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녀를 위한 부모의 자세
마가복음 10:13-16
오늘은 오월 첫 번째 주일로 전국교회가 지키는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들의 중요성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말씀으로 어린이를 양육하자는 의미에서 제정된 주일입니다.
미래의 주역으로서 어린이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더 말씀드릴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미래의 흥망성쇠가 어린이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나 어린이날을 우리나라에서 제정할 때의 상황은 많이 달랐습니다.
예수님 당시 어린이나 여자들은 사람들의 숫자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증인으로 채택되지도 않았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대로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 그것을 먹은 숫자는 여자와 어린이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14장)
오천 명이란 숫자는 성인 남자들만의 숫자였고 그래서 보통 어린이와 여자들을 합하면 최소 만 명이 넘을 것으로 봅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엄청난 기적을 기록하면서 당시 인정받지 못했던 여자나 어린이들을 포함시켜서 기적의 위대함을 흐리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남자만 해도 충분한 숫자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날을 제정한 사람은 방정환 선생인데요, 그가 어린이라는 말을 쓰고 어린이날을 제정할 때 우리나라의 형편은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인정하지 못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소중한 인격임을 알리고자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었고 어린이날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지요.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면 오늘 본문의 내용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꾸짖습니다.
아마도 ‘어른들을 상대하기도 바쁘고 힘든 판에 왜 아이들까지 데리고 와서 선생님을 힘들게 하느냐?’ 는 제법 기특한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어린이들을 인정하지 않았던 시절이기에 제자들로서는 얼마든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노하십니다. 단단히 화를 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십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같은 시대를 사셨으면서도 이런 모습을 보인 주님은 분명 시대를 앞서가셨던 랍비요 인류의 스승이셨습니다.
기독교가 인류에게 공헌한 내용이 많겠지만 그 중에 가장 잘 한 것이 여자나 어린이, 종과 같이 약한 자의 인격을 회복시켰다는 점입니다.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모든 계급이 타파되고 똑같은 인격체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어린이들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특별히 신앙적인 관점에서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는, 어린이들을 주님께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께로 데려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어머니들은 유명한 랍비이신 예수님이 만져주시고 축복하시면 아이들이 잘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께 데리고 온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오는 것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부모님들의 가장 우선적인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예수님께로, 하나님께로 데려와야 합니다.
그래서 유아세례도 받게 해야 하고 신앙 안에서 말씀 안에서 자라게 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이들에게도 예수님이 필요하고 구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죄의 짐을 지고 태어납니다. 여기에 아이들이라고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 예수님에게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유치부에서 포도 주스를 가지고 성찬식을 했을 때입니다.
성찬식을 마친 후 지훈이라는 아이가 목사님에게 “저 예수님의 피를 마셨어요.” 하더랍니다.
그래서 아이와 눈을 맞추며 “이제 지훈이 안에 예수님이 계시네. 예수님처럼 사랑이 많은 아이로 살면 되겠구나.”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였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신앙을 받아들이는데 복잡한 것이 없고 의심이 없습니다. 믿은 뒤에는 신앙을 키워갑니다.
주님께 데리고 오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보다 다른 데로 데리고 가는 것에 더 힘쓰고 애쓰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들은 다양한 경험을 시킨다고 하면서 시간이 될 때마다 여러 곳으로 데리고 다닙니다.
자연을 경험하게 한다면서 산과 들과 바닷가로 데리고 갑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마음에 예수님을 알고 말씀을 알도록 예수님께 데려오는 일에 더 신경을 쓰고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잠언에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22:6)
2. 둘째로, 어린이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온 것은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서는 “손을 얹어 축복해주시기를 바래서 데리고 왔다”고 번역합니다.
아이들은 예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할 귀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자라는 것보다 어린이들의 삶에 있어서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면서 자녀들에게 많은 것을 해 주려고 합니다.
공부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릴 적부터 이곳저곳 학원을 전전시키면서 공부를 시킵니다. 특기교육을 시키기도 합니다.
자녀들에게 많은 재산이나 돈을 물려주려고 합니다. 그래야 자녀들이 잘 될 것 같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건강을 위하여 좋은 것들을 먹이려고 합니다.
그런 것들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자녀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인 줄 믿습니다.
