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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시야를 넓혀봐요 = 누가복음11;33-36(260517)

작성자한상원목사|작성시간26.05.13|조회수103 목록 댓글 1

 

PW : 믿음               BIW : 영안을 가지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 나라의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는 영안을 활짝 여는 것이다.

 

 

비록 작심삼일일지라도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심이 3일을 못 넘긴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3일마다 새롭게 결심하다 보면 1년 동안 계획대로 결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3일마다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의 비전과 꿈과 희망을 위해서 새롭게 결심하는 심정으로 매일매일 계획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날 것입니다.

1년 뒤에 결심한 대로, 작심한 대로 살았구나 라고 감사를 올려드리게 될 것입니다.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죄와 벌이라는 소설을 쓴 세계적인 유명한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꿈을 밀고 가는 힘은 이성이 아니라 희망이며, 두뇌가 아니라 심장이다.

우리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을 스스로 믿는 만큼 성공하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비록 작심삼일일지라도 매일 꾸준하게 다시 작심하고, 다시 작심하면서 희망의 줄을 놓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작심한 희망과 꿈을 성취한 우리들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희망과 비전과 꿈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우리 모든 성도들의 가정과 생업터전과 마음에 넘치는 축복으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모두에게 풍족하게 부어 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충북 단양에 가면 동굴들이 여러 개 있다.

고수동굴, 온달동굴, 천동동굴, 노동동굴이 있다.

각각 동굴마다 특색이 있지만, 동굴을 구경하려고 하면 반드시 전등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동굴에 전기등을 설치해서 쉽게 동굴의 아름다운 비경을 구경할 수 있다.

동굴을 구경하면서 하나님께서 빚어주신 그 아름다운 모습에 저절로 탄성을 지르게 된다.

하지만 동굴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를 생각해 보면 동굴을 탐사하려고 할 때,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등불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탐사가 쉽지 않다.

관람객들이 아주 쉽게 동굴의 아름다운 비경을 구경할 수 있도록 제반 시설을 설치하기 전에는 동굴을 구경한다거나 탐사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고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동굴을 구경하면서 빛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하고 고마운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어느 시골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도화지에 밤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하였다.

학생들마다 저마다 생각하는 밤에 대하여 그림을 열심히 그리는데, 어느 학생이 흰 도화지에 온통 검정색으로 칠하더니 그림을 다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 학생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 왜 이렇게 그렸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 학생은 자기 마을에는 밤에는 캄캄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렇게 캄캄한 밤을 조금이라고 환하게 비추기 위해서 등불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반딧불과 눈빛으로 공부하여 성공한 사람을 일컷는 말이다.

반딧불과 겨울에 하얗게 내린 눈으로 어둠을 밝히면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학문에 전진하던 우리 조상들의 삶을 보여주는 아주 귀한 말씀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등불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가?

예수님께서는 등불을 통하여 어떤 말씀을 전하고 싶어하시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신앙인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권면하시는 것일까?

 

D4.

 

어리석은 사람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예수님.

 

33절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신다.

캄캄한 밤시간에는 등불을 밝혀야 한다.

현대사회는 전등을 밝히지만, 고고고고고고대시대 예수님 시대에는 등잔에 올리브기름을 넣어서 등불을 밝히던 시대이다.

저가 아주 어릴 때에만 해도 작은 접시같은 종재기에 실로 심지를 만들어서 참기름을 넣어서 아주 작은 호롱불을 밝혀서 살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등유가 나오면서 등유로 호롱불을 밝혀서 살기도 하고, 양초를 사용하기도 했었던 기억이 있다.

저의 집에는 저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전기불이 없었다.

어떤 종류의 등불이 되었든 등불을 밝히는 것은 어둠을 조금이라도 환하게 밝히려고 등불을 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어떤 사람이 등불을 켜서 움 속이나 말 아래 두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멍청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움 속이라는 말은 은밀한 곳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란 용어는 순수한 우리나라 용어로는 됫박, 바가지라는 것이다.

