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툴리안 (Tertullian 150년경-220)
1. 생애
크빈투스 셉티무스 플로렌스 터툴리안(Quintus Septimus Florens Tertullianus)는 150/55년경 카르타고에서 출생했다. 그는 196년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에, 북아프리카 고향에서 문학적, 수사학적 재능과 법률지식을 갖고서, 신앙의 변호에 헌신했다. 그는 날카로운 강직성과 비 타협성으로 말미암아 가톡릭에서 추방 당했다. 207년 직전에 몬타누스주의자들과 접촉했으나, 나중에 결별하고 터툴리안주의자들이라고 일컬어지는 공동체를 세웠다.
2. 저술
197년에 쓴 「변명」은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기 위한 이교도 들에게 쓴 것이며,
「이방인에게」, 「영혼의 증언」, 「순교자들에게」박해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태도에 대해 알 수 있는 작품들이며, 초대 기독교인들의 영웅적 정신을 가장 고상하게 표현한 문서들이다. 「이단을 논박하는 취득시효」는 논쟁적인 기술을 발휘하면서 이단을 대적하는 문서이며, 「참회에 관하여」, 「인내에 관하여」와 「그리스도의 아내에게」등은 도덕적이며 도한 실천적인 성격을 띤 작품들이다.
3. 신학 사상
터툴리안의 신학적 근거는 기독교 전통과 그가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법률교육과 그의 철학적 배경이다. 그는 신앙에 관한 한, 철학이 어떠한 형태로든지 침범해 들어올 수 없노라고 반복해서 주장하지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스토아주의에 영향을 받았음이 확실하다.
.터툴리안의 신학적 이론은 모두 다 이단을 물리치기 위한 일종의 변증신학이었다. 그는 영지주의자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취득시효’(praescriptio) 이론을 체계화시켰고, 군주신론주의자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삼위일체 이론과 기독론을 확립시켰다. 그리고 그는 신학적 용어들을 라틴어의 법률적 언어로 통일시켰다는 점에서 특히 크게 공헌하였다.
주요한 그의 사상은 다음과 같다.
1) 취득시효(Praescriptio)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로마의 법률집행 관습에 다르면, “취득시효”란 회부된 제판의 내용을 문제 삼지 않고 재판의 진행 그 자체를 문제시할 때 쓰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취득시효란 상대편이 제판절차에서 벗아났으므로 재판이 더 이상 계속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반대 의견을 뜻한다. 따라서 터툴리안이 이단을 반박하는 취득시효를 저술했다는 것은 이단들의 이론자체를 논의하자는 의도가 아니고, 이단들이 정텅에 반대할 권한 자체가 없다고 부인하려는 것이다. 터툴리안의 논리적 주장은 이러하다. 취득시효의 앞부분 7장은 이단들의 성행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을 다루면서 이단들의 출현은 성경에서 이미 예언했던 대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놀랄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단들의 오류를 지적한다. 취득시효의 핵심은 제15장에 나온다. 즉, 이단들이 성경을 근거로 해서 기독교의 교리를 논하는 것 자체가 순서에 틀렸다. 이단들은 성경을 소유하지 않고 오로지 교회만이 성경을 소유하였으므로 이단들이 성경을 근거로 해서 이것저것을 말한다는 사실이 틀렸다.
왜냐하면 이단들은 갑자기 중간에서 시작했으며 전혀 새로운 주장을 가르치기 때문에 그들은 성경을 근거로 해서 권리를 내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취득시효의 핵심인 ‘장기간의 취득시효’(praescriptio longi temporis)라는 새로운 이론이 나온다. 즉 장기간 재산을 사용해 온 사람이 그 물건에 대한 사용자로서의 법적 권한을 갖는 것처럼 성경도 지금까지 장기간에 걸쳐서 항상 이용해온 교회만이 해석할 수 있으며 또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2) 「프락세아스 논박」(Ad praxeam:Against Praxeas)
터툴리안의 취득시효 이론은 이단들의 법률적인 권한을 소멸시킴으로써 이단들을 정통성 논쟁에서 제외시켰다는 점에서는 효과가 켰지만 사도적 전통에 서 있는 교회가 그 전통성을 잃는다면 이단들과의 대적에서 효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터툴리안은 이단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법률적인 방법과 더불어서 신학 이론으로써 맞부딪쳐야 했다. 유대교적 유일신 사상을 가진 신학자들은 군주국의 한 분 하나님을 주장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신성을 제한하여 아들을 영원한 인간으로 놔 두는 경향의 역동적 군주신론과 그리스도의 인성을 제한하여 아들을 하나님으로 격상시키는 경향의 형태적 군주신론을 전개했다. 터툴리안은 아들의 신성과 인성을 둘 다 확보하기 위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신성을 다 같이 인정하면서도 서로 다르다는 점을 밝혀야 했다.
법률가였던 터툴리안은 '본질'(substantia)과 '인격'(persoona)이라는 법률적 용어를 도입하여, 한 개인이 사용권을 갖고 있는 재산을 의미하는 '본질'을 군주국에 적용시켜 황제의 재산인 제국이 황제와 그 아들의 공동 소유라는 것이며 '인격'은 재산을 소유한 한 개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몇 사람의 인격(개인)이 한 본질(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으며 혹은 한 인격(개인)이 하나 이상 여러 개의 본질(재산)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질과 인격 개념에 근거하여 터툴리안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구별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통일성을 주장했다. 즉 세 개체는 나눌 수 없는 하나의 본질을 공동 소유하면서 서로 방해받지 않고 세 개의 개체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세 개체는 지위(status)가 아니 정도(gradus)에서, 본질(substantia)이 아닌 형식(forma)에서, 그리고 능력(potestas)이 아닌 그 양상(species)에서 나뉘는 것이며 한 분 하나님으로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이러한 정도와 형식과 양상으로 생각되어질 수 있다면 여전히 하나의 지위이며, 하나의 본질이며, 하나의 능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터툴리안은 신의 속성에 대한 정의와 삼위일체의 개체성을 구별하면서 정밀성을 띤 용어들을 사용하여 그 의미가 선명한 듯이 보이나 오히려 모호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삼위일체는 본질적으로는 통일되나 이차적으로는 구별된다고 할 수 있으며, 혹은 세 개체가 다 신성을 갖기 때문에 통일체로 존재한다고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터툴리안은 "아버지는 전체적으로 본질이나 아들은 전체의 한 부분 혹은 파생"이라고 했으며 아버지와 아들의 구별은 아버지는 불가시적이지만 아들은 가시적 임을 뜻했다고 했다. 또한 『헤르모게네스 논박』에서는 아들이 있지 않은 때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터툴리안의 주장에는 삼위의 종속론적 경향과 아버지와 아들의 구별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터툴리안의 삼위일체 교리의 또 다른 중요한 면모는 신적 "경세"(economy)이다. 경세는 헬라어 " "의 음역으로, 하나님은 한 분이시나 우리가 경세라고 부르는 섭리 아래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분 하나님은 아들이 있다. 이러한 신적 경세는 군주국 개념을 이해하는데 적당하다. 하나님은 이 군주국 아래에서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터툴리안의 이론을 "유기적 유일신론"이라고 한다. 즉 유기적 관계의 개념으로 이해되는 유일신론이라는 것이다. 터툴리안에 대한 정당한 이해는 삼위일체 신학의 경세적 면이 본질과 개체의 개념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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