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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글]]A. W 토저가 이 시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남긴 말

작성자cephas-77|작성시간08.04.07|조회수141 목록 댓글 0

우리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참예배를 드리려면 우리 안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이 활동하셔야 한다. 하나님은 성령 없는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A.W 토저


 

오늘날 교회는 ‘허영의 시장’(vanity fair)으로 변해버렸다. 경건의 강(江)은 없고 여기저기 작은 경건의 웅덩이들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강이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강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올바른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귀는 허영의 소리를 향해 열려 있다. 기독교는 허영의 종교가 되고 말았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높아지기 위해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기를 내세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 A.W 토저

 

 

오늘날의 도덕적 풍토는 우리 주님과 사도들이 가르친 엄하고 질긴 신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현재 종교적 온실(溫室)들에서 만들어지는 허약하고 깨지기 쉬운 성도들은 과거에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증거하다가 죽어간 신자들에 비교하면 참으로 한심하다고 할 수 있다.교회들은 유약한 그리스도인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무엇인가 재미있는 것들로 즐겁게 해주어야만 교회에 나온다. 그들은 신학에 대하여 거의 알지 못하며, 유명한 기독교 고전을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연약한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기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신앙을 힘 빠진 손으로 겨우 붙들고 있을 뿐이다. -A.W 토저

 

 

진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승리를 믿기 때문에,그 승리에 참여하기 위해서 어떤 고난도 마다하지 않는다. 진짜 그리스도인은 험한 십자가를 부끄워하지 않으며  솜사탕 복음을 거부하고 가시면류관 복음을 믿으며  주님의 ‘일’보다 ‘주님’에 우선순위를 두며 행복보다 거룩을 열망한다.- A.W 토저 

 

왜곡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성경 본문들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다른 본문들은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될 수밖에 없다. 가짜그리스도인은 인스턴트이며 인격의 변화를 소홀히 하며  하나님의 징계를 십자가 지는 것으로 착각하며 행함으로 죄용서함을 받으려 하며 신조를 무시하며 신학을 경시하며 영적균형감이 없다 A.W 토저

 

그리스도인들이여, 무릎 꿇고 세상을 흉내 내지 말라!적당히 타협하며 편하게 살고 있는가?

 

하나님은 그 편한 길을 철저히 반대하신다! 세상과 불화하라.겁먹지 말고 당당히 맞서라!

 

 

과거에 세상이 교회를 따랐던 적이 있었다. 교회가 주도권을 쥐고 앞장서 나갔으며, 세상을 교회를 뒤따랐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반대이다. 지금은 교회가 무릎을 꿇고 세상을 흉내 내고 있다. 과거의 교회는 어린양의 아름답고 혈색 좋은 신부(新婦)였으나, 지금의 교회는 쪼글쪼글한 늙은 걸인 같다. 지금의 교회는 세상의 거리로 나가 세상 사람들에게 동전 한 닢을 구걸하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다. 한때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떤가? 오늘날 교회는 "제발, 우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면에서 당신들과 똑같습니다" 라고 말한다. 오늘날 기독교가 그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아 부으면서 세상에 전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적 기독교와 세상을 섞어놓은 기독교, 즉 '혼혈(混血)기독교'를 전하지 않는가? 명심하라. 십자가의 기독교는 세상의 비위를 맞추려고 아첨하지 않는다. 과거의 교회는 세상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의지할 분은 하나님뿐이오니 우리를 도우소서" 라고 기도했다.

교회는 자신의 성경적 원리 위에 우뚝 서서 세상에게 성령님의 음성을 들려주어야 한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올 것이다 - A.W 토저

 

십자가의 기독교는 세상의 비위를 맞추려고 아첨하지 않는다. 십자가의 기독교는 세상과 타협하며 미지근하게 살지 않으며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깨끗한 인격으로 성령과 동행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기적 즐거움’에서 구하고, 우리에게 ‘무욕의 즐거움’을 주시기 원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살지 않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세상 안에서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자세로 살아갈 때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 - A.W 토저


 

헛소리와 감언이설에 속지 마라! 세상이 주는 힘보다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진정한 힘을 믿어라!

