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교회 성장원리

작성자봉서방|작성시간26.06.12|조회수37 목록 댓글 0

교회 성장원리          

1.교회성장의 중요성(Importance of Church Growth)

교회성장이란 어떠한 의미에서, 인간 구원의 방편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지상에 있는 교회의 확장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확장은 교회성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궁극적인 의미로 볼 때, 지상 교회(earthly church)의 확장이란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의 확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교회성장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잃은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 잃어버린 자들을 찾고 계신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다(겔 34:16; 눅 15:4;).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교회가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또한 교회성장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내려 주신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이다(마 28:19-20; 행 1:8-9). 더욱이 교회성장은 성령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성장은 성령과 더불어,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교회성장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절대적으로 교회가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성장은 절대적으로 성령의 역사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고, 성장시키시는 데는 언제나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신다.


1. 敎會 成長原理

고린도전서 3장 6절에서 7절까지를 보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바울은 교회성장의 원리를 농사일에서 찾고 있습니다.

바울은 심고, 아볼로는 물주고, 심고 물주는 자연적인 생명체의 농사원리를 인간이 따르기만 하면, 성장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성장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도 인간이 농사일을 알고, 그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1) 교회성장 저해요소

① 우선순위를 상실한 것이 성장을 저해한다(학1:2-6).

유다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 귀환할 당시(B.C 605)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정치지도자인 스룹 바벨의 지도하에 귀환한 백성들은 성을 수축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한 성전을 짓기 위하여 주춧돌을 놓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은 개인적 문제와 가정과 사회적, 경제적, 군사적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겠다는 이유로 성전의 주춧돌을 놓은 후 15년간이나 성전 재건을 연기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학개를 보내시어 "네집은 판벽한 데 지어놓고 나의 집은 황무하다"고 책망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는 그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 헌신(Commitment to Christ)하여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한다.

② 자만으로 인한 신앙의 결여가 교회성장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학2:1-9).

성경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킨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는 두려워하지 말고 너희와 언약한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조금 후에 주어질 영광과 평강을 바라라고 한다. 이와같은 소망을 가진 사도 바울은 몸에 불편한 가시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세번 간구했으나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 하지 아니하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후12:7)고 말씀하셨다. 그는 그러한 가시가 있으므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전념할 수 있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종인것이다. 교만은 罪의 뿌리가 되어서 人間의 다른 모든 罪들을 培養 시킨다. 목회자들이 겸손하면 겸손할 수록 不滿 不平이 없어지고 다른 敎訓을 많이 배울 수 있게 된다.

③ 성직자들의 직업주의화(化)가 교회성장을 저해한다(학2:10-15).

목사와 전도자는 신앙에 대한 상징적인 존재이며 만일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겪은 그 자신의 신앙적인 경험을 확인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가 다른 사람에 대한 모범이나 또는 선생으로서 설수가 있는가?

④ 하나님나라 확장에 대한 비젼(Vision)의 결여가 교회성장을 적극적으로 저해하는 것이다(슥1:18이하).

비젼이 없는 백성은 요동하며 망하게 된다는 진리는 교회에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이 비젼은 인간이 창출해 내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인간이 하나님으로 부터 받는 것이다.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비젼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젼이다. 많은 학자들이 예수님 성육신 사건에서 천국운동은 시작되었고 그가 이제 재림하심으로 완성된다고 보고있다. 이것이 가장 건전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라고 말할 수 있다.

⑤ 지도자(Leadership)의 결여가 교회 성장을 저해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슥4:1-14).

스가랴 선지자는 환상 가운데서 7개의 등잔을 가진 금촛대를 보았다. 그리고 그 좌우에 두 감람나무가 세워져 있었고 그 곳으로부터 두 금관(pipe)을 통해 기름(Oil)이 흘러 금촛대의 등잔불을 밝히게 되었다. 이는 성령을 부어 주는 이스라엘 백성의 두 지도자 여호수아 대제사장과 유다총독 스룹바벨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지도자 없는 교회는 성령의 은혜가 공급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몇몇 젊은이 들은 절박한 운명으로 부터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길은 성서로 되돌아가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요한 웨슬레, 찰스 웨슬레,죠지 화이트필드 등의 복음전도자와 존 하워드, J.허드슨 테일러, 바르나르도 선교사 등의 리더쉽은 세계에 확고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 최소치 전략 활용 ▒

최소치 전략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취약한 질적 특성이 교회 성장의 장애 요인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교회가 자원과 노력을 우선적으로 이 장애 요인에 집중시킨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교회는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소치 전략이란 우리가 시간상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우리가 이 여덟가지 분야를 똑같은 양의 노력으로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투자한 것에 대해 장기적으로 가장 큰 열매를 맺게 해줄 분야를 찾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 나무 물통 그림이 최소치 전략을 가장 잘 설명해 줍니다. 이 통은 여러 가지 다른 길이의 널판지를 이어서 만든 평범한 통들일 뿐입니다. 설문 조사를 마친 한 교회를 방문할 때 그 교회의 평가 결과에 따라 여덟 개의 질적 특성의 이름을 각 나무 널판지에 씁니다.

최소치 요소로 나타난 특성(예를 들어, 조직)을 가장 짧은 널판지에 쓰고, 최대치 요소로 나타난 특성(예를 들어, 영성)을 가장 긴 널판지에 씁니다. 그런 다음 그 통에 물을 부어 물이 통 밖으로 흘러 넘치게 합니다. 바닥이 젖고 앞 줄에 앉은 사람들의 발이 젖을 때까지 물을 부으면서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제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물어 봅니다. 교회 관리인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은 내게 즉시 물 붓는 것을 중단하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말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물은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교회 위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물을 담는 데" 문제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 이제 그만 축복해 달라고 요구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더 많이 기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기도가 교회 성장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긴 널판지인 "열정적 영성"을 10 센티미터 높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방법이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물은 계속해서 바닥에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주로, 교회 관리인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기능적 조직"이라고 쓰여 있는 널판지를 올리십시오. 최소치 요소의 이름이 쓰여진 널판지의 길이를 올립니다. 3센티미터를 올립니다. 올리자 마자 그 통은 그 만큼 더 많은 물을 담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최소치에 집중하는 전략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소치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 교회 성장 요소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성장을 저해하는 요인들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교회가 성장하기 위한 원리들을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①교회확장

복음은 모든 방해 요소들을 제거하는 능력이 있다.

유대주의의 좁은 울타리 안에서 예루살렘을 중심하고 오순절에 일어난 복음전파는 유대인들과 그 개종자들을 중심하여 퍼져 나갔다(행2:5-11). 복음은 현대 세속문화, 공산주의 문화, 또는 소위 종교문화들-유교문화,불교문화,모슬렘문화-까지도 정복할 능력이 있다.

선교에는 인종의 차별이나,민족의식이나,종파의식 따위가 있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우선권의 문제들을 기억하고 선택에 직면한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복음전도와 사회 참여에 종사하는 일을 꾸준히 밀어나가도록 지휘하신다. 교회는 어느 민족이나 부족 또는 특정한 직업인을 복음에서 제외하는 배타적 입장을 취할 수가 없으며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포괄성을 갖고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수용해야 한다.

복음은 에디오피아,로마로,유럽으로 넘어 갔다. 이제 복음은 이방인에게 완전히 넘어감으로 (행11:19,20)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이 될 경우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하는 지를 묻는 소위 예루살렘 회의를 열게 되었고 이 회의의 주제는 민족복음화와 세계복음화(행15장;갈2장)였다. 이렇게 해서 복음은 타종교의 장벽까지 허물어 버리게 된다. 사도행전은 복음이 세상 끝까지 넓게 퍼져 나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행28:30,31).


② 수적 성장

사도행전은 교회의 수적 성장을 통계로 보여 준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제자들의 공동체는 120명으로 시작하였다. 며칠후 삼천명이 개종하고 얼마안있어 오천명이 개종했다. 이들 교회는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특별히, 환경의 이변이 없는 한 교회의 수적 성장은 질적 성장과 병행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결과와 숫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엄밀히 말해서 하나님의 장중에 있기 때문이다.


③ 지리적 확장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복음은 유대,갈릴리,사마리아,안디옥으로 확장되었다.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함으로써 소아시아 지방에 복음을 크게 전파하게 되었다. 복음의 중심이 비시디아의 안디옥(행13:49)으로 그리고 다시 에베소(행19:10)로 마침내 로마로 옮겨져(행28:30,31) 세계복음화의 기틀이 잡히게 되었다. 신약시대의 선교사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 사상으로 모든 나라에 나아가서 선교하라는 것이었다. 구약에서는 다 예루살렘으로 와서 우리가 하는 일을 봐라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인데 신약에서는 이제 이방으로 나아가 그들 속에서 하는 선교가 되었다.


④ 질적 성장

*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도 사랑과 서로 나눔과 감사와 기쁨과 찬양이 있는 교회(행2:43-47)

* 위선자가 저주를 받는 거룩한 교회(행5:1-11)

* 예수 그리스도를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주님으로 고백하는 교회 즉 바른 신학을 가진 교회(행3:14)

* 교회 중심의 생활을 통해 든든히 서가는 교회

* 그 수가 증가될 때에 신앙이 강조되고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가진 교회(행11:21;16:5;19:20)가 질적으로 우수한 교회라 할 수 있다.


⑥ 고난의 성장 원리

교회 성장은 고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머리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고난의 종으로 오셨으므로, 그의 남은 고난을 우리가 담당해야 한다(골1:24).

초대 교회 성도들은 능욕받는 것이 합당한 줄 알고 오히려 기뻐했으며(행5:42) 사도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가르쳤다(행14:22). 그리스도의 찔림과 상함은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다. 하나님은 양이 져야할 죄짐을 전부 수난의 종에게 짊어 지우셨다. 우리에게 내려질 심판과 저주와 진노가 수난의 종에게 내려짐으로 우리는 화를 면했다.