어린 예수님은 자라가면서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었습니다.(눅2:40)
이 말을 바꿔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었을 때 아기 예수가 자라가면서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때 솔로몬과 같이 지혜롭게 자라가고 다윗과 같이 강하게 자라가고 바울과 같이 귀하게 쓰임 받는 존재로 자라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성장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이야기를 읽어보았습니다.
아버지를 목사님으로 두신 이 사람은 유능한 외교관이 되었고 잘 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암에 걸려서 고생하며 치료하는 가운데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제 부친은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님이셨습니다.
한 도시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교회가 안정되면 다시 다른 지역으로 가서 개척하기를 반복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온 가족을 불러 모아 가족예배를 드렸습니다.
무슨 본문이 되었든 결론은 늘 똑같았습니다.
'예수 붙잡으면 다 붙잡은 거고, 예수 놓치면 다 놓치는 거다.'
저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가난이 아니라, 매일아침 반복되는 그 결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을 떠나 고학을 해서, 좋은 대학을 나왔습니다.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교관이 되어, 남들은 꿈도 못 꾸는 부유한 삶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제 삶의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믿음, '예수 붙잡으면 다 붙잡은 거고 예수 놓치면 다 놓치는 것'이라는 말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자녀들에게는 정말 예수만 빼고 다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집, 좋은 교육, 좋은 직업.
마침내 아이들은 성공했고, 외국 대학교수로 인정받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입장이 되어보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생각하니 제 아버지가 옳았습니다.
'예수 붙잡으면 다 붙잡은 거고 예수 놓치면 다 놓치는 거다.'
가난뱅이 목사이셨던 우리 아버지는,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을 주고 가셨지만
부자 외교관 아버지인 저는,
자식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을 남겨주지 못하고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예수님 없는 세상적인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것이 무슨 축복이겠습니까?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자라가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것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축복받는 신앙생활을 가르쳐야 합니다.
예배에 참석하여 말씀을 듣게 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도 가르쳐서 스스로 기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에도 힘써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축복을 받으며 자라갈 때에 자녀들의 삶이 행복하고 승리하는 삶이 되지 않겠습니까?
어린아이도 예수님께 와서 축복을 받아야할 존재입니다. 그 역할을 부모님들이 해야 합니다.
3. 셋째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꾸짖는 제자들을 향하여 노하십니다.
예수님이 노하셨다는 인간적인 분노를 표현한 것은 마가복음에서 이 구절이 유일합니다.
그 만큼 이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또 우리들에게 주실 교훈이 크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막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행여 내 자녀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이 주님께 오는 것을 막는 자가 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시끄럽다고, 교회가 지저분하다고, 교회의 재정에 축이 난다고 아이들을 막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줄로 압니다.
그것은 주님을 화나게, 노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야단치시면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데요,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울러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받들다’는 말은 다른 번역에서는 전부 ‘받아들인다.’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➀먼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는 말씀과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인데요, 이 말씀은 같은 의미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그 복을 누리는 자가 진정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복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중에 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천국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또한 이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누리며 살아가는 삶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 되었든 우리는 그 나라에 들어가야 하고 그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➁그런데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의 것이라거나 어린아이만 들어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이는 자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인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이것을 잘 설명한 시편이 131편 1절부터 3절입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어린아이는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특히 갓난아기는 더욱 그렇습니다. 누가 있어야 합니까? 어머니가 있어야 합니다.
그 어머니의 품에 있으면 어린아이는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세상이 어떻든 어머니 품에만 있으면 아이는 고요히 잠들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는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지하며, 부모만을 바라며, 부모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낮아짐이며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원하시는 모습이 바로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모든 인간적인 힘을 빼며, 그 안에서 평온을 누리는 참다운 자녀 됨의 삶을 원하십니다.
그런 모습이 될 때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공이 되고 그 나라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보다 자녀들을 더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대는 없는 줄 압니다.
오늘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기러기 아빠, 기러기 엄마가 되기를 기꺼이 원합니다.
자기의 삶을 다 희생하고 버려서라도 아이들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부모들은 신앙 안에서 어떤 것이 진정 자녀들을 사랑하고 위하는 것인지를 잘 알고 구별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사랑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중요하고 더 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그 진정한 복을 자녀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절대 신앙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자녀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부모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며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2026.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