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를 사는 지혜 1 (벧전 4:7-11)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이 시간에 “말세를 사는 지혜”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처신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5-16)고 하셨습니다. 특히 마지막 때 우리의 처신은 생명과 관련될 만큼 중요합니다. 그럼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이에 대해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1.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7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왜 정신을 차리라 했을까요?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놀랍다는 의미보다 분별하기 어렵다는 의미가 큽니다. 우리를 파괴하려는 세력들은 온갖 미사여구를 다 쓰며 우리가 알지 못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도 알지 못하는 순간에 신앙생활하기 어렵게 되고, 혹은 잘한다고 박수만 치고 있었는데 신앙생활할 수 없는 공산주의 세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24:37-39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하셨습니다.
두려운 것은 이런 상황이 왔는데도 대부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치 독일의 집권을 보십시오. 처음부터 사람들이 그것이 그렇게까지 위험한 체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경제를 살리겠다, 나라를 강하게 만들겠다는 말로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도 처음에는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의 자유는 점점 제한되었고, 결국 하나님보다 국가와 지도자를 더 높이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전쟁을 일으켜 나라가 도탄에 빠지고 수백만 명이 죽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예로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들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신앙은 철저히 탄압받았고, 교회는 무너졌으며,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조차 위험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분별하지 못하고, 깨어 있지 못한 사이에 서서히 진행된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영분별하여 시대의 경종을 울립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하시겠습니까? 깨어 있는 사람, 아니면 속고 이용 당하다가 나중에 보면 그것이 아닌데 그럼에도 또 속고 속는 사람? 그러니까 그냥 기도가 아닙니다.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단이 교회를 통체로 먹는 것은 별 일도 아닙니다. 교회도 방심하는 사이 WCC 같은 혼합주의가 교회를 거반 다 차지하고, 종교 다원주의 역시 거세게 한국교회를 몰아치고 있습니다. 말세에 살아남으려면 영분별의 은사를 구해야 합니다. 말씀과 다르면 가차없이 돌아서야 합니다. 말세에는 분별력이 없어 지옥 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2.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8절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마24:10-12에 예수님께서도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하셨습니다.
왜 사랑해야 합니까?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한 것처럼 말세는 인간의 약점들의 전성시대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인간관계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네가 옳다 내가 옳다 다툼이 끝이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가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을 해도 듣지 않고 귀를 막아버립니다.
누구의 말도 필요 없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며 사는 시대입니다. 지금 정보 자체가 취향을 파악하여 계속하여 그 정보만 들춰내서 보여줍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만들고, 듣고 싶은 말만 들리게 하는 이 현상을 현대 사회학에서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 또는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가령 알고리즘에 의해 알고리즘은 연산 절차나 정해진 셈본을 말하는데 사용자의 검색 기록이나 취향을 분석하여,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정보만 선별해 제공함으로써 정보의 편식에 빠져 내가 동의하는 정보만 계속해서 보게 하여 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내 생각이 무조건 맞다는 확신만 커져 다른 사람의 말은 아예 들리지 않게 됩니다.
말이 안 통하는 때가 옵니다. 상식이 안 통합니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원수와 같습니다.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무엇이 생각납니까? 공산주의 세상이 생각납니다. 우리도 인공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서로 잡아주고 미워하면서 죽였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함께 신앙생활하기 어려울 정도가 됩니다. 함께 신앙생활해야 하는데 사상이 다르면 어떻게 합니까? 사랑 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그냥 사랑으로는 안 됩니다. 뜨겁게 사랑하라. 그렇지 않고는 그 시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 오순절운동의 주자인 케네스 코프랜드 목사가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왜 지금 믿는 자들에게 초대교회와 같은 능력과 기사들이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러자 “아직 그만큼 충분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 사랑이 없으니 기도할 제목이 없습니다. 기도할 제목이 없으니 부흥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몸의 백혈구 면역체가 세균을 없애는 법은 보자기처럼 자기 몸으로 감싸서 죽입니다. 이처럼 사랑으로 못 품으면 내가 죽습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셨는데 내가 사랑할 수 없다면 믿음은 거기서 멈추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이 살기 위해서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벧전3:13에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한 말씀처럼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의 지혜는 사랑입니다.
3. 원망 없이 서로 대접하라.
9절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기독교의 황금률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입니다. 황금률이란 황금 같은 율법입니다. 율법이 많지만 왜 대접이 황금률일까요? 예수님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먼저 대접하면 그 대접이 나에게로 오기 때문입니다. 이좋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이 원리 가지고 성공 못한다면 자기 잘못이죠.
그런데 대접에 원망 없이라고 한 이유가 뭘까요? 말세는 이기적인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곳곳에 자기 권리 주장하는 모임이나 피켓으로 가득합니다. 어른에서 어린이들까지, 사회에 기생하는 사회악까지도 권리를 보장하라고 피켓을 듭니다.
그런데 “원망이 없이”란 한 편이 희생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분명히 "서로 대접"이라 했습니다. 오히려 균형을 말씀합니다. 왜 이 말씀이 말세에 주어진 교훈일까요? 이것 때문에 무서운 일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모두가 함께 망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엡6:9이나 약5:5을 보면 사주는 위협을 그치고 정당한 삯을 주라고 말씀합니다. 한편 엡6:5-6에 종들에게는 육신의 상전에게 순종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면 하나님께서 그 보상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에게 못 받으면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말세는 망하는 시대인데 같이 멸망하지 않으려거든 서로 대접하라는 말씀입니다.
4.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하라.
10절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그만큼 불가능한 일 당한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입니다.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한편 이 말씀은 교회에 뾰쪽한 방법이 있음을 시사한 말씀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예수님의 지체로서 세상을 이기고도 남을 은사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길 능력을 교회의 지체들에게 은사로 부어주십니다. 세상에서는 불치병이라 해도 우리는 그건 아니야 할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굶어죽는다 해도 죽지 않고 살 방법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 움직이는 것은 요소요소에서 하나님의 은사자들이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0절을 자세히 보세요. 선한 청지가와 같이 서로 봉사하라. 가만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만 있으면 그런 도움이 어디 있는지 그걸 누가 압니까? 그래서 욕을 얻어 먹으면서도 떠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산다. 이렇게 해라.’ 이렇게 해답을 제시할 은사자들이 많아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코로나도 이기게 만들고 암도 이기게 만들고 가난도 이기게 해야 합니다.
5. 끝까지 진실하고 겸손하라.
11절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모든 시작과 과정 뿐 아니라 결과까지도 하나님의 능력과 이름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사로 주신 것인데 내가 영광 받아 버리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또 기억할 점은 성령 감동 아닌 영웅심이나 욕심이 발동하는 순간 주님은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카비 기대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었는데 그 분위기에 휩쓸려 영웅심을 가진 사람들이 나섰다가 큰 실패를 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때는 지뢰지대를 지나는 것처럼 온전히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북한의 성도들이 지혜와 믿음과 성령의 지도하심을 따라 움직인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예수님이 정답입니다. 예수로 충만하고 주님이 주신 능력과 은사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 더욱 영안이 밝아져 기도하고 사랑하고 대접하고 봉사하고 겸손함으로 우리 모두가 살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 드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