 

사이비 심리학에서는 “무한에 접속(接續)하라”, “네 안에서 잠자는 거인을 깨워라”, “너의 감추어진 잠재력을 살려라”,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워라”, “마음에 믿는 대로 된다”라는 헛소리와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다. 이 말들이 주사 한 대 맞으면 반짝하듯이 일시적으로 심리적인 효과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효과를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위로부터 임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알지 못한채 다만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희망을 걸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게 평가하려고 노력해도,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그것은 이것이 기독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긍정적 사고방식의 힘 따위를 믿는 것과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능력을 믿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이런 잡스러운 것들에 현혹되지 마라. 기독교는 인간의 전적 무능력을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분의 능력은 다른 세계(하늘)로부터 임하는 능력이요, 부드럽지만 저항할 수 없는 능력이요, 무능한 인간에게 임하는 은혜이다. 이것은 인간의 내부에서 끌어 낼수 있는 어떤 능력보다도 무한히 큰 도덕적 능력이다. 이것은 다른 보조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족적(自足的) 능력이다. 이것은 도덕적 능력이 필요한 연약한 사람들에게 임한 성령님의 능력이요, 은혜이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위로부터의 능력을 알지도 못하고 사모하지도 않는다. 인간적인 정교한 장치들과 제법 그럴듯한 흥분을 조장해내는 성공 최면술이 성령의 감동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가짜 성령이 진짜 성령의 자리를 꿰찬 공백의 냉랭한 파급효과를 처참하게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비극이다.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기독 교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것은 더더욱 비극이다. - A.W 토저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는 ‘이 시대의 자녀’로 살아가야 하는 제약을 지니게 된다. 깨어 있지 않으면 이 시대정신에 물들지 않을 수 없다. 탐욕에 기반을 둔 무한경쟁의 살벌한 정글법칙이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을 세뇌하고 있다. 그리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신의 야망 실현을 ‘비전’의 미명으로 정당화하고 기도응답으로 호도하고 있지는 않는가? 세상 사람들의 출세 방식과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면서 추구한다는 출세 방식 사이에 과연 다른 점이 있는가? 예수님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에 대해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마 10:16)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리가 득실거리는 세상에 ‘양’으로 보냄을 받았다. 그런데 주변의 많은 이리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양이 이리를 벤치마킹하여, 자신의 발톱을 날카롭게 기르고 송곳니를 부지런히 숫돌에 갈아 드라큘라의 이빨처럼 만들었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기형(奇形) 양이 되면 이리를 이길 수 있는가? 오히려 달아나는 데 지장을 초래하여 더 빨리 잡아먹히고 만다. 양으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양육강식의 세상(이리)의 성공법칙으로 무장하는 것이 바로 이 기형의 웃기는 양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금 한국 기독교계는 죽은 정통에 대한 경계경보를 발해야 할 때이다. 죽은 정통은 성령 체험을 성령에 관한 교리 나열로 대체한다. 그리하여 성령의 거듭남의 변화가 없는 교양강좌 같은 성경공부와 성령의 성화(聖化) 사역을 의지하지 않는 인본적 자기계발(self-help) 강좌가 기독교계에 만연하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의 결과는 무엇인가? 능력 없는 기독교, 세상과 혼합된 기독교이다. 자신이 성령으로 변화되지 못했으니 세상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변화되지 못한 자신이 변화되지 못한 세상을 보니 부담 없는 친구처럼 보여서 세상과 혼합되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 믿음의 선배들처럼 성령님을 열망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스도인들이나 교회가 살 만해져서 성령님이 없어도 자본력으로 꾸려나갈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성공이란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 세상이 천국으로 보일 때, 당신이 하나님의 궁전에 있다고 느껴질 때, 당신이 천사들 틈에 끼여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만물에 대한 경이감에 사로잡힐 때, 그때 비로서 당신은 이 세상을 제대로 즐기는 것이다.”

- A.W 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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