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에스라서의 성전 재건시기의 바사왕과 역대 바사왕

작성자봉서방|작성시간13.12.21|조회수1,120 목록 댓글 2

에스라서의 성전 재건시기의 바사왕과 역대 바사왕

 

 


에스라는 바사의 고레스왕이 이스라엘 포로들을 복귀시키고 성전재건을 허락하고 성전재건


한참 이후에 이스라엘에 당도한 사람이다.

 

그러나 에스라서에서는 역대하에 이어 성전재건하고 자신이 오기까지의 상황도 기술해놓았다.

 

고레스왕의 명으로 포로 1차 귀환때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성전재건을 하는데[BC 538 귀환,537년 이월 성전건축시작]

사마리아인들이 성전을 같이 짓지 못한데 대한 불만으로 바사왕에게 성전을 짓지못하도록 진정서를 올리므로 성전재건이

잠시 중단되었다가[BC536~520 캄비세스 2세 시 '스메르디스'에 의해]다시 유대인들이 바사왕에게 진정서를 올려 학개와

스가랴에 의해 성전이 지어지게 되고 완성이 된다.

[성전 재건: 다리오 1세 때인, BC 520 ~ 516,다리오왕 6년 아달월 삼일 (스 6:15)]

 


이때, 사마리아인들이 성전재건을 방해할때의 바사왕이 누구인지 모호하다.Ⅰ

 


다시 성전재건을 허락한 왕은 다리오왕인데, 에스라 4장 6절에 아하수에로, 7절엔 아닥사스다때에 사마리아인들이 성전을 못 짓도록 진정을 올렸다고 나와서 이 순서로 한다면 다시 성전재건을 허락한 왕은 다리오 2세가 되어야 하는데...\그래서 바사왕의 순서가 헷갈린다.

 

사마리아인들이 성전재건방해할 당시 진정서를 받고 성전재건을 중지토록 한 왕이 누구이며 바사왕의 순서는 어떻게 될까?

 


Ⅰ.성전재건을 중지토록 한 왕은?


  - B. C. 522년 '캄비세스왕' 의 통치 말엽에 왕위를 찬탈하려한 '스메르디스' 에 의해  있었던 일.

 

      [에스더는   크세르크세스1세(Xerxes,아하수에로,BC486~465) 의 왕후이며

       아닥사스다 1세는 BC465~424이므로 에스라 4:6~7절의 아하수에로란 왕명은 오류인 듯보임,

      그러나 다른 해설서를 보면 에스라 4:6~23은 성전 완성(다리오 1세 CB516)이후

      2차 성벽 재건 때의 것이 삽입된 것으로 이해할 것이라 함.]

 

 

Ⅱ. 바사왕의 계보는?


 1.고레스(키루스2세, BC590또는576출생,제위 554~530.8, 538년경 신바빌론 정복)

   [BC 538 스룹바벨에 의한 제1차 포로 귀환]

 

 2.캄비세스 2세(BC530~522여름)

 

 3.(거짓) 스메르디스(사기꾼 가우마타가 죽은 캄비세스의 동생 스메르디스 행세를 하며 반란을 일으킴. BC522.3)

 

 4.다리우스 1세(Darius Hystaspis,BC550출생,제위 521~486.10)

   [스룹바벨과 예수아에 의한  성전재건 BC520~515(<다리우스 2년~6년 아달월>스 5:2~6:18)]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 스 5:1)

 

 5.크세르크세스1세(Xerxes,아하수에로,BC486~465)

    [에스더 왕후 ]

 

 6.아닥사스다 1세(BC465~424)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성전재건 반대 글을 올려 성전 건축을 중지시킴(스 4:7~23),


•[에스라에 의한 2차 포로귀환(BC 458.5<아닥사스다 7년 5월>,스 7:6~10)과 개혁(스 9:1~10:44)]
•[느헤미야에 의한 3차 포로 귀환(BC 445<아닥사스다 20년>느 2:1~10)
•[느헤미야의 성전 재건(BC 445~432<아닥사스다 20년~32년>느 3:1~6:19]

 

 7.다리오2세

 8. 아닥사스다2세 

 9.아닥사스다3세

 10.다리오3세 (BC331멸망)

 

 


 

 


   에스라서

 

 

히브리 성경 원전에는 사무엘서나 열왕기, 또는 역대서와 마찬가지로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한 책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1448년 불가타역이 두 책으로 나눈 것이 처음으로 히브리 원전에 소개될 때까지였습니다.

원래 두 합본은 "에스라"라고 불리웠습니다.

 

그러나  70인 역에서 이것을 두 부분으로 나뉘어 제 2에스드라스, 제 3에스드라스라고 불리웠으며, 계시적인 제1에스

드라스가 그 앞에 나왔는데 두 정경의 이름을 "에스라"와 "느헤미야"로불러서 그이름이 오늘날까지 내려옵니다.