교회성장의 원리 (PRINCIPLES OF CHURCH GROWTH)


성경으로 돌아가 보면, 특히 복음서들과 사도행전에 교회성장에 관한 많은 원리들이 나타나 있다. 교회성장 원리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의 원리들로 나타나 있는데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원리를 비유(parables)로 들어 말씀하셨다. 우선 복음서에서 비유를 통한 많은 교회성장의 원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빛과 소금의 비유(마 5:13), 밭에 씨뿌리는 비유(마 13:3-30), 겨자씨의 비유(마13:31-32), 누룩의 비유(마 13:33),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마 13:44), 진주장사의 비유(마 13:45-46), 그물의 비유(마 13:47-50), 잃은 양의 비유(마 18:10-14), 혼인잔치의 비유(마 25:1-13), 달란트의 비유(마 25:14-30), 추수의 비유(마 9:37; 막 4:29; 눅 10:2; 요 4:35)등, 수없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는 오순절 교회성장의 원리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행 2:1; 2:41; 2:47; 16:5). 즉 초대 교회의 성장의 특수상황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비유들에서 교회성장의 원리들을 유추(類推)한 의미심장한 의미들을 담고 있다. 이러한 비유의 대상들에는 무엇보다도 생명성(生命性)과 고귀성(高貴性)이 있어서 천하보다도 귀하고 주님의 몸(B! ody of Christ)인 교회의 비유로 유추된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의 원리는 생명의 성장의 원리서 유추되는 것이다.

아무리 심고 물 주어도 잘 자라지 않는 식물을 어딘가 병들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체는 어떤 상태가 건강한 상태이며 어느 영역이 병들어 있는지를 진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건강진단을 할 때에도 내과, 외과, 안과, 치과 등으로 나누어 진단함으로써 병든 부분을 찾아 낼 수 있듯이 교회의 건강도 분야를 나누어 진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1.좋은 교회 지도자를 통한 성장 원리

초대교회의 교회성장의 첫째 비결은 교회지도자들이 성령충만하고 칭찬듣는 사람들이 쓰임받았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행6:3-4)


1) 선한 목회자상

목사란 교회를 다스리는 영혼의 목양자이다. 오늘의 牧師職은 구약의 제사장과 예언자직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① 인격 성숙의 중요성

예수께서는 33년을 사셨다. 자세히 보면 목수인 아버지 밑에서 목수로서 기술을 배우면서 30년, 제자들을 불러 훈련 시키시느라 3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속의 방법을 이루시기 위해 3일을 보내신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그의 인격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30년을 보내야 했고 제자들의 인격을 개발시키기 위하여 3년을 보내야 했다.

우리 모두는 주님께서 그의 거룩한 계획과 경륜에 따라 교회의 기둥으로 우리를 가꾸고 다듬어 가고 계신다. 우리 목회자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은 목회자의 인격이다.

다른 사람의 교회는 부흥 하는데 내 교회는 언제나 그모양이야 하면서 안타까와하며 고민하는 것보다 더 큰 과제는 자신의 인격을 개발하는 일이다. 날마다 인격 성숙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하겠다.

목회자는 진실한 인격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사모가 자기 남편을 진실한 인격자로 신뢰하고 존경한다면, 교회가 작거나 크거나 그 목사는 참으로 훌륭한 목회자이다. 진실은 목사의 생명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품는 일이다.

축복받은 매 순간마다 주님의 그 인격을 닮아 그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종이다. 기독교 교육의 중심은 사랑이요,내용도 사랑이요, 그 방법도 사랑이다.

목회자에게는 예수님의 눈물이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이야 말로 무한히 깊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스도가 눈물을 흘려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기에 눈물 없이는 그리스도의 뒤를 따를 수 없다. 목자로 부름받은 우리 심장에 주님의 눈물이 있어야 한다.

②교회 지도자는 성결해야 한다.

예수님은 물질로 부터 자유를 누리셨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이요, 너희 천부께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를 아신다고 하셨다. 그는 남에게서 빌린 말 구유에서 태어 나셨고, 죽을 때는 옷까지 벗겨 주고 아리마대의 무덤을 빌어 사흘 밤을 쉬고 부활 승천 하셨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정신을 본 받아 물질로 부터 자유함을 누렸다. 우리도 사도바울 처럼 '금이나 은이나 탐하지 아니하고 범사에 너희에게 모범을 보였노라'라고 말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③지도자는 섬기는 리더쉽으로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하셨다.

예수님은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우리를 부요케 하신 것이다(고후8:9).

교회 성장에 있어서 정상적인 길은 십자가를 동반하는 것이다. 십자가 없는 거듭남, 이것은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모른다고 부인하실 것이다. 십자가 없는 설교는 말놀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소개하는 설교 구상을 해야한다.


④목숨거는 목회길로

성공적인 목회에는 삼방목회의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도의 골방, 둘째는 성경연구하는 책방, 세째는 전도하는 심방이다. 교회 지도자는 가르치기를 잘하고 말씀을 지키며 설교해야 한다.

베드로와 요한은 십자가에 죽었던 스승 예수로부터 나왔고, 그들 또한 그들의 스승처럼 감옥에 가서 죽는 것으로 십자가를 졌다. 그들은 예수님이 3년동안 제자훈련해서 된 제자들이 아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음으로 제자의 도를 깨닫게 된 사람이었다.

전도자의 순교는 두가지 방식이 있다. 매일 순교가 있고 일시적인 순교가 있다. 일시적인 순교보다 매일 순교는 더 어렵다. 날마다 순교한 목자는 가는 곳마다 평화가 있고 변화가 있을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다음에야 우리를 구원하실 수가 있었듯이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가 죽을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

또한 교회 일반 성도들은 구약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전 시간을 교회안에서 사역하는 전임 교회 사역자들의 (목사,선교사,전도자,교사,행정요원등)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 교회에 專任으로 일하는 자로 부름을 받은 자들에 대해 하나님은 이들에게 다른 산업을 주지말라고 하셨다.즉 다른 생업을 하면서 교회 일을 하지말고 전임사역 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일반 성도들은 자신들의 헌금과 사랑과 관심으로 전임 사역자들의 생활문제를 책임맡아 이들이 생활문제로 신경쓰지 않고 전적으로 주님의 사역을 하도록 마땅히 섬겨야 한다. 교회 전임사역자들은 교회안에서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와 말씀을 중심으로 섬기고 일반 성도들은 그들을 몸과 헌물을 중심으로 섬기며 상호 봉사하는 것이다.

*“그들은 基業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基業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들에게 産業을 주지 말라 나는 (그 産業이) 됨이니라”(겔44:28)

*“우리는 祈禱하는 것과 말씀 傳하는 것을 (專務하리라) 하니”(행6:4)

*“모세 律法에 穀食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記錄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爲하여 念慮하심이냐”(고전9:9)


<적용> 당신의 교회는 교회 전임사역자들을 어떻게 어느정도 생활비를 담당하고 섬기는가?


교회 지도자의 교회 성장을 위한 목회

①하나님 나라 확장 비젼을 먼저 받아야 한다 (Receiving a Vision)

교회성장을 어떻게 창출해낼 것인가? 교회성장의 역사는 지혜의 영이요 계시의 영인 성령을 통하여 비젼(vision)을 받는 것으로 부터 출발해야 한다(행 10:9-16; 16:6-10; 엡 1:17; 요 14:26). 비젼을 받아야 한다는 말에는 의미심장한 뜻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비젼에 대하여 신앙적인 개념을 비젼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과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일반적으로 말할 때에, 비젼이란 자기 자신에게서 창출해내는, 실존주의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인본주의적 발상으로 기독교적인, 즉 성서적인 개념과 분명히 구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크리스챤의 비젼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제단으로 부터 나오는 비젼이라야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비젼이 없는 교회는 하나님에 의해 인도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죽는다(삼상 1:1-2; 계 3:1).

성경은 비젼 없는 백성은 망한다(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라고 말한다(잠 29:18 KJV). 비젼이나 뚜렷한 목적이 없을 때에, 사람들은 고충을 당한다.  교회 지도자가 교회성장! 에 대한 확실하고 뜨거운 비젼을 가지는 것이 성장의 열쇠가 된다. 죽어가는 교회들의 문제는 능력(ability)이 없어서가 아니라 비젼이 없다는 것이다.

비젼(vision)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비젼을 어떤 이상(ideal)이나 미래의 독특한 영상(unique image)이라 한다. 사실 비젼이란 하나님의 비상한 접촉에 대한 개인적 체험의 결과로서, 정신적 혹은 영적 영상(mental or spiritual picture) 이상의 것이다. 비젼은 동기를 부여받은 지도자나 사람들의 그룹활동의 원동력이 되는 추진력(driving force)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비젼은 어떠한 가능성(possibility)까지 포함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본래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주시는 은사(gift)이다.

목사는 이러한 비젼을 가져야 하고,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교회성장의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 로이 포인터(Roy Pointer)는 이러한 통찰력을 가리켜 교회성장의 안목(church growth eyes)라고 불렀다. 로버트 슐러는, 교회 지도자는 교회성장에 대한 가능성의 사고(possibility thinking)를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가능성의 사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가능성의 사고는 의도하는 바 하나님께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한 방법으로서의 꿈을 실현시키는 영상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가능성의 사고는 또한 신앙! ,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너희가 못할 것이 없느니라'는 말씀하신 그러한 종류의 믿음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로버트 슐러는 자기 자신의 목회철학적인 가능성(可能性)의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불가능이란 없다(nothing is impossible!)고 담대하게 말한다. 이 가능성의 사고방식이 심령과학적이며 인위적인 방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슐러는 교회성장에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교회성장의 기적을 이루었다. 그의 말은, 성령은 우리의 생각과 인격을 통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에, 생각을 비워 성령께서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능성의 사고방식(possibility thinking)이라고 설명한다.


