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으로 본 예배 (왕상 3:4-10)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6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이 시간 “솔로몬으로 본 예배”라는 제목입니다. 솔로몬 하면 떠오르는 것이 지혜의 대왕, 또 하나는 일천 번제일 것입니다. 그만큼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드리기를 갈망했습니다. 그가 구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은 단순히 왕에 걸맞게 일천번제를 드렸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솔로몬의 마음과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배가 그래야 합니다. 합당한 마음으로 드려지는 합당한 예배,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예배입니다.
구체적으로 솔로몬을 통해서 본 예배는 무엇일까?
1.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6절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솔로몬은 자기가 왕이 된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부친에게 베푸신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다윗의 신실한 믿음도 언급하지만 결코 자신의 그 무엇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순종하신 아버지 때문에, 넓게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은 예수 안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되었습니다. 고후5:21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롬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뿐일까요? 사53:5에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의 고통이 우리 치유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이 우리의 의가 되고(롬5:19), 예수님의 아들 됨이 우리의 특권이 되고(요1:12), 예수님의 기업이 우리의 기업이 되고(롬8:17),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요10:10, 골3:4),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고전15:57), 예수님의 승천이 우리의 영광이 되었습니다(엡1:3).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바울은 "함께", "안에" 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그 외에도 "옷 입었느니라" (갈3:27), "한 영" (고전6:17), "머리와 지체" (엡4:15-16, 고전12:27), "한 떡, 한 몸" (고전10:17) 등의 용어로 표현합니다. 다윗이 그랬듯 모든 것은 예수님의 공로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이처럼 아버지의 사랑, 예수님의 공로, 성령의 은혜는 예배에 있어서 빼서는 안 될 가장 핵심적인 찬양입니다. 이건 영원히 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린다” 했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던 새 왕이 일어난 것처럼 세대가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뀝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영광은 영원토록 바뀌지 않아야 합니다.
2. 예배는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7-8절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솔로몬은 아이가 아니었으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아이 그것도 "작은 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겸손했던 것은 자신이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부왕의 그 찬란한 신앙과 업적 앞에 자신은 한없이 부족했습니다. 도무지 감당할 것만 같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왕권을 놓고 왕자들끼리 얼마나 치열했습니까? 그만큼 배경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일부러 하는 겸손은 통하지 않습니다. 골2:18에 그걸 "꾸며낸 겸손", 개역성경에는 "일부러 겸손함"이라 했습니다. 거짓 교사들을 지적한 말씀인데, 학자들은 이것을 자신을 높이는 겸손이라 했습니다. 낮추는 겸손이 아니라 스스로 높이는 겸손, 이걸 다른 말로 외식이라고 말합니다.
겉으로 겸손이 아니라 진짜 겸손해야 합니다. 듣고 순종하는 것이 진짜 겸손입니다. 그래서 삼상15:22-23에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했습니다.
잠29:23에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했습니다. 잠16:18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약4:6에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눅4:11에는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셨고, 그럴 때 천국에서 큰 자(눅14:11)라고 하셨습니다.
3. 예배는 하나님의 뜻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9-10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솔로몬은 자기에게 다가온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그 순간에 그가 구한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백성을 잘 섬길 수 있는 사명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10절에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여기서 솔로몬의 말을 "말씀"이라고 기록합니다. 솔로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절호의 순간에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명만 구했던 그 진실을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6절에도 아버지의 삶을 언급한 것도 자신도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도 내 소원을 주장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예배, 하나님께 내 말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교회에 왜 나옵니까? 위로받기 위해서? 여러분에게 위로가 필요합니다. 저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라면 ‘땡~ 아니오’입니다.
고전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했습니다. 우리 예배에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목적일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우리에게 위로와 복과 소원도 이루어주십니다.
은혜받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자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예배를 준비하고 준비하면서 진실로 감사와 영광을 돌리면 큰 은혜가 임합니다. 반면 아무리 열광해도 목적이 잘못되면 그것이 바로 인간 중심의 바알의 제단이요 아세라의 제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솔로몬의 예배가 큰 규모여서 하나님이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신 것은 그가 드린 제물의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 담긴 거룩한 마음이었습니다. 솔로몬처럼 예수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시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낮추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갈망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시고 구하지 않는 것까지도 넘치게 주시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