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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가 부정선거 음모론자인가..

작성자내일이여오라|작성시간02:57|조회수20 목록 댓글 1
내가 부정선거 음모론자인가?


          미 해군대학원


미국은 해군의 나라다. 미 국방예산의 60%가 해군 예산이다. 미해군은 전쟁을 수학으로 하는 나라다.
신출귀몰하는 독일 잠수함 U-보트를 제압한 존재는 역전의 용사가 아니라 청년 수학자들이었다.
그래서 미해군은 해군장교들에게 응용수학을 학습시키기 위해 미국 서부 존 스타인벡 컨트리로
불리는 경치 좋은 ‘몬토레이 반도’ 바닷가에 해군대학원을 세워 응용수학을 수학시켰다.
이후 원자력학과, 기상학과, 경영과학과, 전자공학과 등이 추가 창설되어 3개월 단위의 분기 학기제로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켰다.


             미 해군대학원과 나


나는 베트남전에서 소위-대위 시절의 4년을 게릴라와의 전투로 보내고 돌아와 유학시험을 거쳐
미해군대학원에 유학했다. 이 학교에서 문과석사를 마친 나는 곧바로 응용수학과로 전향했다.
1년에 걸쳐 응용수학 석사과정을 이수하여 4점 만점에 3.98을 획득해 박사과정에 입문했다.
문과석사에서 이과박사과정으로 전환한 학생은 1907년, 그 학교 창설 이래 내가 처음이었다.
나를 위해 국가는 하버드나 스탠포드 학비의 2.5배를 지불했다.


박사과정에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수학공식 2개, 수학정리 6개 그리고 미 항공모함 출동시
창고에 적재해야 할 수리부품 별 적정량을 계산하는 매머드급 알고리즘을 창조하여 학교 창설
이래 최고의 천재로 전설화되었고, 그 전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만원의 박사학위 논문 
https://archive.org/details/mathematicalmode00jeem


     박사 학위 받은 육군 중령의 역할


귀국해서는 한국군 창설이래 지금까지 전무후무한 [국방 예산 및 회계 개혁] 과제를 연구하여
국방장관과 전두환 대통령에 반영하여 1982년부터 1986년까지 5년 동안 국방부는 물론
전 정부 부처에 실천하도록 했다. 당시 위와 같은 과제를 미국도 수행했다.
미국은 대통령에서 출발하여 국방부로 내렸지만, 나는 중령시절에 윤성민 국방장관과
전두환 대통령을 설득하여 한국군 창설 이래 전무후무한 국방개혁을 실천시켰다.


당시 윤성민 국방장관은 대회의실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앞으로 장관 비서실은 지박사가 장관을
만나기를 희망하면 이튿날로 시간을 잡아라. 하루에 8시간까지 잡아도 좋다”
 이것이 육군 중령 지만원의 위상이었다. 이 말을 평가절하할 사람 있는가? 이후 한국군 사단에는
없었던 자원관리참모가 더 생겼고, 대형 전산기가 들어갔고, 사단마다 회계사와 전산요원들이
들어갔다, 공기나 물과 같이 자유재로 인식됐던 군수물자에 책임자가 지정되고, 책임자에 비용이
 계산됐다. 비용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이 시스템은 지금도 살아있다.


이런 전력을 가진 나는 1990년대에 잘 나가는 프리랜서였다. 한국군의 비리를 까발리는 책
 [70만 경영체 한군군 어디로 가야하나]라는 처녀작을 냈다. 소설을 재끼고 베스트셀러 1위를
무려 7주(49일)간 했다. [시스템]이라는 말을 모르던 시대였던 1993년, [신바람이냐 시스템이냐]를
써서 시스템적 사고방식과 시스템경영 기법을 전국에 강론하고 다녔다. 
“은행객장의 순번대기번호표]가 곧 시스템이라며 첫 강의를 열었다. 1990년대 10년동안 군과
통일과 사회의 병리현상에 대한 답은 바로 나였다.
1990년대의 10년은 지만원의 말이 곧 답으로 통했던 시절이었다.
 
김대중은 나를 사랑했지만, 그가 빨갱이라서 나는 그의 얼굴에 침 뱉어


1995년 5월 김대중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다는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국제세미나를 열었다.
여기에서 나는 김대중의 요청으로 기조연설을 했고, 기립박수를 받았다.
다시 그의 요청으로 나는 그와 함께 중국에 가서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헤드-테이불에 마주 앉아 그의 말동무가 되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는 김상현 의원, 박금옥 총무수석, 김태동 경제수석, 황원탁 안보수석,
박지원 장관 등을 보내 장관직, 한전사장 등을 맡으라 했지만, 모두 정중히 사양했다.
이회창 시절, 한나라당 부종채인 홍사덕이 3차례씩 찾아와 전국구 의원이 돼 달라,
정책위 의장직을 맡아 달라 했지만 사양했다.


    여기까지 나를 필적할 사람 있는가?


여기까지에 필적하는 사람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안다. 이런 내가 2002년 말의 대선에서
노무현이 승자가 되고, 그 선거에 전자개표기가 등장한 것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파생된 것을 보고
전자개표기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나로 인해 헌변(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이
대법원에 노무현 당선 무효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24년 동안 나는 5.18과의
전쟁으로 인해, 부정선거와의 전쟁에서 일선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부정선거 일선에서 싸우는
 훌륭한 전사들의 절규를 추적해오면서 박수를 보내왔다.
이 모든 결과 나는 지금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라는 범국민적 진단과 요구를
신앙으로 삼고 있다.




              학문적 무녀리들이 음모론만 외쳐
 
이런 학력과 경력과 애국의 열정을 가진 천재를 음모론자로 모는 사람들은 누구들인가?
조갑제, 정규재, 그리고 돈 몇 푼씩 받고 중국의 개가 된 민주당과 국힘당 현역의원들이 아니던가?


나는 베트남전에서 미군과 함께 전쟁을 하면서 넓은 세계의 문화를 엿보았고, 미국에서
응용수학 학생 생활과 응용수학 석사과정의 교수생활을 거치는 10년 동안 서양문화를 접했고,
전쟁터에서 생사의 한계선을 걸었지만, 외국 물도 못 먹고, 외국의 지식인들과 교류도 없고,
학위도 없는 인간들이 마이크 잡고 있다는 것 하나로 함부로 나를 모함해 왔다.
이준석은 조갑제나 정규제보다 학술적 계급이 좀 높은 모양이다. 특히 조갑제는 고졸인 모양이다.
이런 어중이떠중이들이 나 같은 사람을 음모론자라며 눈알에 핏발 세우고 목청을 높인다.
내가 보기에는 잡것들일 뿐이다.(퍼온글)


2026.6.28.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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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내일이여오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3 new 거짓은 무너지고 진실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역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부정선거 주범 사전선거가 개혁되야만
    나라가 산다고 하네요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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