②교회성장 비젼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 (Confidence in the Vision)

교회 지도자는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뛰어 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젼에 대한 실현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 비젼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비젼이란 말씀에 근거하여 주어지고, 믿음으로만 받고, 믿음으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을 넘어서 믿음의 눈을 열어야 한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해서 비젼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믿음 뿐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비젼이란 크게 두 가지 신령한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는 불가시성(invisibility)이다. 육안이나 이성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신령한 눈이 열려야만 볼 수 있는 불가시성이다. 그러므로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를 믿음으로 포착하게 된다. '증거'라는 말은 개역성경(RV)에서 '증명'(proving)으로 번역되었고, 그 성경의 각주에서는 '시험'(test)이라고 주석되어 있어, 보여줌으로 확신(conviction; convince)시켜 준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더 핑그(Arthur W. Pink)는 보지 못하는 것, 즉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을 현재 영혼의 눈으로 보고, 영혼의 손으로 붙잡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곧 믿음이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을 확신(convince)하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교회성장을 위한, 아직 달성을 보지 못한 목표를 믿음의 눈으로 미리 바라보는 것이 비젼이다(visualization). 그러므로 비젼을 통하여 불가시적인 성장의 모습(image)을 바라보고 이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비젼(vision)은 미래성(futurity)을 가지고 있다. 역시 히브리서 11:1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라고 했다. 여기에서 '실상'은 헬라어로서, '확신'(confidence)이라는 뜻이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비젼이 실현되기를 기다리고 서 있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교회 지도자는 교회성장! 에 대한 비젼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다시 말하면 비젼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선 비젼을 보아야(받아야) 하지만, 만약에 그 비젼에 대하여 지도자 자신 마져 확신이 없다면, 교회 성장에 대한 방향(direction)과 목표(target)가 없기 때문에, 의욕과 추진력(driving power)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③교회성장 비젼을 보이고, 확신시켜야 한다 (Showing and Carring the Conviction of the Vision)

교회 지도자가 교회 성장 비젼을 받아서 확신을 가진 후에, 그 비젼을 교인들에게 보여주고, 발전(develop)시켜야 한다. 교회성장에 대한 분명한 비젼을 제시하여 교인들로 하여금 소망을 갖게 해야 한다. 교인들은 소망이 없다고 판단될 때에 교회를 떠난다. 교회에 대한 분명한 소망을 안겨주어서 이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 교회성장에 대한 비젼은 강단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보여져야 하며, 여러가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하여 반복적으로 주입시켜서 교인들의 머리속에 확실하게 새겨져야 하며(oriented),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리되고(proved), 성령의 역사(役事)를 통하여 교인들에게 인식되며(recognized), 그 비젼에 대한 동일화(identification)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함께, 교회 지도자는 진정으로 교회성장에 대한 불타는 욕망을 가진 의욕적인 태도(attitude)와 액숀(action)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교인들에게 보여줌으로 그들을 설복시키고 확신시켜야 한다. 아무리 좋고 분명한 비젼이라 하더라도 교인들에게 보여주어 저들에게 온전히 인식시키고(recognized) 동일화시키지(identified) 않는 한, 저희들을 교회성장 운동에로 끌어들일(involve) 수가 없다.


④교회성장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Planning for Church Growth)

교회성장에 대한 비젼을 교인들에게 보여주고 인식시켜서 강력한 지지를 얻은 다음에는, 비젼을 현실화시키기 위하여 효과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계획수립(planning)은 교회성장을 위한 성공의 열쇠이다. 계획이 없으면, 목사는 교회성장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교인들이 바라볼 수 있는 분명한 목표(clear-cut target)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로서 목사는 우선 교인들 중에 주요 멤버들에게 교회성장에 대한 원대한 청사진(big picture)을 보여줘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당회(consistory)나 운영위원회(steering committee)와 같은 교회의 중추기관들의 핵심 멤버들(key members)에게 목회자의 비젼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교회성장에 관한 개략적인 청사진(big picture)을 보여주고, 이에 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교회 당회의 동의를 얻어서 각 분과위원(executive committee)에 위임한다. 각 분과위원에서는 전년도 사업성과를 면밀히 분석 평가하고, 신년도 예산에 최대한 활용하여 사업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교회 지도자의 분명하고 확신있는 비젼과 강력한 리더쉽(leadership)에 근거해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진력이 없다.


⑤교회에게 동기를 부여해 주어야 한다 (Motivating their Congregation)

교회 지도자는 분명하고 효과적인 계획을 가지고, 교회성장을 위하여 끌어들인 교인들에게 동기(motivating)를 부여하고, 고취시키고(enhancing), 동원시켜야(mobilizing) 한다. 교회 지도자 혼자서는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한 많은 일과 무거운 짐들을 질 수가 없기 때문에, 평신도들이 그 일들을 나누어 질수 있도록 그들에게 동기를 줄 필요가 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드(Jethro)가 모세(Moses) 혼자서 그의 일을 처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출 18:18). 그러므로 모세는 그의 주요한 일만을 하고 남은 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서 하였다. 열 사람의 평신도들이 일을 나누어서 하게 되면, 한 사람의 교회 지도자가 열번에 걸쳐서 해야 할 일의 분량을 한 번에 할 수가 있게 된다.


⑥전체 교인들의 동원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Mobilizing the People)

사실, 교회성장의 성패는 교회 지도자와 평신도, 그리고 프로그램등 세 가지 요소에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무엇 보다도 중요한 것은 목사의 리더쉽(pastor's leadership)과 평신도 동원화(laypeople-mobilization), 그리고 프로그램 운용(programming)등 이 세 가지 요소가 교회성장의 열쇠가 된다. 이 중에서 두번째에 해당되는 평신도의 동원화는 앞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이에 대하여 정진황 박사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목사가 교인들에게 아무리 능력있는 설교를 할찌라도, 설교만으로는 배가적인 방법으로 달성되는 교회의 급성장을 결코 기대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교회성장의 열쇠는 평신도의 동원화에 있다. 평신도가 동원될 때에, 목사는 동원된 교인들을 통하여 전도활동, 교육 프로그램, 제자훈련, 선교활동, 그리고 사회 봉사활동 등 교회성장을 위한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동원화된 교인들은 한 사람의 강력한 목사보다, 교회성장에 있어서, 더 중요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이는 목사가 여러 번, 혹은 긴 시간을 통하여 할 수 있는 일을 평신도를 동원한다면, 한 번 혹은 짧은 시간내에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목사의 목회사역에 있어서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평신도 동원화 방법은 분담목회(sharing ministry)를 위한 것이다. 성경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사역은 분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모든 신자들이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벧전 2:5). 그리고 교회 멤버들은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기 때문이다(고전 6:15; 12:12-27; 롬 12:4,5; 엡 4:25; 5:30; 1:22; 골 1:18). 특히 바울 사도는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엡 4:11-13 KJV). 평신도들의 교회참여를 통하여 초대 교회는 번영하고 왕성하였다.

<질문>당신이 섬기는 목회자가 참 목자상을 갖기 위해 당신은 어떤 수고와 노력을 하고 있는가? (참고:히13:18,갈6:6)


2.은사 중심적 사역을 통한 성장 원리

하나님께서는 이미 각각의 그리스도인들마다 그들이 해야 할 사역을 이미 정해 놓으셨다는 확신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역할은 교인들이 그들의 은사를 발견하여 은사와 연관된 사역을 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 원리가 아주 간단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을 실제로 적용한다면 교회의 각 분야에 미치는 결과는 놀라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에게 주어진 영적 은사를 따라 섬기는 삶을 살면, 여러분은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여러분이 "단지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말 그대로 굉장한 일을 해낼 수 교회는 다양한 일이 있고 , 그 일마다 일꾼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평신도들은 자신의 은사와 일치하는 사역을 할 때 열매도 맺고,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은사에 따라 일을 하면 은사 없는 일보다도 대단히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의 지도자는 평신도의 은사가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도와주고 은사에 맞는 사역을 맡겨야 합니다.

주일학교와 청소년 전도와 목회를 통한 전도는 교회 성장에 큰 역할을 합니다. 어린심령들은 죄에 길들어지지 않아 상대적으로 전도가 잘되고 믿음성장이 빠릅니다. 주일학교와 청소년 사역에 은사를 가진 분들을 세워 섬기도록 하여야합니다.



<질문> 성령이 주시는 은사중에서 당신이 받은 은사는 무엇인가?

(참고;롬12장; 고전12장; 엡4장)


<질문>성령이 주는 은사를 아는 좋은 점은 무엇인가?

◇ 엡4:13, 16

◇ 벧전4:10-11

*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이기에 선한 청지기처럼 충성할 수 있는 책임감을 갖게 된다.


<질문>당신이 은사를 사용하는 태도는 어떤가?

(참고: 롬12:3-4,고전13:1-8)

*지체들이 받은 은사가 다 같을 수 없고 타 지체의 은사는 우리의 선물이기도 하다. 은사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영적 은사’-성령을 받아 믿음으로 영생얻은 정상적인 신자는 모두 영적 은사도 받았습니다.  은사들에 대해서 고린도전서12장과 에베소서4장 그리고 로마서12장에 나와 있다.


<질문>에베소서4:11-13을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시오.

1)엡4:11의 네가지 직분은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인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 각 성도를 두 가지면에서 도와 주게 되는데 그 두 가지가 무엇인지를 아래에 써보시오.

①성도를 온전케 하며

②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한다


<질문>가장 큰 은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이 은사를 받을 수 있는가?(롬12:9-12;롬5:5)

*가장 큰 은사는 사랑이며 성령으로 우리마음에 부음받음으로 받는다.


3.열정적 영성을 통한 성장 원리

초대교회는 기도모임으로 시작되었다. (행1:4, 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1:14)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행 2:46)

초대교회 신자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날마다 예루살렘 성전 바깥뜰 동쪽 편에 있는 솔로몬 행각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며 성전에 오는 유대인들에게 전도를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성전에 모이기에 힘쓸 때 교회가 부흥된 것처럼 지금도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는 부흥됩니다.

우리 하나교회도 신자 하나 하나가 매 예배시간마다 모이기에 힘쓸 때 부흥이 될 줄 믿으시고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전도를 잘 하는 분들은 더 잘하기 위해서 성전에 모이기에 힘쓰시고 죽어도 전도 못하겠다는 분들은 열심히 예배시간에 참석하여 자기자리라도 책임지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2:42) 본절에서 '사도의 가르침'은 헬라어 본문에 따르면 문자적으로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번역된다. 여기서 '사도'는 복수형이지만 '가르침'은 단수형이다. 이것은 사도들이 주께서 허락하신 권위를 가지고 각기 주어진 바 임무대로 가르침에 전력했지만 그 교훈의 통일성(統一性)을 유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이 가르친 내용은 예수님의 말씀들(20:35)과 행하신 일들이었다.  본절에서 '교제'와 '떡을 떼며 기도하기' 사이에 '그리고'란 접속사가 생략되었으므로 이는 떡을 떼며 기도하는 것이 교제와 동격인 것을 보여준다. '교제'(헬, 코이노니아)에 있어서 희생적인 사랑의 정신으로 이웃에게 봉사하며 물질적으로 도와주는 것과 영혼의 교통 곧 기도하는 일은 필수적이라 하겠다. 또한 떡을 뗀다는 것은 성찬과 애찬을 동시에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46절; 20:7; 고전 10:16; 11:23-25).

