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께서도 영원한 분이심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 1:20-21)고 사도 베드로는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 전’에 계셨던 분으로서 아담 후에 타락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사(사 53:4-7, 10-12), 곧 말세 초기에 오사 대속의 피를 흘리신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에’ 그의 피야말로 신․구약에 속한 모든 죄인의 영혼을 씻어 새롭게 하신 것이다(벧전 1:22).
칼빈은, 이 점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의미로 말하였다. 곧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시기를 예정하실 때에 특히 신약 시대를 지정하신 것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대한 비상한 은총인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그 나타나심은 돌연적 또는 우연적이 아니고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경륜해 오신 사실이니 만큼, 우리의 신앙을 끈다”라고 하였다. 이는 죽었던 영혼을 소생케 하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죽으심이 인류의 영혼을 속량하기 위한 죽음이었다.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셨다’ 하신 것을 보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켜 승천케 하신 것은 인류의 영혼의 산 소망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과 동시에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는 일을 계속 하신다(행 2:33).
그러므로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여기 이른바, ‘소망’이란 것은 영생의 소망이라고 했다(벧전 1:11, 3:15). 그리스도의 보배 피로써(벧전 1:19) 구속받은 성도의 영혼은 지극히 넓으신 예지와 예정의 계획하에 이루신 사실로써, 이 하나님의 예지와 예정의 경륜을 떠나서 그리스도를 보려는 자는 어리석은 자에 속한다.
전능 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죄 가운데 빠져 허우적거리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믿을 수도 없고,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후에 3일만에 살리시고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을 믿을 수 없는 것을 알게 함이다. 다시 말하여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이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시다(롬 4:24, 10:9).
예수님은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에 영원한 속죄를 이뤄(히 9:12)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히 10:12), 죄 사함도 영속하신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사 오늘도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히 1:3, 8:21).
(1) 예수님은 창조 전에 계신 분이심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알파와 오메가’. 헬라어 문자의 첫 글자와 끝 자를 가리킨다고 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시작하신 신이시고 또한 귀정 결말하시는 신이라는 뜻이다(계 22:13).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출 3:14). 하나님 ‘영원 자존 자’는 피조계를 창조하시기 전에 스스로 자존하시사 그의 뜻은 불변하시고 피조계와 만물을 그 기쁘신 뜻대로 주관을 동참하신 예수님이시다.
박윤선 목사는 말하기를 전능한 자. 헬라 원어로 ‘판토크라토-르’이니 재림하실 자가 가지지 않으면 안될 속성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우주의 최종적 귀정을 하실 주님이 무소 불능하시지 않을 리는 만무하다(박윤선 목사 주석 계 p.52).
혹자는 말하기를 알파와 오메가라 이는 ‘처음과 끝’, ‘시작과 나중’, ‘전체와 완전함’을 뜻한다고 한다. 본문은 하나님 자신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존재하시는 분이요 우주 만물을 시작케 하신 창조자이시자 심판하는 최후 심판자이시란 의미다(계 20:11-15).
(2) 예수님은 땅 위에도 계셨던 분이심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계 1:4). 또한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계 2:8)라고 하였다.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이는 출애굽기 3장 14절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계셨던 전능한 하나님으로서 영원 불변하심과 절대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며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실 것임을 암시하는 말이라고 해석도 한다(말 3:6).
(3) 예수님은 장차 오실 분이심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계 1:4),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부활하셨다(고전 15:20, 23, 행 26:23).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란, 창조하기 전에 계신 삼위일체이신 독생자께서 타락 세상에 속하여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키 위하여 대속하시고 다시 살아나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가 산 자의 영혼을 심판 중에 구원하시려 오시는 재림 예수님이시다.
(4) 대제사장 예수님은 영원한 분이심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히 7:21).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심은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으로 오실 것을 예언한 시인은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제사장직도 겸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는 인류의 영혼을 속량하기 위하여 제물도 되시면서 동시에 대제사장도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히 10:12, 막 16:19).
‘영원(永遠)한 제사를 드리시고’. ‘한’ 과 ‘영원한’은 율법에는 매일매일 제사를 드렸으나 표현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을 나타내나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인류의 죄를 하루에(단번 제사)(슥 3:9) 단 한번만으로 속죄한 것이다(요 1:29, 롬 3:23-24, 마 20:28, 엡 2:12-18, 히 9:11-14, 10:12).
혹자는 말하기를 ‘같은’은 무의미한 지속을 뜻하지만 ‘영원’은 유의미한 지속을 의미한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바쳐 드린 제사는 옛 구약 율법의 규정에 따라 드려진 제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완전한 제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