그는 70인역의 제1에스드라스를 제3에스드라스로 부르고, 그것을 계시의 책(에스더)으로 분류했습니다.

 

에스더를 제외하고는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유일한 바벨론 포로 직후 시대의 책이며, 바벨론 직후 시대의 유대 역사에

있어서 예루살렘 중건으로 커다란 중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가 이 두 책의 시대에 끊어

지지 않는 계속된 장면으로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다만 그 중의 어떤 부분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치있는 어떤 자료가 거의 없는 공백 부분들도 있습니다.

 

에스라는 무엇보다도 먼저 스룹바벨의 지도 아래 유대인들이 포로로부터 돌아오는 것과 희생봉사의 재확립과 성전 재건축의 시작 등을 기록하였습니다.이러한 모든 사건들이 약 2년 안에 이루어졌는데 그때는 고레스의 통치 초기였습니다.

 

그 후 13년 동안 그 사업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성전 건축의 재 개시와 그것의 완성, 그리고 다리오 1세 하에서의 봉헌 등의 기사가 나옵니다. 그 후 60년 정도의 기간에 대해서는 에스라는 아무것도 기록해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B. C. 458년에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에 의해 유다로 다시 보내졌는데  모세의 율법에 따라 나라의 행정을 재조직하는 광범위한 권한을 가지고 보내어졌습니다. 그는 그의 귀환과 개혁에 대한 어떤 것은 기록했지만 역시 10년 이상의 기간을 연걸시키지 않은 채 공백으로 남겨놓았는데 느헤미야가 지도자로 일하는 모습과 활동을  '느헤미야'라고 이름 붙인 책에 기록해 놓은 때 쯤은 10년 이상의 기간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묘사되어 있는 모든 사건은 페르시아 제국의 기간 중 전반기 동안에 일어난 것인데 페르시아 제국은 B.C. 331년 다리오 3세가 죽음으로 알렉산더 대왕에게 넘겨질 때까지 존속하였습니다.

 

바벨론 포로 직후의 유대 역사는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스 1:1) 시작합니다. 페르시아제국은 동쪽으로 이란의 사막 황야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소 아시아의 해변까지, 그리고 북쪽으로 알메니아의 고원으로 부터 남쪽으로 애굽 변경까지 뻗쳐 있었습니다. 그 창건자인 고레스는 신중하고 자비로운 통치자였습니다.

 

바벨론에게 정복되었던 나라들을 유화시키는 정책과 함께 그는 그들을 옛고향에 재정착하게 하고 그들의 예배장소를 복원시켰습니다. 이러한 너그러운 정책에 의하여 유대인들은고향땅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페르시아 왕들은 제국을 위하여 정직하게 일하고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도록 훈계되었습니다.

조로아스터의 유일신 종교는 적어도 다리오 1세때부터는 페르시아의 국교가 되었는데 바벨론 사람들의 다신교와 우상숭배 종교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에 서 있었습니다.

 

고레스가 바벨론을 ?을 때, 그는 노년의 다니엘을 알게 되었고 전시대의 느브갓넷살 대왕의 신임 받는 조언자를 또한 그의 조언자로 삼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을 통하여 고레스는 자신에 관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그의 지정된 역할(사44:21~ 45:13) 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회복을 승인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널리 뻗친 제국을 그 초기에 평온하게 하는 사업은 왕의 온 정력을 쏟게 하였습니다. 바벨론 멸망으로부터 약 9년 간의 통치 끝에 그는 말 안듣는 동쪽 족속들을 다스려 출정했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유다로 돌아와서 유대인들은 적대적인 이웃 나라들을 만났고 종족적, 종교적으로 혼합된 백성인 사마리아인들에 의해 계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였습니다. 고레스가 그의 널리 뻗치는 제국을 연합시키는데 바쁜 틈을 타서, 이러한 적들은 유대인을 훼방하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어서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지체하게 하였습니다.

 

고레스의 장남 캄비세스는 8년을 채 못되게 통치하였습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애굽을 정복한 일입니다.

그가 유대인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는 것은 애굽에서 발견된 유대 문서에 의하여 알려져 있지만 그가 실질적으로 유대성전 재건을 도와주었는지에 대한 증거는 없습니다.