그런데 46절에서 '떡을 떼는 것'과 '음식을 먹는 것'이 서로 구분되어 언급되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본 구절에서 떡을 떼는 것은 예수께서 제정하시고 제자들로 하여 기념하라고 명령하신 '성찬'(눅 22:19)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전혀 힘쓰니라'는 동사는 미완료 과거형으로 어떤 행동 방침에 전심전력을 다하여 지속적(持續的)으로 교제했음을 의미한다(1:14; 6:4; 8:13; 롬 12:12; 13:6; 골 4:2). 그리고 이 말은 제자들이 '교제'를 매우 중요시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초대교회의 모습은 맘모스(Mammoth)교회이기 보다 바른 질서 아래 사랑과 교제가 넘치는 행복한 한 가정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특히 초대 가운데서 우리는 전적으로 순수한 영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 교회의 교우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이웃을 돕는 참사랑과 봉사의 생활을 했으며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헌신적인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

열정적이고 열심 있는 믿음으로 사는 교회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성공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열정적 영성 분야가 결여되어 있는 교회에서는 어떤 좋은 방법들을 동원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아무리 새 차라도 그 속에 휘발유가 없어서 가동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영성을 측정하는 두 척도는 기도생활과 성경을 통한 큐티입니다. 성장하는 건강한 교회들은 대부분 기도가 뜨겁고, 기도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기도가 차가운 교회는 영성이 미약한 교회입니다. 건강한 교회의 지도자와 교인들은 기도하는 시간을 지겨운 시간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도시간을 즐거워하고 , 기도의 맛을 압니다. 기도를 통해서 은사를 받고 ,기도응답을 받습니다. 따라서 성도사이에 기도응답의 간증이 또 다른 기도의 열심을 일으킵니다. 기도생활이 살아나면 성경 읽기도 저절로 살아납니다. 성도 스스로가 성경을 읽고 영적인 양식을 취하고자 합니다. 기도생활과 성경 읽기가 율법 주의적인 관습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열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질문> 건강하고 지속적인 교회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전통, 인물, 재정, 프로그램, 건물, 행사에 의해 움직여지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    목적에 의해 움직여지는 교회이다.



4.기능적인 교회조직을 통한 성장 원리

영성주의자 들은 기도만 강조하고 조직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방법주의자 들은 교회가 어떤 일정한 조직을 갖추면 성장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슈바르쯔 목사는 영성도 중요하고, 교회조직도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교회의 기본 조직을 평가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조직은 폐지하거나 개선해야 하며 교회에 필요한 기능을 수행할 조직을 계속 개발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조직이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구성되어야 그 조직에 필요한 은사를 가진 평신도 지도자의 발굴이 가능하고, 지도력의 위임도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한 교회 내의 형식과 조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사람들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느냐의 여부입니다. 교회 조직 자체는 절대로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조직은 단순히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이 요구 사항에 맞지 않는 것들(지도력을 감소시키는 조직, 불편한 예배 시간, 교인들에게 효과적이지 못한 프로그램, 등)은 모두 바뀌든지 중단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자체 갱신을 통해 전통주의적인 관례들은 많은 부분 제거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 원리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간단히 요약해 보면, 그 이유는 사람들의 삶의 경향이 점점 더 전통적으로 되어 가는 성향 때문입니다. 전통주의란 자신들이 익숙해져 있는 교회 형식이 그래로 머물러 있어야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 성장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 중 하나가 전통주의라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질문>민수기1장 2절에서 4절까지를 읽고 다음의 문제에 답하라.

 ①2절에서 ‘회중’은 오늘의 무엇을 예표하는가?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민1:2)

*여기서 ‘회중’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드’인데, 야드라는 말은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즉 이 회중은 단지 어떤 무리를 일컫는 말이 아니고 ‘약속의 회중’, ‘약속의 무리’,‘언약의 백성’을 뜻합니다. 이것은 신약의 교회를 예표합니다. 회중에서 여자와 아이는 빼고 남자만을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하게 한 것은 이것은 이제 가나안을 정복해 들어가기 전쟁을 대비한  군대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②군대대로 계수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스라엘 중 이십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군대대로 계수하되“(민1:3)

*여기에 ‘군대’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불러 구원하신 것은 다만 거룩한 무리일 뿐 아니라 ‘군대‘라고 말씀하십니다 (출12:17).이는 전쟁을 준비하는 군대 조직으로 오늘날은 음부의 권세와 싸울 십자가 군병을 예표합니다.


<질문>민수기 1장 4절에서 두령을 세운 이유는 무엇인가?

“매 지파의 각기 종족의 두령 한 사람씩 너희와 함께 하라”(민1:4)

* 여기에 ‘두령’은 인도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함께할 두령들의 이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무교회주의자 교회조직을 무시하는 것은 성경의 근거가 없다.

“이월 일일에 온 회중을 모으니 그들이 각기 가족과 종족을 따라 이십세 이상으로 그 명수를 의지하여 자기 계통을 말하매“(민1:8)

군인이 되려면 반드시 자기 계통을 말해야 한다. 에스라 2장 62절을 보면

“이 사람들이 보계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한 고로 저희를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고”여기에 ‘보계’란 ‘계통’을 말합니다. 자기의 계통을 확실하게 대지 못하는 사람은 제사장 노릇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부정한 사람들로 여겨집니다.

죄 사함을 얻었을지라도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풍성한 생명으로(요10:10) 살지 않으면 그 사람은 아직 죄에 이끌리고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영적 전쟁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육십만이 각자 자기의 출처가 어디인지, 자기의 설 위치가 어디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하나님의 군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군대의 각 병사도 자기의 관계에 대해서는 조금도 희미하지 않은 자신감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전투에 참가할 수 없을 것이다.

<질문>고전12:28은 교회 조직의 어떤 원리를 계시하는가?

* 교회직분과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직분은 은사보다 더 권위가 있다.


5. 영감있는 예배를 통한 성장 원리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행10:44-45)


사람들이 교회로 자신들의 힘든 삶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경배와 찬양,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고 나가면서 그들은 성령님이 부어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며 한없는 기쁨의 눈물을 비같이 줄줄 흘리는 그림입니다.

사도들에게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행2:43).

기사와 표적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치료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사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하나님의 아들임을 기사와 표적으로 나타내셨고 사도들도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치료함으로 사도임을 증명해 보였습니다(행 4:30, 5:12, 6:8, 8:6, 13,14:3, 15:12). 오늘날도 교회가 은사주의로 나가면 안되지만 말씀중심의 교회이면서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면 교회 부흥에 큰 유익이 됩니다. 교회에서 전인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면 교회는 더욱더 부흥이 됩니다.

교회 사역에서 공적 예배만큼 모델과 원리간의 구분이 침해받는 분야도 없을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교회의 특수한 예배 형태를 자기 교회에 도입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 모델이 교회 성장 원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예배가 참석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는  예배인가 하는 것이야말로 성장하는 교회와 성장하지 못하는 교회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감 있는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교회 예배는 "재미있다"(어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말이 거의 이교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 질적 특성에 대한 반대가 대부분 어디에서 오는가 라는 것은 아주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단순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예배에 참석하는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옵니다. 그들은 예배가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이기 때문에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나 혹은 목사님, 아니면 그 밖의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해 참석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싫은 것도 억지로 참는 "충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라고 믿기도 합니다.

교회음악이 전통적이냐 현대적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즐겁고, 기쁜마음으로 참여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예배의 순서나 절차의 어떤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순서나 절차에 성령님이 진정으로 역사하시느냐 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예배시간을 기다리고, 예배참석을 즐거워하고, "교회 가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그런 교회는 반드시 성장합니다.

<질문>요한복음 4장 23-24을 보면 하나님은 어떠한 자를 찾으시는가?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이다. 사람들을 의식해서 하는 모든 행위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예배가 아니다.


6. 전인적 소그룹을 통한 성장 원리

셀그룹이란 무엇인가?

교회는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몸이다. 몸은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세포들은 살아서 왕성하게 번식한다. 마찬가지로 셀그룹은 교회 안에 있는 가장 작은 형태의 모임이지만 살아있어서 왕성하게 번식하는 단위 조직이다.

셀그룹의 중요한 목적중의 하나는 효율적인 목양이다. 구성원들은 깊이 있는 영적 보살핌을 받는다. 설교자 중심이 아니라 삶을 함께 나누는 모임이다

성경에 나타난 두 종류의 예배는 공중예배와 셀그룹 (행 2:46-47, 5:42, 12:12, 16:40; 롬 16:3-5; 몬 1:2)이 있다.

小組 (Cell)는 단지 전도나 친목 혹은 성경공부만을 위한 모임이 아니다.Cell은 전인적인 성장을 꾀하는 교회의 핵을 이루는 작은 교회이다. 그러므로 소구룹 모임 계획을 세울때 고려해야 할 네가지의 요소가 있다. 자동차 네 바퀴가 잘 돌아야 자동차가 잘 달리는 것처럼 한 요소도 없으면 안된다.

①양육(Nurture)-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지식과 사랑에 있어 자라가야 한다.또 하나님을 올바로 사랑하려 한다면 그 분의 계명(요14:15)을 알고 지켜야 한다.이것이 바로 성경 연구가 소구룹의 기본적인 프로그램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성경 연구 이외에 성경 암송이나 독서토론,VCD,비디오,인터넷을 통한 교육과 양육 프로그램, 상담,설교 테이프 청취등을 통해서도 양육될 수 있다.


②공동체적 교제(Community)-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친밀한 사귐을 갖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소구룹은 이러한 사귐에의 욕구를 채워 주는 훌륭한 장이 될 수 있다. 성경공부 모임외에도 비공식적으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지라. 인생을 같이 나누도록 하라.기쁨을 나누면 기쁨이 배 이상 커지고 슬픔을 나누면 슬픔이 배이상 줄어 드는 교제의 축복 나누라(시133:1). 모임 중에 함께 재미 있는-간단한 다과나 저녁식사,야외모임,체육활동,쇼핑등 같은 일들을 함으로써 교제를 나누도록 하라.


③ 예배(Worship)-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예배드리는 시간을 가지라.그 분의 속성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라.당신의 삶과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행하신 일과 또 지금도 행하고 계시는 일을 인해 감사하라.서로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라.세계교회와 세계영혼들을 위해 중보하라.배운 바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라.함께 찬양하라.


