”내가 다시 말하노니“

라고 상속권과 상속 과정을 설명한다(갈4:1).

상속권의 유무와 상속 과정이 중요함은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유업은 가나안 땅이다.

가나안땅에 대한 상속권과 상속받는 과정은 아브라함 후손으로 태어나서 할례를 행하는 것이다.

아브라함 혈통을 따라 태어나서 할례를 행함으로 여호와 언약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처럼 아래로부터 나서 할례를 행하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유업인 가나안땅을 상속받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유업은 구약의 하나님 나라이다.

이 나라는 이 세상 초등학문인 율법으로 경영되는 땅에 속한 나라이다.

이는 가나안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복을 받은 나라라는 말이다.

이처럼 아브라함 언약은 혈통을 따라 태어나서 할례를 행함으로 상속을 받는다.

이처럼 모든 민족은 아브라함 복에 참여하게 될 것이었다(창12:3).

모든 사람이 받을 복이 무엇인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여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창24:12, 26-27).

이것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내용이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전하신 복음이다.

그런데 아브라함 상속자는 육체의 방식으로 태어난 이스라엘이 아니라

약속을 따라 태어난 이삭이다.

이삭은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진 아브라함 아들이다.

이삭은 비유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을 받은 상속자이다.

그러나 이삭까지라도 죄와 죽음 아래에 종속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종말에 그 아들을 유대 땅에 보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의 질서로 성취가 된다(갈3:16).

 

아브라함 약속은 종말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에서 완성된다(갈2:16).

이제는 누구든지 믿으면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리스도로 옷 입으며

예수께서 아버지로부터 상속한 종말의 하나님 나라인 천국을 상속받는다.

이처럼 아브라함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되기까지,

이스라엘은 당근과 채찍으로 위협하는 율법의 지도와 인도를 따라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살았다.

이러한 구원 역사적인 해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 언약의 완성자로 오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옛 언약과 모세를 통해서 주어진 율법,

구약의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신 것이다.

이러한 종말론적이며 기독론적인 해석이 없이,

율법(구약성경)을 그리스도의 그림자와 유형(예표)으로 생각한다면,

그래서 구약 백성들도 오실 예수를 바라보고 믿었다는

개혁신학의 주장은 성경에서 어긋난 가르침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창조세계의 기본질서인 시간과 공간의 질서를 무시하고,

종말에 이루어진 그리스도 구속의 효력을 역주행하여

구약 백성들에게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에 사신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신구약 백성이 살아가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각 시점에 형성된 공간 속에 들어오셔서 각 시대 자기 백성과 함께 사신다는 말이다.

한번 생각해보라.

개혁신학 주장대로 구약 백성들도 오실 예수를 믿었다면 그들도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으로서 해마다 돌아오는 대 속죄일에 짐승 제물로 제사하면 되겠는가?

예수를 믿는다는 자들이 대대로 할례를 행하면 되겠는가?

예수와 공생애를 동행하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해석한

사도들의 증거가 없는 구약에서 예수를 믿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우리는 사도들의 토대 위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그런데 구약 백성들은 누구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인가?

이처럼 개혁신학은 이방 철학의 방식을 따라

세상 질서가 없는 영원세계에서 성경을 바라보고 해석한다.

헬라 철학의 뼈대를 따라 개진된 결과물이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개혁신학은 로마 카톨릭의 뼈대를 바꾸지 않고 그 위에서 반박한 가르침이다.

따라서 개혁신학(칼빈주의 신학, 장로교 신학)의 내용도 이방 철학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한다.

 

바울은 때가 차서 주어진 상속권에 대하여

    ”이와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라고 말한다(갈4:3).

여기에서 언급한 우리는

이 세상의 초등학문인 율법 아래에 있던 바울과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율법을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지칭함은

율법이 휘장 밖의 세상 질서를 따라 시행된 여호와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는 율법이 종(머슴)과 어린아이인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치는 초등교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종말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실 때까지,

이스라엘은 율법을 따라 여호와와 동행하도록 세우심을 입었다.

이어서 바울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한다(갈4:4-5).

때가 찼다고 함은 참되고 온전한 하나님 뜻이 시행될 시점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는 율법 아래에서 종(머슴)이던 자들을 아들(자녀)로 온전케 할 시점이 되었다는 말이다.

상속자가 됨은 율법이 명령하고 가르치는 삶의 방식,

종(머슴)과 어린아이로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떨쳐내고,

아버지를 대리하는 아들(자녀)로 살아감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 아들(자녀)이 되었다면

더는 모세율법(구약성경)을 따라 살면 아니 된다는 의미이다.

율법 아래에서 속량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속량이란 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사는 상업적인 언어이다.

속량의 방법이 대해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라고 말하며(갈1:4)

3장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라고 설명한다(갈3:13).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다(갈4:4).

하나님 아들이 여자에게 나심은 율법 아래에 나신 일이다.

이처럼 율법 아래에 나셨으므로 예수께서도 율법 아래에 매이셨다.

율법 아래에 매이셨다고 함은 죄와 죽음 아래에 매이셨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율법 아래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반드시 피를 흘려야 한다.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율법은 반드시 죽음을 요구한다.

이러한 율법 아래에서 속량이 되면 하나님과 아무런 장벽이나 가림이 없다.

하나님과 가장 가깝고 친밀하며 하나가 된 아들(자녀)이 된다.

하나님 아들(자녀)이라는 명분을 얻는다.

이처럼 성경이 말하는 종이나 아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나타내는 언약언어이다.

이처럼 율법으로부터 속량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아들(자녀)은 율법과 상관이 없다.

율법이 명하는 성전제사나 제사장 제도, 십일조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 아들(자녀)은 양자의 영으로 새롭게 지어진 자이다(갈4:5-6).

이처럼 바울은 율법 아래의 종(머슴)과 율법으로부터 속량을 받은 아들(자녀)을 대비한다.

따라서 하나님 아들(자녀)은 율법과 상관이 없다.

이는 율법 아래에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여자에게서 난 자는 육체의 방식으로 난 자이다.

이는 천국에 대한 상속권이 없는 이스라엘처럼 종(머슴)을 가리킨다.

이처럼 바울은 율법 아래에서는 상속권이 없는 종이었음을 말한다(갈3:4:1-3).

그러나 그리스도의 믿음에 참여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아들은(갈4:6)

이삭처럼 성령으로 출생한 새 이스라엘이며

종말의 하나님 나라인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다(갈4:7).

이처럼 상속자인 하나님 아들(자녀)로 세워지는 출생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고 말한다(요1:12).

 

 

하늘에 속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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