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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명2

작성자천향|작성시간25.02.15|조회수36 목록 댓글 0

인간의 생명(2)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과 같다.

부모는 어린 자녀의 수준에 맞춰서 대화하고 동거한다.

자녀의 수준에 맞춘 만남과 대화, 교제와 식사, 동행을 통하여 장성한 자녀로 양육한다.

자녀는 부모와 맺은 약속을 수시로 깨뜨리나

부모는 약속에 대한 신실함을 따라 새로운 약속을 맺고

자녀의 수준에 맞춰진 상과 벌을 약속한다.

이러한 상과 벌은 부모가 원하는 인격으로 양육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각 시대 백성과 맺은 언약으로 구원역사를 이끌어가신다.

각 시대 백성과 맺은 언약을 따라 구원 경륜을 집행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 사역을 통하여 첫 창조는 성장하고 발전하여 그 완성에 이른다.

그런데 하나님의 옛 뜻과 경륜은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진행된다(히1:1-2).

이는 종말에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기 전이기 때문이다.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신다(갈4:4).

이는 하나님 자신이 직접 나섰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전면에 나섬은 때가 찼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참되고 온전한 뜻과 경륜을 시행해야 하는 때,

모세율법과는 다른 하나님의 뜻을 시행해야 하는 시점이 다다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은 종말론적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적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적인 존재이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 형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드시고 생기를 호흡하셔서 산 영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창2:7).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심은 역사를 동행하기 위함이다.

각 시대 백성과 만남과 대화, 식사와 동행을 통해서

창조된 세상을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으로 완성하기 위함이다(계21:1).

이러한 교제와 동행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만 이루어진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는 각 시대 중보자와 맺은 언약에 신실함으로 주어진다.

언약에 신실함은 언약 당사자로서 언약 내용을 이행하는 것이다.

에덴에서 아담은 선악과 언약에 신실함으로,

에덴 동편의 땅에서 노아와 자손들은 무지개 언약에 신실함으로,

족장들과 그의 후손들은 아브라함 언약에 신실함으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 언약에 신실함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는다.

이처럼 언약이 신실함이 각 시대 백성들의 의로움이다. 

따라서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않음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는다.

이처럼 각 시대 언약에 신실함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는 일이다.

 

인간의 생명은 성장하고 자란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을 앎이다.

그런데 아담의 생명은 완성된 생명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담에게 주어진 생명은 구원역사의 출발점에서 주어진 생명이다.

이 생명은 역사에서 성장하고 자라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생명이다.

이러한 생명을 완성하기 위하여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신다.

이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

율법 아래에 있던 제자들과 같은 백성의 생명을 온전케 하기 위함이다.

이는 율법 아래에서 종(머슴) 된 백성을 하나님 아들로 온전케 하기 위함이다.

율법 아래에서 휘장으로 가리신 여호와를 아는 생명을

아버지로 아는 영원한 생명으로 온전케 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아담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영원한 생명으로 완성된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은 어떤 생명인가?

성령 안에서 아버지를 알고 교제하는 아들의 생명에 믿음으로 참여함으로 누리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누리게 된다.

이는 믿는 자들을 삼위 하나님의 교제에 참여케 하셨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서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하나님 안에 거한다.

     하늘에 세워졌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양자의 영을 받았다”

라고 말한다.

또 요한계시록은

    “이기는 자는 이것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희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라고 기록한다(계21:7).

 

종말에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생명

 

인간 생명의 성장은 언약의 갱신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언약의 갱신은 하나님 사역의 내용을 결정하며

하나님 사역 곧 계시는 인간 생명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 사역은 당대 백성들에게는 생명의 말씀이다.

이처럼 아담의 생명은 역사에서 그 완성을 향하여 성장한다.

따라서 아담의 생명은 에덴의 질서에서 주어진 생명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완성될 생명이다.

종말에 완성된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을 알되 아버지로 알고 섬기는 생명이다.

옛 백성과 이스라엘처럼 휘장으로 가리신 하나님을 아는 생명은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앎이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기는 하나님 아들(자녀)이 참된 하나님의 가족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앎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에 참여함으로 주어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에 참여함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된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이다”

라고 말한다(롬1:17, 3:22).

이처럼 참되고 온전한 믿음은 종말에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다(갈3:23-29).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기는 참된 믿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종말에서야 나타난다.

종말에 이르러서야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를 신뢰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소개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신 일이다.

율법 아래에 보내심은 죽음의 자리에 보내심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아버지를 신뢰하는 믿음으로 죽음의 자리를 향하여 나아가셨다.

이는 율법 아래에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다.

아버지의 뜻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라는 것이다.

그것은 율법의 요구를 따라 죽으라는 것이다.

유월절 어린 양으로 율법의 저주를 짊어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 아래의 일들은 죄의 울타리 안에서 아래에서 나타낸 은혜의 일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율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은혜의 일이다.

죄와 사망과는 상관없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와 생수를 먹고 마셨으나 다 죽었다.

     그러나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

     이는 내가 생명의 떡이기 때문이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죽지 아니하게 한다.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다”

라고 말씀하신다(요6:47-55).

 

이처럼 인간의 생명은

에덴에서 율법 아래에서 휘장으로 가리신 하나님을 앎으로 성장하여,

종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기는 영원한 생명으로 완성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서 한 몸이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았다.

우리의 육체까지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았다.

하늘에 앉았다고 함은 하나님 보좌에 좌정하신 그리스도의 권세와 영광에 참여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시행하시는 그리스도의 통치 가운데 거한다.

따라서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소이다.

이를 가리켜서 사도들은 영에 속하였다고 말한다.

영에 속하였다고 함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영에 속하였다고 함은 헬라철학의 이원론적인 개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는 구원 역사적인 의미이다.

 

 

하늘에 속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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