④ 선교(Mission)-모임이 단순히 내부적으로만 그칠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입술로, 문서로, 통신매체로, 생활로 때를 얻든 못얻든 전파하여야 한다.불신자를 대상으로 전도 성경공부와 전도 계획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실제로 돕는 일들을 시도할 수 있다.이 궁극적인 복음전파의 목적을 위해 이웃을 섬기는 사회봉사와 사랑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복음을 듣게 하고 보여주고 느끼게 해야 한다. 셀 그룹의 전도는 개인낚시가 아니라 어망으로 고기잡는 것처럼 효과적이다.

교회가 없는 지역에서는 셀이 3-4개로 분열하여 재생산할때 3-4개의 셀을 중심으로 교회를 세울 수 있다.

건강한 교회의 질적 특성은 전인적 소그룹입니다. 성장하는 교회는 교인 개개인이 서로 간에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고, 삶의 현실적인 영역에서 도움을 받으며, 또한 강한 영적 교제도 나눌 수 있는 소그룹 체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전인적이라는 개념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소그룹에서 사람들은 성경 자체에 대해 토론하거나 전문가의 재미있는 강해를 들을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 얻은 통찰을 자신들의 일상 생활에 적용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소그룹은 멋있기는 하지만 없어도 되는 취미 생활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진정한 삶의 정수는 바로 소그룹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전인적 소그룹을 통해서 공동체를 체험하게 된다. 이 공동체는 '가족처럼' 혹은 '가족같이'의 수준을 넘어선다. 가족이다. 그래서 이 공동체 안에 새신자가 들어오면, 그들을 위한 양육이 이루어지고, 상호 책임을 지며, 리더로 자라고, 복음 전도를 위해서 세상으로 향해 나아간다.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한 이유는 그 중심에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임재, 능력, 목적이 전인적 소그룹의 중심이다.

성장하는 교회는 소그룹을 적절히 활용하는 교회입니다. 소그룹은 단순히 모여서 성경 공부하는 모임이 아니라,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가깝게 교제하며 삶을 나누는 모임입니다. 은사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도움을 주게 되고, 소속감을 강화시킵니다. 교인이 아무리 숫자적으로 많은 교회라 할지라도 , 각각의 성도들이 소그룹에 소속되어 자신의 은사를 발휘하고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면 교회에 강한 애착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건강하게 성장하는 교회는 의도적으로 소그룹의 증가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소그룹을 나누어서 또 다른 소그룹을 형성하도록 함으로써 소그룹이 끊임없이 증가 되도록 합니다.


<질문> 다음의 요한일서1:1-7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묘사한 것이다. 아래 말씀을 읽고‘사귐’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동그라미를 치십시오. 그리고 나서 다음의 질문에 답하시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1-7).

1)1-3절에서 요한이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이고, 실질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을 보았고, 들었고, 만졌다고 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경험으로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또한 예수님을 ‘영원한 생명’으로 알게 되었습니다(2절).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영생이란 하나님을 실질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相交입니다.


2)요한이 예수님에 관해서 보고 들은 바를 쓴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한은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뿐 아니라 다른 믿는 자들과 사귐이 있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전파했습니다.


3)믿는 자들이 예수님과 다른 신자들과 사귀는 것에서 오는 두 가지 유익한 점은 무엇입니   까?(4,7절)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다른 사람이 그 분과 우리와의 교제 안에 들어왔을 때, 우리는 기쁨이 충만하고,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깨끗케 하는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4)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죄악과 어두움에서 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6절)

*그런 사람은 거짓말쟁입니다. 그 사람의 삶은 거짓입니다.

5)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7절)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빛 가운데 거하시는 것처럼 빛 가운데서 행하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고 또한 그 사람은 다른 믿는 자들과 교제할 것이고 죄의 용서와 깨끗케함을 경험할 것이며 하나님의 거룩함을 세상에 나타내는 삶을 살것이다. 요한일서는 당신의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가 당신의 하나님과의 관계의 표현임을 명확히 말해줍니다. 당신은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를 하고 있으면서 당신의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교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필요 중심적 전도를 통한 성장 원리

교회는 모든 성도가 온 천하에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 공동체로서의 한 몸이다. 교회의 모든 활동중에 복음전파는 우선순위에 있어 첫째다(마6:33).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첫 번째 목적이며(막1:38) 성령이 우리가운데 임하신 것도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이다(행1:8).

‘증거한다’ 혹은 ‘증인이 된다’는 말은 ‘전도한다’는 말보다 훨씬 더 넓은 개념입니다. ‘증인’이란 말은 희랍어 어원상 ‘순교자‘와 같은데서 출발합니다. ’증인‘은 자기가 목적한 바에 대해 목숨을 걸고라도 옳게 증거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전도의 행위나 방법론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증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증인에게는 목적한 바, 증거의 내용, 증거자의 성결한 생활 그리고 사랑을 행위로 나타내는 삶…이 모든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육안으로 목격한 그 당시의 사람들과 똑같은 의미에서 증인이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뿐 아니라 그들의 말을 듣고 믿는 이들도 증인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경과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고 무슨 일을 하셨는지 증거하고 있습니다(요5:39). 그 성경을 읽을 때 성령께서는 그 분이 누구시고 나와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 내적으로 증거해 주십니다(요15:26).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완벽하고 영원한 통치를 계속하기까지 우리들이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최초의 목격자처럼 육안적, 직접적, 동시대적(同時代的)은 아니지만 성경과 성령님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못지 않은 증인이 되도록 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7)

초대교회 신자들은 선행을 통하여 이방인들 즉 불신자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마 5:13에서는 신자를 가리켜서 소금이라고 하셨고 14절에서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신자들이 세상어디에 있든지 어디에 살든지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면 틀림없이 불신자들로부터 칭송을 받을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삶과 메시지를 통하여 전도하셨든지 신자들은 생활을 통하여 불신세계에서 인정을 받고 또 입술로 힘있게 복음을 전파하여야 합니다.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행8:30)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를 전도할 때 그의 필요를 물으며 그의 필요를 체우면서 전도함과같이 전도 대상자의 필요를 그리스도 사랑으로 체워주면서 전도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이사를 돕는 일이나 극빈자의 자녀들에게 학업을 할 수 있도록 돕고, 빵이 필요한 극빈자들에게 양식을 돕고, 기도로 신유의 역사와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는 등 불신자들의 필요를 돕는 전도가 효과적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참된 증인이 되며, 올바른 증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부활 후 승천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오늘의 우리에게 중요한 원리가 됩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 24:44-49)


 무엇보다도 먼저, 올바른 증거는 증거의 내용을 전제할 때만 가능합니다. 무엇을 증거할지 모르거나 그 내용을 자기의 인격과 삶속에서 경험하지 않았다면, 진정한 증거는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이 모든 일’(48절)에 증인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 점을 밝히셨습니다.


<질문> 증거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습니다. 예수께서는 세계복음화의 첫 출발을 준비하시면서, 첫 증인들에게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우리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49절). 오늘날의 우리도 마찬가지로 성령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서만 올바른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참조:행1:8,살전1:5,딤후1:7,고후11:2)


교회에는 세 종류의 전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1)사마리아 여인 전도

교회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오늘 복음을 듣고 믿어도 오늘 전도할 수 잇도록 권장해야 한다.

<질문> 사마리아 사람들이 믿게 된 것은 누가 어떻게 중간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까?

 요4:29-30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요4:39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 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2)전도 특공대

우리 모두가 전도하는 사명을 가졌지만 교회는 특별히 70인 전도대처럼 전도 은사를 가진 자들을 중심으로 전도교육과 훈련-실습-보고-기도회등을 통해 전 교인을 전도 요원으로 양성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전도대는 전도 태풍권의  태풍의 눈의 역할을 하도록 한다.그리하여 온 교회가 전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눅10:1)


3)교회 지체들이 함께 하는 전도

<질문>로마서 16:21-27을 읽고 다음 물음에 답하시오.

1)바울은 자신의 동역자 디모데를 어떻게 사랑했는지 말하라.(딤전1:2,딤후1;2)

2)디모데와 실라가 고린도에 있던 바울과 합류했을 때 어떠한 놀라운 일이 일어 났는가?(행18:5,8)

3)21절의 디모데(행16:1,히12;23) 야손(행17:5-9)과 22절의 더디오(실라)는 바울을 도와 어떤 일을 함께 하였는가?

①디모데

②야손

③실라

4)당신이 분명히 바로 알고 전파해야 할 복음에 대해 3분간 말해 보라
 (롬1;2-4)

5)25절 말씀은 당신 무엇을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하는가?

6)당신의 교회가 어떻게 연합하여 기도하며 전도하는가?

①당신의 전도 대상자를 위해 다른 지체들과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지 쓰라

②당신교회의 전도 지역은 ?

③전도훈련과 전도 실습은 어떻게 하는가?

④전도 보고는 어떻게 하는가?



8.사랑의 관계를 통한 성장 원리

초대교회 신자들은 신자끼리 형제애를 느끼면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원하여 부자는 말할 자도 없거니와 가난한자까지라도 재산을 팔아 나눠주면서 유무상통을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행2:44-45)

현대교회 신자들이 초대교회의 양상을 그대로 답습을 하기는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하여 상부 상조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갈6:10에 보면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고 하였습니다. 직장 안에서 믿음의 식구까지 서로 끌어주고 믿어주고 보호하여 주어야 하며 사업자끼리 또 믿어주고 끌어주어야 하며 사업하지 않는 신자들의 사업장은 최선을 다해 이용하여 주어야 합니다. 한사람이 여러 사람을 살리기는 힘들지만 여러 사람이 한사람을 살리기는 쉽습니다.  "사랑의 관계"라는 용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합니다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장하는 교회는 정체되거나 쇠퇴하는 교회에 비해 "사랑 지수"가 눈에 띄게 높다는 것입니다. 내가 세미나에서 사랑 지수라는 표현을 쓸 때마다 몇몇 그리스도인들은 못 마땅해 하면서, "그런 용어를 쓰다니, 정말 이상하네요!"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못 마땅해 하시는 분이 있을 것 같아 "사랑 지수"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교인들이 교회가 주최하는 공식적인 일들 이외에 밖에서 서로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를 물었습니다. 얼마나 자주 식사하거나 차를 마시기 위해 서로를 초대하는가? 교회가 칭찬하는데 얼마나 너그러운가?

교회에서 사역하는 평신도들의 개인 문제에 대해 목사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교회 내에 웃음이 얼마나 있는가?