 

가짜 스메르디스의 짧은 통치는 유대인에게 큰 후퇴를 가져왔습니다. 다리오에 의해 성전 파괴자라고 묘사된 이 왕 아래에서 예루살렘의 사업은 중단되었습니다. 그 중단은 얼마만큼은 사마리아의 원수들 때문이기도 했는데 사업을 재착수하도록 허락한 다리오 1세의 강력한 정부 아래에서 안정된 조건이 주어지자마자 새로운 기초를 놓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다리오대왕의 시대는 번영과 질서로 특정지어졌습니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유대인도 그의 현명하고 강력한 통치로 인하여 유익을 얻었습니다.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영적 지도력 하에서 그들은 성전 건축을 마치고다리오 치세 6년째인 B. C. 515년에 성전을 봉헌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리오가 그의 치세 후기에 헬라를 치려고 결정하자 불안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그 때로부터 제국은 헬라와  애굽과 다른 곳에서 계속적인 반역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제국 내의 평화와 안정은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의 두 왕들, 크세르크세스와 아닥사스다 1세는 모두 약하였고성격이 불안정하여 힘센 참모들의 강력한 손에 의하여 권좌를 유지하였습니다. 헬라에서의 참패들과 애굽의 반역들과 다른 지역에서의 반역 등으로 제국은 큰 불안정으로 빠져 들었고, 국내외 정책에 있어서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에스라가 유대인을 위한 주거류지를 얻어낸 것은 애굽에서 심각한 반역이 일어났을 때(463~454 B. C.)였는데,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아닥사스다에게는 유대인의 선의가 필요했으니, 그것은 유다가 애굽으로 가는 지름길에 직각으로 가로 놓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유다가 속해 있는 총독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B. C. 450년 이후) , 아닥사스다는 분명히 그릇된 판단에 의하여 충성되다고 생각되어진 사마리아를 도와 주었는데, 그것은 유대인도 반역에 가담할까 두려워서였습니다. 따라서 아닥사스다는 사마리아로 하여금 이미 얼마동안 지어져 있던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짓지 못하게 하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총독의 반역이 정리되었을 때, 믿음직한 유대 제사장인 느헤미야는 유대 총독으로 임명을 받는 데에 성공하였고, 성벽을 재건하기를 완성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그는 계속되는 폭동의 위협 아래에서 해냈습니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 총독으로 일했으며, 능력있는 행정자요 종교적 지도자라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비교적 안정된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기초를 놓았는데 그것은 다음의 거친 시대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포로시대쯤 페르시아 왕조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역대 군주들입니다.


아카이메네스(Achaemenes) BC 705 ~ BC 675

테이스페스(Teispes) BC 675 ~ BC 640 - 아카이메네스의 아들

키루스 1세(Cyrus I) BC 640 ~ BC 580 - 테이스페스의 아들

**아리아람네스(Ariaramnes) BC 620 ~ BC 580 - 테이스페스의 아들, 키루스 1세와 캄비세스 1세의 공동 통치자

캄비세스 1세(Cambyses I) BC 580 ~ BC 559 - 키루스 1세의 아들

**아르사메스(Arsames) BC 580 ~ BC 550 - 아리아람네스의 아들, 캄비세스 1세와 키루스 2세의 공동통치자

1. 키루스 2세(Cyrus II) BC 559 ~ BC 530 - 캄비세스 2세의 아들, BC 550 이후에는 단독 통치

2. 캄비세스 2세(Cambyses II) BC 530 ~ BC 522 - 키루스 2세의 아들

3. 가우마타(Gaumata) BC 522 - 승려로서 왕을 참칭

4. 다리우스 1세(Darius I) BC 521 ~ BC 486 - 아르사메스의 손자, 히스타스페스(Hystaspes)의 아들

5.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 BC 486 ~ BC 465 - 다리우스 1세의 아들

6.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롱기마누스(Artaxerxes I Longimanus) BC 465 ~ BC 424 - 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

7. 크세르크세스 2세(Xerxes II) BC 424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

8. 소그디아누스(Sogdianus) BC 424 ~ BC 423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

9. 다리우스 2세 노투스(Darius II Nothus) BC 423 ~ BC 404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

10.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므네몬(Artaxerxes II Mnemon) BC 404 ~ BC 358 - 다리우스 2세의 아들

11.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오쿠스(Artaxerxes III Ochus) BC 358 ~ BC 338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아들

12. 아르타크세르크세스 4세 아르세스(Artaxerxes IV Arses) BC 338 ~ BC 336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의 아들

13. 다리우스 3세 코도만누스(Darius III Codomannus) BC 336 ~ BC 330 - 다리우스 2세의 증손



*기타

느혜미아서 1장의 바사왕 고레스는 키루스2세,

다니엘서의 메데왕 다리오는 메디아왕국(성서의 메데) 키악사레스2세입니다.

(페르시아왕조의 다리우스와는 동명이인이니 혼란안됨)

느혜미야 12장의 바사왕은 다리우스 2세

에스더의 아하수에로왕은 크세르크세스 1세

(다니엘 5장의 아하수에로왕은 메데왕국, 즉 메디아 왕국의

아스티아게스입니다. 혼돈하지 마세요.. 어떤 사람은 혼돈해서 그럼 에스더가 다니엘서의 다리오왕의 어머니가 아니냐고 질문하는 경우도 종종있습니다.)

에스라, 느혜미야의 아낙사스다왕은 아르타 크세르크세스 1세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소호정 | 작성시간 13.12.26 감사
  • 작성자동화의삶 | 작성시간 14.02.08 살롬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