지금이야 저울로 무게를 달아서 쌀이나 고춧가루나 밀가루를 판매하지만, 저가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쌀이나 소금이나 밀가루와 같은 물건들을 됫박이나 바가지로 재어서 팔았었다.

대학 다니면서 자취 생활할 때 쌀을 한 되, 두 되 사다가 밥을 해서 먹으면서 자취 생활했었다.

우리 성경에서 말이란 단어로 번역했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됫박이나 바가지라는 말로 번역했다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등불을 켜서 은밀한 곳에 숨긴다든지, 됫박이나 바가지로 덮어놓는다면 등불을 켜야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등불을 켜지 않은 등잔은 은밀한 곳이든, 됫박이나 바가지로 덮든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환하게 밝혀야 할 등잔에 등불을 켰을 때에는 은밀한 곳에 가져다 놓는다든지 됫박이나 바가지로 덮어놓아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만약에 누가 되었든 등불을 켜서 은밀한 곳에 가져다 놓는 사람이나 됫박이나 바가지로 덮어놓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 나간 사람이요 어리석은 사람이요 멍청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책망하는 것이다.

 

맡겨진 사명을 따라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등불은 등불로서 해야 할 사명이 있다.

등불을 키는 이유는 캄캄한 밤을 조금이라도 환하게 밝히기 위해서 등불을 키는 것이다.

등불은 어둠을 물리치고 무언가를 볼 수 있도록 돕는 능력이 있다.

등불은 어둠을 물리치고 환하게 밝혀서 어디든지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등불을 켰는데, 은밀한 곳에 둔다든지, 됫박이나 바가지로 덮어놓는다면 환하게 밝혀야 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 등불을 켜서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래도 등불을 키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환하게 밝히기 위해서 키는 것이다.

환하게 밝혀야 할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면 등불로서 존재해야 할 이유와 목적이 사라지는 것이다.

등잔의 종류를 보여주기 위한 전시물이라면 굳이 등불을 켜지 않아도 전시물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지만, 캄캄한 밤을 환하게 밝혀야 할 목적이라면 등불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은밀한 곳에 두어서도 안 되는 것이고, 더욱이 됫박이나 바가지로 덮어놓아서는 더더욱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물은 어떤 것이든 자기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

동식물은 동식물대로 사명이 있고, 무생물은 무생물대로 자기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따로 있는 것이다.

저는 꽃 키우기를 좋아한다.

예쁘고 아담한 꽃을 피워주는 여러 종류의 꽃들을 보면서 저 녀석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준 사명을 다하려고 여간 애쓰는 것이 아니구나.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무척이나 애쓰는구나.”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에게 사명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감사를 올려드리는 것이다.

생명체는 생명체대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이 있는 것이고, 무생물은 무생물대로 맡겨진 사명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일월성신뿐만 아니라 돌, 바위, , 공기, 바람, 구름, , 이슬 등등 모두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사람을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시면서 생령이 되게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먙겨주신 사명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고 복을 주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는 대사명을 주신다.

사람이란 존재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계속 연장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단회성이지만,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연속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인 대자연을 잘 관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연속해 나가는 과정이다.

남녀가 혼인하여 자녀를 출산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는 것도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계속 연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고 충만하라고 말씀하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동식물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동참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 권리와 의무를 따라서 살아가는 삶의 과정이 바로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체들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 나가는 것이다.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사명을 주셨을까?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전하고, 한 영혼이라도 더 많은 영혼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의 범죄 함으로 빼앗겨버린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신앙인의 입에서 언제 어디서나 항상 삼위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과 의지가 선포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영안(靈眼)이 온전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34절에서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등불이 바로 눈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누군가가 등불은 키는 것은 어둠을 물리치고 이겨서 환하게 보기 위함이다.

환하게 보려고 하는 것이 바로 눈, 시력이다.

시력은 시신경이 명확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시신경이 망가지고 죽으면 시력을 잃게 되고 소경이 되는 것이다.