결과가 어떠했을 것 같습니까? 이 모든 사항들(다른 사항들도 더 있지만)은 교회의 성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사실 교회 성장에 관한 수많은 문헌에 무수하게 등장하는 방법들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성장 원리라고 잘못 추켜세운 수많은 방법들보다 이 사항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사실이 놀랍습니까? 거짓 없고 실제적인 사랑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마케팅의 노력보다 훨씬 더 강한 매력을 교회에 부여해 줍니다. 교회를 마켓팅화 하는 것은 조화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마케팅 효과를 내는 것이 정말 괜찮은 듯 보일 수도 있지만 향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신비한 향기를 뿜어냅니다.

성장하는 교회의 두드러진 특징은 성도들 상호간에 사랑하는 정도가 높다는 것이다. 서로 자주 식사초대하며, 자주 만나 차도 마시고 , 서로 칭찬하고, 서로의 문제를 알고 기도해 준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웃음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도 웃음이 많고 ,소그룹에도 웃음이 많습니다. 사랑이 많은 교회는 반드시 성장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부족한 것은 어디서나 교회성장에 방해요인으로 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입니다.

1) 공동체나 개인이 그 삶의 목적을 규정하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참조:잠 29:18, 빌 3:13, 스 10:4, 고후 13:5)

--------------------------------------------------------------------*
분명한 목적은 공동체(개인)의 사기를 복돋운다. (잠 29:18 -비전이 없으면 백성이 망한다) "의기 소침한 교회를 생기 왕성한 교회로 바꾸는 데 교회의 목적을 다시금 발견하는 것보다 더 빠른 길은 없다“

* 분명한 목적은 공동체(개인)에게 집중력을 가져다 준다.(빌 3:13)

* 분명한 목적은 협력을 이끌어 낸다.(스 10:4)

* 분명한 목적은 평가를 도와준다.(고후 13:5)


2)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무엇이며 교회로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참조:신약성경, 마 4:10, 엡 2:19, 마 28:18-20, 엡 4:12, 막 16:15, 행 1:8)

--------------------------------------------------------------------*
우리의 역할은 교회의 목적을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가 되신 주님께서 세우신 목적을 발견해 내는 것이다.

* 7대 요소: 예배, 교제, 치유, 양육, 봉사, 전도, 선교 - 궁극적으로 영혼 구원과 세움


3) 우리가 교회로서 위의 목적과 사명을 효과적으로 감당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을 모색해 보세요. (참조: 요 15장, 사도행전 등)

--------------------------------------------------------------------
* 예배 활성화 방안 : 군중(불신자 회중)들을 교회로 인도할 때에 첫 번째 접촉점은 예배이다.

* 교제 활성화 방안 : 등록, 소그룹 안으로 편성하기 (청년부 -> 순(구역) 모임)

* 치유 활성화 방안 : 치유 기도 및 상담 활성화

* 양육 활성화 방안 : 양육과 훈련의 중요성

* 봉사 활성화 방안 : 이웃을 섬김, 전도의 접촉점으로 삼기

* 전도 활성화 방안 : 1:1 전도, 노방 전도

* 선교 활성화 방안 : 선교 기도, 세미나, 선교 훈련


- 소그룹(셀)을 통한 제 요소 활성화 전략 : 제자 삼는 삶의 중요성

말씀(Q.T)과 기도 나눔 - Q.T 모임의 중요성 - 소그룹 중심의 전도 (오이코스)


9.제자훈련과 재생산를 통한 성장 원리

주님께서 친히 제자화 훈련의 본을 보여 주셨을뿐만 아니라 그 방법까지도 제시해 주셨다.바울은 이것을 그대로 본받은 사람이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1:28-29)


지상명령 준행 방법은

①가서-파송

②세례를 주고-전도

③가르쳐-양육

④지키게하라-제자의 삶

그 결과로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한 자(제자)를 삼게 된다.그러므로 제자화 훈련은 한 영혼의 구원,가정의 복음화,민족의 복음화,세계의 복음화,교회의 성장,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하나님의 지혜이며 선교 전략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이루는 교회의 4단계 영적순환

                           ←     전도    ←


                         →    제자훈련   →




①가서-파송

‘가다’라는 말에는 ‘출발하다,떠나다,경계를 넘다’라는 뜻이 있다.사회적 경계,인종적 경계,문화적 경계,지리적 경계를 넘어서 신분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기후가 달라도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가장 가까운 곳부터 가기 시작해야 한다.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사명이 있다(고후5:20).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놓으시고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고 하셨다.

그러나 이 말은 열두 제자에게 국한하신 말씀이 아니요, 모든 구원받은 성도 곧 교회들에게 하신 명령이다. 그래서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일어났을 때 사도 외에 모든 평신도들은 흩어져 복음을 전했다.(행8:1,4)가 처럼 그리스도의 제자는 선교적 사명을 위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파견된 사신(使臣)이다.(요3:16,20:21,고후3:3,5:19)이처럼 평신도들에게는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보냄을 받아 복음을 전파하는 평신도에게는 그리스도의 사도요,증인요,사절이요,선교사로서 사명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제자는 가정과 직장(학교)과 교회와 이웃, 지역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위하여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기를 쉬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자신을 화해하셨듯, 복음 안에서 하나님과 죄인을 화해시키는 왕같은 제사장의 사명을 갖고 세상에 보냄을 받았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를 성령님의 뜻에 따라 타문화권 선교사로 파송한 안디옥 교회처럼 교회는 가든지, 보내든지 둘중에 하나를 해야 한다.


②세례를 주고-복음전도

교회 안의 4단계의 영적 순환은 유기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예수님께서 육체의 몸을 가지고 地上에 계실 때 이 4가지 사역을 하셨다.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들을 자유케하시며 행하신 일을 낱낱이 기록하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정도로(요21장25절) 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셨는데 죄인들에게 있어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을 전도하셔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지상 최대의 큰 사명을 가지고 계셨으나 사마리아 여인 같은 한 영혼도 온 천하보다 귀히 여기셔서 개인전도를 하셨고 한 번에 오천명이 넘는 대중전도도 하셨다. 그리고 70명을 선별하여 전도훈련을 시키시고 능력을 주셔서 전도케하시며 보고하도록 하셨다.


③가르쳐-양육

 교회와 먼저 구원받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새롭게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신자가 된 사람들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영적으로 훌륭하게 성장하도록 양육할 책임이 있다. 교회는 각자 새신자에게 인격적인 감화를 줄 수 있고 그 새신자보다 교회에서난 사회적으로 앞서서 그를 지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과 일대일 관계를 영적인 양자 관계로 맺어주는 것이 이상적이다. 영적인 후견인은 남자는 남자를, 여자는 여자를,새신자보다 가능한 연령이 높은 것이 실제적으로 좋다.

 예수님은 배신한 제자들을 다시 찾아 가셨다. 그리고 시몬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물으시는데 그의 사랑은 ‘내가 너를 살리기 위해 피 흘린 무조건적으로 사랑-아카페 사랑’으로 물으셨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심령을 감찰하시는 예수님앞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의 베드로의 사랑은 스톨게 사랑이다. 주님은 자기 양떼를 베드로 같은 제자에게 맡기신다 하셨는데 조건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그의 양떼를 먹이고 칠 수 있다.(요21:15-17)

 새신자 양육을 담당하는 제자들이 필요하다. 교회에 매주 모여오고 등록하는 새신자들을 위해 그들을 체계적으로 지도하고 양육할 수 있는 제자가 있어야 함을 말한다. 교회가 100명미만의 교회나 1000명 이상의 교회나 똑같이 새신자를 양육하는 일꾼을 필요로 한다. 새로 등록하는 입교자는 매주 교과과목이 구별되게 지도해야 하므로 교역자가 1:1로 지도 양육한다는 것은 한 교회 교역자가 50명이 있어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새등록자를 위한 1:1 양육이 가능하도록 초보적인 기본과정을 책임지고 가르칠 수 있는,새신자 양육을 위한 훈련된 제자가 있어야 한다.새신자 양육은 새등록자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신앙이 정착되어야 하며, 교회생활과 예배에 부담 없이 적응하고 각종 기초적인 신앙지식을 갖게 되기까지 양육하는 과정을 말하며 다시말 하면 온전하지 못하지만 스스로 걷고 밥을 먹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활동할 수 있을 정도의 자립단계까지의 양육과정을 말한다.새신자는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에 양육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며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그러므로 전도 대상자와 피양육자는 본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전도하고 양육하여야 한다.

전도의 대상은 복음을 원하든 원치 않든 ‘만민’이며 양육의 대상자도 복음으로 난 영적 유아들일뿐 아니라 어른양도 주님 앞에 서는 날 까지 양육 대상이다.
 

④지키게 하라-제자훈련

제자란 ‘가르침을 받은 자 또는 훈련된 자’라는 뜻이므로 제자를 삼으려면 가르치고 훈련해야 한다. 그런데 제자훈련과정을 마쳐야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먼저 제자로 부름을 받았다. 제자훈련이란 제자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훈련을 말한다.그래서 제자란 말과 훈련이란 말은 서로 밀접한 연관성이 있으며 제자다운 제자는 저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훈련의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 진다.‘지키게하라’는 것은 제자훈련을 통하여 다시 훈련받은 제자들로 하여금 가서(파송)-세례를 주고(복음전도)-가르쳐(양육)-지키게 하라(제자훈련)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하는것이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공생애 시간과 관심중 가장 집중하신 사역이 있었는데 이는 장차 예수께서 행하신 사역을 위탁할 제자를 세우시고 훈련하시며 권능주셔서 지상명령을 위임하시는 일이셨다. 마가복음 3장 13절에서 15절을 보면 제자를 선별하시고 교통하시고 훈련하신 후 권능을 주셔서 일을 위임하셔서 파견하시는 사역이다. 예수님의 대지상 명령도 모든 족속을 대상으로 전도하고 양육하며 제자로 세워 예수님 닮게 하며 예수님 하신 사역을 하는 것이다. 제자란,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며, 전도의 성취한 열매이며, 그 열매를 보존받기 위하여 양육을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다. 제자훈련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고 주님을 쫓을 수 있는 자가 받는 교육과 훈련과정이다.(마10:37-38),즉 헌신된자만이 받을 수 있는 단계이다(눅14:26-28,딤후2:2).

