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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설교-절망의 자리에 들려오는 부활의 음성(렘33:1-9)

작성자권호만barnabak|작성시간26.04.03|조회수422 목록 댓글 10

절망의 자리에 들려오는 부활의 음성

예레미야 33:1-9

 

2026년 부활절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전쟁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아파하는 분들에게 부활의 은혜가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부활주일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승리를 기뻐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시는 본문은 부활절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씀 같습니다.

기쁨과 승리의 장면이 아니라 감옥에 갇혀있는 예레미야의 고통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로 시작합니다.

절망의 자리, 갇힌 자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리에 있을 때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부활주일과는 동떨어진 것 같지만 사실 부활주일도 슬픔과 절망 속에서 들려온 기쁜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첫 번째로 알게 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라도 발라드리기 위해 일찍이 무덤을 찾습니다.

무덤을 향하여 가는 그녀의 유일한 걱정은 무덤을 막았던 커다란 돌을 어떻게 치울까?’ 였습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은 이미 옮겨졌습니다.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생각보다는 더 큰 걱정으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시신이 그대로 있는 건가? 짐승이 훼손한 것은 아닌가? 누가 어디로 옮겨간 것은 아닐까?’

부활의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마리아에게 무덤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더 큰 걱정과 안타까움을 주었던 것입니다.

울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서 마리아의 걱정은 사라지고 부활이 주는 감격과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이것이 부활의 능력이요 축복인 줄 믿습니다.

 

오늘 시위대뜰에 갇혀있던 예레미야가 경험한 것도 바로 이런 기쁨이요 축복이었습니다.

시위대뜰은 일종의 감옥을 말하는데요, 바벨론에게 대항하지 말고 항복하면 살 수 있다는 예레미야의 말을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매국노같이 생각했던 관원들이 예레미야를 잡아 시위대뜰에 있는 감옥에 가둔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의해 유다의 죄악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아도 너희가 아무리 대항해보아도 내가 너희를 도우지 않을 것이며 너희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겠다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너희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입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어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면 예루살렘성이든, 우리나라든, 우리의 삶이든 이와 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심판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끝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심판과 더불어 회복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성을 치료하고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로 회복시키겠다고 말씀합니다.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고 그들이 범한 죄를 다 용서하여 정하게 하고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부활절 아침에 우리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해야 될 줄 믿습니다.

 

1. 먼저,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신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합니다.(6:23)

죄를 짓고 사함을 받지 못하면 그 결과는 사망, 죽음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로 유다가 망하고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파괴된 것은 다 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서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셨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죄를 짓고 더 완악해졌습니다.

오래 동안 참으시는 하나님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유다와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의 그 엄청난 고난은 바로 죄 때문이었습니다. 죄의 값을 치룬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죄가 아니라 우리 인간의 죄 때문이기는 하지만, 어째든 그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생각할 때 대속의 사랑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그 이전에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죄 때문에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돌아가신 것입니다.

해결 받지 못한 죄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2.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 죄의 삯을 하나님이 스스로 지시고 대신 감당하신 사건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한번은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른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장례식을 위해 왔습니다.

설교단 앞에는 관이 놓여 있고 이곳저곳에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꽃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보통 장례식 때 흔히 하는 고인에 대한 어떤 칭송의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살아있을 동안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죄를 다 지은 사악한 사람이었기에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저주를 합니다.

설교가 끝나자 목사는 교인들에게 이 끔찍한 죄인의 모습을 바라보도록 차례대로 나오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나와서 관 속을 들여다보았지만 관은 텅 비어 있었고 대신 커다란 거울이 놓여 있어서 관을 들여다보는 자신의 모습이 비칠 뿐이었습니다.

목사는 "바로 그 거울에 비취는 사람들이 내가 말한 죄인입니다"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죄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스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성경이 밝히 말씀하신대로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모든 인간이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인간은 죄의 삯을 받아야 하고 치뤄야 합니다. 죽어야하고 영원한 사망에 처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차마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은 스스로 이 죄를 짊어지고 죄의 값을 치루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몸을 입게 해서 이 땅에 보내시고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당해야 할 고난을 대신 당하시고 우리가 져야 할 죄의 대가를 대신 치루셨습니다.

이 은혜가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넓은 우리 주님의 사랑입니다.

 

3.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정말 놀라운 은혜요 사랑입니다.

이것을 뛰어넘는 은혜와 사랑은 없습니다. 부모님의 사랑도 이것을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으로 끝나셨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위대한 박애주의자로 남게 되겠지만 예수님을 삼킨 사망은 여전히 우리를 주관하고 죽음으로 몰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이기셨고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죽음의 문제는 예수님 안에서 완전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축복이요 가장 기쁜 소식인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유다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마땅히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심판에서 회복할 수 있는 말씀을 전하십니다.

내가 이 성을 치료하고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로 대할 것이다.’

유대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들이 범한 모든 죄에서 정하게 하고 사할 것이다.’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지만 그러나 심판으로 끝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다시 회복시키시고 다시 세우시고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을 다시 부활시키시고 영원한 생명의 구원자로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와 같이 닫힌 상황 속에서도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는 자유로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미래도 보이지 않고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감옥이라는 장벽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이것이 부활의 시작입니다.

부활은 상황이 좋아진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막혀있는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무덤이라는 완전히 닫힌 공간에 계셨습니다.

커다란 돌로 막혀 있는 무덤 속은 생명이 끝난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시고 부활시키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상황이 이렇게 죄로 인하여 닫힌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그 가운데서 희망을 말씀하시고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절대 절망하거나 낙심하고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주님은 소망을 말씀하시고 새로운 길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사람이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네가 알지 못하는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계산하고 예측하려 합니다.

그래서 내 생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받아들이고 받아들일 수 없으면 포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우리의 계산을 뛰어넘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은밀한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의 무덤을 방문하는 마리아는 무덤을 막은 큰 돌을 어떻게 열수 있을까?’ 하는 걱정만 했지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자들이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게 하셨고 죽음을 생명으로 뒤집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관계 속에 있을 때, 회복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 있을 때, 이제는 끝났다고, 늦었다고 생각되는 인생의 문제 속에서 우리는 절망하고 포기합니다.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체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계산을 뛰어넘으시는 분이십니다. 죽음을 부활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큰일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모든 체념과 낙심과 절망위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은밀한 일을 보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자리에서 회복과 치유를 약속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지금 예루살렘은 무너지고 전쟁과 파괴, 절망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죄의 심판 속에 직면해 있습니다. 바벨론의 무력 앞에 예루살렘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먼저 회복을 선언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죽음 이후에 생명이 있다, 무너짐 이후에 회복이 있다, 십자가 후에 부활이 있다.’

여러분, 부활은 단순히 예수님 한 분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삶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선언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입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에도 갇힌 자리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해결되지 않는 문제, 반복되는 실패, 마음의 깊은 절망, 그것 때문에 나는 이제 희망이 없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갇힌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러분, 부활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천 년 전에 일어난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부활은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되는 오늘의 이야기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지금도 인간의 생사화복과 역사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시고 지금도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고 자녀가 된 우리도 부활한다는 사실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중보자 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가 응답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때,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붙들 때, 그 자리에서 이미 부활의 역사는 시작되는 줄 믿으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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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권호만barnabak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04 감사합니다.
  • 작성자세아이의 아빠 | 작성시간 26.04.04 귀한 말씀에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권호만barnabak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04 감사합니다
    오랜만이네요
  • 작성자애담 | 작성시간 26.04.04 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권호만barnabak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0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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