안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바로 시신경 때문이다.

시신경에 여러 가지 질환이 발생하게 되면 시신경이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여 시력이 떨어지고 잘 보이지 않게 되고, 급기야는 전혀 볼 수 없는 소경이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소경은 시신경이 망가진 사람이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시신경이 망가진 사람의 모습을 등불을 켜서 은밀한 곳에 숨기는 것이나 됫박이나 바가지로 덮어놓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육신의 시신경이 망가지면 볼 수 있는 능력을 잃어서 맹인, 소경이 될 수 있다.

육신의 눈이 어두우면 볼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지고 없어져서 눈이 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노안(老眼)이 되면 점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안경을 써야 하고, 돗보기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기에 육신의 시신경이 여러 가지 질환에서 깨끗하게 치료받고 시신경이 회복되어야 밝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백내장 수술, 망막수술, 라식수술, 라색수술 등등 다양한 치료과정을 통하여 시신경을 회복해야 하듯이, 신앙인들도 영적인 시신경을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치료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눈이 바로 등불이라고 말씀하시면서 34-3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시신경의 상태에 따라서 잘 볼 수도 있는가 하면 잘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육안의 시신경의 상태를 말씀하시기 위하여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

진정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의도는 어떤 것일까?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이나 서기관들, 제사장들이 지금 하나님이신 예수님,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여 지구촌으로 찾아오셨는데도, 하나님이신 예수님, 메시야이신 예수님,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볼 수 없는 영적인 소경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소위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 유력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영적인 눈이 어두워서 영적인 시신경이 망가짐으로 인하여 메시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워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그 당시에 사회지도층에 속한 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으로는 오랑케가 사는 동네인 나사렛 촌동네 출신인 예수라는 사람을 도저히 메시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선입견으로 인하여 진정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인정하지도 않고 배척하고 대적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서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예루살렘성에서 자라고 성장했다면 메시야로 얼마든지 인정해 줄 수 있지만, 나사렛 촌 동네에서 자라고 성장한 예수님을 도저히 메시야로, 구세주로, 그리스도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적인 시신경이 망각 됨으로 인하여 전능하신 하늘의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야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못하고 도리어 신성모독죄에 해당하는 망나니나 이단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기 눈의 상태가 어떤지를 점검해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자기 눈의 상태가 온전하다면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고, 예수님을 신성모독이나 하는 망나니로 보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로, 구세주로 볼 수 있는 온전한 눈을 가진 사람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눈, 곧 영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L4 & B4

 

예수님께서는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눈이 성하다라는 말은 눈의 시신경이 정상인 모습이다.

눈은 잘 보여야 할 사명이 있는데, 눈의 시신경이 성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눈의 시신경이 정상적이어서 명확하게 잘 보인다는 의미이다.

반대로 눈이 나쁘다라는 것은 눈의 시신경이 비정상이라는 의미이다.

눈이 비정상이라는 말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왜 잘 안 보이는 것일까?

성경시대는 현대사회와는 달리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오염이 되지 않은 상태이다.

흔히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몽고인들은 아주 멀리 있는 사물까지도 잘 보인다고 한다.

왜 그럴까?

몽고라는 나라는 오염이 되지 않은 푸른 초원에서 목축업을 하면서 살아가는 민족이기 때문에 잘 보인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푸른 초원을 이루는 지역에서는 잘 보이는데, 고고고고고대사회에서는 어땠을까?

고고고고고대사회는 아예 오염이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이다.

그러기 때문에 잘 보인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비정상적인 눈을 가진 상태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탐욕, 욕심 때문이다.

성경에서 시력이 좋지 않다고 기록하는 것은 실제로 시력이 좋지 않아서 잘 보이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란 말처럼 욕심의 눈, 탐욕의 눈으로 바라보면 마음에서, 심장에서 탐욕으로, 욕심으로 요동치는 것이다.