제자훈련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있어서 영적인 성숙과 영적인 재생산을 개발하는 영적인 사역이다.배가(Multiplication)는 제3세대(third-generation)의 제자훈련이고 배가자(multiplier)는 그의 영적인 자녀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이 재생산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제자이다. 倍加를 네 개의 구별되는 단계로 말하는데 제1단계는, 단순히 전도하는 것이다. 제2단계는,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양육하는 일이다. 제3단계는,새신자를 훈련하는 것이다. 제4단계는, 당신과 함께 사역하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생산하는 일이 계승되었을 때 일어난다.

이 같은 비율로 계속한다면 1명으로 시작해서 10년후에는 1,024명의 제자가 될 것이고, 그해에 25,000명이 복음과의 만남이 있게 될것이다.이 엄청난 열매들은 당신이 훈련하는 사역으로부터 직접적인 결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이것은 10년에 걸쳐 당신이 단지 10명과 함께 일한 결과이다.

4단계를 유기적으로 계속 가동하면 교회는 마치 세포 증식하는 것처럼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이식하는 영적 공장이기 때문이다.


1)제자훈련의 세 가지 목표

  엡4:11-16


 제자훈련의 세가지 큰 목표는 신자들을 ①전인적으로 성숙시키는 일과 ②지상명령을 감당할 수 있는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 ③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라고 햇는다.이 세가지 목적은 제자화 훈련의 기본목적이다.




                           제자화 훈련

                                              

①성도를 온전케 함

성도를 온전케 한다는 것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성숙은 그 영역에 있어서 지적(호6:3,요17:3,벧후1:3,벧후3;18) 情的(시18:1,마22:37-40,요일4:17) 및 행동적인(마7:21,눅10:28,약1:22) 전반에 걸쳐서 성장하고 이 세가지 영역이 혼합되어 조화를 이루며 균형있게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 중에 누구도 완전하게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가 없다. 언제든지 더 자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진행상태’에 있는 자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경험에서는 ‘즉각적인 성숙’은 없다. 그러므로 예수 제자학교에는 입학은 있어도 졸업은 없다(빌3:12-15). 성장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일생동안 그의 인격과 삶과 사역을 본받아야 한다.(요일3;2,엡4:15)


②봉사의 일을 하게 함

성숙한 사람만이 일할 수 있다. 사람이 일보다 우선이라는 것이 성경적 원리이므로 순서가 顚倒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제자화 훈련은 먼저 성도를 온전케하고 그들로 하여금 봉상의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 .제자는 그의 인격과 삶이 그리스도를 닮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일 뿐 아니라 그의 사역에도 유능해져야 한다(딤전4;6;16). 그래서 그리스도의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그러나 완전히 성숙한 사람은 없기 때문에 알맞은 일을 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③그리스도의 몸을 세움

지상명령의 핵심은 제자화 훈련을 통한 교회형성과 성장,즉 하나님 나라확장에 있다. 여기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한 것은 교회는 ⓐ하나(통일성)이며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다.ⓑ교회는 성장하는 것이며ⓒ교회에는 여러 지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대교회의 성장은 (행2;41,행6:1,7) 양질의 성숙이 병행되었다 교회성장의 방법은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6) 그리스도의 몸을 세움으로 결과적으로는 개인의 영적 성숙과 교회의 양질의 부흥→가정복음화 →직장 복음화 →동네 복음화→ 민족 복음화 →세계 복음화가 실현되는것이다.


재생산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는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열매를 많이 얻는 비결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3)죽지 않고는 절대로 열매를 얻을 수 없다.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르는 오고 오는 모든 제자들에게 대 지상명령을 내리셨다.“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그러므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28:18-20)이 위대한 명령은 재생산의 명령이다. 예수님은 12제자에게서 온 세상이 변화될 비젼을 보았다.(마10:1,눅5:10-11,마28:18-20)

배증은 우주에서 제일 기본적인 원리중 하나이다. 양, 소, 야생동물, 나무, 화초, 심지어 세균까지 모든 생명체는 다 배증의 원리로 확장한다. 배증은 하나님의 방법이다. 배증의 결과가 있는데는 반드시 지불한 대가가 있다. 밀은 열매 맺고 재생산 하기위해 자기를 희생 한다(요12:24). 만일 종이 한 장을 절반 접은 두께가 0.1미리메터라면 이 종이를 계속하여 32번 접으면 대략 40억층이 되며 두께는 400키로메터나 된다. 이것이 바로 기하학적 배증원리이다. 즉 하나가 둘로 나뉘고 둘이 4로 나뉘며 4가 8로 나뉘고 ……등으로 나가는데 이는 폭발성적인 증가이다. 제자의 훈련의 선교 효과는 나중에 이런 영적인 폭발을 가져다 준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영적인 배증을 이루려면:

첫째, 복음을 전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들이 재생산을 할려면 믿지않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둘째, 신앙가운데 새로운 그리스도인을 양육해야 한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 되었다면 반드시 그리스도인의 사역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

셋째, 그들이 재생산에 참여하고 성숙된 그리스도인으로 되는 훈련을 해야 한다.헌신하여 제자훈련을 받은 자는 제자로서의 일을 시작하게 하며 영적인 후배를 재생산 하게 해야 한다.


● 하나님은 당신 한사람만 쓰기를 바라신다.


1) 배증의 예: (딤후2:2)

“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2) 기하학적 배증과 산수의 배증 사이의 비교


 제자 훈련의 목적은 곧 그리스도인을 양육하고 훈련하려는 것인데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같은 완전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교회를 세우고 사랑과 성결의 빛으로 충만한 사자--예수그리스도의 대사가 세계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다. 제자 훈련은 반드시 제자 훈련 지도자로 부름받은 교회의 수령부터(엡4:11) 시작해야 하며 그들의 감독을 받으며 진행 행야 한다. 교회는 마치 숯벌과 같이 일벌과 같은 신도들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훈련받는 사람에게 은혜를 가져다 주는 공급처가 되어야 한다.




■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전하여 초신자들을 얻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동시에 그들을 훈련하여 자기와 같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넓히는데 놀라운 부흥과 성장을 가져다 줄 것이다.

주 예수님이 분부한 일을 하려면 우선 처음 사람을 찾아 훈련시켜야 하며 그가 자기의 책임이 무엇인가를 깨달고 자기의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되며 따라서 세상 어디에서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나설 때까지 재생산이 계속되도록 해야 한다.

만일 지금 전 세계에 믿지 않는 자가 3,000,000,000 이라면 우리 신도들이 믿지 않는 자와의 비례는 1/3,000,000,000으로부터 1/1,500,000,000으로 작아지며 우리 두사람이 계속하여 생활속에서 두 사람을 재생산 하고 그들도 자기의 책임을 깨달았을 때는 우리는 비례를 1/750,000,000으로 작게 할 수 있다. 만일 이런 방법으로 계속 재생산 한다면 비례는 1/375,000,000¸ 1/187,500,000¸ 1/93,750,000¸ 1/46,875,000¸ 1/23,437,500¸ 1/11,718,750¸ 1/5,859,375……등으로 작아 질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어느 도시, 지역, 나라든지 심지어 땅끝까지 우리의 힘으로 해낼 수 있다. 이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며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때문에 주 예수와 성령을 파견하였으며 직접 교회를 건립했고 이 일을 시작 하였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을 사용하고저 한다.


교회의 영성과 제자화 관계

                                                                     

          ↓ 교제    ↓ 훈계     ↓ 예배     ↓봉사     ↓성례

    

                 성령운동                   기도운동

초신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말씀운동                   전도운동

   

          ↑ 성경    ↑각종      ↑개인      ↑제자     ↑선교

             공부      집회        목회        훈련       사역




 교회의 영성은 예배와 각종 집회, 기도회, 성경공부, 제자훈련, 봉사 등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며 속사람이 새롭게 변화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도록 추구하여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모든 영적 활동을  하나님의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4대 영적 운동이 되어 계속 불타도록 하여야 한다(눅12:49)

①성령운동-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牧會의 진정한 주체가 되게 하는 운동이다. 성령께서 교회내외에 마음껏 일하시도록 그분을 항상 인정하고 환영하고 교통하고 순종하는 운동이다.

②기도운동-성령이 임재하고 운행하고 역사하시고 교통하시고 통치하시도록 기도하는 운동이다. 무시로 기도하게 하지만 시간을 구별하여 定時 기도 하도록 한다(단6:10). 정시기도는 일반신자는 하루에 적어도 한 시간 이상씩하도록 권장하고(마26:40) 사역자는 2시간 이상씩(행3:1) 매일 기도하도록 한다.

③ 말씀운동-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설교와 성령의 도움으로 말씀을 배우고 지키는 말씀운동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배우든지,아니면 가르치든지 둘중하나 하도록 한다.그리고 성도들로 하여금 매일 말씀을 듣고,읽고,외우고,공부하고 묵상하도록 한다.사도행전 14장 21절에 저자 누가는 기록하기를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라는 기록은 바울과 그의 팀 사역자들은 네 도성을 순회하면서 대중전도 집회를 조직적으로 수행함으로 많은 회심자와 제자들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크게 윤곽이 드러난 것은 복음을 전하는 설교에 의해서 제자를 삼는 결실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제자 삼는 방법은 설교를 통해서도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성경을 통해 교인을 가르치게 하라


④전도운동-날마다 복음을 전하고, 선포하고, 가르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운동이다.교회에는 사마리아 여인이 당일 복음듣고 곧바로 전도하도록 권장하는 전도와 에수님께서 70인전도대를 두신것처럼 전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을 중심하여 교회에는 전도교육과 훈련 그리고 실습 이 있는 전도 특공대 사역이 병행되어야 한다.   

<질문> 당신은 또 다른 사람을 제자 삼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어떻게 헌신하시겠습니까?