탐욕의 눈, 욕심의 눈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게 되면 외눈박이처럼 한쪽만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물을 여러 각도로 바라보지 못하고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제대로 명확하게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영적인 문제,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은 편협되고 외곡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눈의 시력이 좋지 않다. 시력이 나쁘다.라고 성경에서는 기록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람이 이삭과 레아라는 사람이다.

창세기27:1-4에 보면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은 이삭이란 사람이 믿음의 족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분별하지 못하는 영적으로 어리석고 아둔한 사람이었다고 기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은 에서에게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야곱에게 축복해야 하는 것이다.

리브가가 혼인한 지 20년 만에 쌍둥이를 임신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적인 축복은 큰 자인 에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자인 야곱에게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족장인 이삭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서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축복해야 옳은 것이다.

그런데도 이삭은 야곱이 아닌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에서에게 화살통과 화살을 가지고 가서 사냥하여 맛난 음식을 만들어오면 그것을 먹고 축복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 믿음의 사람은 사냥한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사냥한 고기는 죽은 사체이고, 피가 얽힌 고기이다.

죽은 사체를 먹어서도 안 되고, 피채 먹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위배되는 행위이다.

죽은 사제를 먹거나 피채 먹으면 부정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아야 할 믿음의 사람은 사냥한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굳이 고기를 먹고 싶었다면 목축업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집에서 키우고 있는 소나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피를 뽑아낸 다음에 요리해서 먹으면 된다.

그런데도 이삭은 굳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그 대가로 축복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삭은 탐욕의 눈으로 영적으로 무디고 어두운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식탐(食貪)으로 영적인 눈이 어두운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삭이 나이가 130세 정도 되었던 시절이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삭은 186세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건이 발생할 때 이삭은 시력이 나쁘지 않을 때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성경에서는 이삭이 나이가 많아서 눈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고 기록하는 것이다.

탐욕의 눈, 욕심의 눈으로 인하여 영적인 시야, 시력이 가리워졌다는 의미이다.

 

또 한 사람의 예를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 29:17에서는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레아가 시력이 약했다고 소개하는 것이다.

오염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는 어린아이들도 시력에 약해서 안경을 써야 하는 시대이지만, 레아가 살던 시대, 중동 지역은 오염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시절이다.

레아와 라헬은 라반의 딸로 자매지간이다.

자매지간이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전혀 다른 여성들처럼 차이가 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때 레아의 나이를 성경에서는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확하게 추산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20-30대 정도의 젊은 나이였을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레아는 아주 젊은 여인, 젊은 아가씨이다.

그런데 시력이 약하다고 소개하는 것이다.

자매지간인데 라헬에 대해서는 좋은 모습으로 곱고 아리땁다고 소개하고 있지만, 레아는 시력이 약하다고 기록하면서 좋지 않은 모습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이 말은 실제로 레아의 시력이 잘 볼 수 없을 정도로 약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레아라는 여인은 탐욕의 눈, 욕심의 눈 때문에 눈의 상태가 비정상이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레아는 동생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서 7년 동안 노력한 야곱을 라헬보다 먼저 혼인하여 본격적으로 자신의 욕심을 드러낸 여인이다.

라헬보다는 많은 아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자녀를 소유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종인 실바를 통해서 낳은 아들들을 자신의 아들로 입적시킨 여인이다.

이처럼 탐심, 탐욕, 욕심은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정상적인 눈을 비정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요상한 마음의 상태이다.

바울은 골로새서 3:5에서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라고 지적하고 있다.

예수님의 친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야고보서1:14-15에서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경고하신다.

탐욕의 눈, 탐심의 눈, 욕심의 눈으로 살면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 신령한 세계를 바라볼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탐심의 눈, 탐욕의 눈, 욕심의 눈으로 비정상적인 눈을 가진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씨뿌리는 비유에서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의 상태에 누가복음 8:14에서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라고 말씀하신다.

이생의 염려, 재물, 향락이란 탐욕 때문에 결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믿음의 눈이 바로 영적인 눈, 영안을 제대로 뜨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인들은 영적인 눈, 영안을 제대로 뜨고 살아가고 있는가?

육신의 시력이 아무리 좋더라도 영적인 눈의 시신경이 망가져 버리면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영적인 맹인, 소경이 되고 마는 것이다.

등불이 등불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등불로서 존재해야 할 이유와 목적이 사라지고 없어지고 만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되어진 인간이란 존재가 영적인 시신경이 죄와 욕망과 탐욕과 시기와 질투라는 영적인 질환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를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 신령한 하나님 나라의 세계를 볼 수 없으면 영적인 맹인, 영적인 소경이 되는 것이다.

이럴 때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정결케 되어야 영적인 시신경이 되살아나고 회복되어 영적인 세계, 신령한 세계,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등불은 눈이라고 할 때, 어떤 생각이나 관점이나 초점이나 사상이나 주체나 방향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보이는 모습들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눈이 성해야, 곧 눈이 온전하게 밝아야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은 어떤 생각이나 사상이나 관점이나 초점이나 주체나 방향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보이는 모습이 달라진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60평생 살아오면서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가지고 살아왔던 의식체계, 아집, 고집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오류들, 잘못된 일들, 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한 번 박힌 생각의 구조를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친중, 친북, 김일성의 주체사상, 좌파에 빠진 이들의 의식구조가 세상에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맹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육안 뿐만 아니라 지안(智眼), 심안(心眼), 영안을 넓힐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눈의 상태를 항상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안경을 쓸 때마다 안경을 닦아주어야 하듯이 자기 자신의 의식체계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가를 점검하면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주파스에 맞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안경을 쓰든 돗보기를 사용하든 라식 수술을 하든 어찌하든지 볼 수 있는 육안이 열려 있어야 한다.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세계관, 인생관, 국가관, 가치관이라는 지혜와 지식의 지안이 열려 있어야 한다.

올바른 인격과 심성을 지닐 수 있는 마음의 눈, 심안도 활짝 열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영안이 잘 열려 있어야 한다.

똑같은 성경으로 똑같은 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있다고 고백하는 신학자들, 목회자들이 너무나 편협한 신학의 시각으로 성경을 읽고 가르치는 이들이 너무 많다.

좌파적인 신학의 시각, 자유주의신학의 시각, 해방신학의 시각, 여성신학의 시각, 로마카토릭신학의 시각, 공산 사회주의 신학의 시각으로 성경을 읽고 해석함으로 얼마나 많은 오류들을 만들어냈는지, 정말 아연실색할 정도이다.

신학자들이라고 해서, 목회자라고 해서 다 신뢰하거나 믿을 수가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가짜 신학자들, 가짜 목회자들, 가짜 선지자들이 너무 많아서 세상에 널려 있는 쓰레기 집단이다.

어쩌면 이런 자들은 이단들보다 더 악한 자들이다.

올바른 개혁주의 신학, 보수주의 신학과 시각으로 하나님의 마음과 의지와 계획과 뜻을 성경에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읽고 해석하고 깨닫고 지키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영적인 눈, 영안이 올바르게 열려 있어야 한다.

육안, 지안, 심안, 영안이 제대로 열려서 다양한 시선으로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 창조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모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바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테두리, 전통이라는 테두리, 의식이라는 테두리, 계명과 율법이라는 테두리에 갇혀서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 신령한 세계를 수용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서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샤이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고,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더 하나님의 세계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영안이 활짝 열려서 영적인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메시야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구세주로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 자녀, 상속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귀, 사탄, 어둠의 세력들로 인하여 어둠의 세상이 되어 버린 세상을 하나님의 생명으로 환하게 밝혀주시기 위해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 세상의 빛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영적인 세계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영안을 활짝 열어주심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심을 받고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더욱 더 사모하고 갈망하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한가득 채워주시는 능력으로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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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디사이플스 | 작성시간 26.05.1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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