10.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통한 성장원리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 위에 이룩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하나님의 평화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주된 사명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교회가 나타날 때 교회는 더욱 성장하게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 땅위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한다. 모든 권세가 그리스도에 있으며 그리스도는 우주의 주인이시며 또한 교회의 主이시다. 주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심은 우리가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서로가 새로운 공동체로서 이 사회에 침투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평화로서 악을 대하며 선행을 긍정해주어야 한다. 예술, 과학, 기술, 농업, 상업, 교육, 지역개발 및 사회복리사업 등 여러 가지 분야에서 사회에 유익한 것을 증강시키기에 노력하며 불의 한 것을 지적하고 연약하고 압박받는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이 세상의 믿음과 희망의 유일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랑의 행동을 최우선의 자리에 놓아야 한다. 마치 화재 발생시 우선 사람부터 구해야 하는 것과 같이 지옥에 가는 영원한 심판에서 영혼을 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는 반드시 문화와 사회를 개변하는데 최선을 다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정의로 가득하고 경건하고 풍성한 생명이 넘치게 해야 한다. 따라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이 땅의 나라와 육체의 일을 구하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데는 반드시 전후 순서가 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이 땅의 나라와 육체의 일을 버린다면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더욱 풍성하게 더하신다

1)가난한 이웃에 대한 교회의 책임과 사명

교회가 세상 속에 행해야 할 세상적 책임의 첫 번째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성서가 말하는 이웃사랑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것은, 이웃사랑이 참으로 실현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시금석입니다. 잘 살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사람끼리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의 사랑은 자기들끼리 사랑하고 문안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고, 이들에 대해 책임을 지는 데 있습니다. 성경은 이웃 사랑을 가르치는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웃 사랑이 바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데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우리가 유념해야 합니다.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68:5).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시요,


예수님은 배고픈 자를 먹이시고, 문둥이를 고치시고, 병자들을 일으켜 세우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확장시키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 가난한 자를 살리는 기쁨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교회가 유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나그네 된 자를 돌보고,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를 찾아주고, 위로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은 초대교회 때부터 교회의 핵심 과제로 수행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이 일을 효율적으로 행하기 위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집사들을 세웠습니다.


행 6:1 - 3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그러므로 가난한 자를 살리는 기쁨이 없는 교회는 참 교회가 아닙니다.

누가복음 10장 25-37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하는 율법교사의 영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주어진 비유이다. 이 비유의 결론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로 끝이 난다. “이웃이 사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이웃을 만든다”

2)사회정의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암5:24)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정의가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교회는 세상 속에 불의의 조직과 영역을 확대시키는 사탄의 활동을 감지하고, 이를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구약의 역사에 의하면, 정의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시금석입니다. 정의를 버린 국가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예언자 아모스는 정의를 버린 사마리아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7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8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암2:6-8)

정의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시금석이라는 사실은 이방 민족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암 1:9 - 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붙였음이라 내가 두로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불의는 하나님의 통치를 거역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압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원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바로의 학정 밑에서 신음하고 울부짖을 때, 강한 힘과 능력의 팔로 바로를 심판하시고, 그들을 해방시켰던 해방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이스라엘 신앙의 골격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압제의 상황을 부수고 해방시키고 정의를 수립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은 예수님의 설교 속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19절입니다.

눅 4:18 - 19) 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주의 성령은 압제의 상황을 부수고, 해방과 자유를 주는 영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불의한 압제의 상황을 부수고, 정의를 수립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에 동참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당시의 율법학자들을 “과부의 재산을 등쳐먹는 자”(눅 20:47)라며 비판하셨습니다.

눅 20:47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정의에 대한 예수님의 정신은 누가복음 11:42 말씀 속에서도 명백히 나타납니다.

눅 11:42) 42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교회는 이러한 예수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 세상을 하나님의 정의가 숨쉬는 세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도록”(암 6:24)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말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가 없으면 인간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설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행함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의는 세상 속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구체화 되는가?


①나눔 : 가난한 사람에 대한 사랑과 보살핌

레 19:9 - 10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10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약 2:15 - 17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②인권 : 장애인,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 이주 노동자, 압제 받는 자들 인권 보호

신 27: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 27:18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출 22: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음이니라”

③ 공정한 재판

신 16:19 “너는 굽게 판단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레 19:15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④신의와 신실 : 정직한 사업, 진실한 삶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잠 11: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3)평화의 수립

평화는 하나님의 통치의 결정적 상징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면 세상은 평화의 세계가 됩니다. 하나님은 세상 속에 평화를 수립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평화의 통치의 상징인 메시야의 왕국은 평화라는 상징으로 성서 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하나님은 세상 속에 평화를 수립하기를 원하시는 반면, 사탄은 세상 속에 분쟁을 일으키고, 전쟁과 살인의 역사를 만듭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은 사탄이 살인자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이 말씀은 살인이 죄의 원형임을 언급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요한은 이 본문에서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의 타락과 더불어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두 개의 사건을 생각하면서, 사탄을 거짓말 하는 자로, 그리고 살인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창세기에 언급되고 있는 중요한 두 개의 죄의 원형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죄(교만의 죄)와, 이웃을 향한 상호간의 죄(폭력과 살인)입니다. 폭력은 죄의 원형이고 마귀의 도구입니다. 이처럼 사탄이 분열을 일으키고 전쟁과 살인의 역사를 만드는데 반해, 성령은 하나 되게 하고(엡 4:3), 분노를 없애며, 인내하게 하고(갈 5:22), 평화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요(마 5:9), 성령의 일꾼인 것입니다.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마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사랑은 평화를 만드는 정신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증오와 분열과 살인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실천은 역사 속에 활동하는 사탄을 몰아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준 원수 사랑의 정신은 이 땅의 평화를 수립하는 결정적인 정신입니다. 원수 사랑을 가르치신 그리스도의 죽음 속에는 민족과 민족 사이의 적대의 담을 헐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적대의 담이 헐리는 역사의 깊은 비밀이 들어있다는 것을 우리가 유념해야 합니다.(엡 2:14-17)

엡 2:14 - 17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4)교회의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

교회는 오랫동안 하나님의 구원의 영역을 인간 영혼에 제한시켜 이해해 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인간의 영혼의 죄악을 속하기 위한 속죄의 죽음으로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신학에서 발전한 그리스도의 우주적 화해라는 새로운 기독교의 개념은 화해와 구원에서의 인간 중심적인 개념을 타파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결코 인간의 영혼만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우주적 차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0절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그의 십자가의 피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과 화해시켰다고 되어 있습니다.


골 1:20) 20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그리스도의 죽음은 처음부터 우주적 차원을 갖고 있었고, 성령은 전체 피조 세계를 썩어짐과 허무와 죽음에서 구원하는 구원의 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19-21절에 의하면 피조물도 허무와 썩어짐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고, 하나님의 자녀와 같은 영광의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롬 8:19 - 21) 19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오늘의 교회는 인간 중심적인 활동을 넘어서,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활동에 동참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인권을 위한 교회의 노력은 훌륭했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인권을 위한 교회의 노력은 이제는 인권과 더불어 전체 피조세계와 자연의 권리를 위한 교회의 노력으로 확장되어져야 합니다. 성서는 자연의 권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2절에 의하면 동물들도 안식일에 쉴 권리가 있습니다.

출 23:12 “너는 육 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 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출애굽기 22장 30절에 의하면, 소와 양의 어린 새끼는 칠일 동안 어미와 함께 쉴 권리가 있고, 레위기 22장 28절에 의하면, 소와 양을 그 새끼와 함께 같은 날 죽여서는 안 됩니다. 또한 출애굽기 23장 19절에 의하면,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아서는 안 됩니다. 성경이 동물에 대한 잔학한 행위를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동물을 긍휼히 여기시고 잔인하게 대하기를 원치 않는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출 22:30 “너의 소와 양도 그 일례로 하되 칠 일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다가 팔 일 만에 내게 줄지니라”

레 22:28 “암소나 암양을 무론하고 어미와 새끼를 동일에 잡지 말지니라”

출 23:19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한편 레위기 25장 4절에 의하면, 땅은 칠년마다 한 번씩은 쉬게 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23장 10-11절에도 땅은 칠년 째 되는 해에는 묵혀 쉬게 해야 한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26장 33-35절에는 땅의 휴경 계명과 연결된 매우 중요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 25:4 “제 칠 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

출 23:10 - 11 “너는 육 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11제 칠 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레 26:33 - 35 “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 너희가 대적의 땅에 거할 동안에 너희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 때에 땅이 쉬어 안식을 누리리니 너희가 그 땅에 거한 동안 너희 안식시에 쉼을 얻지 못하던 땅이 그 황무할 동안에는 쉬리라”

인간은 땅을 황폐하게 만들 권리가 없습니다. 땅도 땅의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H. 게세(H. Gese)는 구약의 안식일, 안식년 계명을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회복이 그 핵심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안식일, 안식년 계명은 인간만을 향하여 있지 않고, 전체 창조세계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전체 창조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해서 창조세계를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책임지는 책임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5)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한 선한 이웃과의 협력

하비 콕스(Harvey Cox)에 의하면 교회는 하나님 나라 건설의 전위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제일선에서 싸우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가톨릭교회가 한 때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일치시킨 적이 있었으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역사의 미래에 있고, 교회는 이 하나님의 나라를 역사 곳에 수립하기 위해 일하는 공동체일 뿐입니다. 물론 교회 안에 하나님의 나라의 부분적인 모습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스 큉(Hans Küng)은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의 전조’라고 말했습니다. 교회 속에는 미래에 나타날 하나님 나라의 어떤 모습이 미리 앞당겨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분적인 일치 내지는 상응일 뿐이지, 교회 속에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이 완전히 나타난다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교회를 통해서만 도래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를 통해서만 확장되어 나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지나친 과대평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고 건설하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지, 결코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이 하나님의 활동에 봉사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한 하나님의 활동은 교회 안과 밖에 동시에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시지만, 동시에 교회 밖에 존재하는 사람이나 기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나가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밖의 많은 사람들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봉사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구약에 의하면, 하나님은 바사 왕 고레스를 통해 자신의 역사 계획을 성취하셨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교회 밖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활동에도 유념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밖에 많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한 선한 동역자들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 건설의 결정적 도구는 역시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만이 하나님의 뜻을 명시적으로 아는 공동체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꾼을 직접적으로 양성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통한 성령의 직접적인 지도가 없는 교회 밖의 선한 활동들은, 순식간에 이기심에 물들고, 잘못된 길로 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유념해야 합니다.

<질문> 교회가 항상 힘 약한 자와 가난한 자의 편이 되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 속에 존재하는 이기심과 죄악성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지배자는 언제나 악이고, 가난한 자는 언제나 선이라는 흑백논리는 정당성이 없습니다. 가난한 자가 지배자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선을 내포할 수는 있어도, 가난한 자 속에도 역시 이기심과 죄악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음을 교회는 유념해야 합니다. 교회가 공동의 선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은 교회는 지배자의 불의를 고치는 동시에, 가난한 자의 죄악도 고쳐서 양자 모두 공동의 선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부자의 지배도 가난한 자의 지배도 아닌, 부자와 가난한 자와 함께 형제로 사는 평화의 공동체를 지향해야 합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